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를 장군님이 받으실 때면 저는 한참 바빠 정신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작은 종이에 먹으로 감정을 옮겨 적으려고 하니, 평소에 쑥스러워 내뱉지 못했던 말들까지 나올 것 같아 자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본디 적인 자를 눈여겨보며 생활하는 것이 제 임무인지라 몰래 편지를 보내고 받는 것이 힘들어 편지가 짧아 죄송합니다. 이 길고 긴 고통스러운 첩자 활동이 끝을 맺는다면 빠른 답을 해드릴 터이니 너무 역정 내지 마시고 부디 기다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장군님, 활동하다 보니 우리 일본과는 다른 조선의 연모 이야기가 귀에 종종 들어옵디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저는 장군님이 생각납니다.이 마음이 장군님께도 닿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먹빛을 머금은 바다가 내어주는 짭짤한 소금 냄새와 정겨운 조선인들의 곡조를 듣고 있으면 이따금 고향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제는 여기를 고향이라고 생각해야겠지요.잠들기 전이면 항상 장군님의 연모하는 마음에 외로움만 느낄 뿐입니다. 하루빨리 장군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리며….
조선, 통영에서. 준사
어느새 시간이 흘러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왔습니다.장군님께 편지를 보낸 게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전쟁통에 전서를 보내는 것이다 보니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 같네요.약하디약한 종이에 담긴 제 마음이 안전하게 장군님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승리한다는 승보를 울리고 얼른 장군님에게로 가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은 긴 시간의 고통에 잠기겠지만, 부디 평온하셨으면 합니다. 이 감정이 무엇이냐,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제가 장군님을 연모하고 있다는 거랍니다. 그 감정에 고민을 잠겨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이만 인정할까 합니다.장군님에게 답을 바라는 것도 아니옵고 단순히 제 감정이 이러하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 하는 것입니다.가을바람에 파도가 소용돌이치고 날카로운 바닷바람이 뺨을 치면 따끔거려옵니다. 사실 제가 지내던 일본과는 다른 문화와 식생활에, 처음에는 버거웠고, 힘들었지만 장군님 생각 하나로 버티고 있습니다. 분명 본국에서는 저를 배신자라고 하겠지요.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장군님을 선택하고 이순신 장군님을 따르는 것은 전혀 후회가 없이 살아가렵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저는...일이 생겨 급하게 가야 할 것 같네요. 장군님. 부디 만수무강하시고 몸을 아끼십시오.
조선, 마산에서. 준사
잘 지내고 계십니까, 장군님.초가을에 보냈던 편지의 답장은 늦가을이 되어 제게 도착했습니다. 이리 계절을 알려드리는 것은 제가 느끼고 있던 계절을 장군님과 함께 느끼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이면 장군님네 쪽은 초겨울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그때의 제가 전쟁을 끝내고 장군님에게로 향하고 있는 길이었으면 합니다. 비단 그저 바라고 바라는 간절한 마음일 뿐일 테지만 말입니다.늦겨울이 되기 전에 전쟁이 끝났으면 합니다. 그래야지만 장군님이 힘든 일이 없을 테고, 제가 장군님의 곁으로 돌아갈 테니...몸은 아끼고 있는지, 식사는 잘 챙기고 계시는 건지, 탈 나는 날은 없으신 건지.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게 많지만, 알 수 없으니 갑갑합니다.이순신 장군님과 저희 군사들은 점점 남쪽으로 승보를 이루며 남하하고 있습니다.이 승리가 계속 이어져 장군님의 귀에까지 닿았으면 합니다. 그럼 곧 있을 겨울에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조선, 고성에서. 준사
답장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장군님.겨울이 끝나기 전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일본 놈들과의 전투가 너무 험난하고 힘겨워하는 군사들이 너무 많습니다. 조선의 왕은 우리에게 지원과 병력을 더 이상 내주지 않을 모양인 건지, 요청해도 돌아오는 답이 없습니다.지금은 어느새 유월이 되어 산뜻한 봄과 청량한 여름의 사이 계절이 되었습니다. 곧 있을 한산에서의 전투는 꼭 이기길 바라고 있습니다.이번에 이기면 장군님과 만날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물량도 턱없이 부족하고 잦은 전투로 인해 다친 이들이 많아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이순신 장군과 함께라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꼭 승보를 울리며 장군님의 곁으로 가겠습니다.장군님의 곁에 있는 날을 그리며 승보를 들고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조선, 거제에서. 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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