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유키나는 사립 고등학교 2학년에 전학 온 의외의 전학생이었다.
2학년이라는 시기에 전학을 왔기에 학생들이나 선생들 사이에서 많은 말들이 나왔고 그 말은 살이 붙어 말이 안 되는 이야기까지 만들기도 했다. 전 학교에서 일진이었기에 사고를 쳐서 전학을 왔는데 돈을 주고 들어왔다, 이사장을 뒷배에 두고서 들어왔다던가, 특례생이라는 말도 있었고 벼락부자라는 말도 더해졌다. 마지막의 경우에는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반박하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유키나의 등하교를 도와주는 집사 같은 사람이 있는 걸 봤다는 다수의 목격자 말에 최근에는 벼락부자라는 이야기에 조금 더 힘이 실리고 있는 상태였다.
"흠... 저 후배란 말이지?"
"응, 응. 저 후배가 2학년인데도 전학생으로 들어온 아이래."
"흐응..."
창가에 기댄 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건물 앞에 자리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유키나에게 시선을 주던 고죠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재미있는 일이 생겨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흔치 않는 시기에 과도하게 부풀려진 소문, 하지만 정작 소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저 모습들이 고죠의의 호기심과 장난기를 자극했다. 학생회장의 완장을 차고 있는 은발 남자의 이름은 고죠 사토루.
고죠 가문의 후계자로 사립 고등학교 3학년이면서 학생회장의 자리까지 올라간 남자였다. 반짝거리는 은발과 화려한 색감의 벽안은 뭇 여성들의 마음을 강하게 두들기다 못해 부술 정도의 외모였다. 잘생기고 가문도 좋고 거기에 공부도 잘하는데 심지어 운동까지 완벽했던 고죠였지만 유일하게 성격 하나만큼은 교내에서도 자자할 정도로 좋지 못했다.
그런 그의 마음에 들어버린 유키나라는 전학생이 조금 불쌍해지는 모브 양이었다.
"...유키나님."
"카이토, 유키나라고 부르라니까요."
"...네, 아니 응. 유키나. 학교는 잘 다녀왔어?"
"오늘도 시시했어요."
어느덧 시간은 흘러 모두가 하교하는 시간에 보란 듯이 검은 세단이 멈추었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사람은 항상 유키나를 아침저녁마다 데리러 오던 학생들 사이에서는 집사라고 불리는 그 남자였다. 검은 세단에 검은 정장, 검은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충분히 학교 앞에 있기엔 부적절해 보였지만 선생도 학생도 그 누구도 터치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일하게 다가오는 한 사람만이 지적했다.
" 학교 앞에서 그런 수상한 차림이면 오해 받는다구, 카이토 씨"
"뭐라?"
"오랜만이야, 카이토 씨"
"...고죠 도련님?!"
" 에"
길죽한 다리로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두 사람 앞에 당당하게 선 사람은 고죠였다. 실실 웃는 얼굴에는 장난기가 그득 붙어있었지만 천연덕스럽게 넘기기까지 했다. 누군가의 시비에 욱했던 카이토는 등을 돌려 당사자를 보았고 익숙한 목소리와 얼굴에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키나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왔던 카이토의 처음 보는 모습에 적잖게 당황하고 말았다. 놀란 두 사람과 그 사이에서 능글 맞게 웃고 있는 고죠, 세 사람은 우선 차량을 타고 근처 카페로 가기로 했다.
-카페 안
고죠와 마주 보게 앉은 카이토와 유키나의 반응은 극명 나게 차이가 났다.
반가운 듯 내리 웃고만 있는 카이토와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유키나였다. 유키나를 뺀 두 사람이 몇 십분째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걸 차를 마시며 듣고 있던 유키나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카이토하고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는 건데...’
진짜 맞는 건가? 싶은 마음으로 힐긋 고죠를 보자마자 시선이 맞닿았다. 유키나는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타이밍에 맞게 시선이 얽힌 게 아니라 고죠 쪽에서 계속 자신만 보고 있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쓸데없는 확신이 생겨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이번에도 역시나 시선이 얽혔다. 거기다 이제는 능글맞게 웃기까지 했다.
‘뭐지? 뭐야?’
이성의 시선 자체가 낯설었던 유키나는 순식간에 얼굴을 불타는 고구마처럼 새빨갛게 물들였다. 고죠는 부끄러워하고 있던 유키나를 보며 능글스럽게 웃었다. 마치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보는 그 시선은 앞에 있던 카이토까지 알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고죠 도련님은 유키나 아가씨를 아시겠네요.”
“카이토, 유키나라고 하라니까요.”
“네, 유키나.”
“나는 기억하는데, 유키나는 기억하려나 모르겠네.”
“네?”
카이토의 말에도 의문스러웠지만 뒤이어 붙어오는 고죠의 말에는 유키나가 그저 혼란스러웠다. 아직 학생인 지금, 기억이라는 말을 꺼내는 걸 보면 분명 유치원생 정도의 시절이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사고로 가족이 돌아가시기 전의 이야기라면 카이토와 아는 것도, 자신을 기억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제가 어릴 때 기억을 못 해서요."
"음~ 아니야, 사고가 있었다고 하니까. 다시 친하게 지내면서 기억 찾는 것도 보람 있을 테고."
고죠는 웃는 얼굴로 말하면서 팔짱을 낀 채 앞으로 몸을 숙여 테이블에 기댄 채 말했다. 그 모습에 유키나의 얼굴은 더 붉게 익어갔다. 그녀의 반응이 재밌는지 고죠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리고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기 위해 손으로 입가를 가려냈다. 귓가에 울려오는 두근거리는 소리는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미 고죠의 눈에는 가득, 유키나만 차있기 때문이었다.
" 그, ... 선배? "
"편하게 사토루라고 불러도 괜찮아."
"... 사토루 선배. 후계자하고 들었는데 고죠의..."
"맞아, 사토루 도련님은 후계자이시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키나가 처했던 어릴 적 이야기까지 나오고 말았다. 카이토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키나의 어린 시절,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코가 가문 자체가 무너져가기 시작했던 것부터 시작해 카이토가 홀로 유키나를 키워가며 지냈다는 것까지. 그 이야기를 듣던 고죠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끝내 완전히 굳어버린 고죠가 유키나를 보며 말했다.
" 유키나. "
"전 괜찮아요."
" ...나랑 약혼하자."
"네, 그렇... 네?!"
유키나는 고죠가 자신을 걱정해 주는 줄 알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정작 들려온 것은 유키나가 생각했던 말이 아니었다. 당황스러워하는 유키나를 보며 웃는 고죠는 역시 데려가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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