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자신을 지칭하는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이미 한 번 몰락해 버린 L 사, 그것은 자신이 다니던 회사였다. 에너지 기업이었으나, 연기 전쟁으로 인해 몰락한 후 또 다른 에너지 기업인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으로 L 사가 자리를 차지했다.
자신은 교전 세력 중 그 어느 편도 아니었기에 애매했지만, 종전이 된 이후 카르멘의 권유로 L 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기억의 편린 속에서 잊혀질만 하면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 그것은 삶의 구석구석까지 퍼져서 한 사람을 좀먹기 시작했다. 이름조차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출신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자의 말로.
건조하다 못해 말라비틀어져 버린, 그런 인생.
< 이것 봐, [ □□□ ]. >
당신이 나를 불러도 나는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어째서 그렇게 밝은 목소리로 나를 부를 수 있는 건지.
마치 강제로 지워져 버린 것처럼 기억나는 것 하나 없다. 잠들어야지만 겨우 만날 수 있는 상대, 이름조차 알지 못하고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들.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잘 짜여진 거미줄처럼 얽혀오는 관계.
아아, 이다지도 무미건조해질 수 있는 건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던 연구원들. 그곳에 내 자리가 있던가.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단을 벌하는 이단 심문관처럼 징계를 내리던 나날들, 열정이 넘쳐나다 못해 과할 정도였던 일상, 두 번의 회사 몰락.
구 L 사도, 로보토미 코퍼레이션도, 그곳에서 일했던 기억만 있는 자신이 뒷골목 생활을 전전하는 것도.
망해가던 회사들을 볼 때마다 환상처럼 퍼지던 그 곱고 아름답던 깃털을 잊지 못한다. 깃털이 보일 때면 언제나 회사가 가라앉았다. 무겁게, 무겁게. 절대 가볍지 않다던 생명은 바람 앞에 흔들리는 약한 촛불과도 같았다.
< [ □□□ ]!! 자, 자료는 두고 빨리 도망부터... 아악!! >
< ... 여기 있었구나, [ □□□ ]! 일단 이것부터 챙겨. 이건... 끄아악! >
뒷골목에서 편히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 잠들기만 하면 보이는 그리움을 안겨주는 존재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나 홀로 살아남아 당신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나를 부디 용서하지 말아요. 수뇌부도 아니고 고작 ■■팀일 뿐인 저를 생각해 이리저리 도망치고, 살아남을 기회를 주었던 당신들을 기억하지 못해요.
그토록 찬란하게 빛을 내고 영원할 것만 같던 날개의 일부분이던 회사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지.
아아, 비극으로 이루어진 극이 있다면 부디 나의 인생을 참조하길 바라. 이보다 비극인 경우가 어디에 있겠는가. 멀리서 보아도 비극이었고, 가까이에서 봐도 비극일 뿐인 인생.
손끝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 문득 바라본 손끝에는 붉은 핏방울이 고여있다.
아, 젠장. 빌어먹을! 또다시 눈앞에 깃털이 일렁거린다. 또다. 또 이런 식이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과거, 그에 관련한 사건에 대한 악몽을 꾸면 언제나 속이 쓰린 채 잠에서 깨어난다.
그뿐만이 아니야,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눈앞에서 퍼지던 핏물, 쓰러지는 사람들.
" 하... "
그 때문일까, 과거와 관련된 꿈이라도 꾸는 날에는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피가 날 때까지 목을 세게 긁어댔다.
뒤늦게 피를 발견하면 그땐 또다시 깃털이 일렁거리고, 내 앞에서 수없이 무너져 내리던 생명의 불씨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마지막으로 남은 생명의 불씨는 이제 자신 뿐이거늘.
상처를 치료해도, 다시 꿈을 꾸는 날에는 똑같이 상처를 낼 텐데.
과거의 영광이라도 되는 듯이 긍정적이고 열정 넘치던 성격은 두 차례의 사건 이후로 점점 망가지기 시작했다. 무기력하게 변했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졌기에 나른해지고 움직임이 부쩍 줄어들었다.
날이 갈수록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관한 악몽을 꾸는 것이 얼마나 사람 망치기 좋은지,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
계속 반복되는 지독한 악몽이 마치 저에게 어떤 경고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지독하기 짝이 없는 악몽이 제게 경고를 해봤자,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이 먼저 들지만.
" ... 이젠 약도 별로 도움이... "
< [ □□□ ], 그 약 독하지 않아? >
" ...?! "
이젠 하다 하다 꿈뿐만이 아니라, 현실까지 침투하는 걸까.
높게 올려묶은 포니테일을 한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 당신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렇게까지 날 괴롭히는 이유가 뭐지? 나 혼자 살아남았다고 타박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그게 아니라면 이젠 약조차 먹지 말라고 하는 건가?
귓가에 아른거리는 환청을 무시하고 입안에 쓰디쓴 약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그거 알아? 그렇게 내게 속삭이고, 모습을 보여도 나는 당신들을 기억하지 못해. 악몽을 꿀 때마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기억이라면 필히 좋은 기억이 아니겠지.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기억을 찾지 않을 거야.
왜 그런 웃음을 보여? 정말로 내가 기억을 찾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봐?
< 괜찮다, [ □□□ ]. 너는 앞으로도 잘하고 있지 않느냐. >
" 뭘 알아... "
< 그리 걱정하지 마. 살아줘서... "
" 시끄러워... "
아, 또... 눈앞에 깃털이 아른거린다.
하필 모습을 자꾸 바꾸며 저를 위하는 소리를 해대는 환각이 어떤 이의 얼굴을 비추는 건지 보기 위해 시선을 줄 때, 깃털이 날리다니. 아른거리는 깃털 때문에 상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검은 머리카락의 여인, 푸른 머리카락의 남자, 갈색 단발의 여자, 보랏빛 머리카락의 사내.
그들은 전부 환각으로 나타나 환청으로 제게 죄가 없음을 알려주었다. 아니, 아니지. 이건 내 마음 편하라고 내 머릿속에서 제 입맛에 맞춰서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겠지.
언제나 긍정적이던 예전과는 달라, 지금은 너무 메마르고, 피폐해져 버렸어.
" ... 잘 거야. "
깃털 때문에 제대로 얼굴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상대를 내버려두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지금 있는 곳은 뒷골목에서 전전하다가 겨우 마련한 돈으로 첫날 숙박을 잡은 숙소였다.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서 깔끔하게 씻고, 그런 다음 일자리를 알아볼 거야.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전에 했을 법한 일들은 피해 가며 면접을 볼 생각이다.
사람들에게 정을 주는 것도 그만할 거야. 이미 망가져 버린 탓에 누구에게 정을 주는 게 가능할까, 하는 약한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아. 누구라도 좋으니 이 악몽을 끝내줄 사람을 찾고 있을 뿐.
나 스스로가 이 악몽과 깃털 속에서 도망치는 건 무리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악몽과 깃털 속에서 버티고 있을 뿐이야. 그거 이 버팀이 바람 부는 촛불의 일렁거림에 불과할지라도.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의 발악이라고 할지라도.
" ... 버티기만 하면... "
" 버티면... 끝이 날까. "
달싹이는 입안이 쓰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이 더욱 비참하고 외롭게 만든다.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는 깃털과 마치 제 꼴인마냥 보란 듯이 일렁거리는 촛불을 마주보기가 힘들다.
제발, 부디 누군가가 이 악몽을 끝내주기를.
아니면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내게 주기를. 그렇게 나는 또다시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몸을 담근다. 약기운에 취해 서서히 감기는 눈을 감으며 부디 악몽을 꾸지 않기를 바라며.
또다시 시작되는 악몽에 잠긴다.
어차피 일어나면 기억조차 하지 못할 꿈이지만.
< [ □□□ ]. 거기서 뭐 하고 있어? >
< 아... 조금 멍하게 있었습니다. >
< 저기서 카르멘이 불러, 얼른 가보자. >
< 예. >
멍하니 있는 소년의 모습에 다가온 한 소녀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뺨을 간지럽히는 듯 불어오는 산들바람 속에서 잠시 멍하니 있던 소년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소녀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누군가의 이름이 묵음 처리된 듯 깨지게 들려왔지만, 소년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들기 전까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던 소년은 꿈속에선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도, 사실은 잠들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먼저 돌아가는 소녀의 뒤를 따라 자신을 부른다는 사람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 좋은 바람이 소년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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