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BL/1차cp/250102]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사이 2

나비의 보관함 2025. 2. 19. 20:00

 

부제 :: 기억의 잔상

 

 

마루후지는 손에 쥐고 있던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고서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하기 위해 소파에 몸을 뉘었다.

팔을 올려 눈가를 가린 채 빈 캔을 꽉 쥐어 찌그러트리고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흐릿해지던 눈앞은 점점 감기며 어둠이 좀먹듯 잠식해 버렸다. 어둠 속에서 빛 한 줄기가 흘러나오고, 눈앞에 보인 건 앳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과외를 하러 왔다는 소년, 그는 2년 전의 에드였다.

지금과는 달리 마루후지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앳된 소년처럼 보였다. 마루후지는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에드를 보다가 그와 함께 온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근사근해 보이는 인상이 에드와 닮아있었다.

남자가 자신의 아들을 잘 부탁한다며 손을 내밀어 왔다.

 

 

" 아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

" 예... "

 

 

마루후지는 내밀어진 손을 맞잡으며 흔들었다.

힐끗, 그의 시선이 다시 남자의 곁에 있는 소년에게로 향했다. 말갛게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소년이었다. 남자의 부탁으로 1년간 계약을 통해 에드를 가리키기로 했다. 성적이 좋으면 1년 뒤 다시 재계약하는 조건으로.

에드는 아버지가 계실 땐 배려심 넘치고 착한 학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다정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앞이라서 그랬던 것이었다.

남자가 계약을 끝내고 가버리자, 에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를 돌변하고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에드의 태도가 돌변한 것에 마루후지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아니, 무뚝뚝한 표정 때문인 건지 놀라지 않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 설마 선생님이라고 불러주길 바라는 건 아니죠? 마루후지 씨? "

" 편할 대로 부르도록. "

" ... 안 놀라시네요? "

 

 

에드는 첫날부터 노골적으로 마루후지를 무시하려는 듯 무례하게 굴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쪽으로 흘러가는 상대의 반응에 오히려 에드 자신이 당황하고 말았다. 의도로는 갑자기 바뀐 자신의 태도로 인해 당황하는 상대를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되려 자신이 당하게 되니 제법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마루후지를 보고서 재밌다는 듯 바라보며 아버지가 가신 이후로 줄곧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웃었다. 에드에게 있어 마루후지의 반응은 신선했고, 처음 겪는 것이라 흥미를 유발했으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과연 그가 자신의 행동과 태도에 어디까지 저런 반응을 유지할지 궁금해졌다.

마루후지의 무뚝뚝한 표정이 망가지길 바라는 마음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한 에드가 적극적으로 나오자, 오히려 마루후지는 당황했다.

 

 

" 수업이나 하도록 하지. "

" 예, 재밌을 거 같네요. "

 

 

에드는 며칠 내리 마루후지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처음 그가 내준 문제를 풀었을 때의 놀란 표정이라던가, 알려준 방식이나 식을 잘 습득할 때의 반응이라던가. 수업을 하는 내내 에드의 시선이 마루후지의 표정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루후지는 그런 에드의 시선이 너무 뜨겁게 느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무시했다.

신경을 끄고 있으면 언젠가 질려서 그만두겠지, 라는 가벼운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시작된 과외를 하는 내내 에드는 열렬한 시선으로 자신을 살피고 있다는 걸 안 이후로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했다. 

에드의 목표는 무려 아이비리그였다. 주변에서는 그를 불세출의 천재, 엄친아, 수재라고 불렸다. 

마루후지는 에드가 왜 천재라고 불리는 건지 며칠도 걸리지 않아 알 수 있었다. 17살인 아이가, 아직 고등교육 2학년 수준을 배워야 할 아이가 대학생 수준을 뛰어선 머리를 가지고 있었던 거였다.

 

 

" ... 이걸 이런 식으로... "

" 쉽잖아요, 마루후지 씨는 처음 보는 방식이세요? "

" 이번에는 이걸 풀어보도록 해. "

 

 

처음 내주는 문제여도 에드는 서슴없이, 막힘없이 풀었다. 

마루후지는 에드가 절대 자만하지 않도록 그의 앞에서는 칭찬을 쉬이 해주지 않았다. 에드는 그런 마루후지에게서 짧은 칭찬이라도 들어보기 위해 오기가 생겨났다.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무뚝뚝하고, 냉담하면서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뭐든 처음이면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자극적이기 마련이다. 에드에게 마루후지가 그런 존재였다. 처음이었고, 흥미로웠으며 재미있고 그의 반응 하나, 하나가 자극적이었다. 무미건조해서 지루하던 하루, 하루가 즐겁게 느껴졌다.

에드는 어디를 가나 자신을 칭찬하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어른들을 질려하고 있었다.

그런 어른들만 보다가 칭찬은 고사하고 무뚝뚝함을 유지하는 그가 신기하기만 했다.

 

 

" 마루후지 씨는 저한테 궁금한 거 없으세요? "

" 없으니 수업하도록 하지. "

" 이상하네... "

 

 

에드의 입장에서 마루후지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을 보면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혹은 시기하거나 질투하기 마련일 텐데, 마루후지는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더 가까이하고 싶었다.

한 번도 사람을 향해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물론 에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마루후지는 알 턱이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드러나는 에드의 잦은 연락과 과한 집착 때문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었기에, 가끔 에드의 아버지를 볼 때면 에드 몰래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 에드의 머리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

" 그렇군요... "

" 그래서 커리큘럼을 조금 고쳐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

" 예? "

" 고등교육에 맞추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학 교육 정도는 우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

" 그 정도입니까? "

" 예, 주변에도 칭찬하지 않던가요? "

 

 

마루후지는 에드가 천재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새로운 커리큘럼을 내밀었다.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진행 방식에 에드의 아버지는 살짝 놀란 기색을 보였다. 마루후지는 에드 정도라면 주변에서 가만히 두지 않았을 텐데, 에드의 아버지 반응에 의아했다. 

그러자 에드의 아버지는 주변에서 그저 알랑방구를 뀌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루후지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이었고, 냉담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에드의 아버지는 그를 더 신뢰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에드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름 시간을 보내면서 마루후지와 에드 사이에는 정서적 교류 또한 생겼다. 거의 일방적이긴 했지만.

 

 

" 마루후지 씨는 연애, 해보셨어요? "

" 그건 수업과 전혀 관련 없는 질문인데. "

" 아, 그러지 말고 알려주세요. "

" 숙제를 다 해오면 알려주도록 하지. "

 

 

이렇게 가끔 에드가 장난스레 마루후지에게 사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질문은 에드가 마루후지에게 물어보았고, 그럴 때마다 마루후지는 답을 피하거나 무시하기만 했다. 다만 과외를 하는 집이 아닌 거리나 식당 같은 곳에서 만나면 대신 결제를 해주거나 음료수를 사주는 것을 해주기도 했다.

다른 학생들에게 해버리던 행동을 에드에게도 공평하게 해준 것뿐이었다.

문제는 에드가 그의 행동에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부터였다. 그가 의미를 가지게 된 건 자신이 마루후지를 향해 평범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자각했을 때였다.

 

 

" 마루후지 씨는 좋아하는 거 있으세요? "

" 없다. "

" 아, 그러지 마시고. 있지 않아요? "

" 에드. 지금은 과외 시간이다. "

 

 

에드는 가끔 마루후지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걸 좋아했다.

마루후지는 되레 에드의 반응을 볼 때마다 인상을 구기곤 했지만, 아예 안 불러주진 않았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때론 에드의 집에서, 대부분은 마루후지의 집에서 과외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도 했다. 

누군가가 본다면 요즘 말로는 썸이라고 하던가,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서로가 알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에드는 자신의 감정을 전부 드러내며 다가갔지만, 마루후지는 감정을 보이지 않고 꼭꼭 숨겼다.

 

 

" 마루후지 씨, 키스는 해보셨어요? "

" 그런 질문은 자제하는 게 좋겠군. "

" 궁금하잖아요. "

 

 

에드는 시도 때도 없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질문의 물 높이는 점점 올라갔다. 마루후지는 에드의 질문이 마치 늪과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에드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마루후지에게 드러냈다.

여유만만한 연하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듯했다.

마루후지는 에드와 과외를 하면서 그의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부러운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동생과는 또 다른 느낌에 다른 과외 학생들보다 에드를 조금 더 챙겼다. 그걸 알고 그런건지 아니면 모르면서 그러는 건지.

에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루후지의 관심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당당하게 굴었다.

 

 

" 마루후지 씨. 마루후지 씨? "

" ... "

" ... 료. "

" 뭐? "

" 이제 고개 돌려보시네요? "

 

 

마루후지가 내준 시험을 에드가 전부 풀어낸 뒤 체점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마루후지의 뒤에서 에드가 침대에 누운 채 펜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이름을 연달아 불렀다. 체점에 집중하느라 듣지 못했었지만, 에드가 성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 순간 마루후지의 시선이 에드에게로 향했다.

그의 행동에 에드가 웃으며 만족한 듯 말했다.

단순한 관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아서 이제 정해야만 했다. 마루후지는 과감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돌격하는 에드의 모습에 딱 잘라 거절했다. 관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었겠지만, 당장의 일을 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은 3학년생이었고, 시험 준비와 더불어 내년에 준비해야 할 졸업 논문이 문제였으니까.

연애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고 냉정하게 평가하고서 내린 결론이었다. 아직 대학생이 되어보지 못한 에드는 마루후지의 거절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 아, 예... 그런 식인가 보네요. "

" 에드. 집중해라. "

" 어차피 아는 내용인데요? "

" ... 거짓말은 좋지 않다. "

" 진짠데. ... 자요, 맞죠? "

 

 

1년이 조금 지났을 때, 마루후지는 에드와의 과외 계약 기간을 더 늘렸다.

다른 날처럼 똑같이 수업을 진행하는 나날이 길어질수록 에드의 태도가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에드가 과외에 집중을 하지 않았다. 마루후지가 낮게 목소리를 깔고 말해도 돌아오는 건 아는 내용이라는 말이었다.

마루후지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평소에는 낮은 목소리로 이름이라도 불러주면 당장 따라와 다정히 웃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 따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뻔뻔하게 다 아는 내용이라 듣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행동했다.

아직 알려주지 않은 방정식임에도 에드는 물어보는 족족 이미 다 알고 있었다. 

 

 

" 이제 마루후지 씨에게 배울 게 없네요. "

" ... "

" 차라리 제가 마루후지 씨 가르치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요? "

" 하... "

" 사실 뭐, 배울 게 없다는 건 2개월 차에 알고 있었는데. 같이 있는 게 재밌어서 모르는 척하고 있던 거라. "

" 이 문제도 풀어보도록. "

 

 

마루후지는 마치 신뢰하고 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찌 보면 맞는 말이던가. 1년하고도 몇 개월, 함께 지내온 정이라도 든 건지 마루후지의 안에서 에드는 신뢰를 넘어선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실 상대가 자신을 기만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자, 화가 났다.

그래도 한참 어린 녀석에게 화를 낼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을 때 자존심을 건드는 말을 해버리니 욱하고 말았다.

마루후지는 자신이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에드에게 내보였다. 그런데 에드가 고민도 없이 바로 풀어버렸다. 몇 분도 걸리지 않은 답안지를 내밀고서 여유롭게 펜을 돌리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 얄미웠다. 

답안지를 보던 마루후지가 다른 문제까지 내주었다. 

 

 

" 더 어려운 건 없어요? "

" ... "

" 답에는 문제 없을텐데. "

 

 

마루후지가 내는 문제를 에드는 고민도 없이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여유를 부리는 에드를 내버려두고서 마루후지가 펜을 쥐더니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드가 틀린 부분을 확인하는 줄 알고 괜스레 문제없을 거라며 말했다.

마루후지는 자신도 풀어보려고 했으나, 자신이 아는 계산식을 다 내밀어도 풀 수가 없었다.

그는 처음으로 패배감을 맛보았다. 자신도 살아오면서 수재라는 소리를 들었고, 공부에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배움을 받는 사람보다 못하다는 그 사실 하나가 너무 강했다.

물론 패배감도 패배감이었지만, 이제까지 잘 지내고 있었다고 믿었던 에드가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 ... 다음 과외 시간에 연락하도록 하지. "

" 어라, 마루후지 씨? "

 

 

혼자 믿고, 혼자 신뢰하고, 혼자서 그런 감정을 품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마루후지는 울렁거리는 속에 입을 꾹 다물고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치가 떨릴 정도로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잠깐의 방심 사이에 깊은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배신감, 충격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실망감.

왜 실망하는 거지? 마루후지는 감정적으로 가기 전에 마음을 정리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고, 현실적으로 보자고 생각했다. 여기서 그만둔다고 말하면 계약 파기이기에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차분해졌다.

한 자리에 에드와 함께 있기엔 감정 갈무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자리를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자신을 부르는 에드의 목소리에도 무작정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했다.

마루후지는 한참을 거리 끝에 서서 자신의 휴대폰을 매만졌다. 에드의 아버지에게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아직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에드의 집에서 나올 때부터 그만둔다는 건 정해진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고작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저보다 어린놈이 더 똑똑할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외의 이야기다. 에드를 믿고, 애정했으며 관심을 두었고, 신뢰했다. 그 모든 감정을 배신하고 기만한 건 다름 아닌 에드였기에. 배신과 기만의 죄를 치루는 것도 에드여야했다.

알량한 복수가 너무 초라했지만, 마루후지는 차마 에드를 탓할 수 없었다.

 

 

" 여보세요, 에드 아버님. "

[ 무슨 일인가요? 마루후지 군. ]

" 아... 제가 사정이 생겨서 과외를 더 이어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계좌 알려주시면 계산해서 남은 금액 돌려... "

[ 에드가 못된 장난이라도 쳤답니까? ]

" 그건 아닙니다. 제가 사정이 생겨서요. "

[ 흠... 마루후지 군, 수고했습니다. 남은 금액은 수고비라고 생각해 주세요. ]

" 예? "

 

 

마루후지는 30분간 거리를 서성거리다가 결국 휴대폰을 켜고서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들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에드와 비슷한 부드럽지만, 조금 더 성숙한 느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루후지는 차마 에드 탓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사정이 생겨 그만두게 되었다고 둘러 말했다.

그게 비록 에드의 아버지에게 통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전화를 끊낸 뒤 마루후지는 복수의 통쾌함도, 후련함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끝맛이 씁쓸한 패배감과 아릿한 배신이 족쇄로 변해 발목을 붙잡은 기분이 들었다. 

봄에 만나, 한해가 지나고 여름에 헤어진 이후로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 나는 왜 힘들어하는 거지. "

 

 

그날 이후로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날이 많았다.

당연한 거겠지만, 에드와 에드의 아버지 연락처는 차단 후 지웠다. 이후로는 줄곧 시험에 매달렸고, 시험이 끝나고 난 뒤에는 졸업논문에 매달렸다. 바쁘게 살아야지만, 지난 2년간의 기억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버텨낸 것이 1년이었다. 누군가 그랬던가, 시간이 약이라고.

에드를 향했던 감정이 이제는 무엇이었던 건지 알 수도 없게 되었을 때, 오랜만에 등교를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에드를 만나버리고 만 것이었다. 기껏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잊기 위해 얼마나 매달렸는데.

미안해하기는커녕 뻔뻔하게도 노려보며 왜 피하냐고 물어보기까지.

 

 

" ... 에드 피닉스. "

 

 

마루후지는 손에 쥐고 있던 맥주 캔을 들고서 일어나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대로 비틀거리며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엎어졌다. 스트레스 때문인 건지 취기 때문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일주일 동안 2시간씩 잔 탓인 건지.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전에 든 생각은 오로지 논문뿐이었다.

 

 

" 아... 마무리해야 하는데. "

 

 

하지만 마루후지의 눈꺼풀은 버티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고, 서서히 내려오는 걸 견디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마루후지가 잠든 사이에 그의 곁에 있던 휴대폰 화면이 깜빡거리며 켜지더니 여러 차례 연락이 왔다. 화면 속 연락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에드였다. 마루후지의 휴대폰은 주인이 잠든 줄도 모르고 계속 반짝이며 연락을 받았다.

 

[ 료, 연락처는 그대로네? ]

[ 혹시 싶어서 문자 보내봤는데. ]

[ 네가 나에게 기회조차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포기 안 할 거야. ]

 

다음 날, 마루후지가 일어났어도 정신이 없어서 에드가 보낸 문자를 확인할 상황은 없었다.

그가 문자를 확인한 건 며칠이 지나고 나서였다. 여전히 집안에서 졸업 논문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었던 그였기에 에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락조차도 보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띵동.

 

조용하던 집안에 울리는 벨 소리에 마루후지가 집중을 깨고, 고개를 들었다.

마루후지는 천천히 일어나 현관문 쪽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며칠째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한 탓에 그의 몸은 말이 아니게 망가져 있었다. 비틀거리며 겨우 도착한 현관문을 열자, 문밖에는 에드가 있었다.

에드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마루후지가 도로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자 에드는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마루후지는 몸을 돌려 침대로 가려고 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문을 열고서 에드를 보았다. 잔뜩 구겨진 표정이 지금 그의 상태가 예민하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걸 알아차린 에드가 문이 열리자마자 다리를 밀어 넣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 다시 나가도록. "

" 하지만 료, 지금 열나는 거 같은데? 병간호 필요하지 않겠어? "

" 필요 없다. 특히 네 병간호는 더더욱. "

" 받는 게 좋을 거 같네. "

 

 

나가라는 축객령에도 에드는 꿋꿋하게 현관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더니 기어코 집으로 들어왔다.

마루후지가 뒤늦게 에드의 양손이 무겁다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몸을 돌려 침실로 향했다. 이상할 정도로 몸이 무겁고, 몸에 열이 느껴지는데 한기가 느껴져 추웠다.

에드는 자신이 들고 왔던 물건들을 부엌 식탁 위로 올려두고서 마루후지의 앞으로 다가왔다.

조용히 살펴보더니 그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열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미열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마루후지의 팔을 붙잡아 침실로 들어가 그를 눕혔다. 이불을 목 아래까지 덮어주고 토닥이기까지 했다.

에드의 태도에 당황한 마루후지가 인상을 찡그린 채 말했다.

 

 

" ... 차라리 평소처럼 굴지. "

" 아픈 사람한테까지 그럴 생각은 없어. "

" 하... 일단 나가, 난 들어와도 좋다고 허락한 적 없다. "

" 그건 좀 너무한데. 약만 챙겨주고 갈게. "

 

 

마루후지의 말에도 에드는 그저 웃으며 너무하다는 말만 남겼다.

약만 챙겨주고 간다는 말을 끝내고서 에드가 일어나더니 부엌으로 향했다. 마루후지는 부엌에 자신 외에 누군가가 있는 건 처음이었다. 동생이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가족이니까.

당혹스러운 것도 잠시였다. 백색소음을 듣고 있으니, 서서히 잠이 몰려왔다. 

마루후지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 에드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