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있었던 소방서에서의 기간이 끝나고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된 백린은 심란했다.
매사에 신중하고 할 말을 하긴 하지만 물의를 참지 못하는 제 성격 때문에 전 소방서에서는 이만저만 바쁜 게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일이 많은 서울 태원소방서라니, 백린은 암담한 게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강하게 짓이겨 물어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 앞에 있는 커다란 소방관이 문제였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며 사람 구하기란 매번 할 때마다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다지 못 할 짓도 아니다. 묵직하고 깊은 한숨을 내뱉은 뒤 들어간 소방관 안에 가장 높아 보이는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잔뜩 긴장한 채 대원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면 학생 때로 돌아가는 긴장감이 들기도 한다. 초, 중, 고, 대학까지.
입학만 했다고 하면 수업 시간에 서서 자기소개를 하지 않던가.
그때의 긴장감이 지금 느껴졌다.바짝 긴장한 상태이다 보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이전에 만났던 꼰대 같은 상사가 없길 바라면서.
" 안녕하십니까! 오늘부로 태원소방소에서 일하게 된 소방교! 설백린입니다. "
" 어? 설 씨야? 신기하네~ "
" 어? 설... 백린? "
" 어?? 봉도진?? "
" 뭐야, 서로 아는 사이야? "
백린은 눈앞에 있는 도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두 사람은 서로 놀란 얼굴이 되어 입을 떡하니 벌린 표정이 되었고, 그걸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1N 년 지기 소꿉친구. 그건 봉도진과 설백린의 관계를 정의한 단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잠시 연락이 끊겼던 사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비슷하게 바빠지는 탓에 서로에게 연락이 뜸해졌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느라 정신이 없어 연락이 끊겼는지도 몰랐던 친구. 그게 도진이었다.
같은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그가 소방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게 서울태원소방서라니. 심지어 저와 같은 소방교라니. 남자라면 분명 군대도 다녀왔을 텐데, 어째서 같은 교를 달고 있는 건지 의문이 살짝 들긴 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수선해진 주변을 정리하기 위해 밝은 미소를 지으며 생각을 정리한 다음 말했다.
" 하하... 소꿉친구입니다. 소꿉친구. "
" 이야, 이런데서 다 만나고. 인연인가보다? "
" 예?? "
소방령인 고순의 말에 놀란 두 사람이 동시에 되물어보았다.
동시에 답한 게 웃겼던 모양인지 고순은 웃으며 별것도 아닌데 동시에 답하는 거 보니 영 수상하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도준과 백린은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서로를 그렇게 생각한 적도 없거니와 엮인 적도 없었다.짓궂은 장난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다 보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백린 외에 새로 온 소방교들의 인사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백린은 자판기에서 믹스커피를 뽑고 있는 도진의 뒷모습을 빤히 지켜보았다.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 소방관이 되기까지 그와 소꿉친구였던 저였다. 하지만 지금 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는 그의 모습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제가 아는 그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았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학생 때와는 다르게 듬직해진 어깨와 등, 가슴.
이제 더 이상 앳된 티가 나지 않고 성숙한 티가 나는 얼굴이 그러했다.
" 잘 지냈어? "
" ... 나야 뭐, 너는? "
" 잘 지냈으니까 너랑 같은 소방교 아니겠냐. "
도진과 연락이 끊긴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제가 아는 도진이 맞았다.
비록 외관상으로는 바뀐 게 많았지만, 분명히 제가 아는 그 도진이었다. 자판기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조금 우스웠지만, 알지 못했던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앞으로 이곳에서 잘 지낼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퇴근 이후 도진과 술집에서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연락이 끊겼던 지난날들을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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