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HL/드림/250114] 복수의 대상

나비의 보관함 2025. 2. 28. 01:22


미즈노 카에,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꿈이라기엔 너무 지나치게 현실적이었고, 피부 위로 닿아오는 그의 손길도 생경했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이라고 하기엔 자신이 아는 그라면 절대 그럴 리 없는 모습에 너무 비이상적이기까지 했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적나라하게 느껴졌지만, 눈앞의 상황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눈앞에 나타난 미즈키가 잔뜩 찡그리고, 일그러진 얼굴로 다정한 손길을 내밀었다. 뺨에 닿아오는 손길은 한없이 차가워서 살아있긴 한 건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의 상황 때문에 긴장되어 손을 뻗지도 못했다.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듯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 미즈키 군? "

" 후후... 미즈노 양... 감히 저를 배신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습니까? "

" ... 무슨 소리예요? 전 배신한 적 없는데요? "

" 미즈노 양,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저한테 한 건 명백한 배신입니다. "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며 다가오는 미즈키의 모습에 미즈노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척하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미즈키가 점점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미즈노의 발걸음이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를 따르던 것도 자신이었고, 그를 배신한 것도 자신이었다. 

미즈키가 이리 흉흉한 시선으로 노려본다고 해서 억울함을 피력해 봤자 얻는 건 없었다.

어느새 미즈키의 발걸음이 미즈노의 코앞에서 멈추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미즈키의 흉흉한 시선은 원수를 바라보는 듯했고, 그 시선에 덜컥 겁을 먹은 미즈노의 표정은 사색이 되어갔다.

미즈키의 손이 미즈노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 후후... 절 배신하지 않았다고 할 겁니까? "

" ... 미, 즈키 군... "

" 미즈노 양, 당신이 저에게 한 게 명백한데. 지금조차도 거절하지 않는데 말이죠. "

" 우윽... 커, 헉...! "

 

 

부드럽게 뺨을 감싸오던 손길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 가냘프기 짝이 없는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미즈노의 얇은 목덜미는 운동으로 인해 투박하게 변한 미즈키의 손아귀에 잡힌 채 벗어나지도 못했다. 그저 조금씩 조금씩 조여오는 손길에 순응하며 애처롭게 미즈키의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숨이 부족해지자, 미즈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깜빡깜빡,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점점 감기려고 하는 시야 속에서 미즈키의 표정이 선명하게 박혀왔다. 배신으로 인해 분노로 물들어 일그러진 표정 속에 어딘가 슬퍼 보인다고 하면 대단한 착각일까.

숨이 막혀 이대로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공포가 미즈노의 몸을 휘감아왔다.

 

 

" 배신, 하셨잖아요. 그렇죠? 미즈노 양. "

" 허억... 헉... "

" ... 이젠 답도 주지 않을 건가요? "

 

 

정신이 아득해지고, 의식을 잃으려고 하던 타이밍에 미즈키의 손에 힘이 빠졌다.

그 순간에 숨이 훅하고 들어와 정신을 차린 미즈키는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숨을 잃을 뻔했다는 괴로움도 잠시, 미즈키의 손에 힘이 다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답조차 주지 않는 거냐며 인상을 찡그린 채 몰아붙이는 미즈키의 말에 미즈노는 답을 주지 못했다.

점점 조여오는 손아귀에 답을 할 수 있는 숨조차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정신만 유지할 정도로만 들어오는 숨이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즈키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미즈노의 발이 서서히 위로 떠올랐다.

발끝으로 겨우 바닥을 짚으며 바둥거렸다. 미즈노가 살기 위해 미즈키의 팔을 붙잡았지만, 미즈키는 미즈노를 놔줄 생각 따위 없어 보였다. 그녀가 배신을 인정한다면 모를까.

 

 

" 흐윽...! "

" 미즈노 양, 절 배신한 미즈노 양. 제가 당신을 살려둘 필요가 있을까요? "

" 으윽... "

 

 

미즈키는 여전히 흉흉한 기운을 뿜어대며 중얼거렸다.

마치 검은 그림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미즈노의 눈에는 그저 배신에 분노하고 있는 미즈키만 보였다. 당장에 자신의 숨을 거머쥐고, 삶을 외줄타기처럼 만드는 사내가 슬퍼 보인다는 건 착각으로 치부했다.

미즈키는 미즈노가 인정할 때까지 그녀의 숨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