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HL/드림/221006] 후회, 분노 그리고 질투

나비의 보관함 2025. 1. 3. 20:54

 

" 우윽... 바보... "

 

 

고개를 푹 숙인 채 무릎 위에 놓인 작은 선물상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나가는 다른 사람은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이미 눈물이 고여 글썽거렸다. 채림은 혹여나 누가 볼세라 옷소매로 눈가를 북북 문질렀다. 소매에 묻어나오는 눈물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나오는 건 분명 채림을 울린 이의 소행이었다.

 

 

" 씨... 선생님, 바보야... "

 

 

채림은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한 듯 턱 밑을 우그러트리며 울음을 참아냈다. 

아무리 참아도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녀가 이리 억울하게 느낀 건 전부 채림의 연인이 문제였다. 사귀기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상태인데 거리에서 당당히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저 잠깐의 장난이겠지, 하며 생각했던 것도 잠시 그다음 날에는 처음과 다른 여자를 안았다.

그다음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의 다음 날에도 여전히. 여자의 취향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안았다. 채림은 그 충격을 쉽사리 떨쳐낼 수 없는 모양이었다.

 

 

" 하, 선생님이 하면 나도 할 수 있어. "

 

 

혼자 중얼거리던 채림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무릎 위에 올려져 있던 작은 선물상자는 마치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분노로 치켜든 얼굴에는 서러움과 일말의 다짐이 새겨졌다. 그날 이후로 채림은 제 애인처럼 자신도 여러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처음이 어려울 뿐. 두 번, 세 번은 쉬웠다.

그렇게 서로가 연인임에도 다른 사람을 품에 안기 시작한 지 며칠이 흘렀을 때, 거리를 걷던 고죠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채 호텔에 들어가려 하는 채림을 발견했다.

 

 

" ... 채림이? "

 

 

채림을 목격한 고죠의 인상은 단번에 찡그려졌다.

무슨 생각을 겨를도 없이 그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미 채림은 다른 남자와 함께 호텔 안으로 들어가 버린 이후였다. 고죠는 호텔 앞에서 제 연인이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채림을 기다리면서 고죠는 처음에 부정했다. 일전의 그녀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부정 다음은 분노였다. 한참 분노를 곱씹고 있을 때, 채림이 함께 들어갔던 그 남자와 함께 나왔다. 채림을 보자마자 고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팔을 붙들고 당황해하는 남자를 두고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건 순식간이었다.

남자를 두고서 고죠의 팔에 이끌려 호텔로 들어와 그가 방을 잡은 것도, 고죠와 함께 방에 들어가게 된 것도, 침대에 팽개치듯 앉아 있다가 말다툼하다 막무가내로 잠자리를 가지게 된 것까지.

 

 

" ... 선생님은 나에게 이러면 안 돼. "

" 하, 아직도 그 말이니? 채림아. "

" 선생님이 먼저 다른 여자랑 잤잖아! 그런데 나는 왜 안 돼? 왜? "

 

 

일방적인 타박에 채림은 고죠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그 분노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채림의 눈썹은 찡그려지면서도 눈은 울고 있었다.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고죠는 할 말을 잃은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제야 고죠는 제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한 건지 깨달았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서로 나체가 된 상태가 되어서야 고죠가 깨달은 것이다. 되돌릴 수 없었다. 고죠는 자신의 화를 누그러트리며 거칠게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 채림아, 나는 그저 네가 학생이라서 참고 있었을 뿐이란다. "

" 그걸 믿을 거 같아? "

" ... 믿어! 네가 믿어야지. "

 

 

이불을 움크려 쥐는 채림을 보며 고죠는 자신도 모르게 욱하는 마음에 소리치고 말았다.

그 소리에 움찔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채림의 모습에 그는 그녀에게보다 저에게 더 화가 났다. 지키고 싶어서, 지켜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인데 그 행동이 채림에게 상처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잇새를 악물어보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말이다.

 

 

" 넌, 넌 내 건데... 겨우... 겨우 참고 있었는데...!! "
" ... 흑, 흐읍... "

" 넌 내 거라고, 내가 겨우 참았는데! "

 

 

고죠는 자신의 후회를 채림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절절하게 말했다.

침대 맡에 앉아 울고 있는 채림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제 잘못을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그녀의 팔을 붙잡은 채 울분을 터트렸다.

다문 잇새 사이로 뿌득하고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채림 역시 뒤늦게 고죠의 마음을 알게 되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깨를 붙잡힌 채로 채림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려 고죠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고죠의 얼굴에는 여전히 분노와 후회가 한데 섞여 있었다.

 

 

" 그래서, 다른 놈이 잘해주든? 내가 아닌 다른 놈 아래에서 노니까 좋았어? "

" 선, 생님... 왜, 그런, 말을... 흑 "

" ... 젠장! "

 

 

고죠는 울기만 하는 어린 그녀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내뱉었다.

질투와 분노가 한데 어우러져 광기를 만들어냈다. 채림은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에 자기 말을 채 이어 말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고죠는 험한 말을 내뱉었다.

고죠의 입에서 나온 험한 말에 놀란 채림이 움찔거렸다. 

가녀린 어깨가 옅게 떨리고 있다. 채림의 반응을 본 고죠는 또 뒤늦게 자신이 제 분노로 여린 채림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한순간에 팍하고 풀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