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6g8Pzc-ngBs
*함께 들으면서 보면 더 좋습니다.*
은과 소라가 사귀기 시작하고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소라는 은을 좋아했기에 계속해서 사귀자고 고백을 해왔고, 받아줄 수 없었던 은이었던지라 계속 거절했지만, 그는 검정고시가 끝날 때까지 은을 기다려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검정고시가 끝나고 놀다가 헤어질 때 사귀자는 고백에 소라는 웃으며 그러자는 답을 주었다. 그 뒤로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검정고시가 치러지는 동안 소라가 기다려 주었으며 끝나는 날 먼저 사귀자고 말한 용기 덕에 그녀는 소라의 연인이 될 수 있었다. 은은 바쁜 일상을 보내던 와중에 3개월 전부터 약속했던 주말 1박 2일 데이트를 생각하며 겨우 버텼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이 다가왔다. 내일이면 연인인 소라와 여행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약속했던 날이 다가와 두근거리기도 했고, 사귄 이후 처음으로 당일치기가 아닌 여행이다 보니 더 긴장되기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흥분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생각은 없었다. 그간 두 사람 다 바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데이트도 하지 못했기에 오랜만의 데이트이기도 했다.
" ... 역시 좀 오버 하는 걸까...? "
은은 자신의 침대 위에 올려진 속옷을 보고는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여행 데이트라고 신나는 바람에 승부용 속옷이라고 질러버린 세트 속옷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소라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 자신이 이것을 입고 가봤자 할 마음이 없으면 도루묵이 될 테니 뻘쭘해지는 건 자신이었다. 이걸 챙겨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은은 우선 속옷을 제외한 나머지 물건들부터 챙기기로 했다. 연인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큰마음을 먹고 평소와는 다른 스타일의 옷을 사기도 했다.
평소에는 후드와 셔츠 같은 편한 옷들만 입던 스타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옷을 귀엽게 잘 입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추천해준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구매한 거였다. 새 옷을 곱게 개켜서 캐리어 안에 넣어두었다.
" 이건 내일 입고 갈 거. "
새 옷을 보니 더 설레는 마음이 북받쳐 올라왔다. 새 옷을 넣어둔 뒤 다른 원피스를 입어 보고는 거울 앞에 섰다. 조금 어색해 보였지만 은은 이 모습을 보고 놀랄 소라의 모습이 떠오르자 웃음꽃이 피어났다.
새로운 옷이 나쁘진 않은지 거울 앞에서 피팅도 해보고 어떤 머리 스타일이 어울릴지, 어떤 화장이 어울릴지 인터넷 검색도 잊지 않았다. 화장은 아무래도 조금 연습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거울 앞에서 연습까지 했다. 데이트하러 가기 전날이었기에 완벽한 준비를 위해 캐리어를 보며 다짐했다. 캐리어 안으로 갈아입을 새 옷 두 벌과 소라와 세트로 구매했던 커플 수영복, 추억을 남기기 위해 찍을 카메라, 간단한 세면도구, 수정할 때 필요한 화장품, 물티슈. 등등 필수품까지 챙기고 나니 묘하게 남은 빈 곳이 거슬렸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뭘 빠트렸는지 떠올리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은은 결국 친구 찬스를 쓰기 위해 안 자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캐리어를 챙기는데 하나가 비었단 말이야? "
[엉, 그래서. 뭐 챙겼는데? ]
" 갈아입을 옷이랑 화장품이랑 카메라, 수영복, 세면도구, 물티슈... "
[속옷 안 챙겼네. 너 전에 승부용 속옷 샀잖아. 그거 챙겨. ]
" 아! 맞네. "
전화를 받은 상태에서 은은 웃으며 침대 위에 있던 속옷을 곱게 접어 캐리어 안에 넣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수다를 떨다가 넌지시 던져오는 친구의 농담에 은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는 은의 얼굴은 빨갛게 익은 홍시처럼 보였다. 횡설수설 내뱉은 말은 그녀가 당황했다는 걸 알려주었다.
[ 은아, 너 그건 챙겼니? ]
" 응? 어떤 거? "
[ 뭐긴. 기집애. 콘돔 말이야. 콘돔! ]
" 뭐, 뭐?! 그, 그, 그걸 왜 챙겨!! "
[ 기지배~ 1박 2일이라며! ]
계속해서 놀려오는 친구의 말에 은은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아니라고, 그런 거 아니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는 은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 너네 커플 아직이니? ]
" 으응... "
[ 그러면 이번 기회에 한 번 해봐. ]
" 뭐... 뭐? 야, 야...!! "
아직이냐는 말에 벌겋게 익어버린 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번에 기회로 삼아 해보라는 말을 내뱉고 깔깔 웃던 친구는 은의 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친구의 조언이 자꾸 생각나던 은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손으로 부채질하며 열을 식혀보려고 했지만 열조차 좀처럼 떨어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러려고 가는 게 아닌데 자꾸 뜨거워지는 얼굴과 떠오르는 생각이 문제였다. 결국 은은 친구의 조언을 무시하기로 했다. 콘돔은 챙기지 않고 옷과 속옷, 필요한 용품들만 어영부영 챙기고는 침대 위로 풀썩 쓰러지듯 누웠다. 천장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내일이 데이트라는 생각에 긴장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은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 들었다. 붉어지는 뺨을 감싸고 발을 동동 굴렀다.
" 아, 어떡해... 어떡해... "
어떡하냐는 말만 반복하던 그녀는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에 빠져들었다.
잠든 은은 꿈에서 소라와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어딘가 아래에서 나른한 감각을 느끼며 소라와 입 맞추는 꿈이었다. 소라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 은은 수줍은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소라의 입이 열리고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 말에 놀란 은이 고개를 들어 소라를 보았다. 그러자 소라는 갑자기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애기야, 일어나야지. >
< 응? 오빠. 뭐라고... >
< 빠빠빠 빠빠!!! >
" 헉...! "
은이 고개를 들어 소라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숨을 들이켜며 몸을 일으켰다.
잠에서 깨어난 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생각했다.
' 뭐 이런 꿈이 다 있지? '
잠이 확 깨는 꿈이라며 중얼거리던 은은 옆에서 계속 울리고 있는 휴대전화를 들어 확인했다.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하자 8시 46분이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은 9시였기에 몇 분 남지 않은 상황에 은은 화들짝 놀라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다급하게 챙기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입을 속옷과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빠른 속도로 샤워했다. 그리고 나와선 화장대 앞에 앉아 고데기 전원을 켜고 젖은 머리카락을 드라이기로 말리기 빠르게 말리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챙기기 시작한 지 5분이 지났을 때 머리가 어느 정도 마르자 바로 헤어밴드로 머리를 올리고 화장부터 하기 시작했다. 엄청 빠른 속도로 화장을 마치고 나니 3분이 지나있었다. 그때 휴대전화에 알람이 도착했다. 휴대전화를 들어 확인하니 소라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 은아. 집 앞에 도착했어. )
( 오빠,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줘. )
( 괜찮아. 나는 방금 막 도착했으니까 천천히 해도 돼. )
( 고마워. )
은은 당황한 나머지 오타가 나는 타자를 지우고 다시 쓰길 반복하며 소라에게 연락을 보냈다.
천천히 하라는 소라의 말에 고맙다는 말을 보낸 뒤 안심하고 데워두었던 고데기로 예쁜 웨이브까지 말아냈다. 새로 산 옷으로 갈아입고 스타킹까지 신고 마무리로 입술에 립글로스까지 바른 뒤 거울을 보고 자기 모습을 확인했다. 다급하게 준비한 것 치고는 예쁘게 잘 된 화장과 머리에 만족한 듯 웃으며 외투를 챙기고 캐리어를 잡았다. 신발을 신고 캐리어를 끌어 문을 열고 나섰다. 집 앞으로 나오니 차 앞에 기댄 채 기다리고 있는 제 연인의 모습이 보였다. 집이 바로 근처이긴 했지만, 차로 가야지 가까운 거리였기에 소라가 데리러 온 것이었다. 은은 소라에게 손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
" 오빠! "
" 응, 애기야. "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니 소라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에게로 향하면서 은은 본능적으로 소라의 모습을 스캔하듯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소라는 평소 아무렇게나 주워 입던 스타일이 아닌 반소매 와이셔츠에 상아색의 얇은 봄용 니트를 어깨에 걸치고 진청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소라의 스타일이 마음에 든 건지 은은 화사하게 웃으며 그의 곁으로 갔다.
" 오빠, 오늘은 아무거나 안 주워 입었네? "
" 오늘 데이트잖아. 예쁘게 입어서 애기에게 잘 보여야지. "
" 그치? 나는 어때? "
" 울 애기, 예쁘다. 오늘은 여신님이네~ "
은은 웃으며 소라에게 물어보았고 소라 역시 웃으며 답해주었다.
그의 앞에서 캐리어를 세워두고 한 바퀴 돌아본 은은 소라를 보며 물어보았다. 봄용 원피스가 살랑거리는 것에 소라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이며 예쁘다고 답했다. 그 반응에 은은 웃었다.
소라는 마른기침을 하고는 은의 캐리어를 들고 트렁크를 열어 그 안으로 넣었다. 트렁크를 닫고 다시 앞으로 와서는 조수석 자리의 문을 열어주며 장난스레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고 말했다. 그의 장난에 장단을 맞춰주는 은이었다.
" 자, 타시죠. 여보공주님. "
" 어머, 감사해요. 자기왕자님. "
두 사람은 장난스레 서로를 보며 웃었다.
소라의 친절에 은은 손을 잡고 차에 올라탔다. 은이 안전하게 차에 탄 걸 확인한 소라는 차 문을 닫고 반대편 운전석으로 가 문을 열고 올라탔다. 은은 안전벨트를 하면서도 차 안에서 나는 상쾌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소라 역시 안전벨트를 하고 나서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두 사람은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장난도 치고 웃고 있었다. 은은 소라가 계획적인 일정이 아니라면 싫어하는 걸 알고 있기에 도착할 숙소와 근처, 그리고 일정을 정리해둔 걸 다시 확인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달리던 중간에 잠시 쉴 겸 화장실도 갈 겸 휴게소에 들렸다. 휴게소에 들려 화장실을 먼저 들렀다가 간식거리를 위해 매장에도 들렀다.
지나가는 길에 무언가 발견한 은이 소라의 손을 붙잡으며 물어보았다.
" 오빠, 알감자 먹어봤어? "
" 당연히 먹어봤지. "
" 그러면 오빠는 소금파? 아니면 설탕파? "
" 음... 나는... 울 애기파~ "
" 에에, 그게 뭐야... "
자신의 질문에 소라가 웃으며 답하는 말에 얼굴이 발개진 채 긴장해버린 탓에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굳어버린 은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웃어주는 소라였다. 두 사람은 결국 알감자를 소금과 설탕 하나씩 사고 쥐포와 오징어구이도 샀다. 마실 커피와 음료, 물도 함께 사고는 다시 차에 탔다. 요깃거리로 사 온 음식을 먹으며 출발했다. 소라는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거의 먹지를 못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은이 알감자 하나를 집어선 후후 불어준 뒤 소라의 입 안으로 넣어주었다. 다른 것들도 옆에서 이것저것 챙겨주며 입에 넣어주었다.
" 오빠, 아~ 해. "
" 아~ "
"잘 먹네~ "
" 울 애기도 잘 먹네~ "
그렇게 이리저리 이야기도 하고 먹을 것도 먹어가며 오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숙소 앞에 주차한 소라가 먼저 내렸다.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고는 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내민 손을 붙잡고 은은 좌석에서 내려왔다. 내리자 마자 보이는 주변 환경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 내리시지요, 여보야. "
" 네~ 자기야. "
은이 주변을 구경하고 있을 때 소라는 트렁크를 열어 짐을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예약해두었던 공주시에 있는 베스트필드라는 글램핑장이었다. 예약했던 글램핑 번호 쪽으로 가 안을 구경하던 은은 소라가 짐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에 곁으로 다가가 함께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는 내내 서로 웃으며 장난도 치면서 하는 탓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정리가 끝나고 주변을 둘러보던 소라는 은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으며 웃었다.
" 애기야. 앞에 수영장 있던데 가서 놀까? "
" 음... 그래! "
수영장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은과 그녀의 답에 웃은 소라는 각자의 짐가방에서 들고 온 커플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갈아입는데 10분 정도가 걸렸을까, 비키니를 입고서 나타난 은의 모습에 소라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짐 가방에서 얇은 여름 비치후드를 꺼내 은에게 입혔다. 은은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소라를 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소라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 다른 놈들이 울 애기 보는 건 싫어. "
" 그래? 알아서 해. "
소라와 은은 서로의 손을 잡고 수영장에 도착했다.
수영장에 도착해서 소라는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먼저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 양손을 올려 은을 보았다. 그의 행동에 은은 익숙하다는 듯 소라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 내려와. 애기야. "
" 응. "
은이 다리를 수영장 안으로 넣고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소라가 그녀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고는 안아 올려 제 품에 안았다. 은은 그대로 소라의 품에 안긴 채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물장구도 치고 잠수 놀이도 하고 비치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한참 지나버렸다. 해가 조금씩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배가 고파진 은이 소라를 불렀다.
" 오빠... 우리 이제 밥 먹으러 가자. "
" 그럴까? "
" 응. "
수영장에서 나온 두 사람은 글램핑장으로 돌아왔다.
소라는 은에게 먼저 샤워를 해 괜찮겠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물음에 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애기야, 오빠가 먼저 씻어도 될까? "
" 응. 맘대로 해. "
그녀의 허락에 소라는 수건과 속옷,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은은 침실 쪽 커튼을 닫아버린 뒤 앞쪽에 구비되어 있는 바비큐 그릴로 다가갔다. 마트에서 사 온 연탄을 꺼내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고기와 야채와 채소들, 그리고 반찬거리들과 요리할 음식들을 하나씩 꺼내두었다. 어느 정도 꺼내고 나니 소라가 다 씻은 모양인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왔다. 은은 속으로 생각했다.
' 아, 오빠 나오기 전에 요리 시작하려고 했는데... '
생각보다 빨리 나와버린 소라를 보던 은은 웃는 소라의 얼굴에 그저 따라 웃을 뿐이었다.
머리를 털고 나오던 소라는 은을 보며 말했다.
" 이제 울 애기도 씻어. 빨리 안 씻으면 감기 걸리겠다. "
" 알았어. 씻고 올게. "
은이 짐 가방에서 속옷과 갈아입을 옷, 수건을 챙기고 욕실로 들어가는 걸 본 소라는 똑같이 침실 쪽 커튼을 닫아주었다. 그리고 바비큐 그릴 앞으로 와 꺼내어진 연탄을 넣어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불이 붙으며 올라오는 열이 뜨거운 나머지 인상을 찡그렸다. 꺼낸 고기들과 반찬거리들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며 흥얼거렸다. 소라는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려놓은 뒤 자신이 들고 온 가방을 뒤적거려서 네모난 케이스를 꺼냈다. 짧은 숨을 내뱉고 욕실 문을 본 뒤 케이스를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다시 바비큐 그릴 앞에 서서 올려둔 고기를 뒤집었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함께 먹을 치즈그라탱과 감바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다 만들어가고 나니 은이 다 씻고 나왔다.
" 다 씻었어? 머리 말리자. "
" 응. "
다 만들어진 음식을 테이블 위로 옮기고 수저를 놓은 뒤 손을 닦던 소라가 말했다.
소라의 말에 티브이 앞에 앉은 은의 모습은 어딘가 나른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소라는 웃으며 드라이기로 머리카락을 말려주었다. 어느 정도 마르자 소라는 은의 머리카락에 짧은 입맞춤을 남겼다.
뒷정리하고 나가면서 빨리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은은 놀랐지만 빨개진 얼굴로 소라를 보았다.
꺼져있는 티브이 앞에 앉아있었기에 소라가 뒤에서 무얼 했는지 보았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그걸 모르는지 소라는 여전히 빨리 나오라며 말했다.
" 밥 먹자. 애기야. "
" 으응. "
얼굴이 벌겋게 익은 은의 모습에 소라는 무슨 일 있냐는 듯 보았다.
테이블에 앉은 은은 그저 조용히 수저를 들고 앞에 놓인 밥을 먹기 시작했다. 소라는 조용해진 은의 모습에 저도 조용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대신 은의 접시로 감바스도 올려주고 고기도 올려주고 그라탱 역시 먹기 편하게 밀어주었다.
" 먹어봐, 애기야. "
" 그치만... 이렇게 주면 배부른데... "
은은 조금씩 불러오는 배에 배가 부를 거라고 말했지만 시무룩해지는 소라의 모습에 그가 준 것들을 전부 먹으며 웃었다. 그런 와중에도 먹고 있는 음식이 맛있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오빠, 맛있어. "
" 그치? 울 애기를 향한 오빠의 사랑이 담겨 있어서 그래. "
소라의 말에 은의 얼굴이 다시 빨갛게 물들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고 글램핑 앞쪽에 간이 의자 두 개를 펼친 소라는 은의 손을 잡아 끌어주며 말했다.
" 잠시만 여기에 앉아있어. "
" 응. "
" 요즘 유행하는 불멍이래. "
은을 의자에 앉힌 소라는 의자 앞쪽에 작은 난로를 들고 와 불을 피웠다.
불멍이라는 소라의 말에 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불을 다 지핀 소라는 은의 옆자리에 앉았고 한참이나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말 없이 멍하니 불만 보고 있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소라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은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 애기야, 기억해? 먼저 고백해준 거 자기였잖아. "
" 기억해. 그걸 어떻게 잊겠어. "
" 그때, 나 기다려 준 거 고마워. "
" 오빠 사랑하니까 기다린 거지. "
" 알아. 그래서 나도 용기 내 고백하려고. "
" 응? "
갑작스러운 추억 이야기에 은은 고개를 돌려 소라를 보았다.
마지막 말을 기점으로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소라가 휴대폰을 들어 스피커 폰에 연결하고 노래를 틀었다. 마크툽의 Marry me 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은은 놀란 눈으로 소라만 볼 뿐이었다.
노래 반주가 흘러나오자 소라는 은의 앞에 섰다.
" 오, 오빠? "
" ... "
" 오빠?? "
" 우리 애기, 오빠랑... 결혼 해주겠어? "
" ... 오빠. "
은의 부름에도 답이 없던 소라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바지 주머니에서 케이스를 열어 은에게 내밀었다.
그러면서 한쪽 무릎만 꿇고서 은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결혼해주겠냐 물어보는 말에 은은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을 굳혀버리고 소라만 보았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소라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구구절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진심을 담아서.
" 손에 물 묻히지 않는 약속은 지키지 못할 테니까 하지 않을게. "
" ... "
" 평생 함께한다는 말은 어쩌면 지키지 못할지도 몰라. "
" 하지만... 언제나 행복하게 해줄게. "
"오빠...! "
그의 말에 은은 조금씩 차오르는 눈물에 울음을 참아야만 했다.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소라의 모습에 은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프러포즈에 감격과 동시에 울컥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은은 입술을 꾹 물고 울음을 참아보려고 했지만, 눈물은 결국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개를 다급하게 끄덕이고 소라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소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은을 끌어안았다. 주변에서는 축하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 아이구, 우리 애기 왜 울어. 행복하게 해주려고 프러포즈 한 건데 울리고 말았네. "
" 이건... 기뻐서 우는 거니까, 카운트... 안 돼. "
" 하하, 은아. 내 애기야.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
" 흑.... 오빠야말로... 나에게 와줘서, 나를 택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
서럽게 울며 꼬박꼬박 말을 하는 은의 모습에 소라는 웃으며 그녀를 다독여 주었다.
붉어진 눈가를 문질러 눈물을 닦아준 뒤 그녀의 손을 잡고 케이스에서 반지를 꺼냈다.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밀어 넣자 마치 정해진 것처럼 반지가 알맞게 들어갔다. 은은 우는 얼굴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나 남은 반지를 케이스에서 빼내 소라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은이 계속 우는 모습을 보이자 소라 역시 울컥 차오르는 기분에 덩달아 눈물을 찔끔 보였다. 은이 울먹거리는 얼굴을 들어 소라를 올려다보았다. 소라는 부드럽게 웃고서 다시 은을 끌어안고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고개를 틀어내고 천천히 맞춰진 입술에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입을 맞추었다.
모두의 축하와 환호 속에서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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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은은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자기 손을 살폈다.
정확하게는 어제의 일이 혹여나 꿈일까 싶은 마음에 확인하고자 손가락을 보았다.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짝거리는 반지가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수줍은 듯 웃으며 반지를 매만지다가 그 위로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소라가 웃으며 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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