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구슬 편
부제 :: 미쳤나 봐.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은정과 댄스부 사람들은 댄스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까지 학생들이 댄스부 사람들의 근처에 모여들어 댄스부까지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주변에 울리는 소음과 선물 공세에 은정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영혼이 쏙 빠져나가 버릴 정도로 혼미했던 시간이었다.
특히 댄스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생팬 부대에 발걸음조차 떼어내기가 힘들었다. 특히 댄스부 선배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몰려오는 인파로 인해 은정은 힘없이 밀리기까지 했다.
인파로 인해 밀리고 밀려서 엉뚱한 곳으로 도망친 은정이었다.
" 여긴... 어디지? "
그렇게 밀리고 밀려서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다.
하필 전학 첫날이었기에 지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은정이었는데, 낯선 주변에 바짝 긴장한 채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그러고 있길 30분, 교내에는 수업을 시작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은정은 혼자서라도 길을 찾아 댄스부 동아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을 옮겨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유리 문을 여는 순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는 순간 은정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큰예은와 수아를 보았다.
길 잃은 사이에 겨우 다시 보게 된 선배들이 반가워 인사를 하려고 할 때였다.
누군가 은정의 팔을 붙잡아 확 당겼다. 쨍그랑, 큰 소리가 울렸다. 은정은 갑자기 당겨진 탓에 정신이 없어서 뒤늦게 자신을 당긴 사람을 확인했다. 팔을 잡아당긴 사람은 작은 예은였다.
" 작은 예은 언니? "
" 하... 큰일 날 뻔했잖아. "
" 네? 헉... "
큰일 날 뻔했다는 말에 은정이 고개를 돌려 바닥을 보았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서 있었던 자리에 화분이 산산조각이 나서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다. 은정은 작은 예은가 자신을 잡아당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가자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그 순간 2층 쪽에서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정은 단순히 사고겠거니, 생각하려고 했었지만 뒤이어 들려온 혀를 차는 소리에 누군가 자신이 다치길 원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자 소름이 돋았다. 순수하게 사람이 다치길 바라는 악의가 좋을 리 없었다.
은정이 몸을 떨고 있자, 보고 있던 작은 예은가 은정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 은정아, 괜찮아? "
" 하아... 미안해. 점심시간이 끝나면 그렇게 몰린다는 걸 깜빡했어. "
" 우리한테는 익숙한 일이라... 괜찮아? "
뒤늦게 은정에게로 몰려든 지안과 하윤, 큰 예은, 서연이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잔뜩 겁에 질린 모습에 오늘 춤 연습은 쉬어야겠다며 보건실로 가자는 지안의 말에 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도 이런 적이 없었던 은정이었기에, 오늘 일어난 일이 낯설고 두려웠다.
지안이 은정을 보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 나랑 하윤이가 보건실에 은정이를 데려다줄게. "
" 응. "
" 서연이랑 작은 예은는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 모셔 와 줄래? 일단 여기도 치워야 하니까. "
" 그럴게요. "
" 큰 예은랑 수아는 은정이네 반에 가서 가방이랑 물건 좀 챙겨와 줘. "
" 네, 바로 보건실로 갈게요. "
" 그래. 다들 보건실에서 보자. "
리더인 지안의 말 아래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지안과 하윤은 은정과 함께 보건실로 향했고, 서연과 작은 예은는 교무실로 향했다. 큰 예은와 수아는 은정이네 반으로 가서 가방과 그녀의 물건을 챙겼다.
보건실에 도착해서 은정을 침대에 눕히자, 은정은 긴장이 풀렸던 모양인지 잠시 잠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안과 하윤은 자신들의 잘못이라며 은정을 두고 잠시 보건실 밖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보건실에는 잠든 은정만 누워있었다.
그때 은정의 옆 침대에서 커튼이 걷히더니 사람이 나타났다.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갑자기 나타난 그 사람은 가만히 잠들어 있는 은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건실 밖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지안과 하윤은 맏언니로서 어떻게 해결할 건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꺄아악!!! "
" ... 무슨 일이야?! 은정아! "
" 흑, 흐아... "
" 너 뭐야! "
" 언니... 얘가 자꾸 언니들한테 달라붙잖아요. "
보건실 안에서 은정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놀란 지안과 하윤이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와 상황을 파악했다. 잠깐 사이에 액체에 젖은 은정과 그런 은정을 향해 무언가를 뿌린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던 여학생이 보였다.
그 여학생은 은정과 동갑내기 정도로 보이는 앳된 소녀였다.
눈이 반쯤 풀린 채 입꼬리를 씰룩이며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지안과 하윤의 곁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그 발걸음은 하윤이 다가와 저지하는 순간 멈추었다.
지안이 다급하게 은정에게로 달려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 흑... 언니... 이상한 냄새가 나요... "
" 뭐? 하윤아, 뭘 뿌린 건지 확인 좀 해봐. "
" ... 지안아, 은정이 데리고 빨리 화장실 가봐. 이거 묽은 염산이야. "
" 은정아.... 여기 샤워실 있으니까 가서 씻는 거부터 먼저 하자. "
" 언니이... 흐엉... "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은정의 모습에 지안이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보았다.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급하게 자리를 피하기 위해 보건실 밖으로 나섰다. 하윤은 가해자 학생을 더 옭아매며 반항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지안이 은정을 옮기는 모습을 보고 눈이 돌아간 건지 가해 학생이 날뛰기 시작했다.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탓에 움직이던 은정의 몸이 움찔거렸다.
지안과 은정이 나가고 나서야 하윤이 붙잡고 있던 팔을 놔주었다. 하지만 가해 학생은 자신의 잘못을 알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더 잘했는데 왜 칭찬을 안 해주냐는 듯이 굴었다.
그 모습에 하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때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사람들이 복도를 보다가 시선을 돌려 하윤을 보았다.
" 은정이는 어디 가는 중이래요? "
" 헐...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
" 하... 애들아, 일단 얘부터 잡고 있어. 서연이는 가서 주임 선생님 불러오고. "
" 네? 네. "
" 무슨 일인데요? "
하윤은 곁으로 다가온 댄스부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몰랐던 그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지면서 가해 학생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에 덜컥 겁을 먹은 건지 가해 학생이 다급하게 자기변호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이미 늦은 사실이었지만.
가해 학생이 몸을 덜덜 떨면서 다급하게 눈을 굴려 자신을 노려보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말 따위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이들에게 싸늘한 눈빛을 받는다는 건 버티지 못할 일이었다.
선생님을 부르러 갔던 서연이 돌아오면서 상황을 정리했다.
.
.
.
" 은정아, 괜찮겠어? "
" ... "
" 온수로 씻어내고 나면 괜찮아질 테니까, 일단 이걸로 깨끗하게 씻고 나와.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
" 네... "
난생처음 겪어보는 테러에 혼이 나가버린 듯 멍하니 있는 은정이었다.
그런 은정에게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가던 지안도 잠시 은정이 혼자 있게끔 자리를 비켜주었다. 따뜻한 온수의 온도를 맞춰준 뒤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은정은 혼자 남아서 멍하니 있다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분명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재밌고 즐거워서 새로 전학 오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것도 아니고 몇 시간 만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온수를 온몸으로 받으며 생각을 정리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 어떻게 됐어? "
" 선생님이 학폭위 열 거래. 이건 가볍게 넘어갈 사안 아니니까. "
" 그렇지... "
" 은정이는 어때요? "
" ... 아무래도 은정이 멘탈이 많이 나간 거 같아. 전학 첫날부터 이런 일이 생긴 거잖아. "
" 같이 있었어야 했는데... "
은정이 씻고 있는 동안 샤워실 앞으로 댄스부 사람들이 모였다.
가해 학생의 처분을 선생님에게 넘긴 하윤이 지안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지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은정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은, 고작 몇 시간 만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컸다.
지안을 포함한 6명은 자신들의 인기가 이렇게까지 거슬린다는 생각이 드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인기가 많아도 오히려 모두가 우리를 알아준다는 것에 더 열심히 했었는데, 호감이 있는 아이에게까지 피해를 끼치는 관심은 원하지 않았다.
6명은 앞으로 이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기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
.
.
" ... "
" 은정아, 다 씻었어? "
" 아... 언니, 네. "
" ... "
" 언니? "
" 우리가 미안해. "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씻고 나온 은정의 모습은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초쵀해져있었다.
보다 못한 작은 예은가 아무 말 없이 은정을 안아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윤과 수아가 함께 은정을 안았다. 씻고 나왔더니 안아주는 언니들의 행동에 당황한 은정이 그들을 불렀다.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오는 것에 은정이 고개를 내저으며 괜찮다는 듯 웃었다.
애써 괜찮다는 듯 웃는 게 눈에 보여서 6명의 마음이 더 불편했다. 괜히 더 미안하고,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쓰였다. 씻고 나온 은정과 6명은 댄스부 동아리로 향했다.
은정을 의자에 앉히더니 6명이 맞은편에 앉았다.
" 은정아, 조만간 동아리실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갈까 해. "
" 네? "
"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안 벌어질 거라고 장담 못 하잖아. "
" 그건... 그렇죠. "
은정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언니들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그녀들을 보았다.
앞으로의 상황을 설명해 주는 언니들의 모습에 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은정이 원한다면 멘토를 바꿀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겠다고 하는 말까지 들었다.
놀란 은정이 고개를 저어대면서 굳이 그럴 필요 없다며 다급하게 말했다. 은정의 거절에 안심하는 사람이 몇몇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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