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BL/드림/250129] 그의 마지막 일기장

나비의 보관함 2025. 3. 2. 02:17


처음, 다임에게 전달된 소식은 미처 인정할 수 없는 힘겨운 소식이었다.

이라크 전투로 파병을 나온 다임과 빌리 그리고 제이스. 그들은 이라크의 전쟁에서 각자 다른 시선으로 전투에 임했다. 그러던 중 다임에게 전달된 제이스의 사망 소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큰 충격을 주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게릴라 전투에서 빌리를 구한 제이스가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다임은 빌리가 자신에게 전달해 준 일기장을 보았다. 얼마나 오래된 건지를 알려주듯 일기장은 종이가 잔뜩 구겨지고, 해졌으며 표지에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피가 묻어 굳은 상태였다. 

다임은 떨리는 손으로 빌리가 건네주는 일기장을 받았다.

 

 

" 제이스 씨는... "

" ... 하, 하... 흡! "

 

 

다임은 자신의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고, 일기장을 볼 수록 숨이 가빠지는 걸 느꼈다.

미련하게 잔뜩 피가 묻어 굳어버린 일기장을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 갔다. 진정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아 숨이 턱 하니 막혀왔다. 안구 안쪽에서부터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점점 격해지는 감정에 반응하듯, 왈칵하고 눈물이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그저 좋은 동료, 후배,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죽었다고 하기엔 반응이 너무나도 격했다. 다임은 스스로도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알지 못했다. 호흡이 점점 빨라지면서 과호흡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빌리가 주변에 소리치며 의료원을 불렀다.

 

 

" 잠시 쉬고 계시면 됩니다. "

" ... "

" ... 일기는 안 읽어보십니까? "

" 신경 꺼. "

" ... "

 

 

빌리는 제이스의 소식에 멍한 상태인 다임을 보면서 비록 그가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이었지만, 걱정되어 물어보았다.

하지만 걱정에도 돌아오는 답은 그저 짜증일 뿐이었다. 빌리는 그에게 자신이 제이스의 일기장을 통해 읽었던 내용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의 일기장 안에는 제이스의 모든 감정이 들어가 있었다.

다임을 향한 애정과 그에 대한 두려움, 다임에게 감정을 들키게 될까 겁을 먹었던 모습까지.

결국 마지막까지 제이스의 감정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건 실례인 것 같다는 생각에 다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빌리의 시선이 다임에게로 향했다. 다임의 눈동자는 빌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 제이스, 그는 당신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

" ... 뭐? "

" 그 일기장에 말입니다. 제가 읽었습니다. 이에 대한 처분을 내리셔도 됩니다. 다만... 이래도 놔두기엔 그의 감정에 대한 실례인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제이스는 군대 규정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숨겼습니다. "

" ... "

" 그래서... "

" 그만. "

 

 

빌리는 계속 말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다임이 참다 못하고 그의 입을 막았다.

아차 싶었던 빌리가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다임과 눈이 마주쳤다. 다임은 빌리를 향해 날카롭게 보고 있었다. 감히 주제넘게 선을 넘지 말라는 시선이었다. 빌리는 다급하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다임은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일기장을 쥐고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거리를 두며 멀어지는 다임의 모습에 빌리는 그를 향한 동정을 느꼈다. 이리저리 파병을 다니며 전투를 임하는 군대 규정상 동성애는 허락되지 않는다. 하지만 제이스는 다임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감정을 숨기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곁에서 지켜본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에 그저 안타까웠다.

 

 

" ... 꺼져. "

" 하지만... "

" 안 꺼지면 내가 꺼지지. "

 

 

자신이 꺼지겠다며 발걸음을 옮긴 다임이 도착한 곳은 구석진 곳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그곳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다임은 등을 벽에 기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일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선뜻 그가 쓴 일기장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조용히 일기장의 표지만 건조한 손길로 만질 뿐이었다.

다임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일기장을 열어볼 용기가 생겼다. 첫 장을 읽으면서 문득 든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와 자신의 관계는 그저 동료, 선후배, 사상이 잘 맞는 사람일 뿐일 텐데.

 

' 이상하지, 그와 나는 그저 선후배일 뿐이고 사상이 맞는 그저 그런 사이일 뿐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힘든 이유가 뭘까. '

 

눈을 감으면 제이스의 올곧은 모습, 빌리에게 사제를 사주며 웃어주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상태가 이런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프간 파병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여서? 사상이 잘 맞는 사람이라서? 그저 후배여서? 그 무엇도 이유가 되지 못했다.

아프간 파병 때 친하게 지내던 자가 죽어도 이러지 않았다.

사상이 잘 맞는 사람은 드물긴 했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후배라서 그런 거라면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이유이니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제이스의... 아니, 생각도 하고 싶지 않군.

 

 

" ... 그런 거였나. "

 

 

일기장 속에는 제이스가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였다. 문법도, 필기체도 모두 제이스, 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다임은 일기장을 읽으며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과 의도치 않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일기장 안에서 제이스는 순수히 짝사랑을 하고 있는 소년이자 염병할 자유주의자였다.

그와 동시에 모든 걸 통제하고 싶어 하는 모습도 간간이 보이긴 했지만, 그 부분은 애써 덮어두기로 했다. 얼핏 느끼긴 했다. 제이스가 자신을 바라볼 때, 통제하려고 할 때마다 느껴졌던 희미한 애정을 당시에는 착각이라 여겼다.

군대 자체에서는 동성애가 금지되어 있으니까. 

그러니 어련히 알아서 포기하겠거니, 여기며 지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전투를 나갔다가 돌아온 건 일기장뿐이었다. 일기장만 돌아올 거였으면 차라리 고백이라도 해보지, 미련하게. 

미련하게 일기장만 이리 돌아오면 남아있는 사람은 뭐가 되냐는 말이다. 

일기장을 전부 읽어본 다임은 그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일기장을 끌어안았다. 벽에 기댄 채 그대로 힘없이 주르륵 주저앉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