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는 쉬는 시간, 웅성거리는 학생들 사이로 마지막 분단 끝자리에 앉아 있는 태정이 창문을 향해 턱을 괴면서 시선만큼은 앞자리에 앉은 남학생을 보았다.
평균 남학생에 비해 작고 왜소해 보이는 어깨를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태정의 눈빛은 같은 반 동급생 친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앞자리에 앉은 성운에게로 다가가던 아름이 하필이면 그 시선을 보고 말았다.
아름은 입술을 짓이겨 물다가 성운에게 다가갔다.
“ 성운아! 우리 오늘 마치고 데이트나 할까? ”
“ 그러던가. ”
“ 흐흥~ 있지, 홍대 거리에 새로운 화장품 가게가 생겼다는데... ”
“ ... ”
태정은 자신을 향해 노골적으로 경계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 아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짧게 한숨을 쉬고 다시 고개를 돌리는 사이 창밖에서 일어난 실랑이를 보았다. 일방적으로 한 남학생이 여학생을 덮치고 있었다. 태정은 벌건 대낮에 학교에서 저래도 되는 거냐며 혀를 찼지만, 이내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그들이 사랑 놀음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태정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그 순간 남학생을 덮쳐 목덜미를 뜯어먹던 여학생이 고개를 올리면서 둘의 시선이 부딪혔다.
태정은 여학생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흠칫 몸을 떨었다. 흰자위가 빨갛게 물든 채 쩍쩍 갈라지던 피부, 입가에 흥건한 핏자국. 그건 결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복도가 떠나가라 울리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꺄아아악!!! ”
“ 뭐, 뭐야?! ”
“ 야!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저래? ”
“ 미친... 설마 물어뜯은 거야? ”
평화롭던 상황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과 교실 가득 퍼지는 혈향이 학생들의 긴장감을 바짝 조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학생들은 전부 어쩔 줄 몰라서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는 사이에 가해 학생이 다른 학생을 물어뜯었다.
상황은 급박하게 변했고, 태정은 살아남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가 교실 문부터 닫았다. 문을 걸어 잠글 수가 없어서 의자로 열지 못하게 고정시켰다.
태정이 뒷문을 잠그고 앞문으로 다가갔다.
“ 크아아악!! ”
“ 윽...! 미친, 저리... 꺼져!! ”
“ 미친... 방금 뭐야?! ”
“ 야! 너네도 빨리 움직여!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뒷문 붙잡아! 너넨 앞문 붙잡고! ”
“ 으응...! ”
태정이 앞문을 닫으려는 순간 남학생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태정은 그 남학생이 아까 가장 먼저 복도에서 물어뜯긴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문 하나를 두고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발로 남학생의 복부를 걷어찼다.
남학생이 보기 좋게 뒤로 넘어가 바둥거릴 때, 태정이 급하게 문을 닫았다.
뒷문처럼 의자로 고정시킨 뒤 반에 남아있던 학생들에게 익숙하다는 듯 명령을 내렸다. 태정의 명령에 학생들이 얼떨떨해 하면서도 움직였다.
반에 남아있던 10명 남짓한 학생들이 숨을 죽였다.
“ 크르륵... 크아악!! ”
“ 꺄아악!! ”
“ 아악!! 사, 살려줘!! ”
“ 이, 이게 무슨 일이야...? ”
“ 후... ”
“ 이제 조용한데, 밖에 나가봐야 하지 않아? ”
“ 야, 뒤지고 싶으면 너 혼자 뒤져. 난 살아야겠으니까. ”
“ ... ”
교실 밖에서는 한참 앓는 신음과 비명소리가 낭자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밖의 상황이 끝나길 기다렸다. 어느새 조용해진 복도에 한 여학생이 나가봐야 하지 않냐고 물어봤고,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태정이 답했다.
태정은 예상이라도 한 것인지, 쾅 소리와 함께 교실 문 유리에 붉은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
큰 소리에 모두가 화들짝 놀라고, 어떤 여학생은 비명을 질렀다.
태정이 다급하게 달려가 비명을 지르던 여학생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의 눈동자가 힐끔, 복도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잇따라 복도로 향했다. 그 순간 덜컹덜컹, 문을 열려고 하는 건지 거센소리가 들려왔다.
숨 막히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 후... 이제 조용히 말해. 알겠냐? ”
“ 으응... ”
“ 태정아, 네 덕에 살았다. ”
“ 알면 잘해. ”
“ ... ”
아름은 몇몇 학생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태정을 추켜세우는 꼴이 못마땅했다.
저 정도라면 자신의 남자 친구인 성운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름의 시선이 성운에게로 향했다. 성운 역시 놀란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상태였다.
모두가 지금의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성운이 멍하니 창가를 보았다.
그의 행동에 불안해진 다른 학생들이 일제히 성운을 탓하며 그만두라고 말했다. 모두가 그러는 사이에 태정은 성운을 떨리는 눈동자로 보았다.
그때 성운이 천천히 팔을 올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 저거... 원래 가능한 건가? ”
“ 뭐가... 꺄아아악!!! ”
“ 미친! 저거 뭐야?! ”
“ 엄마...!! 흐윽, 흐엉... ”
성운의 손끝이 향하는 곳으로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는 창가에 머리를 반쯤 내밀고, 붉게 충혈된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교실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과 마주치자, 눈이 반달처럼 휘어졌다.
반달처럼 휘어지는 눈에 모두가 동시에 움찔거렸다.
압박감이 심한 존재의 등장에 모두의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그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한 여학생이 입을 열었다. 고개를 살짝 움직이자 붉은 눈동자가 그녀에게로 향했다.
여학생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눈동자가 돌아가자, 다시 입을 열었다.
“ 저거... 지금 교실 안에 몇 명이 있는지 세어본 것 같은데. ”
“ 미쳤냐? 저게? ”
“ 하지만 방금 눈동자가 한 바퀴 다 돌고 나니까 웃었어. ”
“ ... 상태 보니까 아까 복도에 있던 녀석 중 하나인 거 같은데. ”
“ 나 이거 알아. 이거... 좀비라고 불리는 거야. ”
“ 뭐? 좀비? 그 영화에서나 보던 거? ”
“ 어. 죽었는데 살아 움직이는 거. ”
“ 개소리도 작작 해라, 진짜. ”
“ 개소리는 니가 하고 있는 거고, 병신아. 보면 모르냐? 넌 머리 뜯겨도 살아남을 자신 있나 보지? ”
“ ... ”
“ 그,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잠깐 그러는 거라던가... ”
“ 야, 미친년아. 니 눈깔엔 저게 잠깐 저러고 말 것 같아? ”
그녀는 평소 남자 아이돌 덕질하는 걸로 유명한 원균이었다.
처음에는 반 친구들도 원균의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태정의 말과 아름의 말에 반박하는 그녀의 말에 반 친구들이 단체로 입을 다물었다.
사람이란 자고로 머리, 즉 뇌에 조금만 충격을 줘도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다.
그런데 창문에 붙어있는 저 존재는 머리가 반쯤 날아간 상태였다. 짧은 찰나의 시간에 어떻게 저런 부상을 당하냐도 문제였지만, 원균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게 교실 안에 있는 학생의 숫자를 세어본 게 맞을지도 몰랐다.
붉은 눈동자가 데굴 굴러가더니 어디론가 향했다.
학생들이 안심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뒷문이 덜컹거렸다. 뒷문 가까이에 있던 학생들이 움찔거렸다. 어떤 학생은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려서 움직이지 못했고, 어떤 학생은 겁을 먹고 뒷문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 이, 일단 소리 죽이고 벽 쪽으로 붙어. 저게 확인 못 하도록. 이왕이면 책상을 세워두고 그 아래에 있으면 더 모를 거야. ”
“ 조용히 움직여야 해. 수빈아, 우리가 네 것까지 옮겨줄 테니까 거기서 문 잘 잡고 있어. ”
“ 으응... 빠, 빨리 해주라. ”
“ 다들 천천히, 신속하게 움직이자. ”
활동성 좋아 보이는 한 학생의 의견에 모두가 책상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하지만 언제나 운이 좋게 상황을 넘어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책상을 옮기던 아름이 무겁다며 투덜거리기만 하다가 힘이 빠져 책상을 놓쳐버리면서 우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큰 소리에 교실 안은 정적이 감돌았고, 모두의 시선이 아름에게로 향했다.
아름의 뒤에 있던 성운이 마른침을 삼켰다. 넘어진 아름은 울먹거리며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었다. 모두의 표정이 사색이 된 채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등 뒤로 불쾌한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 내, 내가 무겁다고 했잖아... 아무도 안 도와주고... 흐잉... ”
“ ... 미친... ”
“ 크아아악!!! ”
“ 꺄악!! ”
“ 으, 으아악!! 사, 살려줘! 살ㄹ... ”
창문과 바로 마주 보고 있던 성운조차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순간 커다란 괴음과 함께 뒷문이 미치도록 덜컹거렸다. 심하게 덜컹거리는 탓에 수빈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괴물들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뒷문에 가장 가깝게 있던 수빈이 그들의 좋은 먹이가 되어버렸다.
괴물의 등장에 아름이 사색이 되어 비명을 내질렀다. 으득, 으드득, 콰득. 괴물들이 달려들어 일제히 수빈의 몸을 뜯고, 창자를 꺼내 씹어 먹는 소리가 생경하게 들려왔다.
모두가 얼음이 되어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태정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성큼 성운에게 다가갔다. 그는 성운의 손을 붙잡고 앞문으로 향했다.
태정이 앞문을 고정해 두었던 의자를 내팽개치고 성운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 저, 저 미친놈!! ”
“ 원균아! 빨리 나가자...! ”
“ 제로야. 잘 따라와야 해. ”
“ 응...! ”
“ 가, 같이 가...! ”
태정의 행동에 가장 먼저 정신 차린 사람은 원균이었다.
그의 행동에 열을 받은 듯 버럭 화를 냈지만, 근처에 있던 제로가 원균을 붙잡으며 말렸다. 태정에 이어 원균이 제로의 손을 붙잡으며 교실을 벗어났다.
수빈을 물어뜯고 있던 괴물은 잇따라 다른 학생을 덮쳤다.
홀로 남겨진 아름이 그 모습에 덜컥 겁을 먹고 원균과 제로의 뒤를 따라갔다. 교실에 남아있던 10명 남짓의 학생들 중 살아남아 나간 사람은 고작 4명이었다.
원균과 제로는 주변을 살피며 먼저 나선 두 사람을 찾아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 젠장, 그 새끼 어디로 간 거야? ”
“ 워, 원균아... 우리... 버, 범이 찾으러 가자. 응? ”
“ 자... 잠시만 기다려! 나랑 같이 가! 응? 같이... 꺄아악! ”
“ 쯧, 저년이 도움이 될 때가 다 있네. ”
“ 원균아... ”
“ 그래, 일단 범이 찾으러 가자. ”
먼저 나갔던 태정과 성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원균이 혀를 걷어찼다.
다 같이 살아남아도 모자랄 판에 저들끼리 살겠다고 뛰쳐나간 게 못마땅해서 한 마디라고 해주려고 했는데, 찾지 못해서 아쉬웠다.
원균은 자신의 팔을 붙들고 겁에 질린 채 다른 친구를 찾는 제로를 다독였다.
뒤따라 나온 아름이 두 사람에게 친한 척하며 다가오려고 했다. 하지만 받아주기도 전에 아름의 뒤에서 나타난 괴물이 그녀를 덮쳤다.
그 모습을 본 원균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 ... 야, 비켜. 내 여자 친구 찾으러 가야 하니까. ”
“ 지금 밖에 상황 보면 모르냐? ”
“ 니가 갑자기 끌고 나오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챙길 수 있었어. ”
“ 진심이야? 내가 아니었으면 가장 먼저 물린 건 너였어. 근처에 있었으니까. ”
“ ... ”
성운은 태정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자신은 괴물들에게 당하던 수빈과 거리가 가장 가까웠고, 태정이 아니었더라면 수빈에게 흥미가 떨어진 괴물들의 다음 타겟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반박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교내 끝자락에 있는 남자 화장실 안이었다. 한 칸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자 꽉 찰 정도로 좁은 남자 화장실.
퀴퀴한 냄새와 비릿한 혈향이 올라왔다.
성운이 입을 다물자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전혀 없었다. 바깥에 있는 괴물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바짝 몸을 붙이고 숨을 죽일 뿐이었다.
“ ... 조금 떨어져. ”
“ 그러다 들키면. ”
“ ... ”
성운은 묘하게 가까운 태정의 몸에 몸이 굳어버렸다.
심각할 정도로 두근거려오는 심장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여자 친구인 아름과 포옹할 때도 이렇게까지 두근거린 적이 없었다. 성운은 그저 방금 있었던 일에 놀란 심장이 아직까지 진정되지 않은 탓이라 스스로에게 둘러댔다.
성운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태정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키 차이가 있다 보니 태정의 시선이 성운의 정수리를 보고 있었다. 마른 성운의 몸이 자신의 품에 안겨있다니, 마음 같아선 이대로 꽉 끌어안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를 좋아한다고 해도 당장 바깥에 돌아다니는 괴물들의 먹이가 되고 싶진 않았다.
분명 여기서 끌어안으면 당황한 성운이 소리를 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 야, 들어봐. ”
“ 어, 어? ”
“ 옥상으로 올라가면 구조대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
그렇게 결정된 사항에 두 사람은 2층 화장실을 조용히 벗어나 옥상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옥상을 향하고 있을 때, 2층 화장실 반대편에 자리한 3반으로 온 원균과 제로는 교실 안에서 친구인 범이를 만났다.
세 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 뒤 안심하며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원균과 제로, 범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려던 순간,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엉망진창이 되고, 언제나 단정하던 머리카락까지 헝클어진 상태였다.
들어온 사람은 어두웠던 표정을 펴며 세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
“ 어? 여, 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
“ ... 뭐야, 저년이 왜 여기에 있어? ”
“ 제로야. 나랑 같이 다니자. 응? 나 아까는 진짜 서운했어. ”
“ 니가 서운하면 뭐 어쩔 건데? 니가 제로한테 서운해할 게 있냐? 제로가 너한테 서운해해야지. 안 그래? ”
“ ... 그만 건드려. 진짜 화낼 거야. ”
“ 하! 니가 화내봤자 뭐 얼마나 화낸다고? 야,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너 남미새잖아. 남자 새끼 하나 때문에 절친한 친구까지 버린 년이면ㅅ... 윽?! ”
“ 그러니까 내가 화낸다고 했잖아. ”
세 사람을 향해 다가오던 사람은 다름 아닌 아름이었다.
아름은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고, 다가오자마자 제로의 손을 붙잡으며 매달리다시피 말했다. 그런 그녀의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원균이 아름의 어깨를 밀어내며 제로와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서 묻어두었던 과거의 일까지 들먹이며 말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름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원균은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기분 나쁘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두 사람의 사이에서 제로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범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고개를 들어 올린 아름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가 이빨을 드러내자, 그르릉, 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름이 빠른 속도로 원균을 덮쳤고,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 워, 원균아...!! 미친년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야! 당장 안 떨어져? ”
“ ... 제로야. 도망쳐야 해. ”
“ 하지만 원균이가... ”
“ 한 번 물리면 좀비로 변해. 저건 못 살려. 옥상으로 가자. ”
“ 하하하! 그러게 내가 화낸다고 했잖아. 아까 교실에서도 너 되게 띠꺼웠어. 알아? ”
“ 쓰읍... 후우... 엿이나 먹어라, 썅년아. ”
“ 넌 정말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
원균이 공격당하자, 욱하고 화가 난 제로가 욕설을 퍼부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범이 제로의 팔을 붙잡고 당장이라도 두 사람에게 달려들려는 제로를 말렸다. 본 적 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제로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범이 다급하게 제로의 팔을 잡아끌며 교실을 벗어났다.
두 사람이 사라지든 말든 아름의 눈에는 원균만 들어왔다. 원균을 아래에 두고서 자신이 우세에 있다는 걸 안다는 웃음을 지으며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원균은 쓰라려 오는 목덜미에 인상을 찡그리며 아름을 향해 중지를 보여주었다.
웃고 있던 아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고, 그녀가 핑거 스냅을 하자 바깥에 있던 괴물들이 일제히 원균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름은 그 자리에 없었다는 듯 천천히 일어나며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 흐흥~ 그러면 이젠 남친을 찾으러 가볼까? ”
옥상, 평소에는 굳게 닫혀있어야 정상이지만 비상 상태인 지금은 열려있었다.
교실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범이 제로를 이끌고 옥상에 올라왔다. 옥상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두 사람이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많은 이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정적도 잠시, 다시 사람들은 저들끼리 웅성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 인파를 헤집고 나온 사람이 제로를 발견하고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가까이 오자마자 어깨를 붙잡고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 제로야, 아름이 못 봤어? 아까 같이 교실에 있었잖아! ”
“ ... ”
“ 아름이 못 봤냐니까? ”
“ 미친놈아! 니 여자 친구를 왜 나한테 찾아?! 네 여친 때문에... 원균이가... 원균이가... 흐엉... ”
“ 어, 어? ”
“ ... ”
제로에게 다가온 사람은 먼저 반을 나갔던 성운이었다.
성운의 뒤로 태정이 뒤따라왔지만,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태정은 범을 보며 가볍게 목례로 인사했고, 범 역시 마지못해 받아주며 목례로 답했다.
두 사람을 제쳐두고, 성운은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붓는 제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 말에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제로의 뒤로 닫혀있는 문이 덜컹거렸다. 문고리가 헛돌며 열리지 않았다.
웅성거리던 모두가 한순간에 조용해지며 문을 향해 바라보았다.
성운은 대체 누구길래 못 여는 건가 싶어서 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태정이 성운의 팔을 붙잡았고, 타이밍 좋게 헛돌던 문고리가 멈추었다.
그 대신 문 너머에서 성운에게 너무나도 익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기... 안에 성운이 있어요? ”
“ 어? 아름아, 너 아름이야? ”
“ 힉...!! ”
“ 성운이야? 자기야... 나 문 좀 열어줘, 응? ”
“ ...?? 아름아, 스스로 문도 못 여는 거야? ”
“ 야! 당장 그만둬!! 지금 뭐 하는 거야?! ”
“ 미쳤냐? 밖에 아름이가 밖에 있다잖아. 당장 문 열어줘야지. ”
“ 멍청이야? 뇌에 우동 사리밖에 안 들었어? 사람이면 당연히 문 열 수 있겠지!! ”
“ ... 그러네? 아름아, 네가 문 열고 들어와. ”
“ 성운아, 왜 그래... 나 아까 계단 타고 올라오다가 넘어져서 팔 다쳤어. 문 열 힘이 하나도 없어... 문 좀 열어줘, 응? ”
성운은 아름의 목소리에 의심도 하지 않고 열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성운의 손을 쳐낸 제로가 욕지거리를 날리며 말렸다. 당연한 사실을 논리로 말하자, 의문이 든 성운이 문 너머의 아름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름이 잔뜩 애교 섞인 하이톤 목소리로 앵앵대며 애원했다.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성운은 결국 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그때 또다시 제로가 성운의 손을 쳐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 하지 마! 밖에 있는 거 사람 아니야! 괴물이라고! ”
“ 뭐? 너야말로 미쳤냐? 아니면 뭐, 아름이가 내 여친이라고 질투라도 해? ”
“ 허... 기가 차서... 아름이 쟤 때문에 원균이가 죽었어!! 쟤 좀비라고!! ”
“ 개소리도 작작 해라, 진짜. ”
제로가 아무리 말려도 성운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앞을 막아서는 제로의 몸을 밀치고 문을 열었다. 범이 넘어진 제로를 일으켜주며 그녀와 함께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이 사라지던 모습을 태정이 지켜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태정은 성운의 손목을 붙잡고 확 잡아당겼다. 그 순간 어두웠던 실내에서 괴물이 확 들이닥치며 성운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성운은 눈앞에 보이는 붉은 눈의 괴물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그대로 굳어버렸다.
“ 어머, 자기야~ 어디 가? 여자 친구는 여기 있는데. ”
“ ... 아름아... ”
“ 응~ 성운아, 내가 곧 거기로 갈게~ ”
“ 미친년. 넌 여친이라는 년이 남친을 공격하냐? ”
“ 신경 꺼, 쓰레기야. ”
이번에도 성운은 태정이 아니었더라면 죽을 뻔한 목숨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좀비는 태정을 무시하고 두 사람의 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평화롭던 옥상이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태정은 사나운 눈빛으로 아름을 보았고, 아름도 질 생각이 없다는 듯 마주 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낀 성운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자신의 여자 친구인 아름이 자신을 공격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아까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신을 구해주는 태정이 신경 쓰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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