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지 로즈 타입

[GL/나페스/250310] 엄친딸, 그 언니들 16화

나비의 보관함 2025. 3. 11. 06:44

시간을 달려서

 

부제 :: 돌아온 학교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온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에 내려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 중에 소은과 댄스부도 포함이었다. 수련회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지만, 그들은 다른 학생들처럼 그대로 헤어지는 게 아니라 소정의 집에 가기로 했다.

수련회 이후에 있을 댄스부 경연 대회 때문에 이야기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7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지만 그녀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존재했다. 수연이 슬그머니 다가와 소은을 불렀다.

소은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애써 무시하고 싶었지만, 마냥 무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 소은아. "

" ... "

" 쟨 또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

" 소은아, 무시하고 싶으면 해도 돼. "

 

 

소은도 알고 있었다. 수연은 언젠가 자신이 마주해야 할 과거고, 받아들여야 하는 첫사랑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지금 당장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계속 무시하기엔 수연은 엄연히 선배였고, 다른 학생들도 지켜보고 있는 와중이라 무시로 일관할 순 없었다.

소은을 중심으로 6명이 바리케이드처럼 막아주었지만, 소은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과거와 마주 볼 자신은 없었지만, 할 말만큼은 꼭 해야 했다. 그게 다른 이들의 눈에는 싸가지 없어 보이고 주제도 모른다는 말을 들을 지라도 말이다.

소은이 6명 사이로 비집고 나와 수연의 앞에 섰다.

 

 

" ... 선배, 왜 부르세요? "

" 소은아. 할 말이 있는데 잠시 시간 괜찮을까? "

" 선약이 있어서요. 잠깐 정도밖에 없어요. "

" 그래... 그러면 잠시 카페에 가서... "

" 아니요, 지금 여기서 이야기해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못 할 말이라면 하지 않는 게 좋잖아요. "

" 소은이가 마음 단단히 먹은 것 같지? "

" 소은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눈으로 보는 게 뿌듯하네... "

 

 

수연의 앞에 선 소은을 보던 6명의 그녀들이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그녀들의 시선을 알아차린 수연이 인상을 찡그렸다가 폈다.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수연의 손이 아슬하게 소은의 팔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끝내 잡지 않고 아래로 떨어졌다.

수연은 고개를 저으며 다른 말을 꺼냈다.

어딘가 시간을 끄는 듯한 그녀의 말에 듣고 있던 소은이 가만히 있다가 수연의 말을 잘라냈다. 소은의 단호한 행동과 말에 수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소은이 아닌 듯했다.

 

 

" 그러면 다른 말을... 그러니까, 소은아... "

" ... "

" 내 말은 우리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야. 너도 괜찮다면... "

" 아뇨, 전 분명 저번에 말씀드렸어요. 우리 관계는 여기서 끝이라고. 먼저 끝을 낸 건 선배잖아요. "

" 그때는... "

" 이제 그만. 소은이도 더 대화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으니까, 다음에 기회가 오면 하도록 해. "

" 맞아, 소은이 지금 엄청 피곤하거든? 빨리 가서 쉬어야 해. "

" 하지만 약속이 있다고... "

" 아~ 그거 우리랑 한 약속이거든? 그러니까 이제 좀 가줄래? "

 

 

소은의 단호한 말이 끝나자, 수연이 다시 손을 뻗어 붙잡으려고 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작은 은비와 예린이 소은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마치 벌레를 쫓아내는 듯 쉭쉭, 물러가라는 소리까지 내며 대화를 단절시켰다.

수연이 약속을 핑계로 대자, 보고 있던 큰 은비가 한 마디 덧붙였다.

6명이 몰아붙이는 탓에 수연은 그대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짧게 혀를 걷어차며 소은에게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물러났다. 점점 멀어지는 수연의 모습에 소은은 안도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은의 한숨 소리에 놀란 그녀들이 소은을 걱정했다.

 

 

" 소은아, 괜찮아? 다음에 또 나타나면 그땐 굳이 상대하지 마. 내가 상대해 줄게. "

" ... 네, 고마워요. 언니들. "

" 그럼 이제 갈까? 가기 전에 스타벅스 들러서 마실 거나 사가자. "

" 좋은 생각이야. "

" 나는 아메리카노. "

 

 

그녀들은 언제 심각했냐는 듯 저들끼리 떠들며 갈 길을 돌아섰다. 

그녀들이 떠나는 걸 지켜보는 사람이 존재했다. 벌건 대낮에 큰 나무 아래 그림자진 부분에서 몰래 그녀들의 대화와 행적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시선을 옮겨 수연이 향한 쪽을 보았다.

그녀들을 지켜보던 그림자가 수연이 향했던 쪽으로 움직였다.

 

.

.

.

 

소정의 집, 넓은 잔디 마당과 깔끔한 외관을 가진 2층 집.

소정이 그녀들과 들어오자, 부엌에 있던 가정부가 앞치마에 물기 어린 손을 닦아내며 버선발로 나왔다. 해사롭게 웃는 얼굴은 포근해 보였고 다정한 말투는 영화 속 어머니를 연상케 했다.

소정은 익숙한 듯 보였지만, 그녀의 집에 처음 온 소은은 얼떨떨했다.

모든 것이 신기해 입구에서부터 주변을 둘러보며 이리저리 구경하기에 바빴다. 소정이 그런 소은을 가정부에게 소개해 줄 때가 되어서야 소은이 구경하던 걸 멈추고 가정부에게 인사했다.

가정부는 소은을 가만히 보더니 소정을 힐끗 보았다.

 

 

" 어머... 우리 아가씨 잘 부탁드려요. 소은 씨. "

" 네? 아... 언니가 절 엄청 신경 써줘서 제가 할 건 없는걸요. "

" 우리 아가씨가 그렇게 잘 챙겨주나요? "

" 네. 전학 와서 힘들었는데 언니가 많이 챙겨줬어요. "

" ... 이모, 그런 거 아니야. "

" 아유, 정말... 저도 주책이죠? 어서 들어와요. 간식거리 준비해 뒀어요. "

 

 

가정부의 행동에 소정이 얼굴을 붉히며 그런 게 아니라며 가정부를 말렸다.

소은은 가정부가 자신의 손을 다소곳이 붙잡은 것도, 소정을 잘 부탁한다는 말도 그저 겉치레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걸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소정을 어릴 적부터 봐온 가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지금 짝사랑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열려있는 시야 덕분에 소정이 소은을 짝사랑한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소정을 응원하고 있었다. 가정부는 투박한 손길로 소은의 손을 토닥이더니 황급히 주방으로 향했다.

소은이 가만히 그 모습을 보다가 소정을 보며 말했다.

 

 

" 소정이 언니, 이모님 진짜 좋으신 분이시네요. "

" 그렇지? 내가 어릴 때부터 날 키워주신 분이셔. 부모님께서 출장이 잦으시거든. "

" 이모님~ 우리가 제일 예쁘다고 하셨으면서! "

" 어머, 당연히 아가씨들도 예쁘죠~ "


 

주방으로 향한 사람들은 식탁 앞에 앉으며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위기감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다급하게 가정부를 향해 말을 돌리며 소은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분명 도란도란해 보이고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식탁 아래에서는 은연중에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가운데 앉은 소은만이 덩그러니 놓여 가정부가 주는 간식을 받아먹었다.

그 상황을 전부 지켜보고 있던 가정부는 간식을 주려다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봐온 아가씨, 아가씨가 커가면서 만나온 인연들이 한 소녀를 중심으로 다투고 있는 것이 그저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가정부는 들고 있던 간식을 그 소녀의 앞에 놓아주며 웃었다.

 

 

" 소은 씨, 많이 먹어요. 맛있나요? "

" 음, 으음...! 네! 맛있어요! "

" 소은아! 이것도 먹어봐. "

" 쩡아, 이모님 솜씨가 죽이지? 간식 먹으러 소정이네 집에 올 정도야. "


 

소은이 입안 가득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간식을 넣고서 우물거리다가 가정부의 말에 꼭꼭 씹어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예원과 유나가 자신의 앞에 있던 간식까지 소은의 앞으로 밀어주며 말했다. 소은은 갑자기 쌓이기 시작한 간식거리에 당황했지만, 너무 맛있어서 밀어내지도 못했다.

간식을 먹으면서 댄스 경연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가장 먼저 댄스부의 부장이자 리더인 소정이 이번 댄스 경연 대회의 상품에 대해 알려주었다. 경연 대회의 상품은 보라보라섬 여행 티켓이었다. 여행 티켓이라는 말에 소은을 제외한 모두가 눈에 빛을 냈다.

소정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 우승하는 팀의 인원대로 준비해 준다고 하니까, 이번에도 우승을 차지해 보자. "

" 좋아요! 열심히 연습해야겠네! "

" 저... 그런데 경연 대회는 언제 해요? "

" 아, 경연 대회는 3개월 뒤에 해. "

" 그때면 딱 여름이니까 수영하기도 좋겠다. "

" 수영이요? "

" 보라보라섬이 말 그대로 관광지 섬이라서 수영이 가능해. 수영복도 챙겨야 해. "

 

 

그녀들은 이미 우승이 자신들의 것이라는 걸 기정사실처럼 말했다.

그들의 당당함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소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수영복이라니, 확실히 여름 하면 바다였고, '바다' 하면 수영복이었다. 간식을 열심히 먹고 있던 소은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

소은의 시선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더니 자신의 배를 보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배를 살살 문지르며 손끝에 살집이 잡히자 큰 충격을 받았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웅성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그녀들이 일순간 조용해지고 소은을 보았다.

 

 

" 다, 다이어트가 시급해요!! "
" 어? "

" 웬 다이어트? "

" 뺄 데가 있나...? "

 

 

소은이 일어나는 순간 그녀가 잡고 있던 포크가 테이블 위로 달그락거렸다.

후두둑 떨어지는 간식의 가루를 옆자리에 앉아 있던 소정이 털어주었다. 반대편 자리에 앉은 예린은 소은이 다치지 않도록 떨어진 포크를 안쪽으로 옮겼다.

소은은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자신의 배를 주물거리며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소은의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은 귀엽다,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지만, 소은의 눈에는 그 시선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손끝에 잡힌 살집에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에 파르르 떨기만 할 뿐이었다.

 

 

" 3개월... 단식 다이어트 들어갈 겁니다... 오늘까지만 먹을 거예요. "

" 다이어트 굳이 필요해? "

" 맞아. 수영복이라곤 해도 레쉬가드 입으면 될 텐데. "

" 비키니가 국룰이긴 한데... "

 

 

그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게 나뉘었다.

소은의 다이어트를 막아야 한다는 파와 소은의 다이어트를 도와야 한다는 파로 나뉘었고, 막는 쪽은 그녀의 건강을 걱정해서, 도와야 하는 쪽은 그녀의 비키니 입은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건강이 문제라면 악화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관리하면 될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