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카가 필립의 오두막에 납치되어 감금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입맞춤을 마지막으로 떠났던 필립 은 나츠카 가 지나도 오두막에 오지 않았다. 나츠카 는 한정된 오두막 속 공간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종일 안에서 그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그가 어째서 자신을 이리 감금한 건지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속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꿈은 아니라고 하던 그 말, 손등에 맞추어오던 입술이 제 입술에 닿던 그 찰나의 순간. 나츠카 는 그 찰나를 잊을 수 없었다. 가장 뜨거웠으며 또 가장 차가웠다. 이런 표현이 어색하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 생각을 쉽게 정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제일 가까운 표현이 이것뿐이었다. 손을 올려 손끝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딱 나츠카 였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마실 것도 거른 것이. 입 맞추었던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촉촉했던 입술이 지금은 말라 있었다.
" 필립 ... "
" 현자님, 불렀어? "
나츠카 는 고개를 숙인 채 침대에 앉아있었다.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다급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고개를 들어 본 오두막의 입구에는 필립 이 서 있었다. 정겨운 얼굴로 왜 늦었다는 둘러대는 말 하나 없이 그렇게 웃으며 서 있었다. 오히려 왜 인제야 불렀냐는 듯한 시선이었다. 나츠카 는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달려갔다. 묶여있는 건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필립 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낡은 판자 바닥이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질렀다. 입구 앞에 서선 그저 웃기만 하는 필립 의 모습에 나츠카 는 팔을 뻗어 휘적거렸다.
금방이라도 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안기지 않는 게 슬펐다. 나츠카 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입술을 꾹 물었다. 그제야 필립 이 나츠카 의 앞으로 다가와 그녀를 안아주었다. 나츠카 는 매달리듯 안겨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 이런, 내가 현자님을 울려버린 것 같네. "
" 필립 , 필립 ... 왜 이제야 왔어요? "
" 날 이제 부른 건 현자님이야. "
따뜻한 품에 안겨있던 나츠카 는 고개를 들어 필립 을 보았다.
필립 은 난감한 듯 웃더니 부드러운 손길로 나츠카 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왜 이제 왔냐는 나츠카 의 질문에 아까 그녀가 느꼈던 대로의 답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나츠카 는 역시, 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필립 은 제가 부르기 전까지는 여기에 올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어떤 방식으로 오는지 알 수는 없어도 그가 여기에 오려면 제가 불러야 하는 걸 알아냈다.
그렇다면 매번 부르는 수밖에. 필립 은 팔을 나츠카 의 허리에 두르며 안아주었다. 그대로 안아 올려 침대 근처의 식탁으로 걸어갔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주곤 그 끝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장난기가 살짝 엿보이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나츠카 를 보며 말했다.
" 잘 지내고 있었어? "
" 아니... 아니요. "
" 저런, 먹을 걸 가져왔으니 먹을까? "
" 같이 먹어요. "
필립 이 식탁으로 향하려고 하자 나츠카 는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자 필립 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츠카 를 보았다. 나츠카 의 표정이 잔뜩 구겨진 채 울상이 되어 있었다. 필립 은 눈동자를 데굴 굴리고는 나츠카 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조용히 물어보는 말 없이 그저 그녀만 보고 있었다. 나츠카 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같이 먹자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필립 이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을 피고서 나츠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나츠카 는 그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낡은 오두막이라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나츠카 는 혼자 있을 때는 무서웠지만 필립 이 함께 있어 준다면 무섭지 않았다.
" 오늘은 가볍게 먹도록 하자. 종일 안 먹었으니까. "
" 네. "
필립 의 말에 나츠카 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서 준비한 건지 식탁 위로는 가볍게 챙길 수 있는 음식들 위주로 준비되었다.
시원한 물 한잔으로 목을 축인 나츠카 는 따뜻한 수프로 속을 달래어 주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속이 심하게 쓰려오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종일 먹질 못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수프는 감자로 만든 포타주였다. 느슨하게 속을 풀어주는 감각이 몸 안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다.
나츠카 는 입맛을 다시며 깔끔하게 비워진 그릇을 보았다. 그 뒤로는 샐러드와 과일 몇 조각으로 배를 채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나츠카 가 조금씩 고개를 끄덕거리며 잠에 빠지려고 하자 그걸 지켜보고 있던 필립 이 자리에서 일어나 넘어가려고 하는 나츠카 의 머리를 받쳐주었다. 졸음에 깨어나 화들짝 놀란 나츠카 가 필립 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 미, 미안해요. 졸려서... "
" 괜찮아, 졸리면 자는 게 좋겠다. 현자님. "
" 으응... 미안해... 요... "
나츠카 는 조금씩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처럼 감겨오는 잠의 나락에 빠져들었다.
강제로 깨어있고 싶어 정신을 바짝 차렸지만, 그 노력에 비해 잠은 강하게 휘몰아쳤고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하게 감겨가면서도 필립 을 놓지 않으려 옷깃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와는 달리 필립 은 마치 나츠카 가 잠들 걸 알았다는 것처럼 익숙하게 그녀를 안아 들고서 침대에 눕혔다. 이불을 덮어주며 그녀의 이마 위로 짧은 입맞춤까지 선사해주었다.
흐뭇하게 웃는 얼굴 위로 낯선 감정이 찰나의 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필립 은 잠든 나츠카 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잘 자요, 현자님. 여기서 영원히 함께 해요. "
" 으음... "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왔지만, 오두막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츠카 는 잠에서 깨어나 멀뚱히 천장을 보았다. 이제는 제법 어둠에 시야가 익숙해져서 앞이 곧 잘 보였다. 물론 잠든다고 눈을 감았다가 깨면서 눈을 뜨면 익숙해지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츠카 는 자리에 앉아 팔짱을 끼고 고민에 잠겼다. 마치 잡아먹을 것처럼 문을 노려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입술을 잘근 물어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제 식탁 위에서 먹었던 식자재들은 어느샌가 치워져 있었다. 분명 어제 필립 이 치우고 간 것일 테다.
나츠카 는 자신이 자고 일어나는 기준으로 나츠카 를 잡기로 했다. 어두운 오두막 안에서 시간을 측정해 봤자 무슨 소용이냐 싶겠지만 그래도 시간을 측정하고 싶었다. 정확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 필립 . "
" 불렀어? 현자님. "
" ... 잘 잤어요? "
" 현자님은 잘 잤어? "
역시. 나츠카 는 자신이 부르자 바로 나타나는 필립 에게 잘 잤냐고 물어보았다.
그녀가 대략 짐작하건대 필립 은 잠을 자지 않고 있다는 가설이 생각났다. 이렇게 잘 잤냐고 물어보아도 되물어오는 것을 보면 거의 확정이나 다름없는 사실이겠지만 굳이 따지려 들지 않았다. 그가 말을 돌렸다는 건 적어도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지 않다는 것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츠카 는 말을 돌리기로 했다. 어색하게 웃던 얼굴을 가리고 필립 을 보았다. 필립 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식탁에 앉은 나츠카 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필립 ... 나, 나가게 해줘요. "
" 그건 안 된다고 했잖아, 현자님. "
" 하지만... 어째서? "
" 음... 그냥 여기서 나와 영원히 함께 해. "
나츠카 의 질문에 필립 의 표정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느낌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사랑스럽다는 듯 보고 있는 표정이었더라면 질문을 듣고 난 이후에는 차갑게 변해버린 것에 가까웠다. 나츠카 는 겁에 질린 듯 움찔거리다가도 용기를 내 어째서냐고 되물어 보았다. 하지만 정작 돌아오는 답은 듣고 싶었던 대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쩐지 돌고 도는 느낌의 대화에 나츠카 는 더 물어보는 걸 포기했다. 필립 의 말에 답을 주지 않자 그는 다시 식탁 위로 음식을 차려놓고는 나츠카 를 지켜보기만 했다. 나츠카 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맛을 다시다가도 포기한 듯 입을 꾹 닫았다. 대신 수저를 들고 음식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어제와 같은 포타주, 감자로 만든 든든한 수프였다. 아직 질리진 않았지만 같은 메뉴를 먹고 있자니 힘겨웠다. 그래도 배가 고팠기에 그릇을 비워냈다. 수저를 내리고서 다시 용기 내 말했다.
" 그러면 여기 밖으로까지만... 안 될까요? "
" ... 그건 내일 이야기 해. "
" 네...! 어디... 가시나요? "
" 오늘은 현자님과 함께 있을 거야. 같이 있기로 했잖아. "
어딘가 어긋난 대화를 벗어나 제대로 된 대화였다. 나츠카 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흥분에 목소리 톤을 올리고서 말했다.
함께 있겠다는 대답과 내일 밖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에 나츠카 의 기분은 더없이 기뻤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대로 나츠카 종일 그녀와 함께했다. 어두운 오두막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지만 나츠카 는 혼자서 무료하게 있는 것보다 차라리 그와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차라리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그게 사실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길게 함께하고 싶었던 나츠카 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의 눈은 조금씩 감겨오기 시작했다. 나츠카 는 조금씩 다가오는 졸음에 생각했다. 어제도 이러더니, 오늘도 이러는 건가. 뭐가 문제인 건지에 관해 생각해 보지만 당장에 잠이 몰려오는 탓에 더 깊이 생각해내지 못했다.
" 현자님, 졸려 보이네. "
" 네... 조금 졸리네요... "
" 그러면 잘까? "
" 으응... 왜 이러지... 더 버텨볼래요... "
" ... 오늘은 이만 자도록 하고 내일 잠깐 외출할까? "
" 좋아요... "
나츠카 는 몰려오는 졸음을 쫓아내 보려고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다.
하지만 필립 은 곁에서 같이 버티자고 하기는커녕 나츠카 를 먼저 재우려고 하고 있었다. 더 버텨보겠다는 말과 함께 졸려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서도 잠들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나츠카 의 모습에 참다못한 필립 이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말했다.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손등을 문지르며 외출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나츠카 가 반색하며 웃었다.
좋다고 답을 한 나츠카 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몽사몽인 상태로 비척비척 걸어 침대에 도착했다. 자리에 눕자 필립 이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위로 이불을 살짝 덮어주었다. 잠이 몰려와 취한 상태에서 나츠카 는 웃으며 필립 에게 말했다.
" 내일... 봐요, 필립 . "
" 잘 자요. 현자님. "
머리를 대고 인사를 하자마자 바로 잠들어버린 나츠카 를 필립 은 부드럽게 쓸어주고는 머리카락 끝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표정이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사라졌다. 나츠카 는 깊게 빠져든 꿈속에서 필립 을 보았다. 어딘가 어둡고 습한 기운이 가득한 곳에서 필립 은 혼자 서있었다.
나츠카 는 어딘가 찝찝한 마음이 들어 필립 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발이 무언가에 묶인 것처럼 꼼짝을 못 하고 있었다. 앞으로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으니 나츠카 는 갑갑한 마음뿐이었다. 다급하게 입을 열어 필립 을 불러보지만, 입만 벙긋거릴 뿐,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들릴 거라는 마음에 다급하게 부르지만, 나츠카 의 목소리는 필립 에게 전혀 닿지 않았다.
필립 은 나츠카 를 보며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짓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필립 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츠카 는 움직일 수 있었다. 다리가 움직일 수 있자 달리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어둠만 있을 뿐, 필립 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츠카 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어둠에서 손이 뻗어 나와 나츠카 의 입을 틀어막았다. 순식간의 상황에 헉하고 놀라며 나츠카 는 잠에서 깨어났다.
" 허억...!! "
" ... 현자님? "
" 피, 필립 ... 필립 ...!! "
" 현자님, 나 여기 있는데. "
숨을 급격하게 들이마시며 잠에서 깨어난 나츠카 는 깨어나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며 필립 을 붙잡았다.
필립 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나츠카 의 안색을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무슨 일인가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답 없이 덜덜 떨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의 상태를 대충 알아차린 필립 은 그저 조용히 나츠카 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식은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고는 이마에 짧은 입맞춤도 잊지 않았다. 그제야 나츠카 는 진정이 된 모양인지 거칠었던 숨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벌겋게 물든 눈동자로 필립 을 보고는 입술을 꾹 물고 그녀는 그저 조용히 그를 안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필립 은 도통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 그녀의 기분으로는 괜한 부스러기를 만드는 것보다 더한 상태일 테니 굳이 건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알아서 제게 말을 해줄 때까지 필립 은 기다려야만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나츠카 는 고개를 들어 필립 을 보았다.
" 미안해요, 필립 ... "
" 무서운 꿈이라도 꿨어? "
" 그게... 어둠에 잡아 먹히는 꿈... "
" ...아쉽지만 먹히지 않았어. "
" 필립 이... "
" 어? 현자님... "
나츠카 는 잠에서 깨어난 이후로 필립 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감금된 지 삼 일째 되던 날의 일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겨우 외출을 허락받아 오두막 근처만 돌아다닐 때도 나츠카 는 필립 의 곁에서 떨어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나츠카 의 모습에도 필립 은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동했다. 한 번은 안전하다고 말을 했지만, 아니라며 언제 어둠이 잡아갈지 모른다는 말을 내뱉었다.
필립 은 그럴 때마다 나츠카 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다정한 그 손길에 나츠카 는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안심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츠카 의 불안증은 심해져 갔다. 더불어 외출하려고 하는 게 덩달아 줄어들었다.
필립 에게 있어서 외출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 마음에 들었지만, 그녀가 어두워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런 결정을 내리는 거겠지. 필립 은 새로운 방을 둘러보며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 오두막 하나로 만족하려고 했지만, 나츠카 의 상태를 보건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 되었기에 새집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필립 은 자신의 판단에 나츠카 의 기분이 좋아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 ...으음, 필립 ? "
" 현자님. 일어났어? "
" 여긴 어디에요? "
" 여긴 새 집인데, 현자님에겐 이쪽이 더 낫겠지? "
나츠카 는 자고 일어난 사이에 바뀐 장소에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필립 을 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변한 환경에 신기해하고 있었다.
어둡고 눅눅한 오두막보다는 환하고 환기도 되면서 불까지 들어오는 공간에 나츠카 는 놀랐다. 바뀐 환경도 환경이지만 생활 자체가 바뀌었으니 그럴 만했다. 나츠카 는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필립 에게 시선을 주었다. 오두막보다 낫다는 듯 고개를 열렬히 끄덕거렸다. 외출을 자주 하진 못하겠지만 새집이면 그래도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 필립 , 정말 예뻐요. "
" 현자님 마음에 든다니 질투나지만 다행이네. "
사실 나츠카 가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 그 생각에 필립 은 나츠카 를 쓰다듬어주었다.
사랑스럽다는 듯 조심스럽던 손길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 나츠카 의 뺨을 감쌌다. 나츠카 는 고맙다는 듯 필립 의 손바닥에 뺨을 비벼댔다. 보드라운 피부 결에 필립 은 입맛을 다셨다. 그런 그의 상태에 나츠카 는 알아차리기라도 했다는 듯 웃으며 발끝을 올리고 필립 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짧게 닿아오는 입술에 그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짧게 입맛을 다시던 필립 은 참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나츠카 의 입술을 덮쳤다.
길게 이어지는 입맞춤은 나츠카 에게 있어 점점 숨이 부족하게 만들었다.
나츠카 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하고 다급하게 필립 의 어깨를 쳐보지만, 필립 은 멈추지 않았다.
질척하게 얽혀오는 혓바닥이 입안을 문질러 오자 나츠카 의 몸은 움찔거렸다. 필립 의 손은 나츠카 의 허리를 감싸고 확 당겨 바짝 붙었다.
몽롱해지는 눈앞과 조금씩 달아오르는 몸에 나츠카 는 자연스럽게 필립 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완전히 하나의 몸처럼 붙은 두 사람은 길게 입 맞추었다. 숨이 부족했던 나츠카 가 고개를 떼어내며 거칠게 숨을 내뱉고 나서야 두 사람의 키스는 끝났다.
" 하아... 필립 ... "
" 현자님, 조금 더 입 벌려. "
" 으응...! "
나츠카 가 숨을 쉴 수 있던 건 아주 잠깐이었다. 헉헉 짙은 숨을 내뱉고 있을 때 필립 이 나츠카 의 턱을 붙잡아 입술을 벌리게 한 다음 다시 입을 맞추었다.
두 사람의 입맞춤이 점점 깊어질 때마다 나츠카 의 몸이 절로 움찔거렸다. 필립 은 나츠카 의 허리를 잡아 고정하고는 손을 자연스럽고 조심스럽게 타고 흘러가 엉덩이를 꽉 쥐었다. 그때 나츠카 가 흠칫 떨면서 놀란 눈으로 필립 을 보았다.
" 힉...!? "
" 현자님. 싫은 거라면 지금 말해. 그래야 내가 멈출 수 있어. "
" 피, 필립 ... "
필립 의 손길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버린 얼굴로 그를 보았다.
말문이 막혀 어버버 거리면서도 입만 벙긋거리고 있던 그녀는 무어라 반박 한 번 하지 못했다. 그저 당황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20초 정도 흘렀을까, 나츠카 는 당황을 넘어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필립 은 그런 그녀의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그저 기다려주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답을 줄 때까지. 그는 언제나 항상 나츠카 의 답을 기다렸다. 그러다 참다못해 오두막에 가두어 버린 거긴 하지만.
조금 기다리자 나츠카 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는 필립 을 보았다. 수줍게 웃던 나츠카 의 모습에 필립 역시 마주 웃어주었다.
나츠카 의 둔부를 움켜쥐었던 필립 의 손이 움직이며 주물럭거렸다. 그러자 나츠카 의 입에서 얇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 후잇...!? "
" ... 현자님. "
제 신음 소리에 놀란 나츠카 와 그런 그녀를 보며 웃는 필립 .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다시 입을 맞추었다.
점점 깊어지는 숨소리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열중해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필립 은 나츠카 를 보더니 조금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그 말은 그녀가 잠들었을 때 했었던 말과 같은 말이었다. 그녀가 잠들어 있느라 듣지 못했던 바로 그 말. 입술을 떼어낸 뒤 쪽쪽 새가 부리로 쪼아내듯 짧은 입맞춤을 하고 난 뒤 웃어주었다.
" 현자님, 앞으로 영원히 나와 이곳에 함께 있어줘. "
" ...필립 . "
" 나가지 않는다고 약속해 줘. "
" 하지만...!! "
" 현자님. 내 허락 없이 나가면 그땐 나도 어떻게 될 지 몰라. "
" ... 알았어요. "
좋았던 분위기는 금세 사그라들고 차갑게 식어버린 바람이 부는 분위기뿐이었다.
약속해 달라는 필립 의 말에 나츠카 는 반박하려고 했지만 강하게 강조해 오는 말에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짧은 답을 마지막으로 나츠카 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 나츠카 의 뺨에 손을 감싸고 필립 은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나츠카 의 고개를 돌리자 나츠카 는 울먹이고 있었다.
필립 은 나츠카 의 눈가를 문질러주며 짧은 입맞춤을 해 주었다. 그녀가 계속 나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들어주었다가는 또 다른 사람과 엮이게 될 것이고 자신은 멀리서 그걸 보며 질투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게 반복되는 것이 싫은 건데 나츠카 는 그것을 몰라주었다.
계속되는 입맞춤에 나츠카 는 다시 어깨에 팔을 두르며 길게 입을 맞추었다. 필립 은 나츠카 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강하게 끌어안았다. 깊은 입맞춤이 끝나고 필립 은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겨우 꺼냈다.
" 현자님, 사랑해. 그러니 나와 함께 있어줘. "
" ... 나도 사랑해요. 필립 . "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고백하며 다시 입을 맞추었다. 농후하게 이어지는 입맞춤에 나츠카 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휘청거렸다.
필립 은 그걸 받쳐주며 그대로 안아 올렸다. 그대로 침실로 향한 두 사람의 밤은 길었다. 길게 이어지는 밤은 둘에게 있어 황홀할 것이다.
나츠카 를 침대에 눕힌 뒤 그 위로 올라탄 필립 은 그녀를 보며 다시 입맞춤을 이어갔다. 그의 손은 은밀하게 나츠카 의 옷 안으로 들어가 살결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배와 허리 근처만 머무르며 만져대는 손길이 간지러웠던 나츠카 는 계속해서 움찔거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시선 속에 서로가 사랑한다는 고백이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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