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지 로즈 타입

[GL/나페스/250307] 엄친딸, 그 언니들 15화

나비의 보관함 2025. 3. 11. 06:42


시간을 달려서

 

부제 :: 담력 테스트

 

기숙사로 돌아온 세 사람을 반겨주는 건 기다리고 있던 남은 사람들이었다.

돌아왔을 때 수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4명에게 듣기로 소은이 뛰쳐나간 이후 자신이 배정받은 반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소은은 수연이 없다는 말에 내심 안심했다.

복도에는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고등학생들 사이에 중학생은 소은뿐이었다. 소정은 무언가 기억났다는 듯 소은에게 말했다. 그녀가 말한 것은 오늘 밤에 있을 소소한 이벤트였다. 

 

 

" 아, 오늘 우리 애들끼리 담력 테스트하기로 했어. "

" 담력 테스트요? "

" 응. 여기에 오래 방치된 폐건물이 있다는데 팀을 짜서 거기에 다녀오기로 했거든. "

" 아... "

 

 

자세한 이야기는 이러했다. 

숲 안쪽에 있는 오래된 폐건물 안에 2명이서 팀을 짜고 다녀오는데, 건물 안에는 도장이 준비되어 있으니 그걸 찍고 오면 된다고 했다. 가는 길에 별다른 짓은 해두지 않았지만, 어두운 밤이고 숲이니 충분히 담력 테스트할 수 있다는 거였다.

소은은 소정에게 자신도 참여해야 하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소정이 소은을 보다가 웃으며 답했다.

 

 

" 굳이 할 필요는 없긴 한데, 어차피 우리 홀수니까 소은이도 한번 해볼래? "

" ... 그럴까요? "

" 수연이랑은 팀이 되지 않게 할게. "

" 아... 고마워요, 언니. "

 

 

소정의 권유에 소은은 고민했다.

혹여 팀 선정에서 수연이랑 같은 팀이 될지 우려했으나, 눈치가 빠른 소정이 소은에게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소정의 배려에 소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옅게 웃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어쨌거나 고등부 선배들과 담력 테스트를 하게 되었다.

팀을 뽑기 전에 예린이 먼저 나서서 자신이 중학생인 소은과 팀을 하겠다고 말했다. 소은은 소정과 예린에게 솔직히 털어놓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수연과 거리가 벌어졌다.

소은은 뒤통수가 따깝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 ... "

" 응? 소은아, 왜 그래? "

" ... 저쪽에... "

" 아, 참나... 무시해, 괜찮아. 예린이랑 마지막에 출발하면 될 거야. "

" 네... "

 

 

눈빛의 주인은 수연이었다.

소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매서워 보이는 눈빛이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소은이 소정과 예린의 뒤로 몸을 숨기자,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가진 두 사람이 소은을 보았다.

소은의 말하는 방향으로 보니 그녀를 노려보는 수연이 보였다.

소정이 소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었다. 앞서 선배들이 각자 짝을 지어 숲으로 들어가고, 소은이 출발하기 전에 소정과 작은 은비가 팀이 되어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두 학생이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달려왔다.

 

 

" 꺄아아악!!! "

" 무슨 일이야? "

" 귀, 귀신... 귀신이 있어요! "

" 뭐? "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던 소정의 말과는 달리 비명을 지르며 내려온 소녀들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가장 먼저 들어온 학생들은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힘이 풀린 건지 그대로 주저앉았다. 소정이 당황스러워하며 숲 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푸드덕 소리와 함께 까마귀들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가볍던 분위기가 어둡게 내려앉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른 학생들을 찾기 위해 소정과 작은 은비가 출발했다. 그녀들이 출발한 후 5분이 지나고, 소은과 예린이 출발할 시간이 다가왔다. 잔뜩 긴장한 소은과 예린이 목적지를 향해 숲으로 들어갔다.

폐건물로 향하는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소은과 예린은 아무 대화나 하고 있었다.

 

 

" ... 소은아, 오늘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

" 언니들을 믿으니까요. "

" 그래. 네 믿음에 보답을 해야겠지. "

" ... 어라? 예린이 언니? "

" 장수연... 너 왜 아직 여기에 있어? "

 

 

소은과 예린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 거의 초입에 불과했다.

하지만 수연과 다른 학생은 중반쯤에 출발해서 지금이라면 목적지에 도착해서 도장을 찍고 있어야 했다. 결코 초입에서 길을 헤매거나 벌써 도장을 찍고 돌아왔다고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예린의 질문에도 수연은 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소은만 보고 있었다.

소은은 수연의 눈빛 앞에 당당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그 눈빛을 피하며 소은 역시 수연을 무시했다. 예린이 울컥해서 소은의 앞을 막아서며 수연을 노려보았다.

그제야 수연이 예린을 보며 소은에게 향했던 눈빛을 거두고 웃었다. 

 

 

" 응? 길을 좀 헤맸어. "

" 길치도 아니면서... "

" 뭐라고? "

" 아, 아무것도... "

 

 

예린의 뒤에서 소은이 나름대로 소심하게 반항을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린은 소은의 중얼거림을 듣고 의심 가득한 눈으로 수연을 보았다.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가자, 수연과 팀을 맺었던 학생이 나섰다.

그 학생은 선배인 예린에겐 별말을 못 했지만, 만만한 후배에게는 큰 소리로 말했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이었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움츠러든 소은에게 몰아붙이듯 쏘아댔다. 소은은 엄연히 선배인 학생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보다 못한 예린이 소은의 손을 붙잡고 그녀를 대신해 그 학생을 상대했다.

 

 

" 적당히 하고, 길 제대로 찾은 거 같으니까 먼저 가지? "

" ... 선배. "

" 이만 가자, 민정아. "

" 너 조심하도록 해. 얘가 댄스부랑 같이 다니니까 싸가지가 없어. "

" ... "

" 야! "

 

 

마지막까지 시비를 거는 학생의 말에 예린이 욱해서 소리쳤다.

예린의 화에 겁먹은 학생이 움찔거리더니 수연의 손을 붙잡고 먼저 앞서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나서야 예린이 붙잡고 있던 소은의 손을 놓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린의 손이 소은의 등을 가볍게 두들겨 주었다.

불안해 보이던 소은의 모습이 점점 진정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조금 기다렸다가 먼저 앞서간 사람들이 어느 정도 갔을 거라고 예상될 때쯤에 움직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숲길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예린과 소은은 주변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움찔거렸다.

 

 

" 이제 곧 도착이야. "

" 확실히... 무섭긴 하네요. "

" 소은이도 무서워하긴 해? "

" 저도 무서운걸요. "

 

 

한 바퀴 돌아가는 루트라 다른 팀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예린과 소은이 목적지인 폐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안으로 들어가 도장을 찾아다녔다. 가장 깊숙한 곳에서 도장을 발견하고 손등에 찍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소은이 문득 예린을 붙잡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 예린이 언니, 소정이 언니가 안 보이는데... "

" ... "

" 예린이 언니? "

" ... "

" 흡...! "

 

 

소은은 예린을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자, 소매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여전히 답이 없는 예린의 행동에 어깨를 붙잡아 돌렸다. 그러자 돌려진 예린의 얼굴은 소은이 알고 있던 예린의 모습이 아니었다. 피투성이가 된 예린의 얼굴에 소은이 크게 움찔거렸다.

숨을 급격히 참아내다가 곧바로 몸을 돌려 폐건물을 벗어나려고 달렸다.

분명 2층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왔는데, 이상하게도 3층이었다. 혼란스러웠던 소은이 주변을 살펴보고 이번에는 계단을 올라갔다. 두 번이나 연달아 올라가니 1층이 나왔다.

복도 구석에서 중얼거리는 검은 덩어리를 발견했다.

 

 

" ... 거기, 누구세요? "

" ... 혜, 소은아... "

" 소정이 언니? "

 

 

소은은 소정을 보며 움찔거렸다.

평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소정과 달리 지금은 잔뜩 헝크러진 채 지저분해진 상태였다. 평소랑 다른 모습에 소은이 소정을 걱정하며 다가가려고 했지만, 누군가 소은의 손목을 붙잡고 확 끌어당겼다.

소은은 그 손길을 뿌리치기도 전에 한순간에 폐건물 밖으로 나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끌고 밖으로 나온 사람을 보았다. 상대는 2층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예린이었다. 소은이 화들짝 놀라며 예린을 와락 끌어안았다.

예린은 갑작스러운 소은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다.

 

 

" 혜, 소은아?? "

" 저 진짜 예린이 언니가 절 두고 가버린 줄 알고... "

" 도장 찍고 나니까 네가 없어져서 찾느라 고생했어. 계단도 이상하고... "

" 아까 보니까 소정이 언니가 떨고 있던데... "

" 어? 무슨 소리야? 내가 봤을 땐 소은이가 아무것도 없는 구석을 보면서 혼잣말하던데? "

" 네...?? "

" 내가 봤을 땐 소은이가 장수연에게 다가가는 모습이었어. "

" 소정아. "

" 소정이 언니! "

 

 

예린과 소은은 폐건물 안에서 있었던 일을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폐건물에서 나오는 소정과 작은 은비의 모습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특히 소은은 폐건물 안에서 보았던 소정과는 모습이 너무나도 달라서 더욱 놀랐다.

소정과 작은 은비까지 합류했을 때, 폐건물의 문이 열리더니 큰 은비와 예원이 나왔다.

큰 은비와 예원이 누군가를 부축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수연이었다. 안색이 파랗게 질린 채 기절한 상태였다. 그래서 큰 은비와 예원이 데리고 나온 듯했다.

 

 

" 왜 이래요? "

" 몰라, 안에서 막 중얼거리더니 엄청 무섭게 인상 쓰더라. "

" 갑자기 기절하던데? "

" 뭐지... 일단 내려갈까요? "

" 그게 낫겠다. 기숙사로 돌아가자. "

" 네. "

 

 

어쩔 수 없이 수연까지 합류해서 모두가 기숙사로 내려왔다. 

수연은 양호실에 데려다준 뒤 댄스부가 개인적으로 받은 숙소로 옮겼다. 오늘 잠들기 전 일곱 명은 폐건물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개별로 나뉜 방이 아닌 거실에서 이불을 깔고 딱 붙어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