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HL/자컾/250308] 모닥불 앞, 진실된 마음

나비의 보관함 2025. 3. 11. 06:29

 

지월화는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 앞에 멍하니 있었다.

힐끗, 옆자리에 누워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는 진강지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났던 상황을 떠올렸다.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위해 집을 나왔던 자신과는 다른 그녀였다.

자신의 부모를 찾기 위해 3만 리로 마다하고서 세상으로 뛰쳐나온 그녀가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과 다르게 양민인 그녀가, 순진무구한 그녀가 마땅찮았다.

시간이 지나 어느새 그녀의 곁이 아니라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까워졌다.

 

 

속 편히 자는군. ”

음냐... ”

 

 

푸른 머리카락이 바람에 산들거리며 흐트러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지월화는 자신이 그녀와 함께하며 뭘 하고 싶은 건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이기적이고 뻔뻔한 자신을 끝없이 받아들여 준 상대는 진강지, 그녀가 처음이었다.

어디까지나 친절하게 대해준 상대는 많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이 아닌 뒷배경 때문이었다.

지월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 준 건 진강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선뜻 나설 수 있었던 것 같다.

지월화의 손길이 잠들어 있는 진강지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못났군. ”

으응... ”

 

 

지월화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답이라도 하는 듯 진강지가 잠결에 웅얼거렸다.

그 순간 진강지의 앞머리를 쓸던 지월화의 손길이 움찔거리더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지월화는 무릎에 자신의 머리를 기댄 채 진강지를 보았다.

곱게 잠든 그녀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생각보다 흔한 소설처럼 가벼웠다.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지월화는 거리의 불량배들에게 붙잡혔고, 안하무인이었던 그는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장신구며 옷과 얼굴이 멀끔한 부잣집 자식인 걸 티 내고 있던 그는 불량배들의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그들을 상대하는 법조차 몰랐던 지월화였다.

객잔의 길목에서 지월화보다 큰 불량배들에게 겁탈당할 뻔한 것이었다.

 

 

어이, 이봐! 당신네들보다 작은 사내를 건드는 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

? 누구... , ... 저 녀석은... ”

누구지? ”

... 우린 아직 아무것도 안 빼앗았어! ”

거기, 사내. 괜찮아? ”

너는 누구지? ”

 

 

지월화를 겁탈하려던 불량배들은 진강지의 등장에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재밌다는 듯 느끼면서도 자신을 구해준 진강지에게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대뜸 경계를 세우며 누구냐고 물었다.

그의 뻔뻔한 물음에도 진강지는 밝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그곳이 처음이었고, 어쩌다 보니 함께하게 되면서 지월화가 진강지의 모험에 합류하게 되었다. 지월화는 진강지의 목적을 처음 들었을 때 어이없어했다.

자신은 버티지 못해서 집안을 뛰쳐나왔지만, 그녀는 부모를 찾고 있었다.

 

 

“ ... 부모라고 다 좋은 건 아닐 텐데. ”

알아. 하지만 나는 적어도 내 부모님을, 나를 낳아주신 분들을 만나고 싶을 뿐이야. ”

그 끝이 좋지 않다고 해도? ”

, 좋지 않다고 해도. ”

 

 

언제나 이기적이고 뻔뻔하며 도도하던 사람, 그것이 지월화였다.

본래라면 진강지의 목적을 듣기도 전에 제 갈 길을 갔을 테지만, 문득 그녀의 끝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따라나선 것이었다. 달리 큰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월화는 자신이 수발 받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었다.

모험을 하면서 이래저래 힘든 상황도 많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명령을 내리는 지월화나 그걸 큰 불만 없이 받아주는 진강지의 모험은 순탄치 않았다. 그러다 진강지에게 뭐든 잘해주는 사내가 나타났을 땐 지월화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고난의 길이었다.

지월화는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부채를 펴 하관을 가렸다.

 

 

강지 낭자, 여기 약과 좀 먹어보세요. 아주 참 달답니다. ”

? 꿀 약과잖아? 이거 엄청 비싸! ”

하하, 강지 낭자에게 이정도 못 해줘서야 되겠습니까. ”

“ ... ”

 

 

상대의 명백한 도발, 그것이 지월화의 마음을 불 지폈다.

본래라면 지월화에게 있어 진강지는 그저 호기심 덩어리인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웬 벌레 하나가 그녀의 곁에서 알짱거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심기가 불편해졌다.

같이 지내본 결과 진강지는 능력이 좋았고, 누구에게나 다정했다.

그로 인해 감히 낮은 것들이 좋은 것을 탐하듯, 그녀와 어떻게든 엮여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지월화는 짧게 혀를 걷어찼다.

야심한 밤, 지월화는 이대로 진강지를 더러운 벌레들에게 빼앗길 순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해주는 것을 진강지는 고마워해야 했다. 지월화는 그리 생각하며 늦은 밤 진강지를 불러 다른 이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했다. 그녀가 얼마나 우수하냐면 한 마을에 들렀더니 그곳에서 있었던 문제를 다른 이의 도움 없이 해결했다.

그 탓인지 마을에서 알아주는 미인이라 불리는 놈이 진강지를 꼬시는 게 아닌가.

 

 

! 천하제일 미인 나를 두고서 감히. ”

지월화? ”

... 왔나, 진강지. ”

무슨 일이야? ”

“ ... 그대와 시간을 보내볼까 해서. ”

, 마을에 온 이후로는 바빠서 함께할 시간이 없었지? ”

잘 아는군. 알면 이제부터라도 날 챙기도록 해. ”

 

 

지월화는 평소처럼 진강지와 대화하면서 아까 전 몰래 엿들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마을 이장과 마을에서 알아주는 미인이라고 하던 놈이 하던 그 대화 말이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빛을 노리던 두 벌레들의 이야기. 그것은 이장이 진강지의 술에 약을 탈 테니, 그녀가 잠든 사이에 잠자리를 가지라는 이야기였다. 그저 단순한 우연이었다.

무엇보다 지월화가 먼저 그곳에 있었고, 두 사람이 나타나서는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원래라면 그 대화를 듣고도 반응이 없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신경 쓰였다. 그럴 린 없겠지만, 만약 잠자리를 가진 것으로 진강지가 더 이상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그러니 지금 이건 단순히 자신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월화, 무슨 생각해? ”

“ ... 네 미래. 과연 너는 부모를 만나면 어떻게 할지 궁금하군. ”

... 솔직히 나도 두렵긴 해. 만약 만난 부모가 상황이 어려워서 날 외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도 하거든. ”

“ ... 너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

뭐야, 나도 사람이거든? ”

 

 

생각에 잠겨있던 지월화는 자신을 부르는 진강지의 말에 애써 말을 돌렸다.

하하, 진강지가 웃는 말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어둠이 다가왔다. 언제나 해맑게 웃으며 미소만 머금고 있던 그 얼굴 아래에 깊게 자리 잡은 어둠이 존재했다.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모를 것 같은 얼굴이 두려움을 안다고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지월화의 내면 속 진강지는 언제나 해맑고, 용기 있으며 작은 덩치에 비해 상당히 강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진실된 마음속으로는 아직 여린 아이일 뿐이었다.

그날부터였을 거다, 지월화가 진강지를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지월화, 아침이야. 일어나. ”

... ”

이제 슬슬 가야지. ”

어느새 아침인 건가... ”

 

 

화려한 복장, 단정한 머리, 도도한 표정. 그것이 지월화였다.

그는 문득 진강지와 만나게 되면서 어느새 노숙은 익숙한 듯 행동하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뒤늦게 발견한 자신의 모습에 그저 코웃음만 나왔다.

아직 그녀를 향한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그녀가 끝을 향할 때에도 자신은 그 곁에 있을 것이라고. 그녀의 끝에도 자신이 곁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진강지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밤새 곁을 밝혀주던 모닥불은 어느새 꺼져선 잿빛 연기만 뿜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험이 다시 시작되는 것을 알렸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