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디안 피오네르, 그는 피오네르 가문에서 배출된 높은 지식을 가진 학자였다.
하지만 똑똑하고 냉정한 학자여도, 마음을 쥐고 흔드는 여인의 앞에선 그저 한 사내일 뿐이었다. 그는 영지로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만난 한 여인에게 시선과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마르그리트 에클레시아, 그녀와의 만남은 사랑으로 이어졌다.
그는 마르그리트와 한가지 약속을 했다. 자신이 그녀의 저주를 풀어주겠노라고. 고통받는 그대를 구원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가문에서 도망치는 걸 택했다. 마르그리트는 로디안의 달콤한 희망에 응하기도 했지만, 가문과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었다.
찰나의 달콤한 희망 앞에서 끌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 마르그리트, 오늘부터 실험을 시작할 텐데 힘들어도 날 따라와 줄 수 있겠어? ”
“ 물론이죠. 이 지옥에서 날 벗어나게 해줘요. ”
“ 내가 너의 저주를 풀어줄게. ”
처음에는 호기롭게 시작된 실험이었고, 흥미로운 연구였다.
로디안은 마르그리트와 함께 도망쳐 한적한 마을로 가 사람을 차리며 가정을 꾸렸다. 마르그리트에겐 실험을 진행하면서 연구를 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애처롭고 가녀린 나의 연인, 나의 부인.
그녀의 전염병은 광기 어린 저주였다. 기본에 알고 있는 정보로는 도저히 방법을 알아낼 수 없는 희귀하고 독특한 저주.
이 저주의 끝이 지옥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피오네르 가문의 저주가 시작된 시점에 관하여
2XXX년 연간 소설, [피오네르와 에클레시아의 상관관계]에서 발췌
[ 실험 일지 1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모든 것에 시작과 끝이 있듯, 이 저주에도 시작과 끝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저주를 전염병이라고 말했다. 에클레시아 가문에서 그녀에게 그렇게 가르친 듯하다. 문제는 그 병이 정말 한평생 본 적 없던 불치병이라는 것이다.
처음 보는 증상과 영향은 신실한 신자가 본다면 분명 저주라고 욕할 게 분명하다.
바티칸이나 개독교에 들킨다면 그녀는 마녀사냥을 당할 게 분명하니 이 실험과 연구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만 하고, 나의 후대에게도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알려야 한다.
오늘 실험한 경과를 보건대 공기이나 물, 체액으로는 감염되지 않는 것 같다.
실험을 하기 위해선 실험체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썬 내가 유일하다. 조금 멀긴 하겠지만, 거리가 있는 마을에 실험을 위한 실험체를 구해와야겠다.
돈 조금 쥐여주면 얼마든지 실험체를 자처할 사람은 많을 테니 그 부분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공기나 액체를 통해 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 남은 방법은 수혈이다.
아직 마르그리타를 위한 방법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 실험 일지 2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마을 구석 어귀에 정착한 뒤로 한 달 정도가 흘렀다.
하지만 그녀의 병에 관한 실험과 연구는 여전히 지체되고 있다. 실험체가 현저히 적은 것도 있지만, 예산이 맞질 않다. 가문의 돈을 쓰는 수밖에.
한 달 사이 그녀의 몸 일부가 검게 썩어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하필이면 얼굴에도 뭉그러지는 현상이 드러나서 외출을 하지 못하게 했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가 걱정된다.
부디 빠르게 증상을 완화시키는 방법이나 병을 없앨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피부가 썩어 들어가면서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이 버틸 수 없을 정도의 고열과 환각이 함께 동반하고 있는 듯한데,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녀에게 허락을 구하고 썩어버린 부위의 피부 조직을 잘라냈다.
화학 실험을 가장 먼저 해보았다. 약물에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오히려 악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해당 증상을 DG-f2라고 부르기로 했다.
[ 실험 일지 3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이 실험을 시작한 지 50일째, 실험체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처음에 실험 일지에 썼던 것처럼 조금 멀리 있는 마을에서 실험을 도와줄 인물을 구했다. 고작 1실링, 10페니에 실험체를 자처한 사람들이 50명이 넘는다.
아마 그들도 살아가기에 퍽퍽할 테니 급한 것이겠지.
나는 실험체가 될 이들에게 돈을 나눠주기 전에 분명히 경고했다. 몸의 일부가 검게 썩을 수고 있고, 엄청난 고통과 고열, 환각에 시달릴 수 있다고. 하지만 생명 유지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감염되고 나면 공기, 물, 체액을 통해서 타인에게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물론 마지막으로 이상 증상이 생기면 즉각 나를 찾아올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들이 나를 찾아온다고 해서 방도가 없을 테지만, 적어도 안식을 줄 순 있겠지.
50일 동안 반복되는 실험과 연구, 변함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그녀. 조금만 기다려줘, 나의 연인. 실험체가 더 늘어난다면 분명 그녀의 병을 치료할 방법을 빨리 알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 실험 일지 4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오늘은 실험과 연구를 잠시 멈추기로 했다.
완전히 멈추는 것이 아니다. 웬일로 오늘 하루가 그녀에게 고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구와 실험도 중요하지만, 그녀와의 시간도 중요했기 때문에. 고통이 없어서 옅게나마 웃어주는 그녀의 미소를 보며 내일부터 다시 진행될 실험과 연구에 힘내기로 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녀가 오늘 자신의 가문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런 사소한 정보가 실험과 연구에 기필코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말하길 에클레시아 가문 일원 모두가 병을 앓고 있었고, 전대와 전전대에서도 앓을 정도로 유전병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병이 어쩌다, 왜, 어떻게 걸렸는지는 정확한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나마 알고 있는 것이라면 에클레이사 초대 가주가 신의 노여움을 받았다는 것.
그로 인해 저주가 걸렸고, 일원들은 ‘신의 저주’ 혹은 ‘신의 징벌’이라고 불렀다는 것.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지도. 이 유전병은 매우 희귀하며 이상한 특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이 병을 가져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초대 가주가 노여움을 받은 것이지, 그녀는 죄조차 없는 사람이지 않은가. 분명 이 기록이 바티칸에 넘어간다면 이단이라 심문받을 게 분명할 테지.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 신을 욕해서라도 그녀를 치료만 할 수 있다면...
[ 실험 일지 5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오, 이럴수가... 신이시여. 신은 정녕 그녀를 구하려고 하는 건지 버리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단 하루, 딱 한 번이였다. 모처럼 건강을 되찾은 그녀와 관계를 맺은 것이.
그런데 그녀가 우리의 아이를 가졌다고 알려주었다.
언제 의원을 찾아간 건지, 의원이 알려주었다며 수척해진 얼굴로 해맑게 웃는 그녀의 미소를 보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마터면 내 반응을 알아차리더니 그녀가 금방 시무룩해지는 모습에 아이가 생겨 좋다고 말했지만, 아이의 존재로 인해 변하게 될 변수는 무궁무진했기에 골머리 아팠다. 복잡한 걸 풀어나가는 건 문제없었지만, 그녀의 몸 상태가 걱정이었다.
혹여나 아이가 유전병을 거절한다고 제 어미를 공격한다면?
그로 인해 그녀가 잘못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 아이를 구해야 하나, 아니면 그녀를 구해야 하나. 물론 상황이 닥치면 분명히 그녀를 구할 게 분명하지만.
아이를 가지는 걸로 기뻐하는 그녀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없었다.
[ 실험 일지 6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는 그녀에게 아무런 위해를 끼치지도, 아픔을 주지도 않았다.
가끔 배를 걷어차며 헛구역질하는 입덧을 하긴 했다. 처음에는 그게 공격인 줄 알고 약물을 쓰려고 했지만, 당시 때마침 나타난 마을의 아낙네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해주었기에 약물을 쓰진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임신으로 인해 그녀가 평소보다 더 핼쑥해 보였다.
임신을 하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병을 파헤치기 위해서 방해되는 건 없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는 그래도 아이가 방해되진 않는다. 아이가 있으니, 당분간은 연구와 실험은 실험체를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먼젓번의 마을에서 구한 실험체는 쓸 수 없어져서 새로운 실험체를 구해야 한다.
수혈을 통해 감염 확인을 했으나, 찾아왔던 50명 전부가 마을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 마을이 전대미문의 불치병에 걸려 마을 전체가 불태워졌다는 신문이 오늘 나왔다.
조금 더 멀리 있는 마을을 찾는 수밖에 없다.
실험에 관해 들킬 가능성은 현저히 낮으니 걱정할 건 없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그 마을로 갔으나 증거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다. 그녀의 병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병이었고, 공기 중으로도 감염되지 않으니, 증거도 남지 않는다.
그저 불타버린 시체들의 피부 조직을 겨우 떼와 실험을 진행할 뿐이다.
오뢰뷔드 마을, 전염병으로 인해 모두 사망!
16XX년, 오늘. 슬픈 소식을 전하려고 한다.
유럽의 작은 마을, 오뢰뷔드 마을에서 발병한 의문의 전염병으로 인해 마을 사람이 한 명도 남김없이 죽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직 검사를 통해 해당 마을에 퍼진 의문의 전염병으로 어디서, 어떻게, 왜 발병했는지 미지수다.
마을에서 살고 있던 모든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전염병이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다.
정부는 해당 전염병이 공기, 체액을 통해 전염될 것을 우려하여 마을을 폐쇄했고, 마을 전체에 불을 질러 소각했다.
작고 평온하던 마을 하나가 전염병으로 인해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학자들은 전염병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으나, 정부는 해당 전염병을 우려하여 불을 지르고 묻어두기를 택했다. 하지만 당사에서 이 사실이 알려져야 한다고 판단하여 기사를 내보내게 되었다. 생존자를 찾고 있으나,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 보인다.
감염 경로, 증상을 알기 힘들고 정부가 묻어버린 전염병이 아직까지는 다른 곳에 발병하지 않았다. 하지만 짐작컨대 이 병은 필히 더 크게 번질 것이 분명하다.
전부 타버린 시체들의 대부분이 피부가 검게 썩어 들어갔다.
유일한 단서가 그것뿐이다. 정부는 도대체 무엇이 그리 두려워 이 사실을 숨기기 급급한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주변 마을에서도 전염병이 퍼지진 않을까 우려하여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이 잦았으나, 정부에서 마을 입장을 막아두었다.
당사에서 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했다.
Q. 해당 전염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다른 마을에 퍼지진 않을지 걱정됩니다.
Q. 정부가 왜 막는 것이라 생각 됩니까?
A. 정부 생각 따위 알 게 뭐야. 우리 마을까지 전염병이 안 퍼지길 바랄 뿐이지.
Q. 마을에 아는 사람이 있던가요?
A.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전염병으로 인해 모두가 죽다니...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 16XX년에 발간되었다가 정부에 의해 사라진 신문사에서 나온 신문에서 발췌.
[ 실험 일지 21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문둥병에 걸린 것처럼 피부 곳곳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있었고, 팔다리가 짧은 기형을 타고났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아이조차 사랑스럽다는 듯이 돌보았다.
아이가 기형을 타고난 것이 그녀의 저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 몰래 아이의 피를 뽑아 검사했다. 몇 개월 사이 그녀의 유전병이 다른 이에게도 적합한지에 대한 사실을 알기 위한 실험지를 만들었다.
결과는 아이가 그녀의 저주를 물려받은 것이 확실했다.
다만 이 사실을 그녀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아이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며 돌보고 있으니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상당히 좌절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에겐 그녀와 함께 우리의 아이까지 저주에 벗어나게 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아이가 있으니, 그녀의 얼굴이 초췌하더라도 생기가 돌고 있다.
[ 실험 일지 28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시간이 갈수록 얻는 건 없고, 그녀의 고통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이젠 나조차도 의문스럽다. 이 병의 끝이 있는 것인지, 내가 그녀를 구할 수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조급해지는 심정이 연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있지만, 멈출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에 비해 아이는 아직까지 안전하다.
얼굴이 문드러지고, 곳곳에 피부가 검게 썩어 들어가는 것은 여전했으나 제 어미처럼 큰 고통을 느끼진 않는 듯했다. 이건 또 새로운 결과가 분명하다. 그녀가 이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 물어보니, 자신이 고통을 심하게 느낀 건 10살 이후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아이 또한 10살 이후로 앓을 게 분명했다.
부디 아이가 10살이 되기 전에 무언가라도 발견하길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이번에 조금 더 멀리 있는 마을 외에도 다른 마을에서도 실험을 시작했다.
다만 이번에는 첫 실험보다 적은 실험체를 받기로 했다.
5명에게 수혈을 하고 경과를 지켜보자, 그중 4명이 그녀의 저주와 같은 증상이 나왔다. 1명은 그대로 돌려보냈으나, 다른 사람들은 더 지켜보기로 했다.
[ 실험 일지 56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꾸준히 실험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많은 시간들 속에 무사히 둘째까지 태어났다. 둘째는 신기하게도 그녀의 유전병을 물려받지 않았다. 실험지를 통한 결과였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장남은 10살이 되었을 때,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신의 곁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날의 일로 인해 그녀가 평소보다 더 기운을 잃고 우울해하고 있다.
그나마 둘째가 있어서 버티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곁에 아이가 더 있다면 그녀가 더 살아줄까. 이 실험과 연구도 전부 그녀를 위한 것인데 그녀가 없다면 전부 의미가 없는 짓이 분명했다.
그녀의 몸이 낫는 대로 아이를 더 가지자고 말하니 그녀가 웃었다.
조직 실험을 통해 아주 조금이지만, 약초로 인해 미미한 효과를 보였다. 아무래도 약초학까지 연구해야 할 것 같다.
[ 실험 일지 74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어느새 내 나이 49, 둘째의 나이 14, 셋째의 나이 12, 다섯째의 나이 9살이다.
첫째가 그렇게 가버린 이후 둘째는 일반인과 다를 것 없이 자라왔다. 만약 내 대에서 연구를 끝내지 못하고 계속 이어가게 된다면 그다음 연구는 둘째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둘째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제 어미를 극진하게 병간호했다.
셋째가 태어났을 때, 실험지를 통해 확인하니 그녀의 병을 물려받았고, 10살이 되었을 때 고열에 시달렸다. 다행스럽게도 그리 큰 고열이 아니었던 건지 셋째는 무사히 10살을 넘겼다.
문제는 넷째였다. 넷째는 저주를 물려받았고, 태어나자마자 고열에 시달려 목숨을 달리했다.
집안에서 저주가 발병하지 않은 자식은 둘째와 다섯째뿐이다. 그녀가 나에게 한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에클레시아 가문은 유전병으로 인해 근친으로 이루어진다고.
그 소리는 결국 둘째와 다섯째가 결혼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이들이 근친을 하지 않게 내가 더 연구와 실험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 병의 끝을 기필코 파헤쳐내어 그녀를 지옥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 실험 일지 101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내 나이, 60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에 연구와 실험에 진전이 없다.
그녀는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으며 환각을 보고, 피부가 검게 썩어갔다. 둘째가 먼저 내 형제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어왔다.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타인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가족을 위해서라면 나는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기에. 결국 형제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처음에는 헛소리하지 말라며 거절당했으나 이제까지 행해왔던 연구와 실험에 대한 자료를 보여주니 놀라워했다.
40년을 해온 자료의 양은 상당했다.
그 모든 걸 살펴보던 형제는 처음엔 기함을 토했지만, 조금씩 진행되는 과정을 보고서 흥미롭게 보았다. 결국 형제의 도움을 받아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형제의 개입으로 진전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 실험 일지 112 ]
작성일 : 16XX년 X월 XX일
작성자 : 로디안 피오네르
이젠 일지를 쓰는 것조차 버겁다.
내 대에서 이 저주가 끝나길 간절하게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무리라는 걸 이젠 알고 있다. 그저 구해주지 못해 그녀에게 미안하고, 저주를 대물림하게 될 아이들에게 죄스럽다.
나는 그리 명석한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모든 자료와 함께 연구일지는 둘째에게 넘기기로 했다. 둘째는 다섯째와 결국 아이를 가져야겠지. 그 사실도 알려주니 놀라는 눈치였다.
둘째와 다섯째에게 셋째와 여섯째, 일곱째가 실험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취급하기로는 실험체였으나, 그들도 엄연히 나의 자식이고, 둘의 형제라는 사실도 각인시켰다. 실험과 연구를 이어가기엔 체력적으로 힘들기 시작하니 마음도 약해지는 모양이다.
둘째와 다섯째에게 일임한 후 나는 그녀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찬란한 유럽의 학자, 로디안 피오네르의 사망!
유럽에는 아주 유명한 학자 가문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피오네르 가문은 학자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알려졌으며 수많은 실험과 연구로 유럽이 미래로 향할 수 있게 해준 의로운 이들이다.
그런 피오네르 가문에 슬픈 소식이 찾아왔다.
유명한 학자, 로디안 피오네르가 향연 70세에 자신의 부인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은 한날한시에 눈을 감아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간에서는 로맨틱한 부부라며 칭송했고, 귀족들은 그의 연구와 실험을 찬가했다.
위대한 학자가 모두의 응원 속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미처 마치지 못한 연구와 실험은 전부 그의 형제와 자식들이 이어가기로 사전에 정했다고 한다.
그의 유산이 먼 미래에도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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