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 시선이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내에게로 향했다.
그는 곱게 감겨있는 실눈을 한 채 날카로운 도를 깔끔하게 정돈하고 있었다. 적당한 두께의 천으로 지문 하나 용납지 못한 듯 도신을 닦고 있었다.
연은 책으로 얼굴을 가린 채 힐끔힐끔 상대를 살폈다.
" 할 말이라도 있나? "
" 아, 아니요! 그러니까... 오늘 쉬는 날... 인가요? "
" 휴일이제. "
연의 시선을 알아차린 호시나가 도신을 닦아내던 걸 마무리하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연이 움찔거리더니 책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다 호시나를 보기 위해 책을 내리는 순간 그와 시선이 맞닿았다.
가상으로만 보던 모습이 아닌 현실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그의 모습에 연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호시나가 능글맞게 웃는 미소로 연을 보며 휴일이라 알려주었다. 도신을 정리한 뒤 몸을 일으키던 그는 그대로 연의 옆으로 와 앉으며 그녀를 보았다.
연은 자신의 곁에 앉는 호시나의 행동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언제나 그림을 통해 보기만 했던 그의 모습이 당장 코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코 끝을 스치는 알싸한 알코올 향이 심장을 간지럽히는 듯했다.
" 저, 저기... "
" 예? "
" 그게... 그러니까요... "
난생처음, 살아움직이는 남자가 눈앞에 있다는 게 당혹스럽기만 했다.
점점 다가오는 손길에 몸을 움츠리며 제대로 된 말조차 걸지 못했다. 이런 모습이 스스로가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겠는가.
남자를 곁에 둔 적이 없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제가 더듬는 목소리에 호시나, 그의 여유로운 표정이 오늘따라 얄밉게만 느껴졌다. 저는 가까이 오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리고 두근거리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서.
호시나의 은근히 따스한 손길이 뺨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 오늘은 휴일이니까 붙어있을 수 있겠네. "
" 저, 정말로요? "
" 참말이제. 못 믿겠는가? "
" 아니... 그건 아닌데요. "
오늘 휴일이라 붙어있을 수 있다는 말에 몸이 절로 움찔거렸다.
평소에는 괴수를 상대하느라고 제대로 대화조차 하지 못하고 출동하던 게 어제였는데, 갑자기 휴일이라니. 무슨 일이지?
궁금증이 얼굴에 드러난 건지 그가 말없이 내 표정을 살폈다.
" 그라고 보니... 니 시간 있는가? "
" 시간이요? 넘치는 게 시간이긴 한데요... "
" 그라믄 나랑 데이트 좀 해야 쓰것다. "
" 데, 데이트라구요?! "
" 내는 니랑 데이트를 허고 싶은디 "
내 표정을 읽긴 한 건지.
뜬금없는 데이트 요청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로 트립이 된 이후 줄곧 호시나의 집에서 지내기만 했다. 이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지낸다는 건 평범한 일상생활을 보내던 나에겐 지옥처럼 느껴졌으니까.
이런 지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네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데이트를 하고 싶다며 받아주지 않을까 봐서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꽤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내, 내가 투디 남자도 아니고 현실 남자를 보고서 귀엽다니? 흠... 하지만 그 상대가 호시나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지도.
" 자기, 괘안나? "
" 헉! 괘, 괜찮은데요... "
" 참말이가? 계속 불러도 답을 안 하드만. "
" 하하... 잠시 딴 생각을... "
" 설마... 연이, 니 차애캐인지 뭔지한담서 나루미 대장님 생각한 거 아이제? "
" 네? 아, 물론 차애캐보단 최애캐가 제일이죠. "
연은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호시나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었다.
최애캐가 호시나라는 걸 들키면 빼도 박도 못하게 수치사할 각이다. 젠장, 미친 거 아니야? 성덕이 된 것까지는 좋은데, 수치사 할 성덕이 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데!
점점 다가오는 호시나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귓가에는 뎅뎅 황금 종이 크게 울리는 착각까지 들었다.
이게 뭔데? 왜 귓가에 종소리까지 들리는 건데?
그 순간 쪽하고 짧은 소리가 들려왔다.
" ... 어? "
" 인나라, 근처에 모, 몽블랑 맛있는 집 있다드라. "
" ... 어어? "
" 퍼뜩 인나라. 자기. "
" 네에... "
짧게 닿았다가 떨어진 감촉, 귓가에 선명하고 아까보다 더 크게 들려오는 종소리.
이건 성덕을 넘어선 거 아닌가? 눈앞이 핑핑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자신이 한 행동에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리고 귀 끝을 붉게 물들이는 호시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뭔데. 호시나가 오늘따라 되게 귀엽게 느껴지네.
트립 되기 전 불렀던 그의 이름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빤히 호시나를 보았다. 큼큼, 마른 기침을 하던 호시나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답을 더듬다가 제게 내밀어진 손을 맞잡으며 일어났다.
" 거는 몽블랑 종류도 되게 다양하다카대. "
" 몽블랑 종류가요? 몽블랑이... 몽블랑 아닌가요... "
" 그래가 함 가볼라고. "
" 정말 오늘 쉬어도... 괜찮나요? "
" 하모.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줄끼라 걱정 안 해도 된다. 내는 내 자기나 지킬라고. "
" 윽... "
그가 가장 좋아하는 몽블랑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주변이 조금 어수선했지만, 내 시야에는 그의 밝은 표정만 들어왔다. 와, 눈앞에서 최애캐가 움직이고, 말하고, 웃어주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이어지는 그의 말이 끝나자, 순식간에 얼굴에 열기가 몰렸다.
확하고 뜨거워지는 게 혹시 지금 나 부끄럼을 타고 있는 건가? 가장 애정하는 최애캐가 나를 지켜준다고 하니 감격스러울 수밖에.
" 절... 지켜주려고요? "
" 하모. 내 자기는 내가 지켜야제. "
" ... 고마워요, 그러면 호시나는 제가 지켜줄게요. "
내 말이 끝나자, 호시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호시나가 이런 걸로 부끄럼을 타기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사이 호시나가 내 손에 깍지까지 끼며 붙잡았다.
몽블랑을 먹으러 가는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선명하게 들었다.
나와 호시나의 커진 심장 소리를.
" 신기허네, 몽블랑이. "
" 그러게요 ... 종류별로 있네요. "
몽블랑을 둘러볼 때도, 결제할 때도, 몽블랑을 사고 들고 와 집에서 나란히 앉아 먹는 순간까지도 손을 놓지 않았다.
이제까지 실제로 호시나를 대면한다는 것에 부끄럽고 어색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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