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BL/1차cp/250104]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사이 2.5

나비의 보관함 2025. 2. 19. 20:01


부제 :: 감기인지 설렘인지

 

마루후지가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땐, 잠들기 전보다 열이 내려가 있었다.

확실히 자고 일어나니 한결 가벼워진 몸에 마루후지가 천천히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이마에서 툭하고 무언가 떨어졌다. 마루후지는 자신의 다리 위로 떨어진 물건을 보았다. 

이마에서 떨어진 건 말라버린 수건이었다. 

잠든 사이에 누군가가 이마 위로 젖은 수건을 올려준 건가? 싶은 생각에 고개를 돌리자, 침대맡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에드의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모습에 움찔거리며 그를 살펴보았다.

마루후지의 움직임에 에드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고서 마루후지를 불렀다.

 

 

" 으음... 료, 아픈 건 좀 어때? "

" ... 아픈 게 아니라 며칠 잠을 자지 못해서... "

" 아니야, 열이 38도던데. "

" ... "

" 아. 죽 다 식었네. 잠시만 기다려. "

" 에드...! "

 

 

막 잠에서 깨어난 에드는 비몽사몽인 상태에서도 마루후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아까보다 비교적 열이 내려간 모습에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에드는 침대 옆 탁상에 올려둔 체온계를 가리키며 마루후지의 말에 반박했다. 체온계에 정확하게 박혀있는 38.8도에 마루후지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의 아프지 않다는 말은 변명에 불과했다.

입을 꾹 다물어버리자, 에드가 일어나면서 체온계 옆에 있던 그릇을 들고서 방을 나갔다. 나가버리는 그의 모습에 마루후지가 다급하게 불러봤지만, 잠겨버린 목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죽 그릇조차 에드가 들고 나가서 알게 되었다. 

그제야 마루후지는 자신이 잠든 사이에 에드가 곁에서 병간호를 해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라고 부정하기엔 에드가 기대고 있던 침대맡에는 그의 온기가 한참 머물러 있었다.

마루후지는 수건을 쥐고서 에드의 뒤를 따라 거실로 나왔다.

 

 

" 방에서 기다리지. 죽 데우기만 하면 되는데. "

" ... 번거로운 짓을 할 필요 없다. "

" 번거롭지 않으니까 하는 거야. "

 

 

그는 부엌에서 죽을 데우고 있는 에드의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철부지 도련님이었던 에드가 누군가를 위해 죽을 만들고, 배려를 하고 있다는 게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부엌의 상태는 전혀 배려가 없이 지저분한 상태였지만.

마루후지의 표정이 부엌을 살피더니 점점 굳어갔다.

죽을 데우면서 마루후지의 눈치를 살피던 에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나중에 치울 거라며 말을 덧붙였다. 마루후지는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굳이 말을 덧붙이며 설명하는 에드의 모습이 귀엽다고 느껴졌다.

뒤늦게 자신이 지금 헛생각하고 있다며 탓하기도 했다.

 

 

" 료, 먹고 들어갈래? "

" ... "

 

 

에드의 말에 마루후지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식탁에 앉았다. 마루후지가 식탁에 앉자, 에드가 수저를 꺼내와서는 그의 앞에 놓고, 죽을 그릇에 덜어서 내어주었다. 마루후지는 자신의 눈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죽을 보고서 멍하니 있었다.

죽을 내어준 뒤 에드는 마루후지의 맞은편에 앉아 그가 얼른 먹기를 기다렸다.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마루후지는 숟가락을 쥐고서 죽을 먹기 시작했다. 한입 떠서 후후, 불어 먹은 죽은 싱거웠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동생과 함께 지내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엇갈려서 거의 혼자 지내는 수준이었다.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니었던 모양인가 보다.

아니면 아프다 보니 외로웠다고 느끼는 걸지도 모르지. 마루후지는 모든 걸 자신이 아픈 탓으로 돌리며 뜨겁던 죽을 천천히 먹었다. 마루후지가 죽을 먹는 동안 에드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 에드, 죽은 좀 괜찮아? "

" ... 나쁘지 않군. "

" 죽 먹고 약 먹은 뒤에 한숨 더 자. "

" 논문 정리해야 한다. "

" 아픈 게 먼저지. "

 

 

에드는 가만히 마루후지를 보면서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마루후지는 잠들기 전보다 두통이 줄었고, 욱신거리던 근육통도 사라졌지만, 괜찮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에둘러 표현했다. 약이라는 말에 마루후지의 표정이 구겨졌지만, 에드에게 통할 리 없었다.

마루후지가 죽 한 그릇을 다 비워내자, 에드가 자신이 사 온 약을 꺼내며 물과 함께 그에게 건넸다.

에드가 준 약을 바라보던 마루후지는 인상을 찡그린 채 약을 삼켜냈고, 물을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논문 정리를 위해 서재로 향하던 그를 에드가 붙잡아 침실로 돌아갔다.

마루후지는 별다른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침대로 들어가 누워야만 했다.

 

 

" 아무리 봐도 지금 감기니까, 감기 다 낫고 나면 그때 작업해. "

" 졸업 논문이라 빨리... "

" 아직 몇 개월 남았잖아. 그리고 곧 축제 준비도 해야 하지? "

" 그건 어떻게 알았지? "

" 나도 도쿄대 학생이거든. "

 

 

마루후지는 침대에 누운 채 에드와 대화를 이어갔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이런 상황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패배감을 안겨주고, 배신감을 들게 했던 상대가 병간호를 해준다니.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상하게 약을 먹고 누우니 충분히 잠을 잤는데도 졸음이 몰려왔다. 

그의 말대로 졸업 논문도 논문이지만, 곧 있을 여름 축제에 참여해야만 했다. 마루후지 성격상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교수께서 매년 참석하지 않던 마루후지에게 참석하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참석하기만 해도 가산점을 준다고 하시는데,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여름 축제할 때쯤이면 나는 월반해서 3학년이겠네. "

" ... "

" 료가 졸업할 때면 나도 같이 졸업할 거고. "

"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

 

 

마루후지는 곧 잠길 것 같은 눈을 억지로 참아내며 에드를 보았다.

자신의 방에 에드가 있다는 사실 조차만으로도 충분히 색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는데, 그가 1년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도 새롭게 다가왔다. 그의 말대로라면 1년 내내 함께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마루후지는 2년 전처럼 착각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의 말을 해석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외로움을 받는 건 지쳤기 때문이었다. 마루후지는 감기는 눈을 느리게 껌뻑이며 에드를 보다가 천장을 보았다. 익숙한 천장, 익숙하지 않은 상황.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길 택했다.

 

 

" 료, 자? "

" ... "

" 잘 자, 료. "

 

 

마루후지는 감기약 성분 중에 수면 효과가 있던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수면 유도 효과가 있긴 했지만. 그가 현재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 탓에 더더욱 효과를 보고 있었다. 마루후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때는 곁에 아무도 없었다.

에드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마루후지가 천천히 일어나 방을 나서 부엌으로 향했다. 에드가 있었던 시간들이 마치 지나간 꿈결처럼 느껴졌다. 부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깨끗하게 설거지 된 그릇들이 엎어져 있었다.

못 보던 냄비 하나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냄비 뚜껑에는 작은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있었는데, 거기에는 익숙한 필체로 작은 글이 담겨있었다. '열이 떨어졌다고 해서 대충 끼니 때우지 말고, 죽 먹은 뒤에 약도 챙겨.' 걱정이 담긴 메세지였다.

 

 

" ... 이상하군. "

 

그저 한 사람이 없을 뿐인데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집이 너무 넓게 느껴졌다.

마루후지는 그리움을 떨쳐내고 서재로 향했다. 분명 잠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구난방으로 어지럽혀져 있던 서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우렁각시가 왔다 간 느낌이었다. 

마루후지는 서재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익숙한 논문을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가 준비한 논문은 일본의 시효 제도와 관련한 민사법적 고찰에 관한 논문이었다.

집중하고 머리를 써야 할 논문인데도 그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자신의 집에 남아버린 에드의 흔적 때문이었다. 마루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괜히 죄 없는 노트북 화면을 노려보았다. 같은 자세로 오래 있다 보니 어느새 노트북 화면이 꺼졌고, 검게 비친 화면 속에는 마루후지의 착잡한 표정만 비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