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 원래 인간들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고 있었대.
그런데 욕심이 너무 많아서 다른 우주를 여행하다가 발견한 외계인들에게 잡혀 지금처럼 애완 인간이 되었나 봐. 외계인들이 지루해서 만든 이 무대도 말이야.
우리가 아낙트가든에서 즐겁게 노래했던 건 모두 외계인들을 위한 거였어.
“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달빛과 당신의 눈빛♪ ”
“ 바로, 그거야. Viburnum dilatatum ♬ ”
어둠이 가라앉은 무대 위, 현란하게 흔들리는 조명 사이로 두 여자가 마이크를 쥔 채 춤을 추듯 서로의 손을 붙잡고 움직이며 노래를 불렀다.
이담과 현은 아낙트가든에서 [에일리언 스테이지]로 출전하게 되었다.
아낙트가든에서 서로 웃으며 즐기던 그 순간이 스테이지로 이어졌지만, 살아남는 사람은 현 한 사람이었다. Viburnum dilatatum, 가사를 읊조리던 이담이 웃으며 현을 보았다. 현은 어둡게 가라앉은 무대 위 가장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에 자신을 향해 웃는 이담에게 시선이 향할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게 비추고 있는 스포트라이트보다 이담이 더 빛나고 있었다.
놀라움에 현은 가사를 깜빡하고서 내뱉지 못 할 뻔했다.
“ Viburnum dilatatum~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여, 나에게로! ”
“ I... In, My destiny... ♪ ”
“ 그렇지, 이게 바로 진정한 사랑일 거야. ”
하마터면 무대가 실패로 끝날 뻔했던 상황 속에서 이담이 간신히 현의 가사를 읊었다.
두 사람이 부르던 가사가 순식간에 뒤바뀐 채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 현은 여전히 놀라고 있는 눈을 하고서 이담을 보았다.
이담은 마치 현에게 안심하라는 듯 상냥하게 웃어주며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당기며 움직였다.
무대를 독차지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담의 모습에 현이 멍하게 있었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전광판이 떠올라 점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아차 싶었던 현은 입술을 깨물다가 이담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이 리드하기 시작하며 노래를 불렀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동점을 이루기 위한 발악이자 발버둥이었다.
현이 다시 움직이자, 이담이 어딘가 서글퍼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 don't forget me... ”
“ ... 이담...? ”
이담이 마지막 가사를 내뱉는 동시에 두 사람의 머리 위 전광판이 깜빡거렸다.
나란히 마주 본 두 사람의 표정에는 전혀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3, 4분 정도 되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탓에 호흡이 거칠어지고 땀이 흘렀지만, 두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무대 위는 오로지 두 사람만 존재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담과 현은 그저 시선으로만 대화를 주고받았다. 드디어 무대가 끝났다는 것, 머리 위로 떠오른 전광판 속 동일하게 올라가는 점수.
현이 해맑게 웃으며 이담을 보았지만, 이담은 씁쓸한 웃음을 남겼다.
“ ... 이담? 왜... 그런, 웃음을... ”
“ 좋아해, 현아. ”
“ 어? ”
삐빅, 멈추었던 전광판 속 숫자가 이변을 일으켰다.
현이 떨리는 눈동자를 천천히 올려 전광판을 보았다. 그 순간 현의 귀에는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명이 들려오면서 그녀의 눈앞에서 이담이 힘없이 털썩 쓰러졌다.
[ R O U N D 6 ] 현 VS 이담 57 54 |
현은 멍하니 쓰러진 신온을 보다가 손에 쥐고 있던 마이크를 던졌다.
엉금엉금 쓰러진 신온에게로 기어가선 조금씩 차갑게 식어가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현의 떨리는 손이 신온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쓰다듬었다.
손끝에서 느껴져야 할 따스한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끝까지 동점으로 살아남자고 말했던 것과 다른 점수, 마지막으로 너의 체념한 듯하던 표정.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평소라면 네가 좋아한다고 한 말은 장난이었을 텐데.
지금은 어째서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걸까.
“ ... ”
[ 다음 라운드는 2주일 후다. ]
“ ... ”
멍하니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신온을 끌어안고 있는 현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현의 목에 통과자라는 걸 알려주는 목 쵸커를 채우고 유유히 떠났다. 망연자실한 현은 자신의 목에 무엇이 채워지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무대가 끝이 나고, 스포트라이트는 꺼졌으며 전광판에 떠 있던 신온의 사진이 사라졌다.
.
.
.
라운드 6이 끝나고, 현은 2주의 시간 동안 무대를 준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할 수 없었다. 무얼 하든 신온과의 추억, 기억이 끈질기게 그녀를 뒤따르며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했고, 잠을 충분히 잘 수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숨을 멈춰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마지막에 보았던 신온의 씁쓸한 웃음이 맴돌았다. 밥을 먹을 때도, 괴수들에게 불려 가 노래를 부를 때도, 잠들기 직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신온은 살아있을 때도 그렇게 현을 괴롭히더니, 죽어서도 그녀를 괴롭혔다.
“ 왜... 같이... 동점을 맞이하자고... 했으면서... ”
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온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비현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녀의 행동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스페이지 위에서의 심사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났던 건 자신이 아니라 신온이었다.
현란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태양보다 더 빛나던 그녀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살아남은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 자신인가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붉게, 푸르게 빛나던 무대 아래의 형광봉들.
아련하게, 지독하게 얽혀오는 빛바랜 추억들.
아낙트 가든에서 지내던 시간들, 함께 노래를 부르며 행복하게 웃기만 하던 순간들. 악보를 보며 가사를 부르고, 둘만 가득하던.
‘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을수록, 듣지 않으려 귀를 막을수록.
부르지 않으려 입을 막아도 너는 언제나 내 심연 속에서 고개를 내밀며 나를 부르지. 목이 막힐 정도로 울컥 몰려오는 설움과 그리움은 좀처럼 놓을 수가 없어.
네가 그립지 않다고 하면 거짓이겠지. 네가 싫지 않다고 하면 그건 진실이 아닐 거야.
그 모든 감정조차 덮어버릴 정도로 내 감정은 덧없이 불어나고, 커졌어. 이런 내가 우습겠지. 스스로의 마음조차 통제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너와 있으려고, 네 눈에 띄고 싶어 발악하는 내 추한 모습이 우스웠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나에게 이딴 대답을 할 리가 없잖아.
네가 없는 곳에서 내가 승리해도 무의미야. ‘
〔 좋아해, 현아. 〕
결국 스테이지 위에서 다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현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현은 파이널 무대를 앞두고 해야 할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이미 사라진 존재를 쫓아가기에 바빴다. 그녀의 귓가에는 신온의 목소리가 아련히 울려 퍼졌다.
〔 바로, 그거야. Viburnum dilatatum ♬ 〕
〔 Viburnum dilatatum~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여, 나에게로! 〕
〔 don't forget me... 〕
잊지 말라던 그 말이 현에게 저주처럼 옭매여 절대 잊혀지지 않았다.
라운드 6이 끝나고 1주일 뒤, 무대까지 1주일이 남은 상황에서 호출이 왔다. 괴수의 호출로 인해 그들의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여전했다. 하필 괴수가 요청한 곡이 신온과 함께 부르던 곡이었고, 차마 부를 수 없었던 현이었지만 거절조차 하지 못했다.
인간은 괴수들의 애완 인간에 불과했으니까.
자꾸 떠오르는 기억을 견뎌내며 노래를 불렀지만, 괴수의 마음에는 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딱딱한 외피를 둘러싼 괴수가 현을 향해 비웃기 시작했다.
그들이 현을 향해 낄낄대며 자신이 우승하게 해주었으면 잘하라고 비꼬기도 했다.
“ ... 뭐? ”
현은 그제야 자신과 신온의 무대가 짜여진 도박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괴수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현의 마음이 깨지기 시작하다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당장에 이성을 놓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괴수의 말에 의하면 라운드 6의 신온은 괴수들에 의해 무조건 지는 편이었다고 했다.
신온의 괴물 같은 실력이 ‘무대 위의 황제’인 루카와 맞먹기에 혹여나 모를 싹을 미리 잘라내고자 투표 조작을 했다고. 그 말을 들은 현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해졌다.
고작 그 따위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는 게, 신온이 그딴 이유로 죽었다는 게 억울했다.
“ 애완 인간이라는 건가... ”
현은 진실을 알게 된 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서 괴수를 노려보았다.
함께 착용하고 나왔던 기타를 높이 치켜들고, 있는 힘껏 괴수의 머리를 내려쳤다. 쾅, 커다란 굉음과 함께 괴수가 뒤로 고꾸라지는 걸 보고는 미련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거리를 떠돌던 현은 마른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보며 허무하게 하늘을 보았다.
마치 자신을 위로하듯, 대신 울어주려는 듯 무수히 쏟아지는 빗방울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방이 흑백으로 나뉘던 주변에 붉은빛이 가득 퍼졌다.
가만히 있는 현의 주변으로 슈트를 입은 치안대원들이 그녀를 중심으로 둘러쌌다.
그들은 그녀가 가만히 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수갑을 채웠다.
아무런 반항도 없는 이에게 강압적으로 제압하며 그녀의 몸을 압박시켰다. 재갈까지 물린 그녀는 그대로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
.
.
일주일이 지나고, 파이널 스테이지가 시작하기 5분 전.
무대 위로 올라가기 전에 현은 널브러진 신문을 주워 기사를 읽었다. 그 신문 속에는 <스테이지 49의 비리?! 한 참가자에 의해 발각!>이라는 헤드라인이 걸려 있었다. 대문짝만하게 걸린 사진 속에는 일주일 전, 그녀에게 사실을 밝혔던 괴수가 수갑을 차고 실려 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신문을 보던 현은 눈동자를 굴려 바닥을 보았다.
이걸로 복수가 성공했다고는 못 하겠지만, 나름 만족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며 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겨 스테이지 위로 향했다. 퍼포먼스를 위해 저번 라운드와는 달리 머리를 높게 올려 묶고, 무대 위로 섰다.
현의 옆에는 파이널 상대인 루카가 서 있었다.
“ ... ”
“ Do you really think it's love? 그게 진실일까 ♬ ”
“ Do you really think it's not love? 사랑이지, 물론. ”
“ 그렇게 나를 피하면 돼, 내가 너를 쫓아갈 테니. ”
“ 나의... 나의 Viburnum dilatatum... ”
반주가 시작되고, 현의 퀭한 시선이 힐끔, 루카에게로 향했다.
루카를 보던 현의 눈이 점점 커지며 흠칫 몸을 떨었다. 루카의 모습 위로 덧대어지듯 신온의 모습이 그려졌다. 루카의 손이 현의 머리카락을 꼬아내는 것을 본 순간부터 현의 눈동자가 심할 정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루카는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현의 모습을 보며 아낙트가든에서 그녀와 함께하던 이를 떠올렸다. 연갈색 머리의 소녀가 습관적으로 현의 머리카락을 꼬아대던 것을 그대로 따라 했다.
아낙트가든에서 보았던 버릇들을 보이자, 현이 크게 동요했다.
“ 무너져 가는, 빛바랜 나의 추억과 ”
“ 흐... 드려진, 사라지는 나의 기억이 ”
“ 함께라면... ”
현에게 있어 신온의 죽음은 여전히 극심한 충격이었다.
그녀의 죽음을 부정하는 듯 루카의 행동에서 신온의 환각을 보았다.
은은하게 울리는 반주 위로 올려지듯 가사가 쌓여갔다. 가사가 울릴수록 현의 눈에는 루카의 얼굴 위로 신온의 화사한 웃음이 그려졌다.
현은 몸을 굳힌 채 가사를 읊조렸지만, 시선만큼은 루카를 향해 있었다.
신온이, 아니 루카가 그 자리에서 움직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은 라운드 6에서 신온이 현과 함께 추었던 춤과 매우 유사했다.
현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그녀의 모습이 보이자, 멍하니 발걸음을 옮겼다.
“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
“ 어떠한 것도 바꾸지 못하는, ”
“ 너와의~ ♪ ”
그녀는 루카의 모습 위로 신온을 겹쳐보며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현을 피해 루카가 움직였다. 현이 그런 루카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루카는 현에게 붙잡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하며 노래를 불렀다.
무대 위를 한 바퀴 정도 돌 때까지도 루카는 현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무대 밖, 괴수들은 숨을 죽이며 두 사람의 술래잡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술래잡기의 끝은 중반에 들어서야 멈추었다.
무대의 중앙에서 걸음을 멈춘 루카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현을 보았다.
“ 오오, 나의, 너의, 우리의 추억이~ ”
“ 우리의 Viburnum dilatatum... ”
물방울이 튀는 듯한 음이 통통 울려 퍼졌다.
루카가 몸을 돌려 현을 보는 순간 누군가를 연상케 하는 미소를 보였다. 현은 루카에게서 신온을 쫓아가다 그의 미소 위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루카는 현을 향해 손을 뻗었고, 현은 그 손을 맞잡았다.
두 손이 겹쳐지는 순간 루카가 현의 몸을 끌어당겼고, 현은 가볍게 끌려가며 루카의 품에 안기는 듯한 포즈가 되고 말았다. 루카가 지었던 신온의 웃음은 그녀가 죽기 전 현에게 보였던 그 미소였다. 그는 현의 약점을 알아차리고 신온이라 착각하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결국 넘어온 그녀를 장악하며 가사를 계속해서 읊조렸다.
현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여전히 신온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이것 봐, 이것이 우리의 fate ♬ ”
“ ... ”
“ 진실한 것의 반대, false fate. ”
환상에 사로잡힌 현은 이후로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목이 꽉 막혀올 정도로 차오르는 감정에 울음을 참기에 급급했다. 눈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카는 비릿한 웃음을 숨기며 노래를 이어갔다.
루카가 한 바퀴 돌더니 현의 등 뒤로 가 그녀를 안으며 자신의 손으로 현의 뺨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현의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현이 루카를 밀어내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 나 혼자 가진 memory, suffering is mine. ”
“ 이미 사라져 버린 그 memory, drossy! ”
“ 그 기억의 끝은 나만의 것이지! ”
루카의 가사를 듣고 정신 차린 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신온, 그녀가 마지막에 쓰러지던 그 상황까지 덧대듯 떠오르는 탓에 또다시 좌절감을 맛보았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떠올리기 싫다는 듯 루카를 밀쳐냈다.
현의 시선이 힐끔, 머리 위로 떠오른 전광판을 보았다.
[ F I N A L ] 현 VS 루카 21 35 |
점수 차이가 심하게 나는 탓에 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 현을 비웃듯이 루카가 고음을 내지르며 하이라이트로 달렸다. 그의 고음에 전광판 속 루카의 점수가 빠르게 치솟고 있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과 질 수 없다는 것에 결국 이성을 잃은 현이 달려들 듯 노래를 불렀다.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 짜내며 고음을 내지르는 순간 무대 위와 아래가 동시에 조용해졌다.
정적 속에선 현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 하아... 하... ”
“ 너의 기억만큼이나 완벽한 나의 fate, 으음... 하~ ”
“ ...! ”
“ 가련한 memory, 아련한 relationship! ”
팅티팅, 티리링, 팅!
조용하던 무대 위에서 루카가 먼저 입을 열어 무반주로 노래를 불렀다.
갑작스러운 루카의 행동에 현이 놀라며 고개를 돌려 그를 보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관중들을 향해 팔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현란하게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 반짝이는 금발을 가진 그의 얼굴 위로 신온이 보였다.
현은 입을 꾹 다물며 마이크를 들고 있던 팔에 힘을 빼고 떨어트렸다. 더 이상의 승부는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차라리 자신이 아니라 신온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타앙,
날카로운 이명이 울리고 현의 몸이 힘없이 스테이지 바닥에 뒹굴었다.
스테이지 위로 흐트러진 푸른색 머리카락이 서서히 붉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루카는 자신이 승리했음에도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갔다.
루카가 노래를 끝냈을 때, 공중에서 깜빡거리는 전광판에는 새로운 점수가 새겨졌다.
[ F I N A L ] 현 VS 루카 32 68 |
압도적인 루카의 승리였다.
현은 점점 막혀오는 숨을 느끼며 곧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 죽기 전에는 마지막으로 주마등을 본다고 하던가.
흐릿해진 그녀의 눈앞에는 아낙트가든에서 다 같이 지내던 그 시절이 아른거렸다.
그늘진 나무 아래에 있던 루카, 한 가운데에 모여 악보를 들고 노래를 부르던 친구들, 기타를 치는 현아와 그 박자에 맞춰 해맑게 웃고 있는 현우와 신온.
“ 아... ”
현은 몸 안에서 서서히 빠져나가는 온기를 느끼며 흐릿하게 보이는 빛바랜 추억 속을 들여다보았다. 항상 웃고 있는 그 아이를 향해 손을 뻗어보다가, 가벼이 스러졌다.
툭, 힘없이 떨어진 그 팔이 그녀의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띵, 띵. 현의 목덜미에 채워져 있던 쵸커에 붉은빛이 반짝 들어왔다. 그것은 그녀의 죽음을 의미했고, 루카의 승리를 뜻했다.
루카 W I N |
스테이지 ROUND 6 백스테이지
‘이제야 마음을 자각했다고 하면 믿기지 않겠지.’
분홍빛 눈동자가 집요하게 푸른색의 머리카락을 쫓아갔다.
바라는 게 있다는 듯 끈질기게 달라붙는 그 시선은 단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이담이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긴장감에 휩싸인 현 몰래 머리카락 끝에 입을 맞췄다.
‘ 부디 네가 살아남길 바라, 나의 사랑아. ’
이담은 우연치 않았지만, 이 무대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되레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테이지에 출전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현을 향한 마음이 짝사랑이라는 걸 자각했고, 지금은 자신의 죽음으로 현이 살 수 있다고 하니까.
자신의 마지막이 혼자가 아니어서, 현의 곁이어서 다행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둠이 가라앉은 무대 위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고, 반주가 시작되면서 무대가 시작됨을 알렸다. 이담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 마지막까지 잘 부탁해, 현아. ”
“ 뭐래. 무승부 해서 둘 다 살아남을 거야. ”
‘ 애석하게도 그게 안 될 거야. 나 대신 살아줘, 현아. ’
무대 위로 올라온 두 소녀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이담의 분홍빛 눈동자는 줄곧 푸른 머리카락과 회색 눈동자를 향해 있었다.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상대가 살아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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