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BL/드림/250217] 무너져 내린 세상 속에서의 일상

나비의 보관함 2025. 3. 4. 00:51

 

퍼니싱의 재난, 그것은 우리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첨단 과학에서 초래되었습니다. 

퍼니싱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살아남은 인간들은 인류의 생체모방학의 산물이자 퍼니싱에 대항하는 마지막 희망인 구조체를 만들었다. 세상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고, 종말만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막다른 길에서 답을 찾을 것이고, 빛을 발할 것이다.

 

 

" 그림, 아침인데 뭐해? "

" 이빨이 간지러워. "

" 뭐? 어디 봐. "

 

 

그림은 간지러운 치아를 멍하니 만지고 있다가 불쑥 찾아온 카무이를 보았다.

카무이는 특유의 밝은 기운으로 그림에게 친숙하게 말을 걸었고, 그림은 멍하니 있다가 카무이의 말에 답했다. 이빨이 간지럽다는 말에 카무이가 그림의 이빨을 확인했다.

평소와 똑같이 뾰족한 송곳니, 가지런한 치아. 바뀐 것도 없었고, 문제가 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카무이의 손길이 떨어졌음에도 그림은 계속해서 치아를 긁어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카무이가 팔짱을 끼고는 그림에게 말했다.

 

 

" 그러면 우리 크롬에게 가볼까? "

" ... 그럴까. "

" 좋은 생각이지? 얼른 가자! "

" 가자, 가자! "

 

 

그림은 멍하니 있을 때보다 목적이 생기니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카무이의 말과 손길에 이끌려 팔콘 소대의 대장이자 지휘관인 크롬에게로 향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그림과 카무이는 무엇 때문에 크롬을 찾으러 다녔는지에 대한 걸 까맣게 잊고 말았다.

두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활발한 두 사람을 맞이해 주었다.

지나가던 길에 같은 소대 단원인 반즈를 만나기도 했다. 반즈는 창밖을 바라보며 천천히 돌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살금살금 발끝을 세우고 다가가 반즈를 놀라게 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반즈를 놀라게 하려던 순간 반즈가 몸을 돌려 두 사람을 보았다.

 

 

" ... 와악?! "

" 뭐야, 반즈! 알고 있던 거야? "

" 그야 유리창 너머로 오는 거 전부 다 보이니까. "

" 앗차... 그걸 깜빡했네! "

" 우리의 실수네! "

" 이거라도 먹어, 날 건들지 말고. "

 

 

반즈는 놀래켜주는 걸 실패했어도 웃고 떠드는 카무이와 그림을 보며 말했다.

카무이가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과 그림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림도 유리창에 비치는 걸 보고서 장난 가득한 표정으로 웃었다.

가만히 두 사람을 지켜보던 반즈가 품에서 사탕을 꺼내더니 카무이와 그림에게 건넸다.

마치 아이 취급하는 듯한 행동이었지만, 반즈는 두 사람보다 형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물론 두 사람도 반즈의 태도에 그리 불만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카무이는 반즈가 건네준 사탕을 빤히 보다가 그림을 보았다.

 

 

" 아! 그림, 이빨 간지럽다고 했는데 사탕 먹어도 될까? "

" 음... 일단 받아야지. "

" 누구에게 가는 길이야? "

" 우리? 지휘관! "

" 지휘관을 만나면 나에게 시킬 일이 있으면 방으로 와달라고 해줘. "

" 응! 그럴게. "

 

 

카무이는 여전히 그림의 이빨을 걱정하는 듯싶었지만, 정작 그림은 상관없다는 듯 사탕을 쥐었다.

반즈가 그림을 보다가 카무이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누구에게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보통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야 하는데, 반즈는 두 사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아는 눈치였다.

카무이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사탕을 집어 들며 지휘관을 만나러 간다고 말했다.

반즈의 부탁에 두 사람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 자리를 이동했다. 사탕을 까 입안에 넣으며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는 분주해 보였고, 또 어떤 이는 한가해 보였다.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카무이와 그림은 지휘관 실로 향했다.

다른 곳에 정신을 팔지 않고, 무사히 지휘관 실에 도착했다.

 

 

" 저기~ 크롬 있어? "

" ... 크롬 없나? "

" 그러게, 이 시간이면 없을 리 없는데? "

" 외출한 걸지도~ "

 

 

지휘관실 앞에서 아무리 크롬을 불러도 크롬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무이가 상체를 숙여 문에 귓가를 대고서 안에 누군가 있는지 인기척을 확인했다. 그런 카무이의 행동을 그림이 따라 했지만, 두 사람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두 사람에게 말을 걸어왔다.

 

 

" 어라, 두 사람 거기서 뭐 해? "

" 크롬 기다려! "

" 크롬한테 물어볼 게 있거든. "

" 정말 두 사람도... 어제 크롬이 임무 나간다고 말했잖아? "

" 아! "

 

 

평소 두 사람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장난치기를 좋아하고, 어리숙하며 어딘가 바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차징 팔콘 부대 내에서도 유명했다. 사고를 잘 치고, 장난도 좋아하고, 어리숙한 모습은 남동생처럼 보이게 했다. 두 사람은 정보를 알려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발걸음을 돌렸다.

그림은 아까보다 비교적 나아진 이빨에 굳이 크롬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입안에서 혀로 간지럽던 이빨을 건드려 봤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림은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었고, 그로 인해 카무이의 발걸음도 덩달아 멈췄다.

 

 

" 왜 그래? 그림? "

" 간지럽던 게 사라졌어. 내일 임무도 있으니까 크롬 찾지 말고, 가자. "

" 그럴까? 괜찮겠어? "

" 응. "

 

 

카무이는 그림의 의사를 존중하며 크롬 찾기를 그만두었다.

다음 날,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어제 그림이 말했던 대로 오늘은 던전 탐색이라는 임무가 있었다. 그림은 단단히 무장을 하고서 카무이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괜히 심심해져서 바닥을 걷어차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카무이가 달려오면서 그림을 불렀다.

그림은 카무이를 보며 밝게 웃으며 팔을 흔들었다. 카무이와 만나고 마지막으로 던전의 탐색 계획을 토론했다. 카무이는 단독 작전에 능했고, 그림은 단독 작전을 선호하는 사람이었기에 계획을 확실하게 하고 가는 게 중요했다.

마지막 작전을 확인한 뒤 카무이가 그림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 친구! 이번에도 무사히 다녀오자고! "

" 물론이지! 제대로 못 따라오면 버리고 갈 거야, 카무이. "

" 뭐? 그럼 나도 똑같이 해야지! "

 

 

두 사람은 어제처럼 오늘도 신나는 표정으로 임무를 시작했다.

출발하면서 그림은 익숙하다는 듯 모자를 뒤집어쓰며 장갑을 고쳐 꼈다. 던전에 들어오면서 탐사가 목적이긴 하지만, 불가피한 전투는 어쩔 수 없이 치러야만 했다. 

두 사람 다 대검을 쓰는 사람이었기에, 서로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끔 움직이면서 호흡을 맞추었다.

카무이는 협동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혼나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림과의 호흡은 잘 맞았다. 성격이 비슷해서인 건지 아니면 같은 대검을 사용하는 거라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전투를 끝내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 무리하게 해버리면 열이 나는 탓이었다.

 

 

" 이상하지, 던전을 돌 땐 주변이 항상 무너진 폐허였는데 오늘은 갈수록 추워지는 거 같아. "

" 그러게. 뭐, 그래도 우리 둘이라면 문제없을지도! "

" 그건 당연하지! 우리 내기나 할까? 누가 더 많은 적을 쓰러트리나! "

" 좋은데? 해보자! 해보자! 당연히 내가 이기겠지만 말이야! "

" 뭐? 이기는 건 당연히 나지! "

 

 

카무이의 말대로 가만히 숨을 내쉬는데도 불구하고 입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은 여전히 폐허에 불과했지만, 기온이 점점 내려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얼음 타입이라 그런지 그림은 딱히 춥다는 걸 느끼지 못했지만, 카무이의 입가에서 흐르는 입김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카무이가 그림에게 내기를 하자며 딜을 걸었고, 그림은 보기 좋게 넘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마주 잡고 서로를 보다가 씩 웃었다. 하필이면 임무 도중에 생기지 말아야 할 장난기의 버튼이 눌려버린 탓이었다. 카무이와 그림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서 나타난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하핫! 오늘도 활기찬데?! "

" 그건 카무이도 마찬가지잖아? 아싸! 하나 더! "

" 뭐? 너 몇 번 쓰러트렸는데? "

" 지금까지 5. 너는? "

" 나? 나도 5! "

 

 

두 사람의 내기는 전투 중임에도 끝을 맺지 않았다. 

물론 카무이나 그림이 협동 임무에서는 이러지 않는 편이었다. 협동을 해야 하니까 장난보다는 진지한 모습으로 임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다만, 둘이서만 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막을 사람도 없고, 잔소리할 사람도 없으며 혼낼 사람조차 없으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건 당연했다.

이것도 전부 두 사람이 실력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아니었더라면 임무 도중 감염체에 감염되거나 신체 중 어디 하나라도 잃어버리고 올 수도 있을 정도의 일이었다.

심지어 단독으로만 임무를 받는 차징 팔콘 부대이지 않는가.

 

 

" 하아... 카무이! 우리 조금만 쉬자. "

" 뭐? 그림, 너 실력 많이 죽었다? "

" 뭐래! ... 카무이!! "

 

 

차징 팔콘 부대에서 2인 이상으로 임무를 나간다는 건 그만큼 위험하다는 이야기였다.

그저 탐색이라는 임무이기도 했지만, 탐색이라고 만만한 임무는 아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카무이가 그림을 향해 등을 돌린 사이 그의 뒤로 퍼니싱 바이러스에 감염된 감염체가 나타났다.

감염체를 확인한 그림이 화들짝 놀라며 대검을 쥐고서 빠르게 달려 힘껏 휘둘렀다.

카무이는 점점 드리우는 그림자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그림을 보았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림이 카무이를 지나 대검으로 감염체를 베어냈다. 하필이면 감염체가 기계체인 탓에 덩치가 상당했다.

그림의 대검이 감염체를 전부 베어내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었다.

 

 

" 윽...!! "

" 그림! 너 괜찮아?! "

" 빨리... 도망쳐! 멍청아! "

" 무리야, 이미 우리 둘을 인식한 것 같아. "

" 그렇다고 여기서 당하고 있을 거야?! 계속 있다간 감염된다고! "

" 쓰러트리면 되는 거 아니야? "

" 야, 카무이...!! "

 

 

그림의 호통에도 카무이는 자신의 대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오히려 보기 좋게 감염체를 향해 달려가며 대검을 휘둘렀다. 다행스럽게도 카무이의 공격이 무난하게 먹혀들었다. 카무이는 더 안으로 파고들어 그림의 대검을 움켜쥐고, 인상을 찡그렸다.

카무이는 두 개의 대검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건 너무 마구잡이라는 이유로 크롬이 금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위급 상황이기도 하고, 멀리 빠져있는 그림에게까지 마구잡이 공격이 들어가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각각 한 손에 하나씩 대검을 잡고서 휘두르기 시작했다.

카무이가 이렇게까지 버티는 건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나가기 위함도 있지만, 그림을 지키기 위함도 있었다.

 

 

" 멍청아...!! "

" 하하... 그림, 내가 양손에 사용한 거... 비밀이다. "

" 저... 멍청한 놈이! "

 

 

카무이는 양손에 대검을 하나씩 든 이후로 감염체를 쉽게 베어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 누워있었다고 괜찮아진 그림이 천천히 일어나며 카무이에게로 다가갔다. 대검을 두 개나 들고서 휘두른 탓에 카무이는 체력을 다 써버려서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였다.

그림이 카무이를 일으켜 세우며 카무이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게 했다.

무사히 임무에서 돌아온 줄 알았으나, 하필이면 부대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무시무시한 얼굴로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카무이와 그림을 노려보고 있는 크롬이었다.

크롬을 발견한 두 사람은 크롬과 시선조차 맞추지 못한 채 눈동자만 굴려댔다.

 

 

"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겠지? "

" 하, 하하... 무슨 말을 할 건데? "

" 이야~... 오랜만, 이네~ "

" 카무이! 내가 분명히 양손 대검은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 "

" 하지만 그거라도 안 썼으면 나랑 그림은 감염체에 당했을 거라고! "

" 하...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만, 보고서 작성 후 따로 보도록 하지. "

" ... 우리 이제 죽은 목숨인가? "

" 이미 죽지 않았어? "

 

 

크롬의 앞에서 막 생환한 카무이와 그림은 한없이 작아졌다.

처음에는 두 사람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잡아뗐지만, 크롬의 입에서 말해준 적 없는 카무이의 양손 대검 사용에 대한 말이 나오자, 더 이상 숨겨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알게 된 건지 궁금했지만, 지금 물어보면 상황이 안 좋은 쪽으로 갈 걸 알아서 말을 돌렸다.

카무이의 말에 크롬이 미간을 찌푸리며 지끈거리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깊은 한숨과 함께 두 사람을 의무실에 던져두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크롬이 가고 나서 두 사람은 서로 속닥거렸다.

보고서 작성 후 따로 보자는 크롬의 말에 카무이와 그림은 나름 겁에 질린 상태였다.

 

 

" 치료받으신 뒤엔 보고서 작성하시는 거 아시죠? "

" 알지... 그 뒤엔 크롬에게 혼나겠지. "

" 그러게 사용하지 말라는 걸 왜 쓰셨어요. "

" 아, 들어 봐. 상황이 안 쓰면 감염당할 수도 있었다니까? "

" 맞아, 맞아! 앞뒤 상황은 들어보고 혼내야지! "

" ... "

 

 

카무이와 그림을 치료해 주던 사람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을 먼저 꺼냈다.

카무이는 치료를 받으면서 짙은 한숨을 토해냈다. 언제나 밝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그의 입에서 한숨이 나올 줄은 몰랐다며 치료하던 사람의 표정이 놀란 상태가 되었다.

왜 썼냐고 물어보는 말에 카무이는 억울함을 피력했다.

카무이의 억울함에 호응하듯 옆에 있던 그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는 말을 했다. 카무이를 치료해 주던 사람은 카무이의 반응에도 놀랐지만, 맞는 말을 하는 그림이 매우 놀라웠다.

카무이 못지않게 장난스러운 사람이고, 가벼운 느낌을 주지만 맞는 말을 하는 쪽은 아니었다.

 

 

" 왜? 내가 맞는 말 해서 놀라워? "

" 아... 아니에요. 치료 끝났습니다. "

" 하하! 그림, 너 이미지 무슨 일이야? "

" 그건 너도 마찬가지라는 표정인데? "

" 뭐?! "

 

 

치료를 끝낸 두 사람은 서로 투닥거리며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허공에 팔을 휘두르자 푸른 빛을 내는 네모난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앞에 드러난 네모난 상자를 몇 번 툭툭 건들더니 보고서를 작성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휘관 실로 향했다.

괜히 크롬에게 혼나기 싫다는 마음이 앞서서 평소보다 느릿하게 걸어갔다.

꼼수를 부리며 갈 생각이었으나, 두 사람의 뒤로 크롬이 모습을 드러내며 뒷덜미를 붙잡힌 탓에 꼼수를 부리지도 못했다. 결국 그렇게 잡혀서 지휘관 실로 끌려간 두 사람이었다.

크롬은 자신의 앞에 두 사람을 세워두고서 한동안 말없이 그저 보기만 했다.

 

 

" 크, 크롬!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 "

" 맞아! 왜 말없이 노려보기만 해? "

" ... 하아... 너네를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지. "

" 어? "

" 카무이는 한동안 단체 협동 임무만 받도록, 그림은... 넌 나와 1대1 훈련이라도 하지. "

" 뭐어?! "

 

 

정말 쌍둥이라고 해도 이상이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당황한 표정 하며 뒤로 주춤 물러나고, 허둥거리는 행동까지도. 크롬은 두 사람을 보며 가까이에서 지내면 사소한 것까지 닮은 건가, 생각하며 당분간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을 생각으로 말했다.

하필이면 벌이라는 게 두 사람이 제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카무이는 단독 임무에 능한 사람이고, 협동 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그림이 아닌 다른 사람과 협동하는 건 상당히 힘든 일에 속했다. 그림 역시나 승부욕이 강하고 자신감이 강한 편이라 1대1 훈련은 하는 편이지만, 유독 크롬과의 1대1은 꺼려했다.

크롬과의 1대1 훈련은 훈련이 아니라 크롬에게 시험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 왜... 왜?! 나 왜 1대1 훈련이야?! 차라리 나도 임무를 줘! "

" 맞아, 나랑 그림이랑 바꾸면 안 돼?! "

" 안 돼. 내일부터 실행할 테니 돌아가도록. "

" 아, 왜!! "

" 허어... "

 

 

카무이와 그림은 바꿔 달라고 버틸 생각이었으나, 크롬에 의해 보기 좋게 지휘관 실에서 쫓겨났다.

망연자실한 두 사람은 한동안 시위라도 하듯이 지휘관실 앞에 서 있었다. 안쪽에서 문을 굳게 잠그고 열어주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2시간 정도 지났을까, 지칠 대로 지친 카무이와 그림이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선물을 받았지만 한번 가라앉은 기분은 좀처럼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휴게실에 앉아 테이블에 엎드린 그림과 의자 등받이에 기대 뒤로 쭉 늘어진 카무이였다.

 

 

" 하아... 우리 왜 혼나야 하는 거지? "

" ... 임무에서 제대로 하지 않고 돌아와서? "

" 임무는 성공했잖아. 위쪽에서도 인정했어. "

" 하지만 다쳐서 돌아왔지. "

" 끙... 내일 어쩌지... "

" 우리 그냥 튈까? "

" 어디로? "

 

 

그림의 말에 카무이가 몸을 일으켰다가 그림처럼 테이블 위로 엎드리며 말했다.

그림과 카무이의 이마가 맞대어진 채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이대로 튀자는 말이 나왔고, 어디로 가냐는 의견에 두 사람이 작당 모의라도 하는 듯 무어라 중얼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키득거리며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또 무슨 장난치려고 저러나, 싶은 눈으로 보고 지나갔다.

차징 팔콘 부대에는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들이 있다. 그들은 장난치기를 좋아하고,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다. 두 사람의 계획은 이러했다.

카무이는 임무를 하기 싫었고, 그림은 크롬과 1대1 훈련을 하기 싫었으니, 결론은 튀자는 것이었다.

어디로? 라는 말에 최종으로 나온 곳은 지구였다. 하필이면 내일 지구로 내려가는 임무를 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은 카무이와 그림하고 친한 편이었다. 

 

 

" 그럼 내일 실행하는 거야. "

" 응! 재밌겠는데? "

" 가서 임무를 열심히 하고 나면 크롬도 수고 했다고 해줄 거야. "

" 그럴 거야! "

 

 

두 사람의 시근덕거림에 지휘관 실에서 일하고 있던 크롬은 귀가 간지러워졌다.

다음 날, 지구로 향하는 수송선에 몰래 올라타고 내려간 카무이와 그림은 내려가던 중간에 임무를 나가는 동료와 대화를 나누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임무에 포함되었다.

이렇게 되면 카무이의 경우 벌을 받는 게 되었지만, 카무이의 입장에선 달랐다.

손발이 척척 맞는 그림과 함께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었다. 카무이는 송곳니가 보일 정도로 웃으며 장난스레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는 그림을 보았다. 

손발이 잘 맞는 유일한 내 친구. 

카무이는 웃으며 그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냐며 말을 걸고, 대화를 하는 사이 수송선은 지구에 무사히 도착했다. 수송선이 열리자마자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임무를 시작했다. 카무이와 그림, 두 사람은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지만, 임무가 시작되자 웃음기 없는 얼굴로 임무에 투입되었다.

같은 시각, 지휘관 실에서 카무이와 그림의 무단이탈 및 지구 수색 임무에 갔다는 걸 크롬이 알게 되고, 또다시 두통이 왔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들고서 두 사람이 돌아오면 잔뜩 혼내줄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