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NL/독백+일상/230414] 일상

나비의 보관함 2025. 2. 1. 22:06


오늘도 이치고는 무사히 무대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좋아서 하는 거라고는 하지만, 장시간을 노래를 부르며 팬서비스해야 했기에 무리가 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유명 아이돌이지만,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배틀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게 이치고였다. 활발하고 거침이 없는 성격, 정확한 걸 좋아하는 그녀였기에 노래와 배틀은 그녀에게 있어 빼려야 뺄 수 없는 것이었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배틀만큼 좋은 게 없기도 하고...

이치고는 요즘 몰아치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 스트레스나 풀러 가볼까... "

 

턱을 괴고서 보고 있던 신문을 내려두고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그런다고 해서 두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폭발할 것 같았다. 노래하는 것도 좋았고, 무대에 서는 것도 좋고, 팬도 좋아하지만, 모든 팬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가끔가다가 골머리 아플 정도로 무식한 사생팬들이 문제였다. 

이치고는 포스패치에 불법 배틀하는 게 올라가는 걸 두려워하긴 했지만, 당장 급한 게 우선이었다.

변장을 위해 평소와는 다른 복장으로 입고 머리카락도 거슬리지 않도록 땋은 뒤 모자를 썼다. 신기하게도 변장하면 사람들이 알아보질 못했으니까.

 

" 이제 가볼까. "

 

팔을 높이 들어 기지개를 켜던 이치고는 앞으로 배틀할 생각에 기분이 그나마 좋아졌다.

가장 중요한 포켓볼을 허리춤에 들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이치고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스파이크 마을이었다. 다양한 가게가 어수선하게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종종 뒷골목에서 불법 배틀이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꼬치를 사든 이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거니는 거리에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조금 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내뱉으며 여기저기서 불법 배틀을 진행하고 있었다.

 

" 바로 이거지. "

 

이치고는 벌써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배틀을 할 생각에 짜릿한 기분이 최고였다. 여러 사람 사이로 지나가며 자리를 잡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빈 경기장을 찾기 위해서였다. 빨리 찾지 않는다면 오늘은 허탕을 쳐야 할지도 몰랐다.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험한 말을 들었다. 

불법이긴 하지만, 사실상 용돈벌이하기엔 여기만큼 최고인 곳이 또 없었다. 꼬치를 쓰레기통에 버리고서 자리를 옮겼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꽤 유명해 보이는 얼굴이 이치고에게 말을 걸었다.

 

" 여기서 배틀 하려고 온 건가요? "

" ...여기 있다는 거에 이미 정해져 있지 않나? "

" 그렇네요. 저와 배틀 한 판 해주시겠어요? "

" 좋아, 거기. 너! 돈이 많아 보이는데 이 누나에게 나눠주지 않을래? "

 

구경만 하던 이치고에게 다가온 사람은 비트였다.

곱슬기 다분한 백금발이 인상 깊은 사람, 실력 좋은 비트와 배틀이라니. 이치고는 마음에 들었다. 경기장에 자리를 잡고 허리춤에 있는 포켓볼을 꺼냈다.

가장 먼저 꺼낸 건 블래키였다.

볼에서 빛을 내며 튀어나온 블래키가 비트를 경계했다. 가만히 블래키를 보던 비트는 포켓볼을 던져 포켓몬을 소환했다. 비트가 꺼낸 건 님피아였다. 같은 이브이에서 나온 진화체라니, 상당히 질 나쁜 농담 같은 대결이었다.

 

" 블래키, 속여 때리기 이후 속임수! "

" 님피아, 전광석화! "

 

질 나쁜 장난 같은 대결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임해졌다.

이치고와 비트, 두 사람은 한 번을 밀리지 않고 동등하게 싸웠다. 재밌다는 듯 시합을 지켜보는 이치고와 달리 비트는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었다. 

블래키 이후로 루나문까지 나온 이후에 이치고는 힘겹게 우승했다.

비트는 승패 상관없이 재밌었다는 듯 이치고에게 손을 내밀었다. 불법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트레이너들은 서로 위해주고 있었다. 이치고는 비트의 손을 잡아 악수를 한 뒤 블래키와 루나문을 쓰다듬어 주었다. 화사하게 웃는 미소를 짓는 이치고의 모습을 비트가 지켜보고 있었다.

 

" 꺄하~! 역시 우리 파트너들은 최고라니까! "

" 졌으니 상금을 주어야겠죠. "

" 재밌는 승부였어. "

 

비트가 건네는 2,500골드를 건네받고는 바로 지갑 안으로 넣어버린 이치고는 웃으며 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재밌었다고 답한 비트는 골목 안쪽으로 사라졌다. 이치고는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용돈벌이를 했다는 것 정도.

포켓볼에 루나문을 돌아가게 한 뒤 산책하고 싶어 하는 블래키와 함께 골목을 벗어났다.

거리를 걷다 보니 마리와 우리, 승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한 이치고가 블래키와 함께 가까이 다가가 세 사람을 지켜보았다.

 

" ...래서 시합하자는 거야? "

" 너랑 시합하고 싶어! "

" 우왓, 승재야...!! 여긴 거리인데 괜찮을까?! "

" 시합하고 싶다면 체육관으로 와. 내일. "

" 그거! 나도 구경해도 될까? "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걸 듣고 있던 이치고는 불쑥 나타나선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나타난 이치고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는 승재와 우리, 흠칫 놀라는 마리였다. 변장으로 인해 알아볼 수 없었던 마리는 경계했지만, 승재와 우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곁에 있던 블래키의 모습에 신기해하며 관심을 보였다.

 

" 물론이지! 와... 이 블래키가 파트너야? "

" 응. 내 파트너야. "

" 엄청 멋있다! "

" 내 파트너가 최고긴 하지! "

 

파트너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이던 이치고는 아직도 경계하고 있는 마리를 보았다.

이치고를 의심하고 있는 마리의 모습을 우리와 승재는 보지 못했지만, 분위기에 예민한 이치고는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치고는 마리의 의심을 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블래키를 귀여워하고 있는 우리와 승재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

승재와 우리를 지켜보던 마리는 조용히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 난 이만 가볼게. "

" 응, 마리. 잘 가! 체육관에서 봐. "

" 저기... 블래키는 어떻게 테임했어? "

" 응? 그게... "

 

마리가 떠나가고 남은 자리에서 우리가 이치고에게 질문을 해왔다.

이치고는 별다른 의미 없이 제가 블래키를 테임했을 때의 일을 알려주었다. 공원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푸르던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자 우리와 승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차 싶다는 듯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의 말에 이치고 역시 다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정리한 뒤 두 사람을 향해 웃어주었다.

 

" 아앗! 벌써 저녁이 다 되어 가잖아!? "

" 그러네! 빨리 가야겠다! "

" 그럼 우리도 슬슬 갈까? "

" 응! 가자! "

 

옷을 탁탁 털어 먼지까지 처리한 이치고는 우리와 승재를 따라 체육관에 도착했다.

스파이크 체육관에 도착하자 배틀할 준비를 하는 마리가 보였다. 우리와 승재를 반겼지만, 뒤이어 따라오던 이치고는 그리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마리가 썩 반기는 기색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이치고는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이치고가 자리를 잡고 앉자 먼저 우리와 마리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치고의 옆에 승재가 앉아선 흥미진진한 눈으로 대결 과정을 보고 있었다. 이치고는 승재의 눈빛을 보며 그렇게도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이 아니었더라면 저도 승재와 우리처럼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 여행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뭐가 되었든지 간에 마리의 힘에 우리가 밀리고 있었다.

 

" 우리야! 힘내!! "

" 읏... 꼭 이길 거야! "

 

배틀을 하면서 빛이 나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이치고는 가볍게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승재는 배틀에 집중하느라 이치고가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열중하는 승재와 우승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을 눈에 담아놓고 이치고는 자리를 떠났다.

내일 있을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선 지금 떠나는 게 맞았다.

마리와는 배틀해보고 싶었지만, 해보지 않을 것 같았기에 조용히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온 이치고는 블래키와 루나톤을 포켓볼에서 꺼낸 뒤 함께 침대에 누웠다.

 

" 우리 새 친구 데려올까? "

 

이치고의 말에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다는 듯 루나톤과 블래키가 반응을 보였다. 

생각하고 있던 파치리스를 새로 데려올 생각에 잔뜩 설레어왔다.

큰 침대 위에서 블래키와 루나톤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하루 배틀로 인해 피곤한 탓에 도중에 깨어나지 않고 푹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