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느리게 가는 시간이 지겨워지는 감각을 아는가?
드래곤 족의 특성상 한낱 인간의 수명보다 너무 길어서, 시간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직 어린 헤츨링에 불과했던 존재가 인간계로 나오는 건 가끔씩 있는 일이기도 했다. 어린 헤츨링은 자신이 정신을 차렸을 무렵부터 혼자였다.
그날도 어린 헤츨링이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고 잠시 마실을 위해 인간계로 왔었다.
어린 헤츨링이 갔던 나라에서 축제라도 열린 건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곳의 모두가 기쁨으로 흥분해 즐기고 있었다. 어린 헤츨링이라고는 해도 인간의 기준으로 보았을 땐 명백한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문제는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만난 축제에 호기심이 가득해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다가 사고가 생겼다.
" 아악!! 와씨, 아무리 축제라지만 이건 좋게 넘어갈 수 없는데? "
" ... "
" 존! 내 어깨 좀 봐! 완전히 빠졌어! "
" 쉣, 제이미! 네 어깨 탈골되었는데? 어이, 도련님. 이거 어쩔 거야? "
하필이면 지나가던 불량배와 부딪힌 그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물론 어리긴 해도 드래곤인 그를 난감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지만. 하지만 무관심한 표정으로 지루하다는 듯이 짧은 한숨을 쉬는 사람을 불량배들이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었다.
멀끔하니 잘생긴 외모에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는 그는 불량배들에게 좋은 타깃이 되었다.
어둑한 골목까지 끌려가 돈을 요구하는 불량배들 앞에서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축제로 정신이 없어 발견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나가던 이들 중에 몇몇은 그의 상황을 보고도 모른 채 넘어갔다.
급격히 흥미를 잃은 그가 불량배들을 죽이고 돌아갈까, 생각하던 찰나였다.
" 저기요! 아저씨들! 아까 다 봤거든요? 아저씨들이 먼저 부딪혔잖아요! "
" 뭐? 아, 아니... 라엘, 너였냐? "
" 으윽... 제이미, 일단 물러나자. 저 녀석, 잔소리가 너무 심해. "
" 하지만... "
" 그러면 넌 여기 있던가! 난 5시간이나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
그때 햇빛을 등지고서 골목 안으로 들어와 당당히 외치는 한 소녀가 나타났다.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머리카락과 그늘졌지만, 선명한 자줏빛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양손을 허리 위로 올리고 고개를 치켜든 채 저보다 큰 성인에게 당당히 외치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박혔다.
그녀의 등장으로 그를 어떻게 해보려던 불량배들이 하나같이 난감한 듯 혀를 내둘렀다.
그중 그에게 어깨가 빠졌다며 난잡하게 굴던 사내가 주춤 물러나면서 꽁지 빠지게 도망가기 시작했다. 남겨진 다른 사내 역시 당황하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려 급하게 도망쳤다.
두 사람이 멀리 가버리는 걸 지켜보던 소녀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다가왔다.
" 저기, 너 괜찮아? "
" ... "
" 아, 고마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이런 일 종종 있거든. "
" ... "
" 말할 줄 몰라? "
" 아... "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보는 도움에 그는 잠시 모든 걸 멈춘 상태였다.
말할 줄 모르냐며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에 그가 움찔거렸다. 그림자 진 모습만 보다가 빛을 받은 모습을 보니 묘한 간질거림이 느껴졌다. 한눈에 봐도 그녀가 천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중 집 안에 있는 서적에서 본 천사의 삽화와 매우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종종 마을로 찾아와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천사인 걸 알아차렸지만, 애써 모르는 척해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잠시 집에 다녀오면 죽어버리는 인간들보다 차라리 천사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그녀를 집으로 초대하던 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 너 이름은 알려주지 않을 거야? "
" ... 이름, 없는데. "
" 뭐? 음~ 으음... 알렉! 여긴 신성한 곳 같으니까, 알렉으로 하자. 어때? "
" 알렉... "
이름조차 없던 드래곤에게 이름을 붙여준 천사.
이사벨에게 이름을 받았던 순간부터 알렉은 그녀에게 사랑을 느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중앙 홀에서 구경하고 있을 때. 이사벨이 자신은 한 번도 이런 무대에서 춤을 춰본 적 없다고 말했다.
그 말에 알렉이 핑거 스냅을 했고, 그 순간 불이 확 밝혀지면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놀란 이사벨이 알렉을 보자, 어느새 알렉은 그녀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가 웃으며 알렉의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홀에서 둘만의 춤을 췄다.
두 사람 모두 춤에 대해서 무지했기에, 거의 아무렇게나 추는 수준이었지만 뭐든 좋았다.
" 엄청 재밌어! "
" 이사벨, 네가 즐겁다면... "
즐겁게 웃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서서히 밝은 안광이 생겨났다.
알렉을 바라보는 이사벨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이 순간, 자신만을 위해 무대를 만들어준 알렉에게 사랑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알렉에게 자신이 천사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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