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HL/드림/250301] 인간 혐오와 로봇

나비의 보관함 2025. 3. 5. 01:07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익숙하게 자리를 벗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먼지만 가득한 곳에서 그녀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30살을 맞이한 그녀의 성격은 어릴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절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인간 혐오로 인해 틀어박혀 사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사는 곳 주변의 인물들은 전부 그녀를 몰랐으니 그저 틀어박혀 절대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소문만 무성한 로봇공학자라는 인식뿐이었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잠에서 깨어나 씻기 위해 화장실을 갔다.


“하... ”


짧은 한숨, 그것이 지금 그녀의 상태를 알려주고 있었다.
전날 로봇을 살피던 탓에 밤샘 작업을 했고, 그로 인해 늦게 잠든 탓에 그녀는 상당히 피로한 상태였다. 어둡게 내려앉은 다크서클과 피로에 찌드는 건 당연했다.
유리는 가볍게 세수를 마친 뒤 세면대 위에 있는 칫솔을 잡았다.
치약을 짜내고 양치를 하던 중 무심코 본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피곤함에 찌들다 못해 낡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선명했다.
거울 속 자신과 눈을 마주친 뒤 얼굴을 세세하게 살폈다.


“... 아, 죽어야겠다. ”


유리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비친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모습은 이전처럼 주름 하나 없는 젊은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이를 먹고 주름이 생겨난 늙은 모습뿐이었다.
어딘가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도 아니었고, 멀쩡한 제정신으로 한 말이었다.
제정신으로 내뱉은 말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겠다는 말이었음에도 그녀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고, 오히려 무덤덤하고 건조했다.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퉤, 씁... ”


유리는 입안에 남아있는 치약을 뱉어내며 다시 거울을 보았다.
나이를 먹고 주름 진 자신의 얼굴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나이 30, 그녀는 이다자시 박사님을 뛰어넘은 인류 최고의 로봇공학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인간을 혐오했다.
그것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까지 부정하게 만들었다.
유리는 찬물로 세수하며 정신을 차렸다. 익숙하게 방으로 돌아와 실험 가운을 입고 나섰다. 남아있는 실험을 끝내고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점점 더 추악해지기 전에 하루빨리 죽을 생각이었다. 어째서인지 오늘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제 하다 못한 남은 자료를 보고 있을 때였다.


“유리 님? ”
“... 야, 너 이리 와봐. ”
“네? ”
“... ”
“그, 에... 유리 님... ”
“하... ”


유리가 의자에 앉은 채 어떻게 죽을지 생각하며 그저 빙글빙글 돌았다.
그때 지나가던 키보가 유리를 발견하고 그녀를 불렀다.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유리는 자신을 부르는 키보를 보다가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 손짓에 키보는 반문하면서도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유리가 키보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 당기며 자신의 코 앞에 두고서 빤히 보았다. 갑작스러운 유리의 행동에 당황한 키보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유리는 어떻게 죽을지 생각하고 있던 중 여전히 고등학생 때의 모습을 하고 있는 키보를 보며 더 큰 환멸을 느꼈다.
자신은 세월이 지날 때마다 늙어가는 인간임에 혐오감이 강하게 드러났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
“아, 그게 말이지... 갑자기 죽고 싶어졌어. ”
“예?! 그, 그게... 무슨... ”
“하... 키보, 넌 로봇이라서 좋겠네. ”
“유리 님... ”


유리가 점점 자신을 혐오하는 감정을 드러내고 있을 때, 지켜보던 키보는 그저 당황스러웠다.
인간을 혐오하고, 자기 자신이 인간임을 원망하던 그녀였지만, 이토록 강하게 드러내는 모습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키보의 눈에 유리의 주름 진 피부가 들어왔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유리가 힐끗 눈동자를 굴려 키보를 보았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히자, 키보가 크게 움찔거렸다. 마치 보면 안 될 것을 봐버린 어린아이 같은 반응이었다. 그 모습에 유리가 인상을 찡그리며 가라는 듯 손짓했다.
그 손짓에 키보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가라니까? ”
“유리 님, 그게... ”
“너도 이제 내가 늙어가는 인간이라서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거야? ”
“그런 게 아닙니다! ”


안 그래도 이른 아침부터 주름진 자신의 모습을 본 게 거슬렸던 유리였다.
그런데 고등학생일 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키보와 세월이 지나 주름이 나버린 자신의 모습이 비교되어 짜증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세월을 먹으면 늙고, 변해가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런데 키보까지 말을 듣지 않으니 그 짜증이 키보를 향했다. 결국 참다 참다 그녀의 혐오가 터지고, 결국엔 스스로 무너져 내리기까지 했다.
이미 무너져 내린 탓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아아, 네가 안 가면 내가 갈게! ”
“유리 님...!! ”


유리는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죄 없는 키보를 향해 짜증을 쏟아냈다.
떠나지 않는 그 대신 자신이 떠나겠다며 자리를 비켰다. 그녀가 떠나고, 실험실에 홀로 남겨진 키보만이 그녀의 빈 자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 유리는 자신이 결심했던 것을 이루기로 했다.
오늘의 자신은 터무니없이 감정적이었고, 그 모습은 자신이 혐오하던 인간의 것이었다. 유리는 이대로 가다간 자신이 정말 추악한 인간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 양치하던 그 시간에 했던 생각을 실행하기로 했다.


“내가 더 추악해지기 전에, 죽어야지. ”
“... 유리 님! 유리 님! ”
“하... 쟨 이럴 때만 타이밍이 좋지. ”


더 추악해지기 전에, 자신이 인간임을 스스로 더 인정해 버리기 전에.
이른 아침부터 지금까지 유리는 꾸준히 인간에 대한 고찰과 더불어 자신을 혐오했다. 살아있어 봤자 의미가 없다는 생각과 더 늙어버리기 전에 이만 숨을 멎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유리의 시선이 날카로운 날붙이로 향했다.
방으로 돌아오기 전, 부엌에서 몰래 가져온 식칼이었다. 
다음 생은 인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스스로의 끝을 맺으려고 할 때 문을 세차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는 키보의 것이었다.
타이밍 좋게 찾아온 키보의 등장에 유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유리 님! 당장 이 문 열어주세요!! ”
“무리야. 내가 더 추악해지기 전에... ”
“유리 님...!!! ”


유리의 시선이 잠시 입구를 향했다.
인간이란 정말 나약하고, 끝없이 이기적이며 다른 누군가를 갈구한다. 스스로의 인생을 끝맺음하려는 지금에서도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자신도 인간임이 분명했다. 그 사실이 미치도록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추악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주 간단한 결론 도출, 인간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심장과 뇌, 그리고 혈액. 다른 학자들은 심장과 뇌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적어도 자신은 혈액이라고 생각한다.
이유야 간단하지, 혈액이 없으면 심장과 뇌에 공급할 수 없을 테니. 곧 멈추겠지.


“그래도 로봇 공학을 할 수 있었던 건 좋았던 것 같네. ”
“... 유리 님!! ”


쾅, 유리가 식칼로 자신의 손목을 길게 세로로 죽 그어버리는 순간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밖에 있던 키보가 문을 거세게 걷어찬 탓이었다.
유리는 자신의 마지막조차 방해하는 키보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키보는 문을 열고 들어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에서 침대에 앉아 손목에서 흘러내리는 혈흔에 인상을 찡그리고 사색이 된 채 깨끗한 수건을 들어와 그녀의 앞으로 갔다.
키보가 유리의 손에 있는 식칼을 쳐내고 상처 위로 수건을 꾹 눌러 지혈했다.


“왜 막아서는 건데! 내가 이대로 끝을 내겠다는데! ”
“유리 님... 하지만 나는 당신을 놓을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키보, 난 인간인 내가 싫어, 미치도록 혐오스러워. ”
“압니다. 죄송합니다. ”
“그러니까... 말리지... 말란... 말, 이야... ”
“ 죄송합니다. ”


유리는 자신의 상처를 지혈하는 키보를 보며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좀처럼 벗어날 수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지만, 제대로 동맥을 긁어버린 것인지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아차렸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 키보를 향해 자신이 느끼고 있던 걸 모조리 쏟아냈다. 인간을 혐오한다는 것, 자신이 인간이라는 걸 원망하는 것까지도.
하지만 키보는 유리의 시선에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상처를 지혈하기 바빴다.
유리는 점점 감기는 눈과 힘이 빠지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키보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며 고꾸라졌다. 키보는 그런 유리를 안으며 계속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여기서 끝일 거라고 생각했던 유리는 지끈거리는 고통에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는 자신을 처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키보가 보였다. 애석하게도 마지막을 맞이하려고 했던 행동은 키보에 의해 구해지고 말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