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로저 해적단 내에서 떠도는 소문도 있었지만, 해적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이 문제였다. 소문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해적이라면 언제나 들어봤을 법한 유령선이었다.
다른 하나는 12척의 배를 이끄는 대해적에게만 찾아오는 초대장이었다.
어디서, 언제, 누가 주는 지 따위는 알지 못했지만, 초대된 자는 금은보화를 얻는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어느새 해적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졌다.
문제는 로저 해적단원들은 그 소문을 선장에게 들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의미했다.
“아, 맞아. 선장! 그 말 들었어? ”
“엉? ”
“엄청난 소문이 있던데! 선장도 모르는 게 있구나. ”
“뭐? 그걸 왜 나만 몰랐을까? ”
“하하! 선장도 모르는 게 있군! ”
“꼬맹아, 그러다 선장에게 혼나야 정신을 차리지. ”
로저 해적단원들이 소문을 막으려고 한 이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문을 쫓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선장이 명령을 내리면 말단을 포함한 단원들이 움직여야만 했다.
단원들이 다급하게 샹크스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로저의 날카로운 눈빛이 단원들에게로 향했다. 그 난장판 속에서 불릿가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불릿의 곁에 있던 이본이 그의 팔을 툭 치며 말렸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사이에 오로 잭슨 호로 낡은 배가 하나 다가왔다.
“어? ”
“어어? ”
“설마 저건... ”
“약탈이다!! 약탈조! ”
“예!! ”
시작은 즐거웠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오래가진 않았다.
보물이 있을 거라 생각해 보냈던 약탈 조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선장인 로저가 새로운 조를 보냈으나, 돌아오는 건 그들의 비명 소리뿐이었다.
상황이 심각하게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로저는 더 이상 선원을 잃을 수 없다며 마지막으로 선발 조를 뽑았다. 운명의 장난처럼 마지막으로 뽑힌 선발 조에 비전투원까지 뽑히고 말았다.
선발 조로 뽑힌 이본이 당황스러운 눈길로 로저를 보았다.
“자렉, 너도 엄연한 로저 해적단의 일원이다. ”
“하... 알아, 가야겠지. ”
“나도 뽑혔군. ”
“불릿까지? ”
뽑기의 결과에 따라 선발 조로 이본과 불릿가 가기로 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은 살아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며 건너편에 있는 배에 올랐다. 낡은 배로 올라온 두 사람이 본 건 끔찍한 참상이었다. 그저 낡은 배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는 듯, 갑판에는 여러 핏자국과 메마른 뼈다귀만이 즐비하고 있었다.
갑판 위에는 신기할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있었다.
분위기에 압도당한 이본이 움찔거리자, 뒤이어 승선한 불릿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는 이본의 곁에 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은 배에 승선하자마자 가장 먼저 선장실로 향했다.
“이봐, 이본. 여기는 아무래도... ”
“그래... 유령선인 것 같아. ”
“선장실이 있어야 할 위치에 엉뚱한 게 있군. ”
“주방인가? ”
선장실이 있을 법한 위치에는 뜬금없이 주방이 존재했다.
이본과 불릿는 주변을 둘러보며 가져갈 게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본이 식탁에 엎드려 있는 해골의 상태를 살피고 있을 때, 불릿는 주변을 뒤적거렸다.
주워 담을 만한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래된 배의 상태처럼 주방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낡게 부식된 상태였다. 불릿가 혀를 차며 이본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본은 여전히 해골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불릿는 먼지가 가득 쌓인 식탁을 보며 이본을 불렀다.
“여긴 더 이상 볼 것도 없겠어. ”
“꼬맹아, 선장실을 빨리 찾아보는 게 좋겠다. ”
“왜? ”
“이 배... 적어도 100년은 넘은 것 같아. 뼈조직이 그렇게 알려주고 있는데, 자세한 건 선장실에 있을 기록을 보는 게 좋을 듯해서. ”
“그래? 그러면 선장실을 빨리 찾는 게 좋겠군. ”
이본이 해골을 고이 내려두며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이동하는 걸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함께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배 안을 돌아다녔다. 눈앞에 보이는 문을 열어보며 이동했다.
그러다 한 문을 열었을 때, 하얀 기체 덩어리에 가까운 존재가 나타났다.
이본이 움찔거리자, 불릿가 먼저 나서서 그 방문을 닫아버렸다. 그 뒤로는 같은 행동의 반복이었다. 문을 열어보고, 그 안을 살펴보거나 다른 무언가가 있으면 닫아버리거나.
그렇게 조금씩 유령선의 내부를 파악해 나갔다.
“어? 저거 우리 단원 아니야? ”
“그렇군. 한심하게 여기에서 붙잡힌 건가. ”
“한심하다고 하지 마. 그들도 노력했겠지, 꼬맹아. ”
“하! 로저 해적단에 이딴 걸로 붙잡히는 놈들은 필요 없을 텐데. ”
“또 그런다. 일단 구하고 보자. ”
방문을 열자, 그 안에는 거미줄에 칭칭 감싸진 선발대를 발견했다.
그들을 보며 한심하다고 풀어줄 필요가 없다고 하는 불릿를 말리며 이본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순식간에 방문이 쾅 하고 닫혔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닫혀버린 탓에 불릿까지 당황하고 말았다.
불릿가 다급하게 문을 쾅쾅 두들겨 보고 문고리를 잡아 돌려보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불릿는 문이 열리지 않자, 급하게 이본의 이름을 불렀다.
방 안에서는 이본의 비명이 들려왔다.
“이본! 젠장, 이건 왜 안 열리는 거야! 이본!! ”
“끄, 끄아악!! 저... 저리 가!! ”
“이본! ”
5분 정도 흘렀을까, 문이 서서히 열렸다.
끼이이, 낡은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자마자 불릿가 안으로 들어갔다. 걱정이 가득 묻어나오는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방 안의 상황은 참담했지만, 불릿의 입장에서는 웃음만 나왔다.
구석에 내몰린 채 공병을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본과 거대한 몸짓을 뒤집고 죽어있는 대형 거미의 모습이 대충 무슨 상황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불릿의 등장에 이본이 헛기침을 하더니 머쓱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흠, 큼... 꼬맹아, 와서 도와. ”
“큽... 이본, 생각보다 전투원에 어울릴지도 모르겠는데. ”
“난 비전투원이야. ”
“으윽... 여긴... 자렉? 불릿? ”
“정신이 들었어? ”
“한심한 놈. ”
“익...! ... 우, 우와아악!! 이, 이걸 쓰러트렸어? 불릿이지? ”
“애석하게도 내가 아니라 이본이다. ”
“뭐? ”
이본과 불릿는 붙잡힌 선원을 풀어주면서 실랑이를 벌였다.
죽어버린 거미의 시체를 뒤쪽으로 밀어내고, 선원의 몸을 감싸고 있는 거미줄을 풀었다. 거미줄이 전부 풀리자 언제 기절했냐는 것처럼 선원이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있는 이본과 불릿의 모습에 반가워하던 것도 잠시였다.
시비를 걸어오는 불릿의 말투에 반격하려다가 구석에 널브러진 거미의 시체에 화들짝 놀랐다. 그는 당연하게도 불릿가 쓰러트린 것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불릿가 이본을 가리키며 자신이 아님을 인정했다.
“어떻게 된 거야? ”
“배에 올라오자마자 선장실을 들어갔는데, 여기였어. 문이 갑자기 닫혔고 거미가 나타나 물었거든. 베놈 타란튤라인 모양인데, 다행히도 기절만 하는 성분인가 봐. ”
“혹시 모르니까 일단 다른 선원들이랑 같이 선의에게 치료받도록 해. ”
“크로커스 그 양반이 치료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
“꼬맹아. ”
“흥. ”
불릿는 이본과 선원이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선원은 마지막으로 가기 전에 두 사람을 보며 한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방문을 열 때는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무거나 문을 열어버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과 옳은 문을 열어야지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이본과 불릿는 그 선원의 말을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곧 그의 말이 옳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더니, 가장 처음에 열었던 주방이 나왔다.
“... 불릿, 순서 기억해? ”
“아니. ”
“당당하긴... 내가 기억하니까 다행이지. ”
이본을 선두로 처음부터 방문을 열며 앞으로 나아갔다.
문득 앞서가던 이본은 의문이 들었다. 이 유령선은 어디에서 나타났으며 방금 자신이 구한 사람이 로저 해적단이었던가? 따위가 떠올랐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같은 질문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유조차 알지 못한 의문이 계속되자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들었다. 순간 소름이 쫙 돋아나면서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자신의 등 뒤에 있는 불릿도 자신이 알고 있는 그가 맞는가?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끝을 모르고 더해지는 의문과 의심에 긴장되기 시작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식은땀은 어느새 이마에도 흐르고 있었다.
“이본? ”
“... ”
“이본, 뭐해? 잘 가다가 왜 멈추는 거야? ”
“꼬맹아. 너 내가 아는 꼬맹이 맞지? ”
“그러면 다른 나도 있나? ”
이본은 잘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서 불릿에게 등을 보인 채 말했다.
발걸음을 멈춘 것으로 끝내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는 이본의 행동에 불릿가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본이 천천히 몸을 돌리며 불릿를 보았다.
불릿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던지는 이본의 모습에 덩달아 발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 사이에 기이하고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한순간의 정적,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한 불릿가 주먹을 쥐고 벽을 세게 쳤다. 그러자 와장창, 공간 자체가 금이 갔다.
불릿는 흔들흔들 열매를 먹은 사람도 아닌데도 공간이 일그러졌다.
후두둑, 깨졌던 공간이 떨어지자, 장소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악마의 열매 능력이 아니라 그저 이 공간만 깨진 것이었다. 불릿의 주먹에 화들짝 놀란 이본이 정신을 차렸다.
이본은 방금 자신이 한 생각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제 정신이 들었나? ”
“불릿... 난... ”
“괜찮아. 마지막 방이니 선장실이길 바라야지. ”
“응. ”
이본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짓자, 불릿가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마지막 방만 남겨둔 채 잠시 쉬기로 정했다. 많은 방을 둘러보면서 먼저 출발했던 선원들을 몇 구했다. 하지만 이본은 여전히 그들이 진짜 로저 해적단인지 의문이 들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허튼 생각을 떨쳐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의 동료들을 향한 의심이 끊임없이 생겨났고, 그 생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이본은 자신이 바다로 나온 이후부터 함께한 동료를 의심한다는 것에 자책했다.
쉬는 시간을 끝내고 마지막 남은 선장실 문을 열었다.
“... 로저! 이건 대체... ”
“난 아직... 당신을 넘어서지 못했는데...! ”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지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이어지지 않는 말을 각자 내뱉으며 허둥거렸다. 선장실이라고 생각한 방 안은 기습이라도 당한 듯 어지럽혀져 있었고, 쓰러진 선원들이 보였다.
그러다 이본이 먼저 정신을 차리며 선장으로 보이는 해골을 마주했다.
이미 백골이 되어버린 해골은 자신이 선장이라는 듯 트리코른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이본이 자세히 보자, 그것은 로저의 트리코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오로 잭슨 호의 선장실이었는데, 지금은 낡아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선장실이었다.
이본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주저앉은 채 어두워진 불릿를 발견했다.
“불릿! 정신 차려, 이건 환상이야! ”
“아니야... 난 아직...! ”
“이봐, 꼬맹이! ”
이본이 곁에서 불릿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주었다.
얼마나 불렀을까, 이본의 목에서 쉬어버린 듯한 목소리와 함께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불릿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이본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좁아졌던 시야가 넓어지고,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오로 잭슨 호의 선장실이 아니라 다른 배의 선장실이라는 것과 백골의 주인이 로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본을 보는 불릿의 시선이 흔들렸다.
두 사람은 이렇다 할 물건을 챙기지 않고, 그대로 오로 잭슨 호에 돌아가기로 했다.
“지금, 이 상황을 선장에게 알려줘야겠어. ”
“그래야지. ”
유령선 내부를 빠져나와 갑판에 섰지만, 오로 잭슨 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있어야 할 오로 잭슨 호가 보이지 않자, 당황한 두 사람은 갑판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선장과 선원들을 불렀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그들은 답을 주지 않았다.
오로 잭슨 호가 있어야 할 위치의 반대편에는 잠수정으로 보이는 배가 있었다. 그 배를 발견한 이본은 당황스러웠다. 잠수정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배는 이 시대에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잠수정을 보며 멍하니 있을 때, 그들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
거친 함성과 나무로 된 통잔이 부딪치는 소리, 축포를 쏘듯 총을 쏘아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본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반대편 갑판으로 향했다.
“오! 이봐, 자렉! 이만큼이나 들고나오다니 대단하잖아! ”
“모두를 구했다고 들었어! 빨리 내려와서 축하의 잔을 나누자고! ”
“... 코즈키? 선벨...? 스코퍼? ”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냐? ”
“자렉 씨!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고요! ”
이본은 자신의 뒤죽박죽 한 머릿속에 혼란스러웠다.
그들을 마주한 순간 오랜만에 마주 보는 그리운 이들이라는 생각과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리워? 대체 무엇이? 그들이 저토록 자신을 반겨주는데 왜 그립다고 생각하는 거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흉터가 더 늘어난 불릿의 모습이 보였다.
이본이 갑판을 붙잡고서 불릿를 보며 말했다.
“... 꼬맹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이만 이쪽으로 돌아와, 이본. ”
“불릿. ”
이본이 설명을 요구했지만, 불릿는 그저 손을 내밀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별다른 설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이본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앞에는 꿋꿋이 서 있는 불릿, 뒤에는 자신을 오라고 부르는 옛 선원들.
‘옛’, 그래. ‘옛’이었다. ‘옛’이었나? ‘지금’이 아니라?
그럼, 지금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오로 잭슨 호에서 자신을 부르는 이들은 대체 누구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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