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어느새 짙게 가라앉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모닥불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 빛이 있다면 그곳에 모여드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소피아는 멍하니 모닥불을 바라보다가 힐끗 시선을 옮겨 옆자리에 앉아 있는 멜리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두덩이 위로 새겨진 상처에 절로 시선이 향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소피아가 멜리나를 보며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멜리나가 조용한 목소리로 소피아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 왜 그렇게 봐? ”
“ ... 멜리나, 날 떠나지 않을 거지? ”
“ ... ”
“ 떠나지 마, ”
“ 나에겐 사명이 있어, 널 떠나지 않을 거야. ”
차분하고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소피아의 불안이 풀려갔다.
입맛을 다시듯 벙긋거리던 입술 뒤로 떠나지 말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왔다. 소피아는 멜리나의 앞에서라면 체면 따위 중요하지 않았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진심이 멜리나에게 닿길 바랄 뿐이었다.
문제라면 소피아의 평소 행실이 어린아이 같은 탓에 멜리나가 그 진심을 전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소피아의 감정을 완전히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당장 눈앞의 사명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었기에 애써 묵인했다.
다른 누군가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주의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 좋아해, 멜리나. ”
“ ... 조금만 더 쉬다가 움직일까. ”
“ 응, 그러자. 멜리나, 만약... 사명이 끝나고 나서도 날 떠나지 마. ”
“ 그건... ”
멜리나는 소피아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소피아를 밀어내진 않았다. 적당히 받아주며 어르고 달래어주기도 했다.
멜리나의 말에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오랫동안 삼켜낸 것처럼 겨우 말을 꺼냈다.
소피아의 손이 아슬아슬, 멜리나에게 닿을 듯한 거리까지 왔으나, 결국 닿지 못하고 팔을 내렸다.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이 감정을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었기에.
무엇보다 멜리나를 붙잡을 용기가 없었다. 고작 말로 붙잡는 방법밖에...
“ 떠나지 않는다고 해줘. ”
“ 떠나지 않아. ”
소피아는 멜리나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한 표정을 짓고, 몸에 힘을 뺐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늘어지는 소피아의 모습을 보며 멜리나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은 분명 한심한 사람을 보는 듯했지만, 전체적인 표정에서는 불안정한 소피아를 걱정하고 있었다. 소피아가 그 표정을 보고서 다급히 고개를 돌려 모닥불을 보았다.
모닥불이 소피아의 심정처럼 타닥타닥 타고 있었다.
이 맹목의 끝이, 헌신의 끝이 어디까지 갈지 멜리나는 모르겠지. 하지만 소피아는 그 끝이 어디라고 하더라도 자신은 멜레나에게 맹목적이고 헌신적일 것이 분명했다.
소피아가 멜리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멜리나, 손을. ”
“ ...? ”
“ 좋아해, 정말로. 네가 날 떠난다고 해도 내가 널 따라갈 거야. ”
“ ... ”
소피아는 멜리나의 앞에서라면 바보가 되어도 좋았다.
소피아가 멜리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멜리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소피아의 손을 붙잡았다. 소피아가 맞잡은 손을 돌려 멜리나의 손등 위로 짧게 입을 맞췄다.
여행을 하다가 손등의 키스가 가진 의미를 들었다.
상대를 향한 구애와 헌신. 딱 자신에게 어울리는 뜻이 아닌가. 멜리나가 끝까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멜리나에게 구애할 것이고, 그녀를 위한 맹목적인 헌신할 것이다.
비록 세상이 멸망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 ... 다 쉬었으면 이만 일어날까. ”
“ 난 네 이야기가 듣고 싶어, 멜리나. ”
“ ... 내 이야기? ”
멜리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소피아에게 말했다.
하지만 소피아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모닥불을 보며 멜리나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했다. 소피아의 말에 멜리나가 움직이던 걸 멈추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멜리나의 시선이 모닥불에게로 향했다.
불티를 일으키며 타오르는 모닥불의 열기에 두 사람 사이에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건 멜리나였다. 소피아의 말대로 자신의 이야기하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멜리나의 이야기에 소피아가 귀를 기울이며 경청했다.
아직 두 사람의 휴식이 끝을 맺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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