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H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과 동행하고 있는 이를 동경했다.
누군가를 동경한 적 없었던 그였지만 가는 길이 같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가볍게 생각하는 머리는 사고 방식이 부드럽고, 유연했으며 가고 싶은 곳으로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그녀를 동경하고 있으니까. 그 동경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서로 이름조차 모르던 그녀였고, L의 누나로만 인지하고 있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이름조차 알 수 없다는 이유로 통성명을 하고, 함께 있으니 알아야 한다는 목적으로 대화를 통해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알아갔다. 모두 핑계였고,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꽤 돌고 돌아 먼 길로 가는 탓에 시간이 꽤 걸리고 말았지만.
" 오, K H. "
" ... p. "
" 여기서 뭐 합니까? "
" 시간이 지나는 걸 보았습니다. "
" 예? 그걸 왜... "
p H은 잠시 모닥불을 지펴줄 나뭇가지를 가지러 다녀온 사이에 멍하니 있는 K H를 발견했다.
가지고 있던 나뭇가지 뭉치를 옆구리에 끼우고서 K H에게 말을 걸었다. 리더를 대하는 말투가 항상 불량스럽다며 타박을 주던 이들은 전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식량을 구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주변을 살피며 걸어오던 p H은 모닥불 안으로 나뭇가지를 밀어 넣으며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답을 줘도 한쪽 귀로 듣고 마저 흘려버려도 상관없는 질문이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돌아오는 답이 되묻지 않고서는 안될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는 걸 보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되물어보는 말에도 K H는 굳건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 오... 제가 실수했습니까? "
" 그건 아닙니다. 그저... "
" 그저? "
" 시간이 이렇게 지나도록 버틸 수 있는가,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교차되어서. "
" 아, 그거라면... 뭐 어떻게든 되겠죠.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
" ... 그런가. "
K H가 입을 굳게 닫아버리고 입을 닫아버리자, p H은 힐끗 그에게 시선만 주었다.
짧게 들어갔다가 나온 시선은 타닥타닥, 불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을 보았다. 물어보지 않았어야 했냐는 말에 K H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건 아니라고 답했다.
누군가에겐 괜한 생각일지도 모를, 그런 진지한 고민에 p H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다는 듯 말을 흐렸다.
그런 와중에도 K H는 고개를 들어 모닥불을 피우고 있는 그녀의 등을 보았다. 복잡해지는 머릿속에서 유일하게 또렷한 단 하나, p H.
' 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당신은 내 곁에 없겠죠.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갈 사람이니까. 제가 당신에게 고백을 한다면... 그땐 당신과 함께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고백하는 순간 당신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에게 빠져들고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임에도 말이지. '
K H가 가볍게 마른세수를 하더니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시선이 올곧도록 단 한 사람에게만 향해 있었다. p H은 등이 따끔거리는 게 느껴지는 탓에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있는 사람이라고는 K H가 전부였다.
p H이 확인했을 때, K H는 모닥불을 보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몸을 돌렸다. K H의 눈동자가 모닥불에서 다시 p H의 등으로 향했다. 언제인지 알 수 없고, 떠올릴 수 없지만 자신의 시선 끝은 항상 p H의 등으로 향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녀의 정면을 쫓은 적은 없었다.
" 사람들이 참 늦는군요. "
" ... 어, 그러고 보니. 너무 멀리까지 나간 거 아닐까요? "
" 조금 더 기다려보죠. "
" 예? 안 찾아보고요? "
p H의 반문에 K H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온전히 그녀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아쉽게도 그녀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런 p H의 행동에 K H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K H와 p H은 같은 목적을 가졌고, 도착지도 같았다.
심지어는 보고 있는 방향조차 동일했다. K H는 만약을 생각했다. 만약, 정말 아주 만약에 문의 그림자니, 인식의 문이니 이런 이야기가 없고, 능력자도 없었더라면.
그랬더라면 K H라는 사내가 p H이라는 여인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조용한 밤하늘, 찌르르 울리는 풀벌레 소리,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 소리, 사락사락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쿵쿵, p H을 생각하면 울리는 K H의 심장 소리.
" K H, 잡니까? "
" 안 잡니다. "
" 그럼, 눈 떠서 저거나 좀 보십쇼. "
" ... "
K H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밝게 빛나는 보름달을 등지고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p H의 얼굴이었다. 밤하늘과 같은 검은 머리카락, 선명하게 불타오르는 붉은 눈동자, 무덤덤한 표정.
p H의 얼굴을 보는 순간 K H는 자신의 심장이 쿵 떨어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순간 훅하고 들어온 감정에 혼란스러웠다. 보름달이 아름다워서 그런가, 밤하늘에 수 놓인 별들이 너무 반짝여서 그런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 깜깜하기만 한 밤이 너무 어두워서 두려운 건가.
K H는 자신의 손을 올려 심장께에 올렸다.
가만히 올려둔 손바닥에 쿵, 쿵. 울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처음에는 작았던 소리가 커지면서 귓가에 닿아 커지는 게 K H의 머릿속을 더욱 어지럽혔다.
" 이건, 아니... 이상한데... "
" K H? "
" ... 왜... "
" ...? 제 말 씹습니까? 저기요? "
K H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향한 사랑을 자각해 버리고 말았다.
조금 다급한 손길로 가슴을 더듬어 심장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러는 사이 그의 시선이 다시 p H에게로 향했다. 항상 뒷모습만 쫓다가 제대로 마주해버린 순간 그는 그녀를 사랑해 버리고 말았다.
단순히 사랑만 하는 게 아니라 깊은 늪에 빠져버린 듯 잠겨버렸다.
멍하니 있다 보니 p의 목소리는 전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K H는 그녀를 사랑함과 동시에 동경이 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게 뭐지.
난생처음 겪어보는 복잡한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 p, 듣고 있다만. "
" 이야, 그건 방금 알았네요. 성격마냥 귀도 막은 줄 알았지 뭡니까. "
" 만약... 이 길의 끝에 도달한다면... 떠날 건가? "
" 네, 당연하죠. "
" ... 당, 연한 말이었군. 그래. "
K H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곧바로 후회하게 될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편한 반말인지, 불편한 존댓말인지 알지 못할 애매한 말들이 오갔다. K H의 질문에 p H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그의 말에 답했다. 그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에 K H는 숨이 턱 막혔다.
심장에 묵직하게 들어온 날카로운 답에 순간이지만 눈앞이 깜깜하게 느껴졌다.
아찔하게 느껴지는 통증에 숨을 잘못 삼켜서 하마터면 p H 앞에서 실수할 뻔했다. 그녀 몰래 숨을 내뱉은 K H는 표정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쓰고 있던 모자를 꾹 눌러썼다.
p H은 그런 K H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문제라도? "
" ... 없지, 없고말고. "
" 아, 이제 오네요. "
식량을 구하러 나섰던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두 사람의 의미 없는 대화가 끝을 맺었다.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의 사이는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다들 쉬쉬하며 조용히 지나가길 원하는 눈치였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로 두 사람은 부쩍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적어도 거리를 두는 건 K H였다.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을 믿고 싶지 않아서, 은연중에 거절하게 되는 걸 알고 있어서. 그 감정을 인정했다가는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K H는 자신의 감정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리를 두려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p H은 K H가 오히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가까이 다가왔다.
K H는 그게 싫으면서도 밀어내질 못했다.
" K H, 저 피합니까? "
" 피하는 거 아닙니다. "
" 말만 그렇게 하잖아요. 애도 아니고 뭡니까? "
" ... "
" 씹어요? 씹습니까? "
" 그런 거 아니다. "
K H는 자신의 뒤를 쫓아오면서 굳이 왜 피하냐고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p H을 피하기에 바빴다.
피하지 않았다고 말해봤자,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명백히 피하고 있는 행동이었다. p H이 날카로운 질문을 하자, K H의 입은 절로 다물어지고 말았다.
무시하냐는 p H의 말에 K H는 힐끗, 시선을 주다가 이내 돌려버리며 말을 삼켰다.
p H은 평소 안 그러던 사람이 이런 취급을 하고 있으니, 화가 났다. 어딘가에 소속이 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자신이 겨우 함께 길을 가기로 정한 사람이 바로 K H였다.
그런데 이런 취급은 달갑지 않아서 직접 대면하기 위해 그를 불렀다.
하지만 계속해서 피하기만 하는 모습에 절로 짜증이 났다. 이제까지 함께 해오면서 과거에 매여 고인 채 썩어가고 있는 자신과 다르게 멈추지 않고 유려하게 흘러가고 있는 저 남자의 성향을 존중하고 동경해 왔다.
어쩌면 오늘부로 그걸 멈춰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당신답지 않게 뭐합니까? 왜 피해요? "
" ... 그건 내가 너에게 묻고 싶군. "
" 예? "
왜 피하는 거냐는 물음에 K H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들더니 곁눈질로 시선을 주었다.
오히려 묻고 싶은 입장이라는 듯한 태도에 p H은 어이가 없었다. 분명 자신을 피하고, 거리를 두던 건 그였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반문에 K H는 겨우 붙잡았던 팔을 놓고서 어딘가 불안한 눈빛을 한 채 자리를 떠났다.
'에덴로즈 타입' 카테고리의 다른 글
[NL/설정/241220] 人間讚歌 (0) | 2025.02.18 |
---|---|
[HL/1차cp/241213] 감정의 변화 (0) | 2025.02.17 |
[HL/자컾/240821] 연정(戀情) (0) | 2025.02.15 |
[BL/자컾/241118] What happened? (0) | 2025.02.15 |
[HL/드림/241115] Family (0) | 2025.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