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 팡!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궁도부실 안을 가득 채웠다.
빼꼼, 벽 뒤에서 어두운 회색의 머리가 튀어나와 궁도부실 안을 살폈다. 그녀의 눈이 데굴데굴 굴러가며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그런 그녀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와 알은 채 하며 말을 걸었다.
“ 뭐야, 하나사키. 슈 찾아? ”
“ 아, 아니! 아니야... ”
“ 그럼 궁도부에는 왜? ”
“ ... 으윽, 맞아... 슈 찾으려고... ”
“ 슈는 저 안쪽에서 활시위 당기고 있을걸? ”
“ 정말? 고마워! ”
짙은 갈색의 소년이 하나사키를 보며 지금의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
키리사키고교에 입학한 이후 2개월이나 지났다. 중학생에서 막 고등학생이 된 학생들은 조금씩 고등학교에 적응하고 있을 때였다.
입학 이후 한 달 내로 동아리에 들어가고, 이래저래 바쁠 시기였다.
하지만 하나사키는 그 바쁜 시기에도 후지와라의 뒤를 따라다녔다. 오죽했으면 키리사키고교 궁도부 사람들이 부원이 아닌 그녀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
센이치는 물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쭈뼛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후지와라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민망해하던 그녀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지며 센이치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전했다.
센이치는 이 상황이 웃긴 듯 안쪽으로 들어가는 하나사키를 보았다.
“ 헉... 슈... 연습도 잘하네. ”
“ ... 후, 뭐야. 카에데? ”
“ 안녕, 슈. 오늘도 연습 열심히 하고 있네. ”
“ 부원이 아닌 사람이 들어오면 어쩌자는 거야. ”
“ 으음... 그치만 들여보내 주던데? ”
“ 누가? ”
“ 센이치가! ”
어느새 하나사키는 궁도부의 터주대감이 되어버린 존재였다.
막으려고 해도 막을 방법이 없었고, 막는다고 한들 다음 날이면 또다시 찾아왔으니 막는 걸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은 들어오지 못하는 걸 그녀는 가볍게 들어왔다.
후지와라는 틈만 나면 자신의 뒤를 쫓아다니는 하나사키가 매우 귀찮았다.
중학생 때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던 걸 구해주었더니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게 불만이었다. 이런 걸 바라고서 구해준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다니는 것만 하는 게 아니었다.
애정 표현과 함께 치근덕거림이 부쩍이나 늘어났다. 이전에는 이런 아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생각을 해봐도 걸리는 건 중학생 때의 일 뿐이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이렇게 궁도부에 찾아오는 건 기본이었다.
등교나 하교할 때는 항상 곁에 붙어 다녔고, 하필 반까지 같은 반이라서 바로 옆자리이기까지 했다. 거기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문자를 하거나 전화를 거는 경우도 허다했다.
제대로 쉴 수 있는 개인의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 센... 하, 아무튼 아직 동아리 시간이니까 나가 있어. ”
“ 하지만 밖에서는 슈가 활 쏘는 걸 볼 수 없잖아. ”
“ 부원이 아니니까 당연히 볼 수 없겠지. ”
“ 응, 그러니까 나는 슈가 활 쏘는 거 볼래! ”
“ ... 알아서 해. ”
하나사키는 언제나 늘 이런 식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늘 줄곧 이렇게 따라다니며 함께 다니려고 하면서 치근덕거렸다. 그런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후지와라는 다음에 하나사키가 없을 때 또다시 부원들에게 사과해야 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애써 하나사키를 무시하고 활시위를 당겨 점수판에 겨냥하며 당겼다.
후지와라가 부원 활동을 하고 있는 내내 하나사키는 그런 그를 지켜보았다. 지켜보기만 해도 좋았다. 후지와라의 화살이 점수판을 맞출 때마다 하나사키가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하교할 시간이 지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서도 하나사키의 연락은 계속되었다.
[ 제목 : 오늘도 수고했어.
내일은 내가 도시락 싸갈게. 같이 점심 먹자! ]
[ 제목 : 그러던가.
알아서 해. ]
“ 도시락... 반찬은 뭘로 하지? ”
하나사키는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틈틈이 도시락을 싸서 후지와라와 함께 먹는 점심도, 그의 부원 활동을 지켜보는 시간도 아깝지 않았다. 언제나 무심하고 관심 없어 보이는 후지와라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자신을 구해준 후지와라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새 3개월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언제나 한쪽은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고, 한쪽은 담을 쌓으면 주기만 하던 쪽은 상당히 상처를 받는다.
하나사키가 그런 쪽이었다.
3개월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후지와라를 따라다니며 함께하길 원했고, 그를 사랑했지만, 일방적으로 향하는 건 외롭고 슬픈 일이었다.
하나사키는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후지와라를 향한 마음을 접기 시작했다.
그를 향하던 마음이 답을 받지 못하자, 지쳐간 것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후지와라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한 계기는 두 사람이 하교하면서 나눈 대화에 있었다.
두 사람은 여느 때처럼 모든 수업을 마치고 함께 하교했다.
“ ... 있지, 슈. ”
“ 응? ”
“ 혹시 내가 이렇게 찾아오고, 함께 등하교하는 거 피곤해? ”
“ ... ”
“ ... 아니라고 말 안 하네? ”
“ 그런 거 아니야. ”
“ 있지, 슈. 나 슈를 엄청 좋아해. ”
“ 카에데? ”
하나사키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후지와라의 팬클럽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이 자신을 뒷공원에 불러서 한 말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었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말이었다.
후지와라의 곁에 있으면서 생각해 보지 않은 말이었으니까.
‘ 그거 알아? 네가 궁도부에 다녀가면 항상 후지와라 군이 부원들에게 사과하고 다녀. ’
‘ 그리고 너 때문에 후지와라 군이 얼마나 피곤한지 모르지? ’
‘ 후지와라 군 좀 괴롭히지 마! ’
하나사키는 그 말을 들으면서 아닐 거라고, 후지와라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교하면서 사실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팬클럽 소녀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하나사키는 함께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서 후지와라를 보았다.
그녀의 등 뒤로 붉은 석양이 지고 있었다. 후지와라는 갑자기 걸음을 멈춘 하나사키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석양을 등지고서 잔뜩 그림자 진 하나사키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하나사키는 애써 괜찮은 척 웃고 있었다.
“ 뭐야, 슈. 누구 기다려? ”
“ 어? 내가 누굴 기다리겠어. ”
“ 카에데라던가? 그러고 보니 카에데 안 온 지 좀 됐네. ”
“ 그러게? 카에데는 슈 껌딱지잖아. 너희 싸웠어? ”
“ 아니, 안 싸웠어. ”
후지와라는 지금 상황이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야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후 언제나 자신을 쫓아다녀서 귀찮기만 하던 하나사키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곁에서 따라다닐 땐 그렇게 짜증이 나고 귀찮았던 존재가 지금은 신경 쓰인다는 게 거슬렸다.
하나사키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3개월 동안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제일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은 그녀가 없다는 것에 허전함을 느끼고 있다는 거였다.
거기다 그걸 하필이면 센이치와 만지가 바로 알아차렸다는 게 문제였다.
‘ 이상하네, 카에데에게 뭘 잘못한 것 같진 않은데... ’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 그 걱정을 하며 부 활동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왔다.
“ 하하, 하나사키. 그러면 다음에... ”
“ 와!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야, 다나카 군! ”
“ 그렇지? 한 번 가보지 않을래? ”
“ ... 카에데? ”
후지와라는 교실 문을 열기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문을 열려던 손을 멈추었다.
교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하나사키였다.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학생과 대화를 하며 웃고 있었다.
그는 문득 하나사키가 자신의 앞에서 웃은 게 언제였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하나사키가 자신의 앞에서 웃는 걸 제대로 본 적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며 웃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후지와라는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 슈, 너 오늘따라 왜 이리 집중을 못 하고 있어? ”
“ ... 센, 네가 보기에도 그래 보여? ”
“ 내가 보기에도 그래! 카에데가 안 보여서 그래? ”
“ 만, 그럴 리가 없잖아. ”
그날 이후 후지와라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냐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그를 걱정할 정도였다. 그가 집중하지 못하고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이제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하나사키의 존재.
후지와라는 하나사키가 다른 학생과 이야기를 하며 떠들고 놀던 그날 이후로 그녀가 신경 쓰여 집중하기 힘들어했다. 활시위를 당기면 하나사키의 웃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왔다.
항상 과녁의 정중앙을 꿰뚫던 후지와라의 화살이 장외로 이탈하는 일이 생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쌍둥이는 보다 못해 후지와라를 이끌고 시합이 있는 시합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하나사키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나루미야와 야마노우치, 타케하야가 있었고, 네 사람은 반갑다는 듯 떠들었다.
그 모습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스가와라 쌍둥이였다.
“ 어라? 어라~? 카에데! 여기서 뭐해? ”
“ 카에데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너 키리사키 고교생이잖아. ”
“ 아, 센이치. 만지. ”
입장하는 순간에 참지 못하고 스가와라 쌍둥이는 하나사키에게 다가갔다.
왜 카제마이고교 학생들과 함께 있는 것이냐고 묻기 위해서였다. 하나사키는 세 사람과 대화하다 말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스가와라들을 보았다.
그녀는 그 두 사람과 대화를 이어가다가 문득 그들의 뒤에 있는 후지와라를 발견했다.
후지와라는 자신이 아닌 오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놀고 있던 그녀를 보며 자신의 마음을 자각했다. 이제까지 그저 귀찮다고만 느꼈던 감정이 사라지고, 새로운 감정이 돋아났다.
그날, 시합이 끝난 이후로 후지와라가 먼저 하나사키에게 문자를 보냈다.
[ 제목 : 안녕.
오늘 시합 잘 봤어? ]
[ 제목 : 오랜만이야.
응, 미나토는 내일 시합한다고 해서 또 보러 갈 예정이지만... 슈도 시합 잘해. ]
[ 제목 : 응원 고마워.
내일 혹시 시간 될까? 같이 하교하고 싶어서. ]
그날 이후로 며칠 뒤, 수업이 끝날 무렵, 하나사키는 궁도부실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연습을 마친 궁도부 학생들이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지와라가 하나사키를 향해 나왔다. 하나사키는 가만히 서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후지와라를 보았다.
시합을 하던 날 이후로 그의 태도가 달라진 걸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었다. 그의 바뀐 태도와 행동으로 인해 식어버렸던 마음이 다시 설레면서 뛰기 시작했으니까. 함께 등하교를 한다든지, 점심을 먹는다든지.
입학한 이후 3개월간 했던 행동을 다시 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하나사키가 궁도부 안까지 따라오는 게 아니라 앞에서 후지와라의 연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 카에데, 많이 기다렸어? ”
“ 으응, 아니. 많이 안 기다렸어, 슈. 이제 마친 거야? ”
“ 응. 이제 갈까? ”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깨달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둘은 자신들도 모르게 썸을 타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전부 알아차린 사실을 두 사람만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함께 집을 간다든지, 점심을 먹는다든지, 연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든지.
일련의 상황들이 며칠간 계속해서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하교를 하던 도중 후지와라가 붉어진 노을을 지긋이 보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란히 걷고 있던 하나사키는 곁에 후지와라가 없자 걸음을 멈추고 다시 그를 향해 되돌아갔다.
후지와라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하나사키를 보며 흐릿하게 웃었다.
“ ... 카에데, 나. 할 말이 있어. ”
“ 응? 뭔데? ”
“ ... ”
“ 뭐야, 무섭게. 슈의 진지한 표정도 좋아하지만, 지금은 조금 무섭네. ”
“ 미안해. 학기 초에 내가 했던 것들 말이야. ”
“ 음... 슈가 너무하긴 했지. ”
“ ...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어. ”
“ 뭐를? ”
비슷한 시간대, 바뀐 위치, 처음으로 내보이는 진심.
후지와라는 시합에서도 하지 않던 긴장을 그녀의 앞에서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혹여나 그녀가 거절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주먹까지 불끈 쥐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그대로 말을 꺼내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돌렸다.
고백하기 이전에 제대로 된 사과를 했지만, 하나사키는 진지해지는 분위기에 눈동자를 굴리며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했다.
후지와라가 조심스럽게 하나사키의 손을 붙잡으며 뜸을 들였다.
“ 너를 좋아해, 카에데. ”
“ ... 어? ”
“ 좋아해.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널 좋아하고 있어. ”
“ 나, 나를...? 슈가? ”
후지와라의 고백에 하나사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복해서 물어보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동그랗게 뜬 눈과 어느새 붉어진 홍조를 띠는 하나사키의 모습에 후지와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고백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하나사키가 다급하게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감쌌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모습에 후지와라는 자신이 이제까지 왜 하나사키에게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사랑스러워 보이는 그녀인데.
“ 그... 그럼 우리... 사귀는 거야? ”
“ 네가 내 마음을 받아준다면. 내가 이제까지 한 행동 때문에 그럴 리... ”
“ 물론이지!! 나도 슈 좋아해! ”
하나사키는 거의 울듯 한 얼굴을 하고서 후지와라를 와락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후지와라까지 덩달아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이내 진정하고서 그녀를 끌어안으며 웃었다. 며칠이 지나고, 키리사키 고교 안에서는 후지와라와 하나사키가 사귄다는 소문이 교내에 쫙 퍼졌다.
가장 먼저 소문을 낸 사람들은 스가와라들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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