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차일드 타입

[BL/자컾/241118] 이상 현상을 입력하십시오.

나비의 보관함 2025. 2. 15. 00:01



[ 치칙, 어서 오십시오. 이곳은 미러 하우스.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

 

 

 

베키와 녹턴은 하루, 딱 하루만 알바를 해달라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 이곳에 도착했다.

 

하얀색으로 도배되어 있는 웅장할 정도로 넓은 공간, 그곳에 서 있으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주변 배경으로부터 느끼는 기묘한 감각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허공에서 음성이 울려 퍼졌다.

 

흠칫 놀라는 녹턴과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베키의 앞으로 두꺼운 안경을 낀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의사 가운을 입고서 투명한 판을 몇 번 두들기더니, 판과 두 사람을 비교하며 살펴보았다.

 

사내의 시선에 베키는 눈길을 흘리며 명찰을 보았고, 녹턴은 다정한 미소를 보였다.

 

 

 

 

 

" 로바. 이쪽은 오늘 하루만 잠시 일하게 될 신입들이다. 안내를 부탁하지. "

 

[ 예, 매니저. 제 이름은 LOVA-2303a. 매니저처럼 로바라고 부르면 됩니다. 당신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

 

" 베키 녹스. "

 

" 아, 녹턴 발렌시아입니다! "

 

[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는 선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오시길 바랍니다. ]

 

" 베키, 아무래도 로바는... AI인가봐요. "

 

" ... "

 

[ 예. 저는 미러 하우스에서 개발한 안내형 보안 AI입니다. ]

 

" 헙... "

 

 

 

 

 

사내는 녹턴의 시선에 마른기침을 몇 번 하더니 누군가를 부르는 듯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아까 들려왔던 음성이 들려왔다. 자신을 로바라고 소개한 목소리는 두 사람에게도 소개를 권했다. 상반되는 두 사람의 반응에도 여전히 기계적인 로바의 목소리가 울렸다.

 

로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 형광색의 줄이 길게 안쪽으로 향해 빛났다.

 

녹턴이 베키에게 귓속말을 하는 걸 듣게 된 로바가 자신을 설명했다. 녹턴은 자신의 말이 들렸다는 것에 놀라며 다급하게 입을 막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녹턴을 두고서 베키는 어느새 사라진 사내의 행방을 찾으려고 했다.

 

로바와 대화하는 사이, 이 넓은 곳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사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 베키? "

 

" 들어가자. "

 

" 무서운 곳은 아니겠지? "

 

" ... 글쎄. "

 

 

 

 

 

로바가 안내해 준 선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넓은 데스크와 그 위에 올려진 종이가 보였다.

 

익숙하게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는 베키와 로바에게 말을 걸어보던 녹턴은 각자의 궁금증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데스크의 뒤로 큰 화면이 치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빛이 들어왔다.

 

그 순간 화면에는 자연스럽게 감정 표현을 하는 로봇의 모습이 보였다.

 

 

 

 

 

[ 안녕하십니까, 일일 알바님들. 로바B라고 불러주십시오. ]

 

" 아까 로바랑... 다른 건가? "

 

[ 네, 다른 개체입니다. 자기소개를 끝내고 정보를 전달하겠습니다. 데스크에 있는 서류를 집어주십시오. ]

 

" 이건가? "

 

" 뭔가... 많은데? "

 

[ 오늘 하루, 이곳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게 된 걸 축하드립니다. 그 종이는 규칙서와 경비를 하며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사항이 적혀있습니다. ]

 

 

 

 

 

두 사람은 동시에 서류를 잡고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                미러 하우스 규칙

 

 

 

1. 21시에 일을 시작합니다. 정각에 무조건 데스크 안에 있는 시작 버튼을 눌러주셔야 합니다.

 

2. 1시간 간격으로 데스크 아래의 패드를 반복되는 패턴에 따라 누르셔야 합니다.

 

3. 2시간 간격으로 1층부터 2층까지 둘러보며 이상 현상이 없는지 살펴봐 주시면 됩니다.

 

4. 이상 현상을 발견했을 경우, 회사에서 지급해 드린 장비로 촬영을 한 뒤 데스크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데스크로 돌아와서 10분간 정면을 바라보십시오. 소음이 울려도 정면만 보고 계셔야 합니다.

 

5. 이상 현상 외 처음에 둘러봤던 곳과 다른 느낌이 든다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지급해 드린 장비에서 안내하는 대로 실시하십시오.

 

6. 새벽 3시가 되면 데스크에 있어야 합니다. 

 

7. 갑자기 어두워지면 그 자리에 가만히 계십시오.

 

8. 낯선 이를 발견하면 모르는 척 넘어가십시오.

 

9. 알 수 없는 냄새가 난다면 데스크 아래에 있는 방독면을 쓰십시오.

 

 

 

이 설명서에는 8번째 항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규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일은 회사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

 

 

 

[     오늘 해야 할 일      ]

 

[] 30분 간격으로 CCTV 이상 보고 하기

 

[] 데스크에서 안내하기

 

[] 방독면 상태 확인하기

 

[] 로바의 상태 점검하기

 

[] 회사에 구비된 총구 확인하기

 

 

 

규칙서와 설명서를 읽어보던 두 사람은 이게 대체 무슨 설명인 거지? 싶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지만, 로바는 잠깐의 시간조차 주지 않을 작정인 모양이었다. 화면 속에 시간을 띄우더니 두 사람을 재촉했다. 

 

 

 

 

 

[ 곧 21시입니다. 알바님들은 데스크의 자리에 착석하여 주십시오. ]

 

" 일단... 해볼까? "

 

" 재밌을 거 같기도 하네요. "

 

 

 

 

 

두 사람은 넓은 데스크를 돌아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경고음 같은 소리가 크게 울리자, 데스크 안쪽에서 빨간빛을 내뿜는 버튼이 올라왔다. 베키는 규칙서에 있던 설명서대로 버튼을 눌렀다. 이걸 누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짧게 혀를 차던 베키와는 달리 녹턴은 꼼꼼하게 규칙서를 읽고 있었다. 

 

규칙서를 다 읽은 녹턴이 주변을 살폈다. 데스크의 서랍 속에서 로바 점검 보고서와 CCTV 조작법이라고 적혀있는 서류가 나왔다. 그러는 사이 베키는 회사에서 지급해 준 장비를 보았다.

 

알 수 없는 버튼만 달려있는 장치와 카메라인지 전자기기인지 알 수 없는 장비가 있었다.

 

그러는 사이 30분이 지나서 녹턴이 CCTV를 확인했다.

 

 

 

 

 

" ... 베키? "

 

" 왜 그래? "

" 저기... 저건 뭘까? "

 

" 무슨 일인데? "

 

 

 

 

 

CCTV를 보고 있던 녹턴이 다급하게 베키를 불렀다.

 

다른 일을 하고 있던 베키는 녹턴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옮겨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녹턴이 가리키는 화면 속 검은 덩어리를 보고서 멈칫 몸을 굳혔다.

 

분명 화면 속에는 데스크 앞에 있는 광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한쪽 구석이 묘하게 어두웠고, 음산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게 참 등골이 서늘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고개를 들어보면 광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녹턴이 CCTV 조작법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책에서는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 키보드에 '이상 현상 발견'이라고 친 뒤 CCTV 번호를 등록하라는 게 전부였다. 그 명령서대로 녹턴이 실행에 옮기자, CCTV 속 화면이 크게 흔들리더니 멀쩡하게 돌아왔다.

 

다시 화면을 보니 화면 속에 검은 덩어리는 사라진 상태였다.

 

 

 

 

 

" ... "

 

" ... 베키, 이거... 뭐야? "

 

" 나도... 모르겠는데... "

 

 

 

 

 

잔뜩 긴장한 두 사람이 데스크 위에 흐트러진 서류들을 보았다. 

 

규칙서 1번부터 9번까지, 체크 리스트. 거기다 전적으로 믿어야 할 규칙 설명서에는 의심을 심어주기 충분한 말까지 적혀 있었다. '이 설명서에는 8번째 항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규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일은 회사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 라니. 규칙서가 이따위라면 대체 뭘 믿어야 하는 건지.

 

 

 

 

 

" 로바. "

 

[ ... ]

 

 

 

 

 

베키가 다급하게 로바를 불렀지만, 로바는 응답하지 않았다.

 

조용해진 건물 안에서는 베키의 낮은 목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녹턴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베키를 보았고, 베키는 긴장한 표정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아침 9시까지 이 모든 일을 반복하며, 이곳에 있어야만 했다.

 

녹턴의 아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은 이미 싹 사라지고 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