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HL/드림/250101] 고민중독

나비의 보관함 2025. 2. 19. 19:58


타키온은 최근 고민이 심각하게 늘어났다. 

렌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의식중으로 나오는 행동은 이미 자신이 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끝끝내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인정조차 하지 않은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까지 했었다.

하지만 어디 감정이라는 게 쉽게 조절이 가능하던가, 미물조차도 감정 조절은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분출해도 모자랄 판에 억누르고, 통제까지 하려고 하니 날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힘들기만 할까. 점점 망가져 가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알아차릴 정도였다.

 

 

" 하... "

 

 

타키온은 문득 자신이 무의식중에 습관적으로 평소에 마시지도 않는 블랙커피를 마시려고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고민만 아니었더라면 단 것과 홍차를 마셨을 자신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중독처럼 따라붙는 고민때문에 홍차가 아닌 블랙커피를 자주 찾았다. 자주가 얼마 정도냐면 하루에 두, 세잔 정도가 아니었다.

한자리에 앉아 렌을 생각하면서 마시면 어느새 5잔을 연달아 마시는 건 기본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통제하지도 못한 채 본능적으로 나오는 행동에 대한 답답함까지 더 해지자 망가져 가는 건 한순간이었다. 타키온은 복부에서부터 쏟아지는 짙은 숨을 토해냈다.

이미 렌으로 머릿속이 가득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질 않는군. "

 

 

타키온은 최근에 주변인들에게서 받았던 오해를 떠올렸다.

주변에서조차도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릴 정도로 감정이 노골적으로 티가 나버린 상태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생애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더더욱 당황스럽기만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처음에는 내심 렌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 주길 바랐다.

렌이 먼저 눈치채고, 좋아한다고 고백해 주기를 바라면서 은근슬쩍 마음도 흘려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렌은 이런 쪽으로 전혀 눈치가 없는 사람인 건지 알아차리기는커녕 알아듣지도 못했다.

이게 반복되니 답답해지는 건 타키온뿐이었다.

 

 

" ... 카페에게 가볼까. "

 

 

타키온은 평소 정신없이 발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낮게 가라앉은 모습을 하고서 어디론가 향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그리 많은 이동을 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몇 걸음, 바로 옆에 있는 맨하탄의 방으로 가는 것이었기에 가까우니 멀리 갈 필요가 없었다. 타키온이 맨하탄의 방을 두드리기 전에 렌의 사무실에 시선을 주었다.

종종 철야할 때 감시하기 위해 자신의 방과 가까운 곳에 사무실을 두었다는 게 처음에는 좋았다.

렌도 자신에게 관심이 있으니까, 감정이 있으니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렌에게는 그런 일말의 마음조차 없어 보인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크게 상심하고 말았지만.

똑똑, 맨하탄의 방을 두드리자 1분도 걸리지 않아 방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 무슨... 일이에요? "

" 카페, 잠시... 대화 가능할까? "

" 네... 가능해요, 들어오세요. "

 

 

타키온이 고민을 털어놓을 존재는 그녀에게 가장 믿을만한 친구이자 동기인 맨하탄이 유일했다.

언제나 발랄하고 정신없는 그녀가 조금 시무룩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맨하탄은 신경 쓰였는지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그 물음에 조금 뜸을 들이던 타키온은 대화 가능하냐고 말했다.

맨하탄이 입구에서 몸을 비켜주며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타키온이 맨하탄의 방 안으로 들어가서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맨하탄은 홍차를 꺼내오며 타키온에게 내밀었다. 타키온은 자신의 앞에 내민 홍차에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천천히 홍차를 마셔보지만, 직전까지 마셨던 블랙커피의 쓴맛이 남아있던 탓에 홍차의 맛이 배로 느껴졌다.

남아있던 쓴맛 위로 달달한 홍차가 덧씌워지자, 타키온이 입맛을 다시며 마시던 걸 멈추고 찻잔을 내려두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맨하탄이 살짝 놀란 눈빛으로 보며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 ...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

" 어? "

" 홍차를... 다 안 마셔서요. "

" 아아... 카페, 너는 모르겠지만... 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네. "

" 당신이 렌을 좋아하는 거요? "

 

 

조심스럽게 입을 열던 타키온은 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그러자 맨하탄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맞장구치며 답을 했고, 그녀의 반응에 타키온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열심이 부정하며 억누르고 통제해 왔던 걸 가장 친한 친구가 모를 리 없다는 걸 깨달았다.

타키온은 맨하탄이 알고 있다는 것에 감추었던 자신의 속내를 말했다. 

자신이 이제까지 렌을 보고서 느꼈던 감정과 그간 억누르고 통제해 왔던 것, 그리고 지금 자신이 점점 망가져 가고 있는 것까지 말했다. 자신이 최근에 홍차나 달달한 것을 찾지 않고, 블랙커피를 줄곧 마셔왔던 걸 예를 들었다.

그러자 걱정이 묻어나오던 맨하탄의 목소리에 근심까지 더해졌다.

 

 

" 당신은... 어쩌고 싶으세요? "

" 나는... 잘 모르겠어. "

 

 

맨하탄은 타키온을 배려하려는 듯 자신이 마시려고 타둔 커피를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타키온이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담을 가장한 심정 토로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깨달은 모양 인걸까, 타키온은 렌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명확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고민하고, 생각할수록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맨하탄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해버린 걸지도. 지금처럼 망가지는 자신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이 잔뜩 들어서,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선수 시절의 렌에게서 느꼈던 광기와 집착이 찬란하게 빛났던 것에 흥미를 느꼈을 때처럼.

 

 

"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을 정리하기엔 아깝잖아요. "

" ... "

" 전 당신이 그 예쁜 마음을 전했으면 해요. "

 

 

타키온은 솔직히 누군가가 이 말을 해주길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제대로 고백조차 하지 않고서 말하지 못한 마음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지. 렌을 향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게 스스로도 느낄 정도였으니까.

좋아하는 마음이 이토록 확실하니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다.

애써 부정하고 외면하며 억누르고 통제하던 걸 멈추기로 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무거웠던 마음이 한풀 후련해진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