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BL/1차cp/250108]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사이 4

나비의 보관함 2025. 2. 28. 00:56

 부제  :: 착각, 오해



여름 축제가 무사히 끝나고, 두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마루후지는 더 이상 자신의 패배감에서 도망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고, 에드는 그의 앞에서만큼은 솔직하게 행동하기로 약속했다. 모두에게는 비밀이었지만, 여름 축제 이후로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그걸 아는 사람은 오로지 두 사람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둘뿐이었다. 두 사람과 가까이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마루후지와 에드가 사귀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다만 그들도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기에 굳이 입에 담지 않을 뿐이었다.
 
 
" 타나카, 너는 저 두 사람이 사귈 거라고 생각이나 해봤냐? "
" 어. 난 했어. 왜냐하면 에드를 보는 마루후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거든. "
" 난 모르겠던데. "
" 그러니까 네가 여자 친구가 없는 거야. "
 
 
모두가 웃고 떠드는 자리에 마루후지가 등장하자,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그러다가 언제 조용해졌냐는 듯 각자 서로 할 일을 이어갔다. 마루후지는 여름 축제 이후로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이상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이런 식으로 시끄럽던 녀석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가 아닌 척하며 구는 거라던가.
에드와 있으면 다들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 무슨 일이야? "
" 아니, 내 착각일 지도... "
" 아, 료. 나 오늘은 학장님께서 부르셔서 다녀와야 해. "
" 월반하는 것 때문이지? "
 
 
마루후지는 자신의 기시감을 뒤로하고서 에드를 보았다. 
그의 기시감이 사실이라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 에드가 마루후지의 곁에 서자, 모두의 시선이 힐끔거리며 두 사람을 보았다. 에드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익숙한 것이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정작 마루후지는 달랐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마루후지뿐이었다.
오늘 하루, 에드가 곁에 없다는 걸 알게 된 마루후지는 남아있는 졸업 논문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졸업 논문이 담긴 노트북과 서류들을 챙기고 카페로 향했다. 카페를 들어서자, 향긋한 커피 향에 불안함이 사라졌다.
커피를 시키고 가져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 ... 에드?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던 하늘은 어느새 깜깜해졌다.
자료 정리를 끝낸 마루후지가 잠시 몸을 풀기 위해 목을 돌리려고 할 때 건물 밖에서 누군가와 지나가고 있는 에드의 모습을 보았다. 마루후지는 인상을 구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카페를 나왔다.
가을철이 물씬 다가온 듯 찬 바람이 목가를 스쳤다.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법이라고 해야 하나, 에드가 어떤 여자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는 여자를 향해 다정한 미소를 보이며 수줍어하고 있었다.
오해의 여지가 다분한 장면에 마루후지는 한참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은 채 서 있었다. 
 
 
" 저기... 괜찮으세요? "
" 아, 아닙니다. "
 
 
한참을 카페 앞에 서 있던 마루후지는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가 노트북과 서류를 정리해 집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카페 안으로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가을바람이 차가웠던 모양인지 뺨이 붉어진 에드가 팔을 문지르며 들어왔다.
에드는 짐을 챙기고 있는 마루후지의 곁으로 다가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걸었다.
하지만 마루후지는 에드의 목소리를 듣자, 방금 전 여자와 웃으며 걸어가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루후지가 아무런 답도 없자, 에드는 외투를 벗은 뒤 의자에 걸어둔 뒤 카운터로 향했다.
그 사이 마루후지가 짐을 챙겨 카페를 나가버렸다. 
 
 
" 어라? 료?? "
 
 
주문한 커피를 들고 돌아온 에드는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있었던 마루후지가 보이지 않자, 그를 불렀다.
덩그러니 남겨진 에드는 당황스러웠지만,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뒤 외투를 들고서 카페를 나섰다. 다급히 마루후지의 뒤를 따라갔지만, 발걸음이 빠른 그를 뒤쫓아가기엔 너무 늦게 나선 상태였다.
거리에 홀로 선 에드는 곧장 몸을 돌려 마루후지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 입구에서 벨을 눌러보지만,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노크를 해보고, 마루후지의 이름을 간절하게 부르며 나와달라고 했지만 돌아오는 건 적막뿐이었다. 에드는 입구에 기대고 앉아 마루후지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심산이었다.
쌀쌀한 가을, 긴 복도가 황량하게만 느껴졌다.
 
 
" 하... "
" 어라, 잘생긴 오빠. 왜 그리 우중충하게 있어? 얼굴 아깝게. "
" ... "
" 무시하는 거야? 잘생긴 오빠들은 한 성격 한다니까~ "
 
 
마루후지는 카페를 나선 이후로,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전에 타나카와 종종 들렀던 바로 향했다. 무의식적으로 도착한 곳에서 정신을 차린 마루후지는 오늘따라 맥주가 마시고 싶다는 기분에 평소라면 잘 오지도 않을 바에 들어갔다.
술을 주문하고, 그 술이 나오고 나서도 정작 마시지는 않고 멍하니 지켜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한참 그러고 있으니, 주변에 어슬렁거리던 여자가 마루후지에게 다가와 능글맞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여러 사내를 울려본 듯 관능적인 여자의 모습에도 마루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을 돌리며 깔끔하게 무시하기까지 했다.
 
 
" 뭔데, 그래? 사랑 고민이야? "
" ... 알 것 없다. "
" 와... 목소리도 내 취향이네? 누가 오빠 힘들게 했어? "
" 하... "
 
 
마루후지는 앉으라고 권유하지도 않았는데 제 곁에 앉아 조잘거리며 떠드는 여자를 보았다.
가슴골이 보일 정도로 푹 파인 채 몸매가 도드라질 정도로 달라붙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교태가 가득 섞인 목소리에 마루후지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푹 내쉬어졌다.
한참을 마시지 않던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더니 연거푸 주문해서 마셔버렸다.
그 모습에 달라붙던 여자가 움찔거리더니 눈동자를 굴리며 자리를 피했다. 아무래도 연달아 술을 마시는 마루후지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게 분명했다.
다시 혼자가 된 마루후지는 계속해서 맥주를 마셨다.
눈앞이 흐려지고, 머릿속이 알코올로 절여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술을 마시는 도중에도 에드와 여자가 나란히 걸어가는 게 선명하게 남았다. 너무 마신 탓인지 오히려 바텐더가 마루후지를 말릴 정도였다.
 
 
" 아... 에드? "
" ... 료, 너... 얼마나 마신 거야? "
" 모르겠군. 모르겠어... "
"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
 
 
바텐더의 만류에 바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마루후지는 비틀거리며 집에 도착했다.
어떤 정신으로 집에 도착한 건지, 도착했을 땐 집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에드의 모습을 보았다. 에드가 눈앞에 있다는 것에 안심한 모양인지 겨우 버티며 걸어오던 마루후지의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비틀거리는 마루후지를 에드가 받쳐 안아주며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겠다며 중얼거리는 마루후지를 안은 에드는 익숙하다는 듯 그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마루후지의 신발을 벗겨주고, 자신도 벗은 뒤 안방에 들어가 그를 눕혀주었다.
에드는 얼마나 마신 건지, 연신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는 마루후지를 보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 료, 정신 좀 차려 봐. "
" 정말 모르겠군... 너는 나랑 뭘 하고 싶은 거지? "
" 뭐? "
" 아까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거 같던데, 또 나를 찾아온 걸 보면... "
" 아. "
 
 
에드는 마루후지의 중얼거림을 듣고서 그가 왜 이렇게 취할 때까지 마셨는지 알게 되었다. 
아까 전, 학장님을 보러 갔을 때. 마루후지의 말대로 월반하는 것 때문에 학장님이 부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갔을 때 펼쳐진 상황은 전혀 관련 없는 것이었다. 
학장님은 젊은 나이에 월반할 정도로 천재적인 사람이 욕심났던 모양인지 에드에게 자신의 딸을 소개해 주었다.
그 자리에서 에드는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냉정하기만 했다. 하마터면 예전 성격이 나올 뻔한 그였지만, 기다리고 있을 마루후지를 생각하며 견뎠다. 그러다 대화가 끝나고, 곧장 가려고 할 때. 학장님이 자신의 딸을 데려다주라는 부탁에 어쩔 수 없이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학장님의 딸, 쿄코는 착한 여자였다.
 
 
" ... 피닉스 씨는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시죠? "
" 어떻게 아셨죠? "
" 말 편하게 하세요. 그야... 저도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
 
 
쿄코가 말해준 상황은 있는 집안이라면 꽤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고, 연인이 되었지만, 막상 아버지께 데리고 왔을 때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런 자리를 주선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는 에드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쿄코가 대화를 하던 내내 에드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해있다는 걸 알고 말을 꺼낸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사랑에 당찬 그녀의 모습에 에드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데려다주는 내내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의 연인에 관한 내용뿐이었다. 마루후지가 찰나에 보았던 에드의 웃음은 오로지 마루후지를 떠올리며 짓던 웃음이었다.
연인을 만난다던 쿄코를 데려다준 뒤 카페로 향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었다.
 
 
" 하... 료, 잠시만 앉아봐. "
" 싫다. 애인을 두고 다른 여자랑 있는 놈의 말은... "
" 설명해 줄 테니까 앉아 보래도. "
" ... 내가 굳이 들어야 하나? "
" 응. 료, 취한 너에게 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걸 받아줄래? "
" 이건... "
 
 
잠깐의 실랑이를 벌이다가 에드의 등쌀에 못 이겨 자리에 앉은 마루후지는 앉자마자 당황했다.
자리에 앉았을 때, 눈앞에는 에드가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앞으로 반지 함을 꺼내고 있었다. 짙은 남색의 반지 함을 열자, 그 안에는 작지만, 선명하게 빛나는 반지 두 쌍이 있었다.
마루후지는 눈앞에 보이는 반지에 취기가 싹 가버리는 듯했다.
말을 이어가지 못한 채 멍하니 있으니 에드가 설명을 이어갔다. 학장님이 불러서 갔는데, 알고 보니 주선 자리였다는 것. 그래도 그 딸과는 말이 잘 맞아서 데려다주기만 한 것.
하필 데려다주면서 연인 자랑을 하며 웃고 있을 때 마루후지가 발견해 버린 것까지.
 
 
" 전부... 오해였다는 건가? "
" 그렇지. 미리 연락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
" ... 내가 미안하군. 멋대로 오해를 해서... "
" 오해할 만한 상황이지. "
" 하지만 내가 오해해서 그런 것이니... "
" 안 받아줄 거야? 료. "
 
 
마루후지의 얼굴이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잠깐 어두워졌지만, 에드의 말에 평소처럼 돌아왔다.
안 받아줄 거냐는 에드의 말에 귀 끝을 붉히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른세수를 하던 그는 반지 함에서 반지를 하나 꺼내더니 에드의 손을 붙잡아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드가 남은 반지를 쥐고 마루후지의 손가락에 천천히 끼웠다.
그러고 나서 손을 맞잡고, 깍지를 끼며 손등에 짧은 입맞춤을 남겼다. 두 사람 사이에는 처음에 느껴졌던 느낌은 사라지고, 묘한 분위기만 남아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에드가 마루후지를 껴안으며 침대에 누웠다. 
 
 
" 오해가 풀렸으면 됐어. "
" 미안하군. "
 
 
두 사람은 그렇게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나란히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후부터의 시간 동안에는 그렇다 할 오해를 한 적도 없었고, 되려 좋은 시간들만 가득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가왔을 때, 두 사람은 각자 바쁜 시간을 보냈다. 
마루후지는 졸업 논문을 마무리하기에 바빴고, 에드는 월반과 동시에 졸업 논문을 준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쁜 두 사람이었어도 둘의 사이를 멀어지게 할 순 없었다. 졸업 직전에 두 사람은 서로의 가족에게 소개까지 해주었다. 반대가 심할 것 같았던 에드의 아버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수긍했다.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마루후지의 동생도 흔쾌히 축하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졸업식 날, 두 사람은 함께 학사모를 던지며 모두가 보지 않는 사이 짧게 입을 맞추었다. 마루후지와 에드의 입가에는 선명하게 빛나는 미소가 걸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