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해 고정되었다. 투표를 진행하기에 앞서, 게임을 통해 누적된 상금 정산이 먼저 이루어졌다. 돼지 저금통 안으로 돈이 쌓일 때, 게임에서나 듣던 노래가 흘러나오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저금통으로 향했다.
시후는 저금통을 보던 시선을 돌려 남규를 보았다.
남규의 시선에는 돈을 향한 욕심이 가득 묻어나왔고, 그로 인해 그가 자신을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항상 의심스럽고, 경계해야 했지만, 문득 자신이 남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확하게 정해진 게 없었다.
시후는 속으로 남규를 의심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에는 친해지고 싶은 척 연기를 해야 할 때였다.
" 두 번째 게임에서 총 110명이 탈락하여 적립된 총상금은 201억, 남아 있는 참가자 255명의 1인당 상금은 7천 8백 8십 2만 3천 5백 3십 원입니다. "
" 아니, 뭐야? 1억도 아니고, 씨. 8천도 안 되네! "
" 110명이요? 진짜 그것밖에 안 죽었어요? "
1인당 상금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인간임을 버린 듯이 말했다.
시후는 자신도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고, 돈을 원하고 있긴 했지만, 인간임을 버리진 않았다. 적어도 저들처럼 게임에서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그것밖에 안 죽었냐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다 다음 게임을 위한 속행 투표가 진행되었다.
투표를 진행하는 도중, 시후에게 있어 용식의 인상이 확실해진 계기가 생겼다.
금자 할머니와 함께 항상 X에 투표 해오던 용식이 이번 투표에서 망설이다가 O에 투표를 한 것이었다. 부모의 애정을 배신한 사람. 그게 용식이었다. 이런 게임에까지 따라와 챙겨주는 어머니의 사랑을 배신한 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어리숙한 멍청함에 신물이 올라올 정도였다.
시후가 표정을 구기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영일과 시선이 부딪혔다. 얼마 안 가 영일이 사람들 사이로 나서 선동질하기 시작했고, 찬반론자들이 다투기 시작했다.
어린 영미가 집으로 가고 싶다며 울자, O에 있던 한 사내가 자신도 눈물로 반박하며 나섰다.
시후는 대체 영일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저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원하는 대로 판을 짜고 치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두려운 마음이 강하게 들 뿐이었다.
표는 극명하게 갈려 X116, O139로 게임을 속행하게 되었다.
" 이걸 지금 먹으라고 주는 거야? "
" 이거라도 주는 게 어디예요, 안 그래요? 남규 형. "
" 어? 글쎄다. 이걸론 뭐 먹고 힘내지도 못하겠네. "
" Alright? "
식사 시간이 다가와 관리자들이 참가자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누어주었다.
빵과 우유를 받아온 타노스가 불만을 토해내듯 툴툴거렸다. 타노스의 말에 가운데 낀 시후가 빵 봉지를 흔들어 보이며 힐끗 남규를 보았다. 포장지를 벗겨낸 뒤 빵을 물고 있던 남규가 뱉어내며 타노스를 따라 툴툴거렸다.
자리로 돌아간 세 사람의 곁으로 민수와 세미, 경수까지 와서 6명이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라고 해봤자 고작 빵과 우유뿐이라서 먹을만한 것도 없었지만, 적어도 시후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의식주 제공에 나갈 땐 상금까지 준다고 하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후는 남은 빵 한 조각을 입안에 털어 넣으며 손에 묻은 빵가루를 털어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정작 시후가 타노스나 민수, 경수, 세미와 가까이 지내고 있으면 묘하게 불편했다.
심장 근처가 은근히 지끈거리는 통증까지 느껴질 정도였지만,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건 고작 저딴 놈이 아니라 눈앞의 상금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고작 빵과 우유라고는 하지만 식사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시후는 잠깐 누워있는다는 게 그만 깜빡 졸고 말았다.
시후가 정신을 차렸을 땐 그의 주변에 항상 있던 이들 중 사고 치고 다니는 놈들만 사라지고 난 이후였다. 시후는 몸을 일으키며 옆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민수와 세미를 향해 물어보았다.
" 민수 형, 세미 누나. 다른 형들은요? "
" 지금 화장실 갔을걸? "
" 하... 이 형들이 진짜... "
" 왜? 화장실이 문제야? "
" 아뇨, 지금 보니까 명기도 없는데 화장실에서 싸움 날지도 모르잖아요. "
" ... 시후야, 나 뭐 좀 물어봐도 될까? "
" 네? 아, 네... 물어보세요. "
지끈거리는 두통에 이마를 짚고 일어난 시후가 물어본 질문은 타노스 일행이 어디 갔냐는 거였다.
자리에 앉아 있던 세미가 화장실 갔을 거라고 말하자, 시후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를 찾는 듯한 기색이었고, 살펴보던 게 끝나자 짧은 한숨과 함께 침대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보던 세미가 문제라도 있냐고 물어보자, 시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시후가 발걸음을 옮겨 화장실로 가려고 할 때 세미가 시후의 이름을 부르며 붙잡았다. 시후는 왜 이 누나가 자신을 붙잡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무시를 하기엔 일단 같은 팀이었다.
" 너처럼 착하고 좋은 애가 왜 남규같은 쓰레기랑 다니니? "
" 네? "
" 타노스는 모르겠는데, 널 보면 항상 남규랑 붙어있더라. "
" 아... 아마 밖에서부터 알던 사이고, 여기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밖에서부터 알던 사람들뿐이니까요. "
" 그래... 적어도 너는 '그걸' 하지 않을 앤데 왜 곁에 붙어 다니나 싶어서 물어봤어. "
" 아~ '그걸' 할 생각은 없어요. 저도 제 몸이 소중하거든요. "
세미가 시후를 붙잡은 이유는 왜 남규와 함께 다니냐는 물음을 위해서였다.
놀란 시후가 반문하자, 세미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며 가지고 있던 의문을 내뱉었다. 세미의 걱정이 느껴지자, 이런 상황 속에서도 타인을 걱정하고 챙기려는 세미가 무섭기 보다 존경스럽다고 느껴졌다.
대화를 끝낸 뒤 시후는 아까보다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화장실에 도착했다.
분명 친누나라는 사람이 있었다면, 세미처럼 다정하지 않았을까. 때론 무섭다가도 때론 걱정을 해주는. 이제 와 생각해 봤자 없던 누나가 생기진 않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에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타노스와 명기가 대치 중이었다.
세면대 앞에서 가만히 있던 명기에게 시비를 붙이는 타노스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를 불렀다.
" 수봉이 형!! "
" ... Hey! 지훈. 완전 잘 자던데? "
" 그래도 깨워주셔야죠! 그래야 밤에 잠이 오죠... "
" Sorry. "
타노스가 명기의 멱살을 붙잡고 한쪽으로 몰아세우고 있던 도중이었다.
타이밍 좋게 나타난 시후가 타노스의 시선을 분산시켰고, 뒤이어 들어온 영일 일행으로 인해 타노스가 멱살을 풀고 자리를 피했다. 남규와 경수가 차례대로 화장실을 나가고, 남겨진 시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힐끗, 영일을 보다가 다시 눈을 돌려 명기를 보았다.
명기가 신경 쓰이는 건 아무래도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 생각하며 명기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고 화장실을 나갔다. 씩씩거리며 나가는 타노스의 뒤를 따라가며 이름을 불렀다.
" 아, 수봉이 형~!! 같이 가요! 키만 멀대같이 커서 보폭 크시잖아요! "
" What?! 멀대? 멀대가 뭐야 "
" 형... 멀대 몰라요? "
" 남수! 멀대가 뭐야? "
" 남규요. 멀대는 그... 키가 큰 사람을 말하죠. "
멀대의 뜻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던 남규가 설명을 헤맸다.
그 모습에 큭큭 웃던 시후의 모습에 타노스가 시후에게 뜻이 뭐냐고 물었다. 하지만 시후는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야 멀대의 뜻은 키만 큰 멍청이라는 뜻이니까.
아마 타노스가 뜻을 알게 되는 날에는 시후가 쳐맞는 날이지 않을까.
시후는 머리를 굴려 생각해보기로 했다. 포크를 가진 사람, 관리자들의 방치, 싸움, 물갈이 하듯이 죽어나간 사람들. 관리자 측에서 참여자들끼리 싸우라고 등을 떠밀어 주었다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저 생각을 정리함과 동시에 남규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이대로 이곳에 두어도 괜찮은가, 남규를 막아줄 타노스라는 방파제는 사라진 상태이니 색다른 방파제가 있어야 하거나 혹은 그를 막아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신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하기엔 아직까지도 남규가 의심스러웠, 그럼에도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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