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축제의 꽃, 하이라이트.
시간은 유구하게 흘러 지나갔다.
마루후지는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막 입학했던 1학년 때는 더럽게도 시간이 안 지나가더니, 이리저리 바쁠 때는 시간이 너무 잘 지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1학년들이 새로 입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에드와 다시 만난 지 벌써 4개월이 흘렀다.
그렇게 매달리던 졸업 논문은 어느덧 끝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논문은 잠시 쉬기로 하고, 축제에 전념했다. 그건 마루후지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생이라고 해서 축제 참여를 안 할 수는 없었다.
마루후지는 바쁜 학생들 사이로 보이는 에드의 모습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 진짜로 해낼 줄은. "
에드는 자신이 말했던 대로 여름 축제 전에 3학년으로 월반했다.
누가 불세출의 천재가 아니랄까 봐서, 1년도 되지 않아 월반한 건 도쿄대에서도 처음이었고, 이례적인 일이었다. 모두가 에드를 신기해하면서도 부러워하고 찬양했다.
개중에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건 마루후지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마루후지는 축제 준비를 도와준다고 나섰다가 무거운 짐을 옮기게 되었다. 에드에게서 시선을 떼어낸 뒤 짐을 두어야 할 창고로 향했다. 축제 기간이 아니라면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 듯 창고 안은 먼지로 가득했다.
짐을 내려두는 순간조차도 먼지가 퍼졌고, 마루후지가 콜록거리며 기침을 해댔다.
" 료, 괜찮아? "
" 콜록...? "
" 물도 마셔. "
언제 따라온 건지, 기침하는 마루후지의 등을 두들겨주는 사람은 에드였다.
마루후지는 당황스러워하다가 에드가 건네는 물을 마시고 기침을 멎었다. 당황한 기색도 잠깐이었다. 마루후지가 에드를 보면서 마셨던 물병을 도로 돌려주었다.
에드는 마루후지를 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 료도 축제 참가하는 거야? "
" 교수님이 하라더군. "
" 음, 뭐... 내가 말한 대로 됐지? 졸업도 곧이야. "
" ... 알아서 해라. "
" 료, 축제 마지막 날에 시간 돼? "
" 뭐? "
에드는 그간 바쁜 탓에 마루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게 아쉬웠던 모양인지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걸었다.
창틀로 들어오는 빛에 먼지가 수북하다는 걸 알았지만,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대화 주제가 끊어지면 다른 주제로 넘어가며 이야기를 이었다. 에드는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이 말했던 게 맞았다며 말했다.
마루후지는 대단하다는 말 대신 무심한 말로 답했다.
그러다 에드가 축제 마지막 날에 시간이 되냐고 물어왔다. 마루후지가 듣지 못해 다시 물어봤을 때, 열려있던 창고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마루후지가 문고리를 잡고서 돌렸지만, 문고리는 헛돌기만 할 뿐, 문을 열지 못했다.
여러 번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자, 두 사람은 창고에 갇혔다는 걸 깨달았다.
" 밖에 아직 사람이 있으니 열어줄 거야. "
" ... "
" 그러니 안심해, 료. "
" 후... "
에드는 당황한 마루후지를 달래어주기 위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아직 밖에는 정리해야 할 짐이 많았고, 그 짐들은 전부 창고로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에드가 창고로 오기 전에 자신이 창고로 향하는 걸 본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그가 오랜 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사람들이 창고로 올 거라는 말이기도 했다.
마루후지는 괜한 체력을 빼느니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라는 에드를 보았다. 그의 말대로 체력을 빼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에드와 창고에 함께 있다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다.
" 료, 그거 알아? 도쿄대 여름 축제 마지막 날에는 폭죽을 터트린대. "
" ... 내가 선배라는 걸 잊은 모양이군. "
" 아. 그렇네? 3년은 더 다녔겠구나? "
" ... "
조용하기만 하던 상황을 견디기엔 너무 적막했다.
에드가 가벼운 주제로 말을 이어가면 마루후지가 묵묵히 받아쳤다. 상황이 변하긴 했지만, 2년 전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에드는 그 분위기가 그리움과 함께 묘한 기분을 주는 걸 느꼈다.
그래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멈추지 않는 이야기에 결국 입을 다무는 건 언제나 마루후지 쪽이었다.
에드는 창고 구석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가져와 그중 하나를 마루후지에게 주었다. 마루후지는 에드의 행동에도 무시로 일관했지만, 에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의자에 앉았다.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마루후지의 시선에 에드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 계속 서 있을 순 없으니까. "
" ... "
" 그러면 그것도 알겠네? 마지막 축젯날에 함께 폭죽을 보면 영원히 함께한다는 거. "
" 그런 미신은 믿지 않는다. "
" 알긴 한다는 거네? "
에드는 마루후지의 답에 그거면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마루후지가 답을 하지 않자, 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다시 찾아왔다. 30분을 그러고 있었을까, 에드의 예상대로 누군가가 창고로 찾아왔다. 밖에서도 문고리가 헛돌자, 에드가 입을 열었다.
마루후지는 에드가 사교성 좋게 문 너머의 사람과 대화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밖에 있던 사람은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건지 관리자를 불러온다고 하고서 사라졌다. 문 앞에 있던 에드가 몸을 돌려 다시 의자에 앉으며 마루후지를 보고서 말했다.
" 료, 혹시 해서 말하는 거지만... 내가 2년 전에 그랬던 것 때문에 나랑 말하기 싫은 거야? "
" 잘 아는군. "
" ... 그때는 내가 너무 철부지였어. "
마루후지는 에드가 스스로를 철부지라고 칭하며 조곤조곤 말하는 걸 가만히 들었다.
그가 스스로 철부지였다는 걸 인정했다는 사실이 놀라긴 했지만. 그가 자신에게 하고자 한 말은 그리 충격적이진 않았지만, 결국 마음이 담긴 사과였다. 미안하다는 단어 하나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말은 에드가 당시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주변에서 이어지는 칭찬과 아버지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 더 잘하려고 하다 보니 천재가 되었지만, 그걸 당연하게 여겨버리게 되고 만 것이었다. 한창 잘난 맛에 빠져있을 때 만난 게 마루후지였다고 말했다.
마루후지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고, 처음에는 호기심이었지만 점점 깊어지는 마음에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 ... 지금 이렇게 말해봤자 소용없겠지만. "
"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만, 적어도 네 마음은 알게 되었다는 게 중요하지. "
" ... 료? "
" 긴말하지 않겠다. 마지막 날, 8시에 옥상에서 보지. "
" 료?? "
길게 이어지는 에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마루후지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서 말했다.
에드는 반쯤 포기하고서 마루후지가 자신의 말에도 반응이 없다면 그땐 정말 마음을 정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전혀 예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마지막으로 포기하기 전에 담아두었던 이야기가 오히려 기회로 돌아왔다.
마루후지가 약속을 잡았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마루후지는 자신이 할 말만 하고서 열린 문으로 나갔다. 문을 열어주었던 상대는 마루후지가 나오자, 움찔거리며 당황했다.
창고 안에 있던 에드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찾아오자, 기쁜 걸 감추지 않았다.
" 마루후지, 어디 다녀왔냐? "
" 창고. "
" 거기 지금 문고리가 헛돌 텐데? "
" ... "
마루후지가 자리로 돌아왔을 때, 타나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가 말하길 이미 이전부터 창고의 문고리가 헛돌아서 몇몇이 나오지 못하는 봉변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마루후지는 굳이 타나카에게 자신도 에드와 함께 갇혔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에드와 있었다는 말로 피곤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마루후지와 에드는 평소처럼 전혀 대화조차 하지 않고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 가끔 마주치면 에드 쪽에서 마루후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거나 웃어주는 게 전부였다. 여전히 마루후지는 그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도쿄대 여름 축제가 열렸다.
도쿄대의 여름 축제는 인근의 마을과 함께 여는 축제였던 만큼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었다. 길거리는 전부 음식 장사가 대부분이었고, 금붕어 잡기, 열쇠 뽑기, 요요 낚시, 사격, 제비뽑기 등등. 다양한 즐길 거리도 있었다.
마루후지는 잠시 논문을 접고,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마루후지, 너 말이다. 최근에 제대로 쉰 적 있느냐? ]
[ ... 없습니다. ]
[ 가끔은 말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중에 한 번쯤은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이번 여름 축제에 참여하거라. ]
[ 하지만... ]
[ 참여하면 가산점을 주도록 하마. ]
마루후지는 잠시 일전에 마지막으로 교수님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축제 기간을 도와주긴 했으나, 마지막 날에만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수님을 찾아뵈었을 때였다. 교수님이 보기에도 자신이 너무 바쁘게 살았던 모양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축제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 운동장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무대를 설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댄스부의 무대와 밴드부의 무대 그리고 초청 가수의 무대가 있다고 들었다. 무엇이 되었든 저 부분에 대해서는 마루후지에게는 관심조차 없었지만.
1박 2일로 열리는 축제에서 마루후지의 목적은 마지막 날 뿐이었다.
" 마루후지, 넌 축제 안 즐기냐? "
" 혼자 즐겨라. "
" 에이... 그래도 친구인데 혼자 두는 건 말이 안 되지! "
" 괜찮다. "
혼자 서 있는 마루후지를 발견한 타나카가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의 곁에는 여자 친구인 모모코도 함께였다. 반갑다며 인사를 건네는 그녀에게 마루후지는 가볍게 목례로 인사했다. 축제를 함께 즐기자며 달라붙어 오는 두 사람과 거절하기 바쁜 마루후지였다.
마루후지는 매달리는 타나카를 밀어내다가 자신에게로 향한 시선이 느껴져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익숙한 에드가 서 있었다. 제법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점점 제 쪽으로 다가왔다. 마루후지가 몸을 돌리기도 전에 에드가 그의 곁으로 와서는 달라붙는 타나카를 떨어트렸다.
아까 보이던 날카로운 눈빛을 없애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타나카에게 말을 걸었다.
" 선배, 여기 있으셨네요. "
" 어? 뭐야, 마루후지! 너... 피닉스랑 아는 사이였어? "
" 모른다. "
" 매정한 선배네요. 잠시 데려가도 될까요? "
" 어, 어... "
에드는 친절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타나카를 보며 말했다.
에드의 손은 마루후지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말을 끝낸 뒤에는 타나카의 답을 듣기도 전에 마루후지의 손목을 붙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두 사람이 떠나자, 남겨진 타나카와 모모코는 어리둥절해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마루후지는 조용히 따라가다가 에드가 점점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자, 발걸음을 멈추고서 버텼다.
붙잡혔던 에드의 손을 뿌리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에드의 힘에 의해 마루후지의 손목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남았다. 마루후지는 자신의 손목을 어루만지더니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에드가 다시 손을 붙잡으며 조금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 그 선배랑... 많이 친해? "
" 네가 알 건 아닐 텐데. "
" 료... 곁에 있던 여자랑은 무슨 사이야? "
" 신경 쓰지 마라. "
에드는 계속해서 마루후지에게 자신이 지금 질투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마루후지는 그가 왜 질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에드가 아직 자신에게 감정이 남아있다는 걸 알지만, 그는 자신의 연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비슷한 관계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굴고 있으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에드는 자신에게는 쉽게 허락을 하지 않는 걸 왜 다른 상대방에게는 그리 쉽게 허락을 하는 건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마루후지의 손을 붙잡고 그곳에서 빠져나온 것이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적막이 흘렀지만, 주변은 인파로 인해 시끄러웠다.
마루후지와 에드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에드의 벽안과 마루후지의 옥빛 눈동자가 서로를 탐색했다. 먼저 물러난 사람은 에드였다. 에드가 천천히 손목을 놓자, 마루후지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 ... 내일 보지. "
" 료... "
에드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떠나는 마루후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마루후지를 붙잡기 위해 뻗었던 손은 허공에 멈춘 채 아련하게 머물렀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서 입을 꾹 다물었다. 지난날의 후회를 몇 번이고 해왔지만, 지금처럼 스스로가 멍청하다는 생각은 처음이었다.
조금씩, 천천히 다가가기로 해놓고서 질투에 눈이 멀어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기껏 찾아온 기회를 스스로 걷어찰 뻔한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루후지가 내일 보자며 넘어간 게 다행이었다. 에드는 두 번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실수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도쿄대 운동장에서는 쿵쿵 울리는 소리와 함께 초청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루후지는 무작정 걷다 보니 운동장까지 오고 말았다.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분주하게 무대 위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고 있는 이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 뭘 하고 싶은 건지. "
마루후지는 아까 전에 그의 태도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워낙 갑작스러웠던지라 에드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었는데, 뒤늦게 생각하니 그의 표정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 찡그려진 눈썹, 파르르 떨리는 눈꼬리, 기이하게 꺾이던 입꼬리.
마루후지는 에드의 행동에서 그가 아직 자신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맞다는 걸 인정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불세출의 천재, 엄친아, 누구에게나 다정한 남자. 그게 바로 에드 피닉스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신에게 매달리는 게 묘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축제 마지막 날인 내일이 기대되기는 처음이었다.
" 료? "
" 이쪽이다. "
" 거긴 어떻게... 아, 사다리가 있구나. "
다음 날, 축제가 끝을 맺어가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첫날보다 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마지막 날의 꽃은 저녁에 펼쳐지는 폭죽이었다. 하이라이트이자 축제의 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옥상을 찾았다. 에드는 옥상 문을 열자, 발 디딜 틈 없는 옥상에 살짝 놀랐다.
주변을 둘러보며 마루후지를 찾던 에드는 익숙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오자, 고개를 치켜들었다.
마루후지를 발견한 에드는 곧장 그의 곁으로 가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입구의 위쪽에 앉아 있던 마루후지에게로 가는 곳에 사다리가 있었다. 에드가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마루후지의 곁에 앉았다.
두 사람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주변은 시끄러웠다.
연인끼리 온 건지 서로 부둥켜안은 사람들도 있었고, 친구끼리 온 사람도 있었다. 에드가 하려는 것처럼 고백을 하려는 건지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도 있었다.
에드가 주변을 살펴보더니 마루후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 료, 이전에는... "
" 뭐? "
" 아니, 사랑해. 아직 널 좋아하고 있어. "
" ... 나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
" 어? 다시, 다시 말해줘. "
" ... "
" 료! "
에드가 입을 달싹거리며 한참을 뜸 들이다가 겨우 입을 여는 순간 밤하늘 위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피이이, 길게 울리는 소리가 지나고 잠깐의 정적 끝에 펑 하고 터지는 소리에 에드의 말이 묻혔다. 마루후지는 폭죽을 보고 있다가 시선을 돌려 에드를 보고서 무슨 말을 했냐는 듯 반문했다.
폭죽의 불빛에 반사된 마루후지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에드는 고개를 젓고서 웃으며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에드는 폭죽의 소리에 묻혀 자신의 고백이 마루후지에게 닿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루후지는 그 고백을 듣고서 가만히 에드를 보다가 그의 고백에 답을 주었다.
멍하니 마루후지를 보던 에드가 다급하게 다시 말해달라고 매달렸다.
하지만 간절한 에드의 목소리에도 마루후지가 고개를 돌리며 폭죽을 보기만 했다. 에드는 자꾸만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가는 걸 막느라 애를 썼다.
" 료, 다시... 응? 료. "
" ... 적당히 해라. "
" 손... 잡아도 돼? "
" ... 알아서 해. "
에드는 다시 마루후지의 입에서 고백을 듣고 싶었지만, 마루후지가 도저히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적당히 하라며 인상을 찡그리는 마루후지의 모습에 에드가 웃으며 그 대신이랍시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마루후지가 조용히 손을 내밀며 답했다. 그의 행동에 에드가 손을 꼭 잡으며 등 뒤로 숨겼다.
혹여나 모두가 볼 세라, 숨겨두고는 주변을 살폈다.
모두가 폭죽에 빠져있느라 정신없어서 두 사람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에드는 다시 폭죽이 터질 때 마루후지의 뺨에 입을 맞췄다. 짧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입술에 마루후지가 얼어붙었다.
마루후지는 폭죽을 보는 사이 자신의 뺨에 닿는 감촉에 움찔거렸다.
따뜻한 감촉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에드의 벽안이 불꽃에 반사되어 예쁘게 반짝거렸다. 쿵쿵, 심장 소리가 폭죽 소리를 멀게 할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마루후지는 붙잡혀 있던 손에 힘을 주며 에드의 손을 맞잡았다.
" 너무 멀리 돌아왔네. "
" ... 네 탓이다만. "
" 그래, 내 잘못이지. 앞으론 안 그럴게. "
" ... "
마루후지는 여전히 에드에게 겪었던 패배감을 잊지 않은 상태였다.
가만히 에드를 보며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정리했다. 자신에게 패배감을 안겨주고, 배신감을 느끼게 했으면서 외로움을 충족시켜 주고, 보고 싶었던 사람. 이번에 맞잡은 손은 절대 놓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와 같은 감정이어도 밀어낼 생각이었지만, 직접적으로 부딪혀 오는 에드의 모습에 마음이 바뀌었다.
과거의 일보다 에드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더 우선이었고, 더 먼저였다. 결국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트라우마를 넘어서고 말았다. 비록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평소에도 무뚝뚝한 자신이었지만, 이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향해 전부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에드처럼 자신도 드러내기로 마음먹은 거였다.
그를 향한 마음이 단순한 애정보다는 동행자, 함께 걸어가도 괜찮은 사람, 곁에 두고 싶은 자였기에. 다른 사람이라면 가차 없었을 테지만, 어쩌면 동행자 이상일지도 몰랐다.
" 료, 폭죽 보면서 고백했으니 우리 영원히 가겠지? "
" ... 그걸 믿는 건가? "
" 믿진 않는데, 료와 관련된 거라면 믿고 싶어. "
에드가 남들이 보지 않는 등 뒤에서 엄지손가락으로 마루후지의 손등을 문지르며 말했다.
마루후지는 에드를 바라보다가 밤하늘을 보며 매정하게 답했다. 서로의 감정을 알게 된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무뚝뚝했다. 그의 반응에 에드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남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자, 마루후지가 고개를 틀어버렸다.
폭죽이 끝나고, 모두의 시선이 자유로워졌을 때 두 사람은 맞잡았던 손을 풀었다. 에드는 더 잡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마루후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을 때였다.
동시에 웃음이 터져버려서 웃어버리고 말았다.
에드는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고, 마루후지는 피식, 바람새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폭죽 터지는 게 끝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옥상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 우린 마지막에 갈까? "
" 그러지. "
두 사람은 마지막 사람이 내려가기 전까지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옥상에서 내려가고 나서야 움직였다. 에드가 먼저 내려와 마루후지를 향해 손을 뻗으며 웃었다. 마루후지는 가만히 그걸 지켜보다가 에드의 손을 마주 잡고 위에서 내려왔다.
서로의 감정을 알게 된 두 사람에게는 이제 서로를 위한 시간만 남아있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기만 하던 2년의 세월을 보상받길 원하는 듯 둘은 그날 하루 종일 붙어있었다. 남은 축제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 가면까지 구입했을 정도였다.
" 아, 료. 료도 써야 한다니까? "
" 나는 안 써도 된다. "
" 료... 네 인기를 스스로 모르고 있는 모양이네. "
결국 마루후지까지 가면을 쓰고서 돌아다녔다.
에드와 마루후지는 비슷한 모양의 여우 가면을 쓰고서 먹거리를 사 먹기도 했고, 열쇠 뽑기라던가 금붕어 건지기도 함께 즐겼다. 링고 아메와 바나나초코를 한 손씩 쥐고서 나눠 먹기도 했다.
여전히 축제를 즐기는 동안에도 에드가 주로 말을 하고, 마루후지가 답을 하기만 했지만.
두 사람은 즐거워 보였다. 돌아다니는 내내 둘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붙어있었다. 축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에드가 마루후지의 집에 잠시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간의 회포를 풀려는 듯 두 사람은 마루후지의 집에서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누며 가볍게 한 잔씩 걸쳤다.
" 윽... "
" ... 어제 몇 잔을 마셨더라. "
" 많이도 마셨군. "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두 사람은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다.
가볍게 한 잔씩 걸친다는 게 알코올이 들어가니, 술술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 탓에 점점 늘어났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네 잔이 되어버리는 마법을 겪은 것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거실에는 아사히 맥주캔이 나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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