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생각보다 천천히 사람을 옭아맸고,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마치 전염병처럼 퍼진 감정들은 폭동으로 이어졌고, 폭동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방문을 걸어두는 사람, 무너진 현실에 총을 쥐어 들고 일어나는 사람, 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주는 사람.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폭동은 생각보다 커서 나라가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폭력은 침묵을 낳았다.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점점 거세지는 시민들의 폭동에 나라는 탱크를 앞세우고, 폭탄을 터뜨리고, 총들이 서로를 공격했다.
개인 간의 공격이 어느새 나라끼리의 전쟁이 되어버리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폭동 사이로 일어난 바이러스 사태. 소리 소문 없이 퍼진 바이러스는 조금씩 사람들의 감정을 갉아먹었다. 누군가를 도와주겠다는 배려는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이 되었고, 이성이 사라지고, 본능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확산하여 가는 바이러스에 UN이 나서 성명 발표했다.
[ UN에서는 해당 바이러스를 비말과 공기 중으로 감염을 확인했습니다. 통칭 VI-21은 상당히 위험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증상으로는 과한 폭력성과 잔인함을 보인다고 합니다. VI 감염자를 앞으로 라이엇으로 규정, 그들이 수시로 벌이는 폭동이 발발하고 있으니 시민분들은 당분간 외출을 삼가시고, 불가피한 외출 시 마스크를 착용 후 외출하시길 바랍니다. ]
" 세상이 말세네... "
어느 집안에나 뉴스가 울려 퍼졌다.
그건 세연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세연은 자고 일어나자마자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을 나서기 전,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는 부모님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았다.
출근해야 할 아버지가 집에 계셨고, 부엌에서 밥을 하고 있을 어머니가 거실에 계셨다.
처음 보는 풍경에 멍하니 있을 때, 손에 쥐어진 휴대폰에서 띠링! 알람이 울렸다. 멍때리던 세연이 폰을 보는데, 국가안전문자와 수십 통의 연락이 와있었다. 국가안전문자에서 대통령이 국가 재난을 선포했다고 적혀 있다.
그 문자 이후로 회사에서 오늘 출근을 하지 말라는 연락이 왔다.
" 어? 오늘 출근하지 말래. "
" 뭐? 세현이는 출근했는데... 걱정되는 구나. "
" 음... 어련히 알아서 오지 않을까 싶다만... "
세연의 말에 그녀의 부모는 막내이자, 집안의 유일한 장남을 걱정했다.
그 사이 뉴스에서는 서울 시내에 폭동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명동, 홍대, 강남, 영등포, 마포, 강서구 차례대로 폭동이 일어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 영상 중에는 세연의 동생인 세현이 출근하는 지역도 포함이었다.
가볍게 무시하기엔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 걱정이 앞섰다.
시간이 흘러 새벽, 세연의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 세현을 기다렸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야 할 이는 아침 해가 밝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세연네는 하루 정도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세연의 어머니는 현관을 서성이며 세현을 기다렸다.
" 여보, 세현이가 너무 안 와요. "
" ... 내가 가보도록 할게, 세연이 엄마는 세연이랑 집에서 기다려. "
" 조심해요, 세연이 아빠. "
" 아빠... 조심해야 해! "
세연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걱정을 등에 업고, 세현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하루, 이틀, 나흘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세현은커녕 아버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열흘 동안 두 사람은 기다리면서 집안에 남아있는 음식으로 버티고 있었다. 처음에는 세연의 어머니가 주도하여 생활했지만, 아버지와 세현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현실에 버티지 못했다. 힘들어하는 어머니 대신 세연이 집안일을 도맡았다.
열흘째 되는 날, 음식이 다 떨어지고 남은 게 얼마 없을 때였다.
띵동, 집안에 울리는 벨 소리에 두 사람이 후다닥 현관문 앞으로 다가왔다. 계속해서 울리는 딩동 소리에 세연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가며 현관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세연이 다급하게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 아빠나 세현이였으면 비밀번호 눌렀을 거야. "
" ... 미안하구나, 엄마가 지금... "
" 아, 시발!! "
문을 열지 않자, 문밖의 상대는 문고리를 붙잡고 한참이나 돌려댔다.
헛도는 문고리와 날카로운 욕설에 두 사람은 크게 움찔거렸다. 세연은 혹여나 문이 열릴 것을 감안해서 자신의 뒤로 어머니를 숨겨두고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분위기를 살폈다.
쾅, 문밖의 상대가 문을 거세게 걷어찬 이후로 조용해졌다. 세연이 다급하게 베란다로 가 아래를 보았다.
그러자 다급하게 달려가는 누군가가 보였고, 그 상대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괴물들이 일제히 사내를 덮쳤다. 그 모습에 세연이 움찔거리며 몸을 돌렸다.
5일쯤 되는 날부터 거리에는 괴물로 변한 사람들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한 번씩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괴물은 아무리 봐도 미디어에서 보던 좀비인 것 같았다. 7일째 되는 날에는 뉴스조차도 끊겼다. 10일 째까지는 전기가 나오긴 했으나, 혹시 몰라 4일째부터 물을 받아두고 있었다.
세연은 방금 있던 일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를 재우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라디오를 틀었다.
[ VI 바이러스가 변질되어 더욱 흉폭성을 보이고 있으며... 치지직... 생존자들을 위한... 치직... ]
" 뭐? 생존자들을 위한? "
[ 대피소가 마련되어... 치칙...! 영등포구... ]
세연은 다급하게 종이와 펜을 꺼내 들리는 주소를 끄적였다.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는 대피소에 벌떡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여행용 배낭 가방을 꺼내 며칠 입을 옷과 속옷, 필수품들을 넣고, 얇은 이불을 말아 그 위에 올려두었다.
준비를 마치자, 물리지 않을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향해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큰 식칼과 후라이팬을 챙긴 뒤 부모님 방으로 들어가 어머니가 입을 옷을 별도의 가방에 챙겼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어머니가 입을 옷까지 마련한 뒤에 잠들어 있는 어머니를 깨웠다.
하지만 깊은 잠에 빠져든 건지 전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자, 덜컥 두려움이 다가왔다.
" 엄마, 일어나. 지금 바로 가야... 엄마? "
" ... "
" 어... 엄마, 이러지 마. 응? 겨우 희망을 찾았단 말이야. 우리 거기까지 갈 수 있어. 응? 엄마... "
10분간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는 어머니에 세연이 입술을 꽉 물고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아냈다.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어머니가 눈을 떴다. 세연은 안심하고서 어머니의 옷을 입히고 먼저 앞장서서 대피소로 향했다. 대피소로 가는 길에 조금 위험이 있긴 했다. 어머니와 약간의 실랑이가 있던 탓이었다.
가는 길목에 다른 생존자가 나타났었는데, 피하려고 하는 자신과 달리 어머니는 그냥 지나치기 힘드셨던 것 같다.
저들도 구해야 한다고, 그냥 두고 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 세연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잠깐 실랑이 사이에 생존자가 사라졌고, 그렇게 실랑이도 끝났다.
대피소 앞에 도착했을 때 검문을 위해 이리저리 살피더니 무사히 입장이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입장하지 못했다. 이동하는 사이에 바이러스 감염이 되었다는 게 대피소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세연은 겁에 질린 어머니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 이게 당신들이 말한 구원이라면... 조금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
" 뭐? "
" 저랑 어머니는 이대로 돌아가겠습니다. "
" 당신은 안전한데 왜... "
"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전 엄마를 혼자 내보낼 수 없어요. "
" 허... 아직도 이런 사람이 남아있네. "
세상이 망해가고, 사람들이 이성을 놓고 있을 때.
세연이 몇 되지 않는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세연은 이곳에서 나름의 정보를 얻었다. 통칭 VI좀이라고 불리는 괴물은 VI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물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VI 감염자 역시 흉폭성은 VI좀과 비슷해서 거의 같은 취급을 당하는데, 다른 점은 소통이 가능하냐, 안 되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걸 알게 되었으니, 당장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막무가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측은하게 느낀 건지 대표로 보이던 사람이 나타나 필수품을 주었다.
세연은 자신에게 필수품을 주는 대표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뜻이냐는 듯한 시선에 대표가 짧게 웃으며 세연의 팔을 툭 쳤다. 호탕하게 웃는 것과는 달리 날카로운 비수 같은 말이었다.
" 아직 아무런 희생을 하지 않은 사람이니, 그럴 수 있는 거겠지. "
" 뭐라고요? "
" 여기 있는 모두가 희생을 치루고 여기까지 온 거거든. "
" ... "
세연은 자신의 아버지와 동생을 찾지도 못한 상태에서 저런 말을 들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세연의 눈빛이 날카로워지자, 맞은편에 선 생존자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제야 세연은 저들도 소중한 가족이나 연인을 잃고 이곳에 있는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뜨던 세연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말은 모든 걸 버리고, 사는 것조차도 포기하려고 하는 이들을 향한 말이었고 인간임을 버리는 자들을 향한 외침이었다. 대피소라는 희망을 찾아 끝까지 이곳에 도착한 자신처럼 의지를 가지라고.
"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가요. 믿을만한 게 있으면 더 살고 싶어지죠. 저는 비록 10일이 지났지만, 아직 아빠랑 동생이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제 눈으로 본 건 없으니까... "
" ... 꼭 살았으면 좋겠군. "
" 네, 당신도 꼭 살았으면 좋겠어요. 가요. 엄마. "
" 세연아... 너라도 여기에 있는 게... "
" 아니야, 엄마. 그리고... 과거에 살지 마세요, 현실에 살아야죠. "
세연의 말에 모두가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한참 어려 보이는 여자의 말이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비록 두 사람은 떠났지만, VI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처럼 인간이길 포기하고 있던 사람들에겐 세연의 말이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았다.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희망찬 내일이 올지도 모른다고.
세상이 망해가고, 괴물로 변해가며 본능에 취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임을 잊지 말라. 대피소의 대표와 세연이 다시 만나는 건 1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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