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HL/드림/250208] 선택의 시간

나비의 보관함 2025. 3. 3. 01:01


마샤는 3년 전, 대붕락의 일로 인해 모든 가족을 잃어버렸다.

그 가족이 생존해 있는지, 어딘가 숨어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조차도 몰라서 가족을 찾고자 이곳저곳 홀로 여행을 다니며 전 세계적으로 자잘한 문제를 해결하는 라이브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지났고, 그러다 레오나르도의 소개로 인해 블랙과 화이트를 만나게 되었다.

마샤는 여행을 하는 내내 레오나르도와 미셸라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편지 내용 속에 새롭게 알게 된 친구를 소개해 주고 싶다며 다음에 오는 날을 알려달라고까지 했었다.

그 편지를 통해 헬살렘즈 롯에 있는 소꿉친구도 볼 겸 라이브라 기지를 향한다.

 

 

" 어라? 레오? "

" ... 마샤? 왜 여기에... "

" 그야... 아, 설마... "

" 어? 마샤, 너... 라이브라였어? "

" 앗... 들켰네. "

 

 

두 사람이 다시 재회했을 때, 레오나르도는 마샤가 라이브라 소속임을 알게 되었다.

마샤는 의도치 않았지만, 레오나르도가 라이브라 소속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굳이 그에게 자신도 라이브라 소속임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러 오는 길에 들킬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레오나르도와 마샤가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때, 레오나르도의 곁에 있던 금발의 쌍둥이가 말을 걸었다.

우중충하게 가라앉은 회색의 도시에 반짝이는 금발은 화려하게 느껴졌다. 마샤의 시선을 한눈에 빼앗은 금발과 녹안, 벽안은 호기심에 반짝이고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아차, 싶었다는 표정을 짓더니 마샤에게 두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 소개할게, 이쪽이 편지에서도 말했던 쌍둥이. 블랙과 화이트야. "

" 안녕, 난 블랙. "

" 난 화이트야. "

" 반가워. 난 레오의 소꿉친구인 마샤 헤일이라고 해. 편하게 마샤라고 불러. "

 

 

마샤와 블랙, 화이트는 첫 만남부터 서로의 인상을 매우 좋게 보였다.

첫 만남 이후로 마샤와 레오나르도, 블랙과 화이트는 종종 시간이 맞으면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오랜 여행을 홀로 했었기에 지쳤던 마샤에게 더없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소꿉친구인 레오나르도와 미셸라 외에 이렇게까지 친하게 지낸 사람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이르게 깨지는 법. 마샤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절망왕이 레오나르도의 신들의 의안을 노리고, 화이트를 통해 받아오라는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마샤는 그 직후 화이트를 개인적으로 만났다.

 

 

" ... 다 들었어. "

" ... 뭘? "

" 절망왕이 레오에게서 신들의 의안을 받아오라고 했잖아. "

" ... "

" 정말... 받으러 갈 거야? 레오랑 데이트도 하고, 사이 좋았잖아. "

" 하지만 나는 블랙을 구하지 않으면 안 돼. 너도 봤겠지만... "

" 레오잖아! 절망왕에게 신들의 의안을 넘겨주면 안 돼! 세상이 망할지도 몰라. "

" ... 알아, 알지만... 난 내 가족을 구해야겠어. "
" 화이트... 너, 정말 이기적이구나. "

 

 

카페에 앉은 두 사람은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점점 격해지는 감정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샤는 레오나르도도 중요했지만, 절망왕에게 신들의 의안이 넘어간다면 그땐 3년 전의 대붕락보다 더 심한 사태가 벌어질 게 분명했다.

마샤는 그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그런 선택을 하는 화이트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데이트도 하고, 사이가 좋던 레오나르도에게서 신들의 의안을 빼앗을 거라는 말에 충격적이기도 했다. 마샤의 말에 화이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레오나르도도 소중했지만, 둘이서 하나, 자신의 가족을 이대로 절망왕에게 빼앗길 수 없었다.

 

 

" ... 너도 가족이 있었더라면 나를 이해할 거야, 마샤. "

" 너... "

 

 

화이트는 가려진 탁상 아래로 무릎 위에 올린 손을 꽉 쥐었다.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 마샤가 미웠다. 그녀와 함께하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이해해 주지 않는 모습에 싫어하게 되었다. 미움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싫어하기까지 해버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속내로는 마샤랑 다시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화이트는 점점 지쳐갔다. 평화로웠던 며칠 전의 시간들이 마치 환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블랙은 화이트가 어두워지는 모습에 걱정이 앞섰다. 

그러다 그녀를 통해 마샤가 했던 말을 듣게 되었다.

 

 

" 뭐? 마샤가 그런 말을 했다고? "

" 응...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

" ... 허. "

 

 

그날의 일에 대한 설명을 들은 블랙 또한 자신의 감정보단 가족을 위했다.

화이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는 것에 감정이 상했고, 그로인해 그녀를 싫어하게 되었다. 마샤는 이해자가 되진 못해도 상처를 주지 말아야 했다. 만약 마샤에게도 이런 선택지가 생긴다면 그땐 그녀가 어떤 선택을 했으려나.

 

.

.

.

 

마샤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화이트에게 한 말이 너무 무책임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도 가족을 찾기 위해 3년이나 홀로 떠돌아다녀 놓고서, 갑작스러운 충격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기에 화이트가 신경 쓰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마샤는 다시 여행이나 홀로 떠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 떠나자.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걸 실천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레오나르도가 마샤를 향해 찾아온 손님이 있다며 말을 걸었다. 마샤가 고개를 돌려 보는 순간, 레오나르도의 뒤에 있는 건 화이트였다.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하는 화이트의 모습에 마샤의 표정이 굳었다.

 

 

" ... 무슨 일이야? "

" 너랑... 화해하고 싶어서. "

" 화해? 이게 화해할 수 있는 이야기야? "

" 난... 네가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너는... 가족을 찾아다녔다며. 그러면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알잖아. "

" 알지, 하지만 그게 절망왕의 손에 신들의 의안을 가져다준다는 걸 정당화할 순 없어. "

" 알아. 사실 지금... 블랙의 몸에 절망왕이 깃들어있어. 언제 잡아먹힐지 몰라. "

" ... 화이트. "

 

 

화해하고 싶다며 찾아온 화이트는 결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가까운 사람의 소중한 것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마샤는 대화를 듣는 내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해가 아니라 이해를 시키기 위해 찾아온 것이라고.

그러다 화이트가 잠깐의 정적 이후 용기 내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화이트의 용기에 마샤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그녀의 용기에 힘입어 자신도 과거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절망왕만 아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절망왕은 과거나 지금이나 언제나 자신의 행복을 깨트린다.

 

 

" 절망왕은... 3년 전, 내 가족을 죽인 놈이야. "

" 어? 하지만 가족을 찾는다고... "

" ... 유해를 찾기 위해서야. "

" ... 세상에. 마샤, 정말 미안해. 내가 그때 했던 말은... "

" 괜찮아, 가족은 소중한 존재라는 건 맞으니까. 나도 그때... 했던 말은... 진심이 아니었어. "

" 마샤... "

" 우리 함께 절망왕에게 신들의 의안을 가져다주지 않고, 블랙에게서 빼낼 수 있는 쪽으로 생각해 보자. "

" 응, 그러자. "

" 레오하고 너하고 나하고 힘을 합치면 될 거야. "

 

 

마샤가 지난 3년간,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여행했던 이유가 밝혀졌다.

절망왕으로 인해 가족이 죽었고, 그 가족의 유해를 찾기 위한 여행이었던 것이었다. 절망왕이 가족을 죽인 뒤 그 자리에 두고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샤는 화이트와 진솔한 대화를 나눈 후 서로 화해했다.

화이트는 마샤에게 있어 절망왕은 원수나 다름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부쩍 가까워졌다. 화이트에게도 절망왕은 원수였으니까. 동질감에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블랙은 화이트가 어느 순간부터 활기가 돌기 시작한 것에 물어보았다.

 

 

" 화이트, 요즘 기운 좋아 보인다? "

" 아~ 있지, 마샤랑 화해했어! 마샤가 이해해 주더라고. "

" 그래? 흠... "

 

 

블랙의 질문에 화이트는 애써 에둘러 말을 둘러댔다.

블랙의 앞에서 절망왕을 물리칠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혹여나 지금 대화하고 있는 게 블랙인지, 절망왕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앞머리가 반쯤 올라간 상태라 더 헷갈렸다.

화이트의 말이 끝나자, 블랙이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블랙이 사라지는 걸 지켜보던 화이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지? 생각하던 것도 잠시 아까까지 생각하고 있던 방법에 대해 다시 떠올렸다. 블랙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마샤가 있는 곳이었다. 

화이트와 화해를 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에 기뻐 마샤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이었다.

 

 

" ... 어라? 블랙? 어쩐 일이야? "

" 마, 마샤. 화이트랑 화해했다며? "

" 아~ 응, 화이트랑 다시 친하게 지내기로 했어. "

" ... 그러면 내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겠지. 나, 널 좋아하고 있어. 아니... 좋아해. "

" 어...? "

 

 

마샤는 여행을 가려고 준비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블랙의 등장에 마샤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걸며 블랙인지 아니면 절망왕인지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절망왕이 아니라 블랙인 것 같아 안심하며 웃어주었다.

마샤의 미소에 블랙이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리더니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마샤를 향해 고백했다.

갑작스러운 블랙의 고백에 마샤가 얼빠진 채 멍하니 보다가, 자신이 들은 게 고백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얼굴을 확 붉혔다. 고백한 사람도, 고백받은 사람도. 두 사람 다 얼굴을 붉힌 채였다.

마샤는 답을 해주어야 하는데 어떤 답을 해주어야 할지 몰라 입만 벙긋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