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시작되기 전, 시후가 안내자에게 명함을 선물 받으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시후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한 건지 깨닫게 되는데, 남규에 관한 호기심과 일말의 애정으로 그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비참함 뿐이었다.
안내자가 나타나 시후에게 명함을 먼저 내밀었다는 건 시후가 먼저 섭외되었다는 것.
그것조차 모르고 남규는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보려고 안내자에게 비굴하게 매달렸다. 이때 시후는 남규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그리 깊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 이 얄팍한 감정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처음에는 친구로 느껴졌다가 존경도 했다.
코인으로 돈을 벌어 모으는 그의 모습은 존경하지 않고서야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짝사랑을 하게 된 걸까. 하지만 지금은 그저 돈에 굴복한 쓰레기를 보는 것 같으니 이제까지 느꼈던 감정은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 자리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거기로 연락해 주시면 됩니다. "
" ... "
" 하, 한 판만 더 해... "
시후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남규는 여전히 안내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 판만 더 하자고 애걸했다.
안내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서 남규에게 딱지를 내미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돈을 받아보겠다고 아득바득 버티는 모습에서 시후까지 한숨을 내쉬었다.
남규가 내려친 딱지가 바닥에 있는 딱지를 뒤집자, 안내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남규에게도 명함을 건넸다.
그의 표정이 마치 주기 싫은데 규칙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주어야만 해서 주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뜬금없었지만, 마치 폭풍과도 같았던 시간들이 지나고 명함을 둘러보았다.
남규 역시 명함을 둘러보더니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 ... 형, 거긴 왜 전화해 봐? "
" 병신이냐? 연락처 주면서 연락하라잖아. 혹시 아냐? 연락했을 때 돈을 더 줄지? "
" 이제 따귀로 안 끝날지도 몰라. "
" 지금 따귀가 문제야? 돈을 더 준다잖아! 얼마인지는 몰라도 빚 탕감할 수 있는 수준은 되겠지. "
" 그래서 간다고? "
" 어, 그래. 나는 갈 거다. 너는 알아서 해라. "
" 진짜 가? "
" 어!! 씨발! 엠지 코인인지 달마시안인지 나발인지! 그 새끼 때문에 내 돈 날렸어! 타노스 형도 시발, 지금 돈 수복 안 돼서 고생하던데, 나까지 고생해서 되겠냐? 나라도 돈 구해서 튀어야지. 타노스 그 새끼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야. "
시후는 처음에는 연락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마치 약에 취한 듯 손을 덜덜 떨며 전화를 하고 있는 남규를 보고 있자니, 이대로라면 남규가 어디론가 끌려가 다시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남규는 연락을 끝내고 흥얼거리며 시후를 덩그러니 남겨두고서 떠났다.
시후 역시 명함 속 연락처로 연락을 하며 자신을 두고 떠난 남규를 떠올렸다. 이제 남은 건 그저 그를 혐오하는 마음과 동시에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감정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던가.
시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지정되어 있는 날짜가 다가왔고, 시후는 지정해 주었던 장소에 도착했다.
" 어? 남규 형? "
" 아씨, 뭐야. 너 왜 여기 있냐? "
" 형이랑 같은 이유겠지. "
" 씨발... 야, 너 거기서 나 아는 척하지 마라. 알겠냐? "
" 글쎄. "
시후는 남규와 대화를 하면서도 자신의 입버릇에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이토록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입에서는 익숙하다는 듯이 형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 사실이 허탈해서 절로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걸 알려주듯 시후의 입꼬리가 계속해서 비실비실 올라갔다.
남규는 오만상을 쓰며 표정을 구기더니 시후의 멱살을 붙잡았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형광 분홍색에 검은색 가면을 쓴 사람들이 다가와 두 사람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반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남규와 시후가 동시에 털썩 쓰러졌다.
두 사람을 공격했던 사람들이 각자 시후와 남규를 들러메며 어디론가 향했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시후가 처음 눈을 뜬 곳은 낯선 곳이었다.
어릴 적에나 들었을 법한 정겨운 음악 소리와 함께 눈을 뜨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가 앵앵 울릴 정도로 들려오는 소리에 누군가는 아직 잠들어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소리 좀 끄라며 화를 내고 있었다.
시후는 상체를 일으켜 자신의 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어두운 녹색의 츄리닝으로 갈아입혀지고, 가슴팍에는 002라는 번호가 박혀있었다. 정면을 바라보자, 넓은 공간에 빼곡히 쌓인 침대, 아직 잠들어 있는 사람들과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면에 보이는 큰 화면에서는 참가자 / 456명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시후는 본능적으로 이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이 456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일어나자마자 한 것은 주변 상황의 파악이었고, 그다음으로 한 것은 남규를 찾는 것이었다.
" 여긴... "
" 대체 뭐 하는 곳이래요? "
" 그러게요. 여긴... "
모두가 횡설수설하며 돌아다니고 있을 때, 시후는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가며 남규를 찾았다.
사람이란 자고로 낯선 곳에 오면 익숙한 것부터 찾는다던가. 시후도 사람인지라 당연하게도 익숙한 남규부터 찾았다. 그야 눈을 감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 하필이면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장면이라 더 그랬다.
시후가 침대에서 내려와 움직이는 순간, 크게 울리는 소음과 함께 앞쪽에서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형광 분홍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앞쪽으로 향하며 그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 이 자이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6일간 모두 6개의 게임에 참여하시게 됩니다. "
" 6개의 게임을 모두 통과하신 분들께는 거액의 상금이 지급됩니다. "
" 저기요! "
시후는 설명을 듣다가도 문득 사람들 무리 중에서 확연하게 색이 다른 머리통이 눈에 들어왔다.
만연한 꽃처럼 흔들리는 보랏빛, 아무리 봐도 남규와 인연이 있던 타노스인 게 분명했다. 시후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타노스에게로 향했다. 남규 외에도 익숙한 사람이 한 사람이나 더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시후는 타노스의 옆에 서서 그의 팔을 툭툭 치려고 했다.
그런데 120번이 나서서 관리자에게 맞서듯이 굴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의 시선이 120번에게로 향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 와중에 시후의 눈에 120번이 말할 때마다 울렁거리는 목젖이 보였다.
타노스의 시선까지 120번에게로 향해 있다가 관리자가 말을 이어가자, 모두의 시선이 앞쪽으로 향했다.
" 죄송합니다. 게임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이해해 주기시 바랍니다. "
" 그럼 그 가면은 뭐예요? 아저씨 얼굴도 비밀인가? "
한 여성이 꽤나 날카로운 질문을 내뱉고 웅성거리는 와중에 시후는 타노스의 팔을 톡톡 쳤다.
그러자 타노스의 고개가 시후에게로 돌아왔다. 시후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알은 채 하자 타노스가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누구냐는 듯한 시선으로 시후를 보았다.
시후는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익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 저요, 저. 시후. 기억 안 나세요? 우리 펜타곤 클럽에서 만났는데. "
" 어? Yo~ 지훈! 오랜만이야! "
" 네, 수봉이 형. 형, 제가 따라다니던 형 기억하세요? "
" Who? I don't know who you're talking about. "
" 음... 알았어요. 내가 찾아야 하는 건가... "
시후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며 기억나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타노스가 기억났다는 듯 답했다.
두 사람은 꽤 친했던 모양인지 타노스의 본명을 시후가 말해도 타노스는 딱히 막지 않았다. 하지만 남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러다 한 여자가 옷에 대해 말할 때, 타노스가 신발을 벗으며 자기 한정판 신발에 대해 따졌다.
그때 휴대폰 이야기를 꺼내며 나서는 상대가 명기라는 걸 알아차렸다. 시후는 반가운 얼굴이 여기에 또 있구나, 싶은 생각에 타노스를 힐끔 보았다. 타노스의 표정이 시후를 보며 반가워하던 것과는 달리 명기의 등장에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시후는 힐끔 시선을 옮겨 명기를 보았다. 도대체 명기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혹 남규에게서 들었던 그 명기가 제 오랜 친구인 명기인 건지. 알아봐야 할 게 많았다.
" 실시간으로 차트를 봐야 된다니까요! "
" 333번 이명기. "
휴대폰을 돌려달라고 떼를 쓰던 명기를 보며 관리자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손을 올려 리모콘을 삑 누르니 사람 인원수를 확인하던 화면에서 영상이 틀어졌다. 화면은 딱지를 치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관리자가 설명을 이어갔다.
" 나이 30세, 유튜브 채널 엠지 코인 운영자. 신생 코인 달마시안 투자 유도 방송으로 구독자들에게 추정액 150여억 원의 손해를 입히고 채널 폐쇄 후 잠적. 현재 사기와 통신 보호법, 금융 관리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 이명기 본인의 금융권 채무액 18억. "
" ... 하... "
" 196번 강미나, 채무액 4천 5백. 120번 조현주, 채무액 3억 3천. 230번 최수봉, 채무액 11억 9천. 198번 장도영, 채무액 14억. "
관리자의 입에서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에 모두가 술렁거린다.
시후는 앞서 휴대폰을 달라며 따지던 사람이 남규가 말했던 코인 투자처인 명기가 맞다는 걸 알았다. 그가 자신과 타노스, 남규의 채무를 지게 한 인물이라는 것도. 딱히 밉거나 하진 않았지만, 타노스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최후미에 100억이라는 말에 모두가 놀란다.
모두가 술렁거리며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자, 관리자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모두의 동조와 시선을 한 곳으로 끌어모았다.
"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서 계신 분들입니다. 저희가 처음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도 여러분들은 저희를 믿지 않으셨습니다. "
게임에 자원했다는 사실을 콕 집으며, 선택의 기회를 주겠다는 관리자의 말에 모두가 술렁거렸다.
시후는 그 관리자의 말이 어쩐지 선동과 가스라이팅으로 여겨졌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 자신에겐 중요한 게 아니었다. 타노스를 발견하고, 명기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으니, 남규를 찾아야 할 때였다.
하지만 그 순간 공간을 밝게 채우고 있던 불이 꺼지고, 은은한 노란빛이 주변을 감쌌다.
천장에서 돼지 저금통이 내려오면서 게임에서나 들릴 법한 노래가 함께 나왔다. 상금을 담을 돼지 저금통이라는 말에 시후가 고개를 들어 천장에 매달려 있는 돼지 저금통을 보았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돼지 저금통은 상금이 전혀 없는 빈 통에 불과했다.
" 여러분들이 총 6개의 게임을 하는 동안 매 게임이 끝날 때마다 저 돼지 저금통에 상금이 적립됩니다. "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울림이 끝나고, 모두의 시선이 돼지 저금통을 향해 있다가 정면에 있는 관리자에게로 향했다.
그때 상금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시후의 시선도 상금이 얼마인지 물어보는 사람에게로 향했다. 뽀글뽀글한 파마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는 남자는 첫눈에 봐도 부담스러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첫인상부터 그리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사내의 질문에 답을 주듯 관리자가 상금이 456억이라는 답을 해주었다. 그 답변을 듣자마자 시후는 문득 일어나자마자 보았던 화면 속 숫자가 떠올랐다. 설마, 하며 그럴 리 있겠어? 하고 가볍게 넘어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관리자의 설명에서 투표를 진행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 그럼, 한 게임만 하고 나가도 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
" 그렇습니다. "
처음 보는 남자가 나타나 한 게임만 해도 나갈 수 있냐는 질문에 관리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시후는 온통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각자 궁금한 걸 물어보며 질의 시간을 가지는 모습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궁금해하던 걸 다른 사람들이 대변하듯 질문을 해준 덕에 궁금증은 금방 해소되었으니까 문제 될 건 없었다.
다른 질문이라도 해볼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한 할머니가 사람들을 밀치고 나갔다.
그 할머니가 인파를 헤치고 간 곳은 아들이라도 되는 듯 아까 질문을 하던 그 뽀글머리 남자의 등짝을 치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시후는 그 모습을 보며 두 사람에 대한 감정이 확실해지는 걸 느꼈다.
할머니에겐 알 수 없는 존경심이, 뽀글머리 남자에겐 의미 모를 감정이 생겼다.
" 엄마라... "
자식을 위해 이곳까지 따라온 부모의 마음도 모르는 남자가 부러우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자기를 걱정하는 엄마를 향해 창피하다며 조용히 하라는 그 모습이 신경 거슬렸다. 시후는 자신도 모르게 뽀글머리 남자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의미 모를 감정이 그를 적대하고 있었다.
그래 놓고서 왜 노인네를 이런 곳에 데리고 오냐며 적반하장을 하는 모습에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7열 종대로 줄 서서 동의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시후는 자연스럽게 타노스와 줄을 서며 서명했다. 먼저 서명한 타노스가 이동을 하고, 시후가 서명한 뒤 몸을 돌리는 순간 타노스가 누군가의 어깨에 팔을 걸친 채 웃고 있었다.
" Hey, 지훈! 아까 말한 놈, 이 녀석이지? "
" 수봉이 형? "
" 얘 말하는 거잖아. 내가 찾아왔어! "
" 하, 남규 형. "
" 형,저는... 어? 너...! "
" 저번에 수봉이 형한테 했던 말 들키고 싶은 거 아니면 조용히 하세요. "
" 이, 씨발... "
" 뭐? 뭔데? "
시후는 자신의 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타노스의 모습에 의아했다.
하지만 이내 타노스가 아까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남규를 데리고 와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에 타노스가 말하길 남규가 먼저 찾아왔다고 하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의 말을 기억해 주고 있던 것이 아니겠는가.
시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하고 강한 모습만 보이던 남규가 타노스의 앞에서는 비굴하게 굴며 약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자신의 이름이 틀려먹은 걸 고치려던 남규의 시선이 시후에게로 향했다.
당황한 남규가 시후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시후가 남규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명함을 받고 연락하면서 내뱉었던 남규의 말을 시후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남규가 화나는 걸 참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 남수, 그래서 좋은 정보가 있다고? "
" 아, 남규요. 형. 그리고 지금 여기에 우리 코인 몰아가서 날려 먹은 새끼가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
" 엠지 코인 말이지? "
" 예. ... 시후, 너도 가보던가. "
" 안 그래도 갈 생각이었는데요? "
" 이, 썅... "
타노스가 남규를 보며 정보가 있냐 물었고, 남규는 두 사람을 보며 우리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말했다.
마치 그가 세 사람은 한 팀이라는 듯이 말하는 말투에 타노스는 보기 좋게 넘어갔지만, 시후는 남규를 의심쩍은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사람 감정이라는 것이 참 간사한 게 콩깍지가 벗겨지니 만사 의심스러웠다.
세 사람은 333번, 명기가 동의서를 제출할 때까지 기다렸다.
명기가 몸을 돌려 돌아오는 순간 남규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남규가 명기에게 모습을 보이고, 뒤이어 타노스와 시후가 차례대로 모습을 보였다.
" 엠지 코인? 진기명기? "
" 맞아? "
" 누구세요? "
" 넌 날 몰라도 난 널 알고 있지. 엠지 코인. "
시후는 가만히 있었지만, 타노스와 남규는 명기를 향해 점점 다가갔다.
개새끼라는 단어까지 내뱉어가며 몰아붙였다. 시후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명기가 자신의 친구인 명기가 맞는지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간 연락을 하고 살지 않아 그 친구와는 연락이 끊겼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자신의 친구인 명기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 녀석은 애초에 머리가 똑똑하질 않아 코인이라는 걸 다룰 수 없었다. 잔뜩 험악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타노스가 남규의 어깨 위로 팔을 올리고 말했다.
" 너 이름 남수였나? "
" 규, 남규. 펜타곤 엠디. "
" 아, 맞다. "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욱해버린 타노스가 명기의 뒷목을 붙잡으며 눈을 부릅떴다.
갚으라는 말이 나오고, 명기가 자신은 강제로 시킨 적 없다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자, 시후는 완전한 결론을 내린다. 저 사람은 자신의 친구가 아닌 그저 동명이인에 불과한 사람이며 자신의 코인까지 몽땅 꼬라박아버린 놈이라는 걸로.
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런 상황을 가만히 내버려둘 순 없었다.
타노스가 주먹을 높게 치켜드는 순간 남규와 시후가 달려들어 타노스를 말렸다. 남규가 앨범을 이야기하며 타노스와 이야기할 때, 시후가 타노스와 명기 앞을 막아섰다.
" ... "
" 너! 개새끼야! 게임 잘해라. 끝나면 수금하러 올 거니까. "
" 가요, 가. 형. 예? "
" 이왕이면 저 사람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눈에 띄지 않는 걸 추천해 드릴게요. 뭘 하든 가만히 계세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죠. 코인은 한때나마 분명히 올랐으며, 투자의 최종 결정에 대한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말이 방송 마무리 멘트인데 못 들으셨냐고 할 게 아니죠. 엄연히 당신으로 인해 피해는 있었으니까요. 저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인데, 제 돈은 제가 알아서 수복할게요. 당신은 열심히 게임해서 다른 피해자들에게 변제하세요. "
" ... "
먼저 타노스가 몸을 돌리고 가버리면서 남규가 그의 뒤를 따랐다.
시후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명기에게 시선을 주더니 짧은 한숨과 함께 충고를 해주었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자신의 친구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이런 꼴을 당하고 있다는 게 보기 힘들었다. 도의적으로 책임을 지라는 듯한 말투로 말하지만, 자신의 변제는 괜찮으니 다른 이들의 변제에 힘쓰라며 타노스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이 명기에게는 자그마한 위로라도 된 것인지, 명기는 타노스에 의해 어이가 없다가도 시후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잠시 후, 모든 사람들이 첫 번째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이동을 했다. 여기저기 난잡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며 시후는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로 방송이 들려왔다.
[ 잠시 후 첫 번째 게임이 시작됩니다. 참가자들은 사진 촬영을 하신 후 진행 요원의 안내에 따라 게임장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
" 사진 촬영? "
" 기념사진인가? "
" 일단 줄부터 서보죠? "
사진을 찍으라는 말에 세 사람 외에도 동요하는 사람이 몇 보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타노스와 남규, 시후가 나란히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타노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알은 채 하며 말을 걸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타노스의 표정은 영 시큰둥했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타노스의 랩을 부르기 시작했다.
타노스의 뒤에서 남규가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았고, 타노스의 앞에 있던 시후는 등을 돌려 타노스 대신 랩을 부르는 사내를 보았다. 자신을 경수라고 소개한 남자는 자신이 타노스의 팬이고, 공연도 여러 번 갔다는 걸 피력했다.
경수가 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말에 이때다 싶은 사람들이 쏜살같이 달려들며 사진 찍어달라고 청했다.
몰려드는 사람으로 인해 시후와 남규를 밀치고 달라붙는 사람들도 있었다.
" 으악; "
" Shit, 지훈. 너 괜찮아? "
" 예, 뭐... 정작 밀친 사람은 사과도 안 하지만 괜찮아요~ 제가 힘이 없는걸요. "
" 맞아, 지훈의 다리는 학 다리야. "
" 아~ 형, 이런 학다리 봤어요? 보여요? 막 후들거리는 거? "
화를 낼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시후는 웃으며 상황을 좋게 끌고 갔다.
그때 남규는 시후를 무시한 채 몰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한 번에 가자며 제의했다. 시후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두 사람과 팬이라 자청하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 시후의 뒤로 관리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이러시면 안 됩니다. "
" 같이 찍고 싶구나? 컴 온. "
" 사진은 한 번에 한 사람만 찍을 수 있습니다. "
" 아이, 그냥 찍으면 안 돼요? "
" 핸드폰 가져가서 사진 못 찍잖아요, 네? "
" 안 됩니다. "
시후는 자신의 뒤에서 나타난 관리자에 화들짝 놀랐지만,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덤덤한 척하며 타노스와 주변인들이 관리자와 대화하는 걸 들었다. 단호한 관리자의 말에 결국 타노스가 팬들에게 나갈 때 폰을 돌려받으면 그때 한 사람당 한 번씩 찍어주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모두가 흩어졌다.
타노스가 사진을 찍으려다가 시후를 보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 Hey, 지훈. 네 차례야. "
" 수봉이 형, 제 차례인 건 기억하시네요? ㅋㅋㅋ "
" of course! "
" 고마워요. "
타노스가 자리를 비켜주면서 시후가 그 자리에 올라가 화면을 바라보았다.
스마일, 이라는 소리와 함께 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후 자리를 이동해 넓은 공터로 향했다. 여러 번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 코너를 꺾을 때쯤, 타노스가 신난 얼굴로 나서는 걸 보고서 시후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타노스가 가버리자, 남규와 시후만 남겨진 상태였다.
" 남규 형, 수봉이 형한테 미안하진 않아요? "
" 내가 뭘? "
" 이 형 또 모르는 척하시네... 그럼 그렇게 모르는 척하고 사세요. "
" 이, 씨발... 야! 너는 그 형한테 불만 없냐? 어? 없냐고! "
" 네, 없는데요? "
남규는 욱하는 마음에 시후를 향해 따졌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없다고 발언하는 시후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발걸음을 계속 옮겨 도착한 곳은 드넓은 운동장이었다. 잠시 대기해 달라는 요청에 사람들이 세 군데의 출구에서 우루루 나와 모였다. 그 순간 출컥하고 들어왔던 입구가 닫혔다.
[ 첫 번째 게임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입니다. ]
" 아, '무궁화꽃이'를 한다고? 어? "
" 설마 어릴 때 하던 그거? "
" 무궁화? "
" 아, 형. 그 게임 있잖아요. 술래가... "
안내 방송에 사람들이 단체로 술렁거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에는 타노스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타노스가 무슨 게임인지 몰라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어느샌가 그의 곁으로 다가온 남규가 설명을 해주었다.
타노스의 곁에 선 시후는 그의 곁에 있던 미나에게 가벼운 목례로 인사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와 가장 앞에 서서 외치는 한 남자가 등장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을 잘 들으라며 게임을 하다가 죽는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이 술렁거리며 아까보다 더 시끄러워졌다.
타노스와 미나가 그 사람을 비꼬며 웃고 있을 때, 시후는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저기에 걸리면 죽습니다! 저 앞에 서 있는 인형의 눈이 동작 감지 장치예요! "
" 저것 봐! 무슨 장치 이야기하지? "
그곳에서 455명 중 기훈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단 한 사람, 시후뿐이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시작되고, 인형의 머리 위로 숫자가 카운트 다운되기 시작했다. 5분, 그 안에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걸 감지한 시후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필이면 인형의 고개가 돌아가 눈동자를 굴린 탓이었다.
음절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이다가 끝나면 멈추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기훈이 등을 돌린 채 얼음이라며 크게 외쳐주었다. 다시 음이 들리고 다른 사람이 다 움직이는 데도 가만히 서서 얼음을 끝까지 외치는 기훈의 모습이 시후의 시선을 끌었다.
모두가 다 기훈을 지나 어느 정도 가고 나서야 기훈이 몸을 돌리며 앞을 보았다.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 얼음!!! "
심지어 팔로 입을 가리며 얼음을 외치는 모습에 의문을 가졌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음절과 얼음이라는 말이 들려오고, 사람들은 멈추었다가 달리길 계속했다. 무작정 달리기만 하다 보니 남규는 온 데 간 데 보이지 않았고, 시후의 곁에 타노스만 남아있었다. 물론 타노스가 집적거리느라 남아있던 미나도 곁에 있긴 했지만, 시후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타노스와 함께 미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음절이 끝났고, 몸을 굳혀 멈추었다.
그때 시후의 곁에 있던 미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기훈을 기만했다.
" 저 아저씨 약한 거 아니야? "
" 놉! 약하면 저러지 않아. "
" 해 봤어? "
" 관심 있어? "
대화를 나누더니 갑자기 날아온 벌에 의해 미나가 화들짝 놀라며 바둥거렸다.
그 순간 총소리가 들리고, 미나가 타노스와 시후의 앞에서 픽하고 힘없이 쓰러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머리통을 관통당해 쓰러져 죽어버린 미나에게로 향했다.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려서 다행이었지만, 당장이라도 역겨움에 토할 것 같았다.
미나가 쓰러진 걸 보고 놀란 아줌마가 비명을 지르며 움직이는 순간 시후의 몸도 크게 움찔거렸다.
큰 움직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들키지 않았지만, 사람이 죽어 나감에 다른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기훈이 다시 외쳤다. 지금 움직이면 다 죽는다고.
그제야 시후는 기훈이 어째서 그토록 목청이 터져라, 말을 외쳤는지 알게 되었다.
이건 그저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다. 게임이라는 가짜 이름을 단 살육의 현장이었다. 이후 한 번의 음절이 들려왔지만,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시후는 눈앞의 시체에 덜컥 겁을 먹은 듯 헛구역질을 했다.
[ ... 이 피었습니다. ]
" 흐읍! "
" 쉿, quietly. 지금 움직이면 다 죽는다잖아. 지훈, 살아야지. "
" ... "
하마터면 음절이 끝나갈 때 올라온 헛구역질에 걸려 죽을 뻔했다.
타노스가 아니었더라면 바닥에 뒹굴고 있는 시체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타노스가 다급하게 시후의 입을 막아준 덕분에 헛구역질이 멈춘 상태였고, 시후는 입을 꾹 다문 채 사색이 되어 파르르 떨었다. 다시 음절이 들려오고, 기훈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고 타노스가 시후를 놔준 뒤 지퍼를 내려 십자가 목걸이를 꺼냈다.
시후는 스스로 입을 막으며 타노스가 하는 걸 지켜보았다.
다시 음절이 들려올 때 급하게 십자가를 열어 알약 하나를 삼키는 모습을 보고 이 형도 변하진 않았구나, 라는 걸 느꼈다. 그때 가장 맨 앞으로 나간 기훈이 시간 내로 가야 한다며 뒤에 가려진 건 감지하지 못한다며 알려주었다.
이동하는 사이 시후는 남규가 현주의 뒤에 있다는 걸 확인했다.
" 형, 그거 먹고 할 수 있겠어요? "
" 이걸 먹어야 집중이 더 잘 되거든. "
" 진짜죠? 보니까 시간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본데, 우리 좀 빨리 갈까요? "
" 그럴까? 스피드 좀 내보자고. "
자리에서 멈춘 채 시후가 입 모양을 최대한 멈춘 상태에서 복화술 수준으로 말을 꺼냈다.
시후의 말에 타노스 역시 마찬가지로 입 모양을 감춘 채 답을 이어갔다. 빨리 가자는 말을 꺼냈고, 타노스가 그에 동의하듯 스피드를 내자며 다른 사람들의 뒤로 줄줄이 이어지도록 달렸다.
음절이 시작될 때마다 점점 사람들이 일제히 일렬에 맞추기 시작했다.
그 순간 타노스가 앞에 있던 사람들을 밀쳐내며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시후가 움찔거렸지만, 앞에는 타노스가 있었기에 시후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타노스가 시후의 손을 붙잡고서 음절이 들릴 때마다 달려갔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렸다.
" 얼음!! "
그곳에서 타노스와 시후만이 신나게 달렸다.
마지막 선에 도착하고 나서는 그저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시후는 음절에 멈춘 채 서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다가 그중에 배를 움켜쥐고 움츠려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하지만 거기서 움직일 순 없었다.
그런데 음절이 들리고, 기훈이 쓰러진 남자를 향해 달려가는 걸 본 시후의 심경이 변했다.
배를 움켜진 여자를 향해 달려간 시후는 여자를 붙잡고 달리려고 했지만, 음절이 멈춘 상태였다. 어리둥절해 있는 여자가 고개를 들어 시후를 보았다.
" 우, 움직이지 마세요. "
" 왜... "
" ... 사람을 구하는데 왜라는 질문이 필요한가요? "
" ... "
" 일단 살고 봐야죠. "
아무리 쓰레기 같은 놈들 속에서 살았어도, 시후는 끝까지 인간임을 택했다.
끝까지 모른 척할 수 있었지만, 기훈의 행동이 시후를 이끌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의 모습을 보고 감명받은 게 분명했다. 시후는 자신도 왜 이러는 건지 잘 알지 못했지만, 이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안정선 안에서 타노스가 시후를 불렀지만, 시후는 여자를 부축하며 음절이 시작할 때 움직였지만, 다리가 꼬이고 말았다.
그 순간 현주가 시후의 어깨를 붙잡으며 버텼다.
다시 음절이 들려올 때, 시후는 현주를 보며 왜? 라는 시선으로 보았다.
현주가 그 표정을 읽었는지 시후에게 답을 주었다.
" 사람을 구하는데 왜라는 질문이 필요하냐고 방금 말하셨잖아요. "
" ... 네. "
" 일단 먼저 들어가세요. "
안정선에 들어오고 나서야 시후가 고개를 돌려 현주를 보았다.
현주는 기훈의 곁에서 남자를 부축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이 시후의 눈에 들어왔다. 아슬아슬한 시간 속에 기훈과 현주가 안정성 안으로 들어왔다.
마지막에 시후까지 남자를 잡아당기며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너무 강하게 잡아당긴 탓인지 시후가 뒤로 넘어지긴 했지만, 사람을 구했다는 사실에 넘어졌다는 건 중요치 않았다. 그 순간 총성이 들려오고, 기껏 구한 남자가 엎어지며 죽은 걸 봐버렸다.
그때 천장에 열렸던 해치가 닫히면서 게임이 종료됨을 알렸다.
" ... "
" 형, 어디 아파요? "
" 돈 워리. "
" 네? "
" 암 오케. "
" ... 남규 형은 신경 꺼요. "
" 뭐? "
" 하... "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 두 사람 외에도 모든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침대 근처에 모여 앉았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부정하고 있을 때였다. 코를 훌쩍이며 멍하니 있는 타노스의 모습에 남규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았다.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가만히 있던 시후가 나서서 남규를 막았다.
시후는 남규가 혹여나 타노스를 통해 약이라도 할까 봐 불안한 마음에 막아선 것이었다. 시후의 말투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지만. 가만히 있었더니 앞쪽에서 문이 열리고, 게임을 안내하던 관리자가 나왔다.
모두가 겁에 질려 관리자를 피해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 첫 번째 게임을 통과하신 참가자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 그럼 첫 번째 게임의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
관리자가 알려주겠다는 말을 끝내자, 그들의 위에 있는 화면 속에서 456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갔다.
91명이 탈락하게 되어 365명이 남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관리자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축하를 하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 겁을 먹은 할머니, 금자가 관리자의 앞으로 향해 걸어가더니 무릎을 꿇고 빌었다.
자식을 위해 무릎을 꿇는 그 모습에 시후가 느낀 감정은 존경스러움이었다. 금자의 행동에 다른 참가자들도 조금씩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손을 싹싹 빌며 살려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으며 살려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살려달라며 빌었다.
그때 보고만 있던 관리자가 입을 열었다.
" 저희는 여러분을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
" 동의서 제3항!! '참가자 과반수가 동의를 하면 게임은 중단된다'. 맞습니까? "
기훈이 나서며 동의서 조항을 외치자, 웅성거리던 주변이 조용해졌다.
관리자가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한다며 말하더니 투표하기 전에 적립된 상금을 공개한다며 버튼을 누르자 천장에서 돼지 저금통이 내려왔다. 시후는 그걸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누가 봐도 사람의 욕심을 자극해서 투표를 과반수 반대를 이끌기 위한 수작이었다.
물론 시후의 결정은 남규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건 상황이 좋지 않았다. 모두의 구원자이자,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기훈에게도, 집에 돌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에게도.
" 어...? "
" 도, 돈이다. 돈이 쌓이고 있어! "
" 어...? "
빈 돼지 저금통이 내려오고, 그 안으로 돈이 쌓이기 시작하자 너나 할 것 없이 저금통을 향해 걸어갔다.
그중에는 타노스와 남규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후는 돼지 저금통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기훈을 보았다. 그러다 관리자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상금의 금액을 듣고 타노스와 남규가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 아이, 씨발. 게임 하다 뒈질 뻔했는데 2천 4백? 개좆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씨발. "
" 2천? ... 456억이라매! "
" 게임의 규칙에 따라 탈락자 한 명마다 1억 원씩 상금이 적립됩니다. 다음 게임을 하고 또다시 탈락자가 발생하면 그 수만큼 상금액이 늘어납니다. "
상금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금에 목숨을 걸 것처럼 굴었다.
특히 채무액이 100억이라던 그 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남으면 상금이 얼마냐고 묻기까지 했다. 시후는 456억이라는 말을 듣고 단번에 이 게임의 마지막 승리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다 죽게 된다는 걸 알아차렸다.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한 사람의 독식이 가능하다는 건 언제 누가 죽여도 상관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투표가 시작되고, 역순으로 456번부터 투표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후의 시선이 456번, 기훈에게로 향했다. 기훈은 당연하게도 X 표를 눌렀다. 차례대로 투표에 임하고, X와 O의 차이가 그리 심하게 나지 않을 때였다. 돈에 눈이 멀어버린 자들과 그래도 살고자 하는 이들로 점점 나뉘어졌다.
타노스는 당연하게도 O를 눌렀고, 타노스가 누른 순간 기훈이 튀어나와 설명을 이어 나갔다.
" 자, 자. 다들 싸우지 마시고... 여러 선생님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여기 이 선생님 덕분에 아직까지 목숨줄 붙어 있는 거예요. "
" 맞아요! 저분 아니었으면 우린 진작에 머리 구멍 생겼을 거라고요! "
" 옳소! "
아직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은 조용했지만, 투표를 한 사람들은 저들끼리 찬반론을 나누었다.
웅성웅성, 시끄러운 곳에서 기훈이 참지 못하고 자신이 이 게임에 참여했던 사실을 밝혔다. 시후에게 있어 구원자였던 기훈이 이미 게임을 참여해봤던 사람이라는 사실에 존경심까지 더해졌다.
기훈을 비난하는 사람들 사이로 타노스가 걸어 나와 자연스럽게 말을 붙였다.
" 아저씨가 진짜 우승자면 차라리 잘됐네. 아저씨가 우리한테 노하우를 알려 주면 되겠다. 어떻게 하면 우승하는지. "
" 그래! 여기! 우승한 사람도 있는데 뭐가 문제야! "
결국 분위기는 선동되어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남규까지 O를 누르자, 시후는 짧지만 묵직한 숨을 내쉬었다. 많은 사람들의 투표가 지나가고, 2번의 차례가 다가와 시후 역시나 O를 눌렀다. 시후가 O존으로 가자, 타노스가 양팔을 벌리며 환영해 주었다.
남규도 애써 웃으며 타노스의 곁에서 말했다.
" Hey! 지훈! 믿고 있었다고! My friend! "
" 거 봐요, 형. 시후라면 할 거라고 했잖아요. "
" 하하! 남수의 말이 맞았어! "
" 형, 규. 남규요. "
" 그래! 남규! "
시후는 타노스와 남규를 보며 웃고 있으면서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적어도 남규를 계속 이곳에 남겨둘 순 없었다. 이 감정에 대한 정의를 아직 내리지 못했고, 짝사랑하던 게 남아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남규를 두고 나가자니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1번이 나와 O를 누르면서 게임은 계속 속행하기로 정해졌다.
투표가 끝난 뒤로 관리자가 식사라고 도시락과 물을 나누어주었다. 차례대로 줄을 서서 도시락과 물을 받아와 각자의 자리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시후 역시 도시락을 받아낸 뒤 곧장 타노스에게로 간 게 아니라 기훈에게로 향했다.
기훈이 앉아 있던 곳에 1번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어 기훈에게 정보를 듣고 있었다.
" 다음 게임 뭔지 아시죠? "
" ... 달고나 뽑기였어요. "
" 달고나요? 그, 설탕 녹인 거 뽑는 그 달고나요? "
" 달고나라... "
기훈에게서 두 번째 게임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그러자 시후의 눈길이 맨 앞에 있는 영일에게로 향했다. 시후의 앞 순번, 1번. 그 남자 말이다. 어째서인지 시후는 자신의 본능이 자꾸만 그 남자를 혐오하고,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남자와 대면하기 전에 시후는 몸을 옮겨 타노스 일행에게로 향했다.
도시락을 까서 우선 밥부터 먹은 뒤 타노스에게 자신이 듣고 온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타노스와 남규는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밥 먹고 있는 명기에게 다가가 시비를 걸고 있었다.
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 알았으니까 좀 비켜줄래? "
" 쪼끄만 게, 씨발. 먹는 건 존나 밝혀. "
" 그렇게 밥이 먹고 싶어? 이 타노스 님이 먹여줄게. "
" 형, 수봉이 형!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
" 오? 지훈! 와서 너도 같이 먹여줄래? "
" 아뇨, 이딴 놈 놔두고 와봐요. 제가 방금 다음 게임에 대한 정보 듣고 왔어요. "
" What?! next game!? "
시후가 타노스의 이름을 부르며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타노스가 웃으며 시후에게도 같이 먹일 것을 요구했지만, 시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고 그가 혹할 만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시후는 명기가 보는 앞에서 일부러 작은 목소리가 아닌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게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노스가 들고 있던 도시락통을 명기에게 던졌다.
명백한 비웃음으로 가득한 웃음을 보이며 맛있냐고 물었고, 거기에 참지 못한 명기가 타노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세 사람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쌓이고 쌓인 분노가 터진 결과였다.
타노스가 주먹을 날리고, 남규가 명기의 팔을 붙잡아 반항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 이 씨발 놈아! 개새끼야! "
" 형, 저도 한 대만 때릴게요. "
" 지훈! 너도 와서 패! 너도 이 새끼 때문에 날린 돈 있잖아! "
" 아니, 하... 수봉이 형. 진정해요. 예? 이렇게 패서 어? 다쳐가지고 제대로 게임 못 하게 되면 돈 못 받는 건 우리잖아요. "
" 그것도 그렇긴 한데... 아! 이 씨발 새끼! "
모두의 시선을 이끌 정도로 소란스러운 광경이었다.
시후가 뒤늦게 타노스를 말려보지만, 통하질 않았다. 타노스를 막으며 오히려 돈을 못 받게 되는 건 우리라고 말해도 타노스는 수긍하는 것 같다가도 분을 못 이겨 명기를 걷어찼다.
그때 뒤에 있던 영일이 나오면서 타노스와 남규를 말렸다.
밥 먹을 때 이러는 거 아니라며 말리더니, 타노스가 얻다 대고 훈계질이냐며 따졌다. 분위기가 묘하게 굴러가기 시작하자 시후가 다시 나서서 타노스를 말렸다. 아까 느꼈던 본능이 다시 영일에게서 멀어지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 형, 형! 우리 그냥 사과하고 넘어가요. 이분 말도 맞잖아요. "
" my friend!! 이 사람이 꼰대처럼 훈계질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어? "
" 네, 형. 지금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
" 너 뭐라고 그랬니? "
" 네 새끼한테나 하라고. 그 훈계질. "
" 씨발 새끼... 아악! "
시후가 계속해서 말렸지만, 타노스는 한 번 불타오른 화를 좀처럼 주체하지 못했다.
영일이 타노스를 보며 다시 물어보자, 타노스는 보란 듯이 영일에게 답했고, 그 순간 영일이 타노스의 뒷목을 움켜잡고 꺾었다. 그 모습을 본 남규가 영일에게 덤볐지만 보기 좋게 정강이를 까인 뒤 배를 맞고 엎어졌다.
타노스에게는 순식간에 명치 두 군데를 때렸고,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에도 팔을 꺾어버렸다.
배와 안면을 강하게 걷어찬 뒤 목을 조이며 주먹을 들어 올린 영일의 모습에 타노스가 겁을 먹고 다급하게 사과했다. 그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았고,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뒤늦게 시후가 나섰다.
영일의 주먹을 붙잡으며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 자, 잘못했어요. "
" 잘못했다고 하잖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 "
" ... "
모두의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와중에 영일이 주먹을 놓자, 시후가 타노스를 일으켜 세웠다.
타노스를 부축하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영일의 시선이 시후에게로 향했지만, 시후는 그 시선을 알아차리고도 모르는 척 넘어갔다. 타노스를 침대에 눕힌 뒤 남규를 일으켜 그 옆 침대에 눕혔다.
다시 밖으로 나온 시후는 명기까지 일으켜 주고 나서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 ... 두 사람이 찾아갈 줄은 몰랐네. 내가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볼게. "
" 두 번이나... 고맙다. "
" 아니, 그냥... 열심히 돈 갚으려는 거 같아서 작은 도움인 거지. 난 가볼게. 이거 아까 몰래 하나 더 받은 건데 이거라도 먹던가. "
" ... "
시후는 몰래 받은 거라며 핑계를 대고서 남규의 도시락을 명기에게 주었다.
솔직하게 남규의 도시락이라고 말하면 안 먹을 게 뻔했으니까. 한바탕 사건이 일어난 이후 소등되면서 모두가 잠든 시간이 다가왔다. 타노스와 남규는 침대 위에서 끙끙거리더니 앓으며 잠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후는 두 사람이 완전히 잠든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기상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후도 마찬가지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아직 잠들어 있는 남규와 타노스를 깨웠다.
[ 안내 말씀드립니다. 잠시 후,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됩니다. 참가자들은 진행 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
큰 굉음이 들리면서 앞쪽에 문이 열리고 관리자들이 나와 줄을 섰다.
사람들이 익숙하다는 듯 앞으로 나와 관리자의 앞에 서서 다음 게임을 준비했다. 타노스는 일어나자마자 목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열어 약을 한 알 꺼내 입에 넣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남규가 뭐냐고 물었고, 타노스는 시후를 힐끗 보다가 남규를 보며 넌 몰라도 된다고 답했다.
시후 역시 그걸 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뒤 고개를 저었다. 시후가 먼저 앞서 나가자, 그 뒤를 이어 타노스와 남규도 따라 내려왔다. 사람들이 줄 서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동했다.
이번에 들어온 곳은 마치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생긴 세트장이었다.
[ 두 번째 게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번 게임은 단체적입니다. 10분 안에 5명씩 팀을 짜 주세요. ]
" 형, 가서 2명 더 구해올까요? "
" Wait a minute. 저쪽으로 가볼까? "
" 수봉이 형? "
10분 안에 5명씩 팀을 짜라는 말이 들려오고, 세 사람은 주변을 살폈다.
시후는 자신이 어제 기훈을 통해 들었던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두 사람은 상관없다는 듯 다른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한참 돌아다니던 세 사람이 발견한 건 한 여자였다.타노스가 폼을 잡으며 여자를 불렀다.
" 세뇨르타, 익스 큐즈 미. "" ... "" 너 게임 나랑 같이하자. "" 어... 내가 왜? "" 이 형 누군지 몰라요? 래퍼 타노스~ "
타노스의 행동에 곁에서 지켜보던 경수가 여자에게 타노스가 래퍼라는 걸 알려주었다.그 곁에 있던 남규는 여자가 못마땅해 보였다. 시후는 두 사람의 뒤에서 살펴보다가 여자만 들어오면 다행이겠지만, 그 여자의 뒤에 있는 남자까지 들어오면 6명이었기에 무용지물이라는 걸 알았다.시후가 경수를 툭툭 쳐서 일행과 반대편에 있던 4명의 남자들을 향해 가리키며 말했다.
" 경수야, 저쪽에 가서 먼저 물어봐 줄래? "" 어? "
" 여자가 못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 어, 어... 알았어! "
시후의 말에 경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4명의 남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경수를 보내고 나니 남규가 타노스에게 손짓하며 무슨 게임할 지 모르는데 여자는 아닌 것 같다며 막아서려고 했다. 하지만 타노스가 막무가내로 자신이 지켜줄 테니 같이 게임하자는 말을 내뱉었다.그러자 여자가 웃음을 참으며 타노스에게 말했다.
" 어... 타노스, 그럼 인피니티 스톤은 다 모았고? "" 오브 코스! 지금부터 내 앞을 가로막는 자들은 내가 싸그리 쓸어버릴 거야! 넌 내 뒤에만 있으면 안전해. 유 세이프, 오케이? "" 뭐? ㅋㅋㅋ 아, 형! 그러면 핑거 스냅 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 반은 사라지겠네요? "" 물론이지! 지훈! "" 그러면 상금도 쌓이겠네요. "" 그렇네? "" ... 근데 난 이미 같이 하자고 얘기 중이던 사람이 있는데. "
시후의 예상대로 여자가 뒤에 있던 남자를 말하자, 타노스가 문제없다며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자가 몸을 비키며 뒤에 있던 남자를 보였다. 소심해 보이는 모습에 남규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였고, 시후가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여자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타노스는 아무 생각 없이 남자를 보며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 저, 민수요... "
" 아, 딱 봐도 너무 좆밥 같은데요, 형. "
" 왓츠 업. 나이스 투 밋 유, 마이 브라더. "
" 내가 보기엔 남규 형이 더 좆밥인데요. "
" 뭐? "
민수가 자기 이름을 소개하자, 남규가 다시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타노스에게 저지당했고, 민수에게 다가가며 마이 브라더라고 칭했다. 그 모습을 보던 시후가 피식, 비웃으며 남규에게 말했고, 그 말에 욱한 남규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게 민수와 새미가 한 팀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5명이 짝을 지었다.
뒤늦게 나타난 경수가 시후를 보며 어떻게 된 상황이냐는 듯이 보자, 시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경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아까 찾아갔던 4명의 남자에게로 돌아가 같은 팀이 되었다.
두 번째 게임은 다섯 명이 다리를 묶고, 딱지치기, 비석 치기, 공기놀이, 팽기 돌리기, 제기차기를 해야했다.
시간 안에 들어오지 못한 팀은 관리자에 의해 무자비한 총살을 맞이했고, 그렇게 죽어서 관에 실려 나갔다. 끔찍한 장면에 시후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는 사이 두려움에 미친 듯 남규가 타노스에게 약을 청했다.
" 왓? "
" 저, 그거 하면 안 돼요? 저도? "
" '그거'? "
" 형 아까 했던 거. 그 십자가 안에... 안에 있었던 거 있잖아요. "
남규가 보란 듯이 자신의 떨리는 손을 보여주며 타노스에게 이대로라면 게임 못할 거고 다 죽을 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그 말에 타노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시후도 마찬가지로 한숨을 내쉬고, 이번에는 외면했다.
정말로 남규가 손이 떨려서 게임을 못 하게 되면 5명이 나란히 총을 맞고 바닥에 눕게 될 게 뻔했다. 그래, 저기 실려 나가고 있는 저 5명처럼. 시후는 자기 생명도 소중했기에 차라리 외면하기를 택했다.
남규가 딱지치기, 타노스가 비석 치기, 새미가 공기놀이, 민수가 팽이 돌리기, 시후가 제기차기를 하기로 했다.
사이 좋게 한발, 한발 옮기며 차례대로 잘 넘기는 게 관건이었다. 남규가 딱지치기를 할 때 제때 뒤집지 못해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었다.
" 아, 씨발!! 왜 안 뒤집어지는 건데!! "
" 남규 형! 진정하고 집중해서 잘 좀 해봐요! "
" 하... 씨이발... "
제 화를 이기지 못해 분을 터트리던 남규에게 시후가 한 마디 내뱉었다.
그게 자극이 된 건지 남규가 한 번에 딱지를 뒤집었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 비석 치기는 두 번 만에, 공기놀이는 단 한 번 만에 끝냈다. 공기놀이를 단 한 번에 성공시키는 새미의 모습에 시후는 처음으로 여자에게 무서움을 느꼈다.
다음은 민수의 차례인 팽이 돌리기였다.
민수가 계속해서 끈으로 팽이를 감았지만, 좀처럼 제대로 감기지 않고 풀려버렸다. 그로 인해 민수의 멘탈이 나가버리고, 제대로 집중조차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는데 그런 와중에 잘 타이르지는 못할망정 남규가 몰아붙이며 욕을 퍼붓자, 민수의 멘탈이 더 나가버렸다. 그 옆에 있던 시후가 민수를 보며 말했다.
" 민수 씨, 남규 형 말 무시해요. 지금은 여기에만 딱 집중하는 거예요. "
" 지, 시후야... "
" 실패해도 괜찮아요. 다시 주워 오면 되니까요. 다만 조금 빠르게 합시다, 우리. "
" 으응... "
" 형은 할 수 있어요. "
시후의 위로와 응원 덕분인 건지 민수가 숨을 내뱉고 삼키며 팽이를 말아 던지자, 제대로 돌아갔다.
그 사실을 기뻐할 새도 없이 모두 앞으로 나아갔고, 이번에는 시후의 차례였다. 시후가 제기를 들고서 숨을 내뱉고 제기가 떨어지는 박자에 맞춰 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관리자를 통해 확인 사인을 받아낸 다섯 명이 열심히 앞으로 걸어가 통과선을 넘었다.
겨우 살아남은 다섯 명은 서로 끌어안으며 자축했다. 다행히 통과된 사람들은 먼저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다섯 명은 자리에 앉아 쉬었다.
그러다 심심했던 건지 남규가 민수를 보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 아, 씨발. 존나 많이 살았어. 야, 야. 몇 마리나 되는 거 같아? "
" 네? "
" 지금 이 안에 바퀴벌레 새끼들이 몇 마리나 있는 거 같아? "
" ... 한 200명... 쯤... "
" 그걸 어떻게 알아. 니가 AI야? 한번 다니면서 세 봐. "
" 지금요? "
남규의 말에 시후가 인상을 찡그렸다.
옥타곤에서는 저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싶다가도 마지막에 그의 진짜 성격을 봐버린 시후였기에 아, 원래 저런 성격이었지. 하면서 넘기려고 했다. 민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새미가 민수의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두 사람 사이에서 팽팽하게 감도는 긴장감 속에서 시후가 나섰다.
남규의 어깨에 팔을 올려 감싸안듯이 붙잡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시후의 얼굴은 분명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전혀 웃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 지켜보고 있던 타노스가 중재시켰다.
" 새미 누나 말이 맞죠. 알아서 알려줄 건데 뭐 하려 해요? "
" 이, 씨발... "
" 스탑 잇.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
" 저 민수요. "
" 너 몇 살이야. "
" 27살... 입니다. "
" 그럼 97. 야, 너 얘한테 왜 존댓말 써? "
타노스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뜬금없이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시후는 민수가 97이라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남규와 동갑이라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래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끅끅대며 타노스의 말에 장난기 가득한 말로 맞받아쳤다.
마지막에 거들듯 새미가 남규를 노리고서 말했다.
새미의 말은 방금 전 게임에서 유이하게 게임에서 한 번 이상을 넘긴 걸 말하는 거였지만, 명백하게 그 숫자가 높은 남규를 향한 비웃음이기도 했다.
" 민수 형이 보기엔 자기보다 형처럼 보여서 존댓말 쓴 거겠죠. "
" 뭐? 이 새끼가... "
" 뭐요, 남규 형. 형이 또래로 안 보이는 건 사실 아닌가? "
" 딱지도 제대로 못 치던 놈이. "
" 스탑. 민수랑 남수랑 동갑이야. 야, 남수야. 너 97 맞잖아. "
" 남규요. "
" 그래, 남규야. "
둘이 동갑이니까 말 편하게 까라는 말에 시후가 더 웃어 재꼈다.
얼마나 웃긴 건지 아예 배를 붙잡고 꺽꺽거렸다. 넓은 공간만 있었더라면 아예 드러누워서 뒹굴며 웃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계단에 앉아 있던 터라 앉은 채 웃을 뿐이었다.
친목을 강조하던 타노스가 새미를 보며 새미에게도 나이를 물었다.
타노스가 상황을 정리한다는 듯이 말하며 말했다. 경수와 시후가 막내, 남규와 민수는 동갑, 새미는 누나, 그리고 자신은 제일 큰 형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남규를 보며 새미를 향해 누나라고 해보라며 시켰지만, 남규는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시후가 더 빵 터지며 웃었다. 그러는 사이 관리자가 나와 결과를 알려주었다.
" 두 번째 게임의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
다시 돼지 저금통이 나오며 그 안으로 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해 고정되었다. 다음 게임을 위한 속행 투표가 진행되고, 당연하게도 O 표가 가장 많았다. 투표가 끝나자, 모두 저녁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음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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