붉은 노을이 지고 있는 오후, 마을 전체로 퍼지는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는 컸다.
주원은 학교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해 보였다. 괜히 손목을 걷어 시계를 확인하다가도 양쪽 주머니에 손을 꽂고 발끝을 세웠다가 내렸다. 발끝으로 괜스레 바닥을 차기도 했다.
시간을 보낼 겸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입구에 쭈그려 앉아 바닥을 빤히 보았다. 대한민국 산왕공고 3학년, 주원은 곧 졸업할 사람이었기에 수업을 일찍 마쳤지만, 그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고2라 지옥의 수능 준비를 해야 하는 학생이었다. 주원이 한참이나 땅을 문질러대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하나, 둘 하교하기 시작했다.
같은 검은색의 교복들이 보이자, 주원의 표정이 바뀌었다.
" 여기야, 명헌아. "
" 형? 여긴 왜 있는 건가용. "
" 너 기다렸지, 인마. "
" 다른 형들은 2시간 전에 갔는데용 "
" 너 기다렸다니까? 믿질 않네. "
" 믿기 힘듦, 뿅. "
주원은 저 멀리 거무죽죽한 사내들 사이에서도 유독 머리 하나가 더 솟아나 있는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밝게 웃으며 팔을 흔드는데도 상대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명헌은 눈앞에서 제게 손을 흔드는 선배를 보며 의문이 들었다.
분명 수능이 끝나고 곧 졸업을 앞둔 선배들은 1시까지만 수업을 하고 하교한다고 들었는데, 5시가 되었는데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주원을 보았다.
명헌이 말하는 다른 선배들은 전부 농구부로서 체육관에서 연습하다가 간 것을 뜻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주원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웃음기가 담긴 말에 명헌이 믿기 힘들다고 답했다. 명헌이 교문까지 걸어 나오자 주원은 익숙하다는 듯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옆을 차지했다.
" 무겁다, 뿅. "
" 참아, 금방이야. 추운데 오뎅이나 먹으러 갈래? "
대한민국의 한파에 롱패딩을 입는 학생들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명헌과 주원도 그 무리에 속했다. 물론 운동하거나 농구할 때는 벗는 편이었지만, 그 외에는 뼈가 시리도록 추운 바람에 패딩을 꼭 입고 다녔다.
두 사람이 입고 있는 패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초겨울이 되었을 때 서로 맞춘 커플 패딩이었다.
명헌은 제게 팔을 걸치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이끌어 제가 가려던 곳과는 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주원을 빤히 보았다. 그의 발걸음대로 말없이 따라가기만 했다.
도착한 곳은 학교 근처에 있는 분식 포장마차였다.
길거리에 흔하게 널린 주황빛의 천막을 쓴 포장마차. 비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주원이 넉살 좋게 이모님에게 인사를 하는 걸 명헌은 지켜보기만 했다.
" 이모~! 여기 떡볶이 1인분하고 오뎅 2인분, 튀김 2인분이랑 순대 1인분만 주세요. "
" 어엉, 우리 아들들 왔어? 쪼매만 기다려! "
" 어? 너 얼굴이 왜 그래. 명헌이가 아니라 밍힝인데? "
" ... 아니에용. "
" 아니긴~ 학교에서 잠 못 잤어? "
간단하게 주문을 마친 주원이 고개를 졸려 조금 피곤해 보이는 명헌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애둘러 말하는 그의 말에 명헌이 고개를 돌리며 아니라고 말했다. 또 넉살 좋은 미소를 보이며 주원은 명헌의 어깨에 팔을 걸쳐 끌어당겼다.
품에 안는 척하며 입꼬리의 호선을 따라 올려 웃었다.
명헌과 주원의 앞으로 주문했던 음식들이 차례대로 나오자 두 사람은 나무젓가락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명헌은 주원을 보고 있으면서도 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게 정확하게 무슨 감정인지 몰라서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도 못했다.
그저 묵묵하게 떡볶이와 순대를 먹을 뿐이었다.
뜨거운 음식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 뜨거운 연기가 음식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 우리 명헌이, 잘 먹네~ 더 먹어. 더. "
" ... 그런 말 하니까 아저씨 같아용. "
" 인마! 선배보고 아저씨라니! 너랑 나랑 1살 차이거든? "
" 저런 아저씨는 되지 말아야겠어용. "
주원은 잘 먹는 명헌의 모습에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들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충격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명헌을 보았다. 그는 말을 바꿀 마음이 없는 건지 회심의 일격까지 가하고서 다시 음식을 먹었다.
건장한 남학생 둘이서 먹다 보니 많다고 생각했던 음식들이 어느새 동나 있었다.
계산을 마친 주원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명헌을 보며 웃었다. 그의 어깨에 다시 팔을 걸치며 걸어 다녔다. 시내의 거리에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추워서 입김이 훅훅 불어나는 대도 주원은 계속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명헌을 보며 말했다.
" 명헌아, 전에 여름 방학 때 기억하냐? "
" 여름... 방학? 뿅 "
" 응. 여름 방학. 그때 엄청 더웠는데~ 벌써 추운 겨울이라니. "
" ... "
명헌은 주원이 말하는 걸 조용히 경청했다.
그가 말하는 대로 이미 머릿속은 여름 방학을 떠올리고 있었다. 바닷가를 걸으며 물장구를 치고 함께 놀았던 거라던가, 서로 덥다며 소리치고 짜증을 내면서도 떨어지지 않던 모습도 떠올랐다.
시골에 내려가서 시간을 보낼 때가 가장 인상 깊었다.
그때의 매미 소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 듯 주원을 보았다.
여전히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서 걸친 팔로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미안함이 보였다. 명헌은 그제야 주원이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 내가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
" 괜찮, 뿅. "
" 그래도 너 스스로가 만들 수 있는 환경으로는 만들어 뒀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
" 의외네용. "
" 사나이라면 약속을 지켜야지. "
몇 달 뒤면 주원은 산왕공고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
학교 내에서의 농구부 활동은 엄연히 3학년 1학기 때까지였다. 2학기에서는 그들도 진로와 미래를 결정해야만 했으니까 활동할 순 없었다.
지금은 1학기가 끝났고, 2학기의 끝 무렵이었다.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 줄 거라던 선배는 이제 곧 졸업한다. 완전히 산왕공고를 떠나 성인이 된다는 거였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명헌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주원이 3학년이 되면서 묘하게 여행가는 게 늘었고, 갈 때마다 사진 찍는 것도 늘었다.
그건 명헌과 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있을 때도 포함이었다.
명헌은 제가 지금 느끼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말로 차마 이룰 수 없었다. 자신이 말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하는 이 남자가 대신 나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위해준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명헌의 시선이 주원을 지긋이 보았다.
그의 시선에 주원이 수줍게 웃으며 장난을 쳤다.
" 허니야~ 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심각하냐? "
" ... 아무것도 아니에용. "
" 너 또 싱숭생숭하지? "
" ... 삐뇽. "
명헌은 제 표정만 보고도 단번에 알아차리는 주원의 말에 조금 놀랐다.
이 사람은 항상 그랬다. 어릴 적부터 다른 누구도 전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유일하게 알아차린 사람이었다.
고개를 돌리며 아닌 척했다. 해 봤자 그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지만.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나니 이제 거리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환한 LED 빛들이 퍼져나갔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뽀얀 입김이 올라갔다.
명헌이 멍때리고 있을 때, 주원이 곁으로 다가오더니 패딩 주머니 안으로 손을 쑥 넣었다.
좁은 주머니 안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의 큰 손이 부대껴서는 꽉 찼다. 주원은 핫팩을 쥔 채 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었고, 명헌의 손과 맞잡았다. 명헌은 옆에서 흥얼거리고 있는 주원의 모습을 보았다.
목에는 초겨울에 같이 샀던 나름 커플용이라던 목도리가 보였다.
" 형, 몇 개월 뒤면... "
" 그렇네. 나 졸업이겠다. "
" ... 괜찮아용? "
" 괜찮지. 나는 오히려 우리 명헌이가 더 걱정인데~ "
" 왜 날 걱정하나요 "
" 애인이 걱정되지. 안 되겠어? "
명헌의 물음에 주원은 특유의 밝은 표정을 지으며 명헌을 보았다.
그의 미소에 명헌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서 멍하니 보았다. 거리는 지금 한참 할로윈 이벤트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여기저기 가짜지만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널렸다.
명헌은 주원의 입에서 나온 애인이라는 말에 살짝 몸을 굳혔다.
살짝 얼굴이 뜨겁게 느껴지는 걸 너무 추워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시간이 유한히 흐르고 있을 때. 어느덧 시간은 달리고 달려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10월 30일에도, 11월 11일에도, 그리고 12월 25일인 지금까지도.
명헌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주원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뚝뚝한 표정을 지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주원의 말이 인상 깊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사진 찍을 때 웃기라도 하라고 요구하는 반면에 주원은 그런 게 없었다.
있는 그대로를 봐주고 있는 느낌.
" 형, 추운 날에 부른 이유가 뭔가용 "
" 명헌아. 형이 곧 졸업이잖냐. 선물 줄 게 있어서 그래. "
" ... 보통 후배가 챙겨주는 거 아닌가용 "
" 뭐... 그렇긴 한데, 형은 졸업하고 나면 우리 헌이가 가장 걱정되거든. "
" 삐뇽. "
그 추운 겨울날에 두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편의점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들과는 오후까지 논 다음 명헌과 따로 벗어나 놀아서 그런지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갔다. 오후에 헤어졌는데 벌써 저녁이 다 되었다. 겨울의 낮은 짧고, 밤은 길다.
명헌은 저를 걱정한다는 주원의 말에 가만히 그를 보았다.
주원은 알까? 제 주변 사람 중에서 유달리 저를 걱정하는 건 당신뿐이라는 걸. 명헌은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이빨이 시려왔다.
준비한 게 있다던 주원은 명헌에게 중간 크기의 상자를 내밀었다.
명헌은 제 허벅지 위로 올려지는 상자가 꽤나 묵직한 걸 느꼈다. 고개를 돌려 상자를 준 주원을 보았다. 그는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 그거 집 가서 열어봐. "
" 여기서 열면 안 되나용. "
" 어, 안 돼. 내가 수치사 할 거 같으니까. "
" 알겠어용. 형의 수치는 지킬게용. "
" 이제 갈까. 시간도 늦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들어가자. "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건지 막대기를 쓰레기통에 원샷으로 넣어버리는 모습을 보았다.
명헌은 그런 주원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원과 명헌은 나란히 거리를 걸으며 가로등 아래를 지나갔다. 주원이 명헌을 집까지 데려다준 뒤에 돌아갔다.
명헌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에 앉아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작은 편지와 꽤 내용물이 있어 보이는 사진첩이 나왔다. 편지부터 열어본 명헌은 하염없이 편지만 보았다. 작은 편지에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 마지막에 승리를 안겨다 주지 못해 미안하다. ]
주원의 글씨체로 꾹꾹 눌러 담긴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편지를 다시 접어 한쪽에 두고는 사진첩을 열어보았다. 첫 장에서부터 사진 한 장과 문구가 나왔다. 명헌은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 바로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 뿅. "
이 사람은 왜 이리 미안하다고만 하는 건지, 명헌의 손이 사진을 쓰다듬었다.
유치원생 때, 함께 농구하다가 해맑게 웃으며 찍었던 사진이었다. 물론 웃는 건 주원 뿐이긴 했지만, 이때는 적어도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다음 장을 넘기니 이번에는 바로 산왕공고에서 주원과 알고 지낸 1년간의 세월이었다.
이렇게 많은 곳을 놀러 가고, 경험하고, 그렇게 지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명헌은 마음속 깊이 몽글거리는 이 감정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간 사진이나 농구부원끼리 합숙했던 사진들도 보였다. 모든 사진에는 주원이 제 곁에 있었다.
처음에는 농구부 선후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였다.
먼저 도와준 사람도 주원이었고, 고백을 해준 사람도 주원이었다.
" 형... "
앨범 마지막에는 문구와 함께 오늘 오후에 모두가 다 같이 찍은 사진이 있었다.
사진 인화한다고 오후에 잠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거구나. 명헌의 손이 사진을 쓰다듬었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 네가 가는 길에 빛이 비치길. ]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문구에 명헌은 피식 바람 새는 소리로 웃었다.
주원은 언제나 항상 제게 있어 빛이 되어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곧 졸업하고, 1년간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되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말로는 형용 불가능한 오묘한 기분.
명헌은 그 기분을 끝내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에서 또 빠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주원은 크리스마스의 데이트 이후로 연락이 한동안 되지 않았었다. 분명 대학으로 인해 바쁜 탓이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니 그리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 ... 하... "
명헌이 한숨을 내쉬자 뽀얀 입김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
푸른 하늘에 비해 거센 바람과 추위는 아직 겨울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명헌은 학교 정문 위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현수막을 보자 다시 절로 한숨이 나왔다.
[ 산왕공고 3학년들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빛나는 미래와 함께하길! ]
누가 적은 문구인가 싶어서 보니 졸업생들이 해준 현수막이었다.
명헌은 발걸음을 돌려 체육관으로 향했다. 오늘은 수업 없이 졸업식만 열리고 바로 하교한다고 들었다. 사실상 명헌은 주원이 아니라 농구부원들을 보러 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주원을 보내주기엔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챙겨야 할 건 챙겨야 했다. 교문 옆에 즐비한 꽃다발 가게에 들러 작은 것 두 개와 큰 거 하나를 구매하곤 체육관으로 향했다.
" 어? 명헌아!! 여기, 여기! "
" 너도 온 건가용. "
명헌은 체육관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동급생을 보았다.
우성이 명헌을 보며 그의 팔을 툭 쳤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잡담을 나누다가 졸업식이 시작되는 걸 보았다. 모든 학생에게 졸업장을 수여하고 나서 흩어지는 3학년들을 보았다.
명헌과 우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으로 내려갔다.
이미 주원을 포함한 졸업생인 동오 형이나 현철 형도 보였다. 언제 온 건지 우성과 그들의 앞으로 갔다. 명헌은 묵묵히 작은 꽃다발 두 개를 동오와 현철에게 안겨주고 주원에게 큰 걸 안겨주었다.
누가 봐도 비교되는 꽃다발의 크기에 동오와 현철이 화를 내기도 했다.
그나마 우성이 큰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일단락되었다. 모두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 뒤풀이로 고깃집으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명헌은 주원이 보이지 않는 걸 알아차렸다.
명헌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을 때 우성이 슬쩍 알려주었다.
" 아까 주원이 형, 교실로 들어가는 거 같더라. 가봐. "
" 가도 되는 건가용 "
" 어디 가게인지는 알잖아. 늦지 않게만 오라고. "
늦지 않게 오라는 우성의 배려에 명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발걸음을 빨리 해 주원의 교실로 올라갔다. 교실에는 주원이 항상 앉던 그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모두가 주었던 꽃다발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명헌은 뛰어 올라오느라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원의 곁으로 다가갔다.
명헌이 가까이 올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던 주원은 울음을 참느라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무릎 위에 정갈하게 올라가 있는 손은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쥐고 있었다.
물기 어린 목소리에 화를 누르고 슬픔을 억눌린 목소리에 명헌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 ... 너랑 같이 전국 대회에 가고 싶었는데. "
" 형... "
" 트로피를 들고 함께 찍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어. "
" ... "
" ... 괜찮아, 대학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오라고. 명헌아. "
" 알겠어용. 대학에서도 같이 농구하는 거에용. 뿅. "
주원은 그와 함께 가려고 했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분했다.
그간 그걸 억누르며 지내왔다. 그 누구에게도 티를 내지 않았다. 3학년의 마지막에 얻을 수 있는 영광을 너에게 주고 싶었다. 무패 신화가 깨지고 북산에게 졌을 때, 참담하게도 분했다.
주원이 울음을 참는 탓에 그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 갔다.
눈가에 눈물이 조금 번진 채 주원은 명헌을 보았다. 끝에는 환하게 웃는 미소를 보이며 힘없이 주먹으로 명헌의 팔을 툭 쳤다. 명헌이 조용히 그를 지켜보다가 주먹을 쥐고서 맞받아 주었다.
그날 명헌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와 함께 다시 농구를 하기 위한 목표였다. 주원이 진정하고 나서 두 사람은 뒤풀이가 진행 중인 고깃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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