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구슬 편
부제 :: 예민한 언니
은정에게 벌어진 일이 있고 며칠, 댄스부 사람들이 돌아가며 은정의 등하교를 함께했다.
물론 수업 시간을 제외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도 함께했는데, 그 탓에 은정에겐 동급생 친구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댄스부와 보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불만이 없었던 사람조차 이런 일정을 보내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은정은 불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댄스부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를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 부분에 대해 질투나 시기가 없던 게 아니었다.
은정은 최대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 후... 은정아, 거기에선 이렇게... "
" 아, 이렇게요? "
" 조금만 더 올려볼까? "
" 이렇게 말이죠? "
그 며칠 사이에 동아리실을 옮기고, 그 새로운 동아리실에서 춤 연습을 하게 되었다.
거울을 보며 춤 연습을 하고 있던 은정의 곁에 하윤과 수아가 다가와 자세를 봐주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은정의 틀린 자세를 고쳐주며 가벼운 터치를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작은 예은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목에 걸려있는 수건으로을 땀을 닦아내며 결국 참지 못한 불만을 터트렸다. 작은 예은는 개인적으로 은정에게 관심이 가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관심에 그쳐있는 상태였다.
거기다 무엇보다 자신의 꿈이자 중요한 댄스부에서 잘 추지도 못하는 사람과 춤을 추는 건 고역이었다.
" 언니, 꼭 은정이까지 같이 해야 해요? "
" 은정이도 우리랑 같은 댄스부야, 예은야. "
" 아직 정식 댄스부도 아니잖아요. "
" ... 예은야,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
작은 예은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에 리더인 지안이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계속해서 짜증을 내며 말하는 작은 예은의 태도에 지안이 조용히 작은 예은를 불렀다. 두 사람이 나가고, 남겨진 은정과 하윤, 수아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건 은정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다치지 않게 도와주던 사람이 그녀였다. 그런데 왜 며칠만에 저렇게 태도가 바뀐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너무 춤을 못 추는 탓인 건가? 그래서 그러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한 탓에 집중해서 춤을 출 수가 없었다.
대신 온 마음과 머리로 그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씩 이해하면서 공감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단순한 대회라고 해도 모든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라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 그, 은정아... 아마 예은가 곧 있을 무대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걸 거야. "
" 정말... 그럴까요? "
" 응. 대회를 코 앞에 두면 한 번씩 저래. "
" 나중에 대회 끝나고 나면 분명 미안하다면서 선물 줄걸? "
" 하하... "
곁에 있던 하윤과 수아가 어설프게 우울해 보이는 은정을 위로해 주기 시작했다.
그 어설픈 위로가 은정에게 의외로 큰 위로로 다가왔다.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하윤과 수아의 말에 결국 은정이 푸흐, 소리를 내며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큰 예은와 서연이었다.
두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분위기가 이상한 걸 보고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거기다 큰 예은는 은정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있는 걸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은정의 양 볼을 붙잡아 빤히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버럭 소리치며 화를 냈다.
" 뭐야, 무슨 일이야? "
" 무슨 일 있어요? "
" 아... 큰 예은 언니... "
" 어??? 은정이 울었어? 누가 우리 은정이 울렸어?! "
" 아, 그게... "
은정은 큰 예은의 손길로 인해 볼이 짜부가 되어 으붑거린 채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상황 속에서 하윤과 수아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말하기를 뜸 들였다. 그러다 결국 입을 달싹이다가 앞서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까지 덩달아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들과 은정이 함께 춤을 연습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았다.
곧 있을 학교 축제에서 댄스부가 대표로 축제 마지막 날을 장식하기로 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은정까지 무대에 함께 올라가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이야기에 대다수가 찬성했다.
그래서 은정이 춤을 연습하고 있던 거였다.
" 작은 예은가 그랬다고? "
" 네... "
" 흠... 괜찮아, 은정아. 언니가 혼내줄게. "
" 네? 괘,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
" 정말로? "
" 네... 곧 대회 때문에 예민해지시는 거라면요. "
" 그것도 그렇지. "
이야기를 듣고 있던 큰 예은가 은정의 뺨을 놓아주며 자신이 혼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은정이 다급하게 큰 예은를 말렸다. 작은 예은의 모든 심정을 이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창 예민할 때라고 같이 생활하던 사람들이 말했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제일 믿고 싶기도 했으니까.
들어보니 며칠 뒤에 중요한 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K-POP 댄스 경연 대회였는데, 아무래도 거기에서 우승하면 커리어에 남을 정도로 알아주는 대회라서 더욱 열중하고 있다고. 제대로 춤추는 것이 집중 안 되고 있는데, 쌩초보에 가까운 은정까지 돌봐주려고 하니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던 모양이다.
은정이 그래도 두 사람이 걱정되던 모양인지 힐끔거리며 문을 보았다.
" 은정아, 춤 연습에 집중해야지. "
" 맞아. 나중에 작은 예은한테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보여줘야지. "
" 맞아요! 완전 열심히 할 거예요. "
두 사람이 나간 이후로 계속해서 은정의 정신은 오로지 밖으로 향해 있었다.
지안과 작은 예은가 돌아오길 바랐지만, 열심히 연습을 하는 내내 들어오지 않았다. 은정은 춤 연습을 하면서 못 해도 작은 예은가 스트레스받는 일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집중했다.
언니들에게 말했던 대로 작은 예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 뒤로 며칠이 흘렀는데도 은정과 작은 예은가 마주치는 건 흔치 않았다. 그나마 식사 시간에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정도? 지안이에게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말이 있었다.
" 예은는 대회 끝나고 나서부터 같이 연습할 거야. "
" ... 저 때문인가요? "
" 아니, 그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
지안의 말을 들은 날 이후부터 은정은 오로지 춤 연습에 몰두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때, 은정은 딱 하루만 춤 연습을 쉬었다. 이유는 그날 댄스부 동아리의 대회 출전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큰 무대 위에 화려하게 입고 화장한 댄스부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은정은 그저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거울을 보며 연습했던 것과는 확실히 전문가인 느낌이 확 살아났다. 아무리 연습해도 작은 예은의 눈에 찰 수가 없었던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은정의 눈은 그녀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걸 눈에 담고, 귀로 들었으며 마음에 고이 간직했다.
대회를 마치고 새빛여자고등학교 댄스부가 우승을 차지했을 때, 은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스테이지에서 은정은 예쁘게 꾸며진 꽃다발을 작은 예은의 품에 안겨주었다.
" 언니,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
" ... "
" 저 더 열심히 해서 축제 때 엄청 실력 늘려올게요! "
" ... 그렇게 무리 안 해도 돼. 저번에는... ... 내가 미안했어. "
" 아니에요. 언니에게 이 대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는걸요. "
" 은정아, 고맙다. "
작은 예은는 자신이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말을 했는데도 씩씩하게 웃으며 자신을 축하해주는 은정을 보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배로서, 언니로서 더 신경 써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성질을 부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여기서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도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은정이 해맑게 웃어주었다.
은정의 웃음에 작은 예은도 함께 웃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은정은 그대로 침대 위로 엎어졌다.
침대에 얌전히 누워서 오늘 보았던 무대를 다시 회상했다. 박자에 맞춰 절도있게 이어지던 춤들, 관중들을 바라보던 언니들의 시선, 어느 각도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에 확 띄는지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은정은 그런 그녀들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자신들의 꿈을 꾸며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녀들이 너무 부러웠다. 문득 무대를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자신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 난... 뭘 하고 싶은걸까... "
새빛제단이 목표로 하고 있던 걸 은정이 알아차리고 있는 중이었다.
새빛제단, 그곳은 학생들의 꿈과 미래를 위해 양성하고자 만든 곳이 중, 고등학교였다. 그곳에 인재들을 모아 선배들은 앞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후배들은 그런 선배들을 보며 달려가는 것이다.
댄스부 선배들로 인해 제대로 자극받은 은정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연습 영상을 틀어놓고서 춤 연습을 이어갔다. 여기서 쉬고 있다간 실력이 늘어날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은정은 지칠 줄 모르고 새벽 내내 춤 연습에 집중했다.
.
.
.
다음 날, 학교에 등교한 은정의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오늘 등교는 지안과 함께 하기로 했던 날이었고, 지안은 누구보다 은정의 상태를 보자마자 바로 알아차렸다. 당황스러운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은정을 보았다.
" 은정아... 몸 상태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니? "
" 아... 지안이 언니, 전 괜찮아요... 하음... "
" 졸린 거야? "
" 어제... 춤 연습을 조금... "
" 너무 무리하지 마. "
은정은 지안과 이야기를 하는 내내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하품을 길게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안이 속상하다는 듯이 그녀를 보면서 걱정이 가득 담긴 말을 건넸다. 그 걱정에 은정이 꾸벅꾸벅 졸면서 괜찮다고 답했다. 등교하기 위해 걸어가는 내내 은정은 졸음으로 인해 계속 비틀거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업조차 제대로 듣기 힘들어서 졸기까지 했다.
" 전학생!! 수업 시간에 자는 건 무슨 예의죠? "
" 헉! 죄송합니다! "
" 나가서 세수라도 하고 오세요! "
" 넵! "
결국 졸던 걸 선생님에게 들킨 은정이 잠을 깨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은정이 나가고 나서 몇 분 지나지 않아, 같은 반 교실에서 손을 들고서 잠시 밖으로 나온 여학생이 존재했다. 그 여학생은 은정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캐비지 로즈 타입' 카테고리의 다른 글
[GL/나페스/241125] 엄친딸, 그 언니들. 5화 (0) | 2025.02.15 |
---|---|
[GL/나페스/241123] 엄친딸, 그 언니들. 4.5화 (0) | 2025.02.15 |
[GL/나페스/241122] 엄친딸, 그 언니들. 3.5화 (0) | 2025.02.15 |
[GL/나페스/241121] 엄친딸, 그 언니들. 3화 (0) | 2025.02.15 |
[GL/나페스/241120] 엄친딸, 그 언니들. 2.5화 (0) | 2025.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