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BL/자컾/221209] 너와의 시간

나비의 보관함 2025. 1. 16. 22:47

 

나, 오재영은 중학교 시절을 지나 고등학생 때부터 따라붙은 자신의 별명을 딱히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철 모르던 시절인 중학생 때, 야구에 관심이 많아 잠시 애정을 두기도 했다. 그렇기에 야구부에 들어가기도 했다.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야구에 대한 애정이 진심이었기에 자신의 실력에 자신만만해져선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판단을 철석같이 믿고 있기도 했다. 

제 잘난 맛에 살던 재영은 한참 슬럼프가 와 좌절감을 맛보았을 때 자신보다 야구를 사랑하고 능력이 있는 김제혁을 만났다. 중학생 때 시구를 날리는 제혁의 모습에 호승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한때였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에게 야구는 적성이 아니라는 걸 빠르게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들어갔던 야구부에서 친해진 제혁의 곁을 함께하며 따라붙은 별명이 생길 정도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건 지금 쥐고 있는 야구공이 말해주고 있기도 했다.

 

" 하... 그래서 너는 이제 야구를 그만둔다고? "

" 아, 응. 내 적성은 아닌 것 같아서. "

" 흠... 그래? 그래도 너랑 캐치볼 할 때는 즐거웠는데. "

 

한바탕 러닝을 뛰고 와서는 지친 몸으로 의자에 앉는 제혁이 말했다. 야구공에 두었던 시선이 올라가 그를 보았다.목에 걸려있는 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되물어오는 말에 답을 해주었다.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제 미소와 함께. 적성이 아닌 것 같은 건 이미 진즉에 제혁이를 만났을 때 깨달았다. 그런데도 야구에 매달렸던 건 호승심이자 나의 이기심일 것이다.저를 흘긋 보던 제혁이 땀을 닦던 수건을 내리고 티끌 없이 맑은 미소로 웃으며 답해주었다. 그의 말에 살짝 놀랐지만 이내 하하, 소리 내 웃으며 제혁의 팔을 툭 쳤다. 그리고 답을 잊지 않았다.

 

" 그건 나도야. "

 

야구를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는다. 다만 야구를 택한 것에 대해 판단의 오류라는 걸 깨달았을 뿐이었다.그 결심은 결국 야구부를 그만두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다. 야구부를 그만두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제혁과는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거나 그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면서 흔히 말하는 불알친구가 되었다. 중학교를 그렇게 야구를 그만두면서 흐지부지 흘려보냈고, 고등학교는 제혁과 같은 학교에 가면서 즐거운 생활하기도 했다. 졸업하기 전까지 그의 곁에서 연습하는 제혁에게 도움을 주거나 자세를 피칭해주거나 조언해주기도 했다. 시합이 있는 날이면 언제나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시합 당일에 입석해서 지켜보며 응원하기도 했다. 자칭 김 제혁 팬 1호라고 생각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 생겨난 제혁의 팬들 사이에서는 다르게 통했다. 사실 초반 때까지만 하더라도 별명이 생기진 않았다. 별명은 정확하게 어느 시점이었더라, 그래. 그때였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시합하던 제혁을 통해 그의 꿈에 대한 응원과 그 누구보다 그를 동경하기 시작하면서 제혁이 출전하는 경기란 경기는 무조건 입석해서 응원하기 시작하면서였다. 이미 유명했던 제혁이었기에 팬들이 있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런 팬들이 저에게 붙여준 별명이 '김 제혁 껌딱지'였다. 그만큼 한 번의 경기도 빠지지 않고 직관하러 다녔다.

 

" 김제혁!! 파이팅!! "

" ... 저 사람 또 왔네... "

" 저 분 유명하잖아. 몰라? 김제혁 껌딱지. "

 

' 또다. 또 저 별명이네... 나는 팬 1호라고 생각했는데. '

 

조금 아쉬운 점이 없잖아 있는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 별명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에 속한다고 봐야 옳다.그렇기에 언제나 항상 놓치지 않고 직관하러 다니는 거겠지. 매번 에이스로 활약하는 그를 동경하고 있다. 그렇기에 응원한다. 제혁의 꿈이 무너지지 않기를, 나의 응원이 제혁에게 닿아 그에게 힘이 되기를. 그런 제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는 제혁은 저에게 농담으로 시답잖은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제혁 역시 그런 이야기들을 싫어하진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 이러다가 네가 내 애인 되는 거 아니야? 하하. "

" 뭐?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마라 "

 

중학교부터 시작한 이 인연에 너와 애인이 된다는 상상은 해본 적 없지만, 가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본다.장난이 섞인 말투와 행동, 어디까지나 친구로서의 거리.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를 유지할 때쯤 소식이 들려왔다.네 야구 선수로서의 커리어에 부담이 갈 정도의 몹시 나쁜 소식이었다. 2017년 그날의 소식을 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에 큰 충격이긴 했지만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자신이 제혁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그 생각만 맴돌았다.할 수 있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가 무척이나 컸다. 가장 먼저 제혁이 들어간 구치소를 통해 인터넷 서신을 넣었다. 비록 인터넷 서신이었지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강간하려던 놈을 과잉 진압했다는 것 때문에 구치소로 가버린 네가 걱정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출소 이후의 커리어도 포함이었다.

 

" ... 제혁이에게. "

 

[ 2017.xx.xx 7102 김제혁 xx구치소 ]

보내는 이 : 오재영

제목 : 제혁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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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제혁아? 나 재영이야 조만간 시간 내서 접견 갈 생각이지만 지금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어.분명 그날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간다는 연락을 하던 네가 다음 날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라니...나 처음에 진짜 꿈인 줄 알았거든? 근데 볼 꼬집어 보니까 꿈이 아니라 현실이더라. ㅋㅋㅋ소식 들었어. 그 새끼는 지금 병원에 있다고 하더라. 지금은 뇌사 상태래.너에게 이런 소식을 전해줘도 괜찮은지 한참 고민했어. 기억하냐? 우리 학교 졸업할 때, 마지막으로 야구 캐치볼 하면서 했던 대화. 너희 가족, 팬, 친구들은 걱정하지 마라.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널 도와줄 테니까 너무 큰 걱정은 마.내가 누구냐? 오재영이야. 혹시 모르니까 내 주소랑 번호 남겨둘게.편지 꼭 답장해라. 진짜. 답장 안 하면 복수한다.

 

xx시 xx구...

010-xxxx-xxxx

 

 

화면에 보이는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인터넷 서신을 보내고 나니 긴장한 게 풀리기라도 한 모양인지 의자에 기대 한숨을 내뱉었다. 제혁이 구치소에 수감되고 나서 바로 변호사를 통해 알아보았다. 이래저래 알아보느라 비용이 많이 나가긴 했지만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제혁이 초범이고 범죄 자체가 방어에 있기 때문에 무죄는 힘들어도 집행유예 기간이 나올 수도 있을 거라는 소식이었다. 굳이 이 소식을 제혁에게 전해 희망을 심어주었다가 실망하기라도 한다면. 싶은 생각에 굳이 전하지 않았다. 우선 네x버 카페에 들어가 제혁의 소식을 공식적으로 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모임까지는 아니었지만 제혁에게 전하고 싶은 것들을 받아 대신 전달하기로 정했다. 바쁜 제혁의 가족들을 대신해 가장 먼저 접견을 가기로 했다. 팬들의 물건을 담아 가족들의 말을 기억하고 구치소 앞까지 도착한 건 좋았다. 높게 쌓여있는 담벼락에 마른침만 삼켰다.

 

" 후... "

 

용기가 나질 않았다. 발걸음을 옮겨 들어가서 제혁을 보면 끝날 일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범죄자들과 같은 옷을 입은 너와 대화해야 한다는 현실이 지독했다. 하지만 저가 누구던가. 김 제혁 껌딱지라고 불린 사람이었다. 크게 심호흡하고 짐들을 챙겨 접견 센터로 향했다. 절차 안내를 따라 들고 온 짐들은 일부분만 반입되었다. 책이나 편지 같은 것들만. 음식들은 어쩌지, 싶은 마음에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사식이 아닌 이상 개인 음식을 들일 수 없다는 거였다. 더 자세히 알아보고 올 걸 그랬나 보다.접견 예약을 잡았던 시간에 길 안내를 받은 대로 향하자 이미 앉아있는 너를 볼 수 있었다. 눈 안쪽이 시큰거려오는 걸 힘을 주어 참았다. 네 앞에서 울 수 없으니까. 애써 웃으며 덤덤하게 반겨주는 너에게 미안해서 그러지 못한다.

 

" 야, 재영아. ... 잘 지냈냐? "

" 잘 지냈겠냐? 어디의 누구 씨가 사고치는 바람에 그러지도 못했어. "

" 하하... ... 가족들은? "

" 잘 지내고 계셔. 어머님은 조금... 힘들어 하긴 하시지만, 제희는 자책을 하고 있어. "

" ... 미안하다. "

" 아니야. 네 팬들이 넣어달라는 거 넣었어. "

 

아무렇지 않은 듯 인사를 건네오는 제혁의 말에 부러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어색한 듯 목덜미를 쓰다듬는 네게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가장 먼저 가족들에 관해 묻는 제혁에게 사실만 알려주었다. 바빠서 오지 못하셨지만,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덧붙였다. 미안하다는 말에 분위기를 돌릴 겸 팬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구구절절 늘어나는 말이었지만 난감해하던 네 표정이 바뀌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끝으로 영치금을 넣어준다는 말을 마치며 접견했던 10분의 시간이 끝났다. 10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짧았던가. 교도관과 함께 나가는 너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제혁이 입은 푸른 수용복이 사라지자 울컥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구치소를 나오면서 눈물을 닦았다. 앞으로 할 일은 정해졌다. 열심히 너를 서포트 해야겠다.

 

" 재영 오빠, 고마워요. "

" 아냐, 뭘. 이 정도는 해야지. 친구인데. "

" 우리 오빠 잘 부탁해요. "

" 이 정도는 한다니까. "

 

처음으로 면회하러 갔던 날 이후로 수시로 시간이 날 때마다 접견을 잡아, 면회했다.제혁의 가족들과 함께 가기도 했고, 제희와 가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과 가는 날도 있었고 혼자 가는 날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팬들 사이에서는 ' 이 정도면 껌딱지를 넘어서 이미 애인 사이 아니에요?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누군가는 애인이 아니라 이미 시집까지 갔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 사실을 제혁에게 알려주어도 언제나의 그때처럼 농담으로 주고받으며 아무렇지 않았다.

 

" 아, 요즘 네 팬들 사이에서 그런 소문 돌더라? "

" 무슨 소문? "

" 내가 껌딱지를 넘어서 네 애인 아니냐던데. "

" 뭐? 그런 소문까지 돌아? "

" 어, 심지어 내가 이미 너한테 시집 갔다더라? "

" 뭐야. 그게. "

 

짧다면 짧은 10분의 시간 동안 주고받은 대화는 가볍기만 할 뿐이었지만 싫지 않았다.그렇게 옆에서 열심히 그를 보조하며 팬들의 말로는 내조하는 일상을 이어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4번의 계절이 지나갔다.1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면 있었지만, 지금의 느낌은 처음 구치소 문 앞에 섰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곧 나올 제혁을 위한 갓 나온 따끈따끈한 두부도 준비했다. 새벽이라 입에서는 입김이 나왔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굳게 닫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철문이 열렸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제혁의 출소 복이라고 보내둔 옷을 입고서 나오는 제혁을 발견했다.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힘주어 참아냈다. 웃는 얼굴로 제 앞까지 찾아와준 제혁에게 봉지를 건네었다.

 

" 김 선수, 두부 드시고 술 한잔 하러 가시죠. "

" 그럴까? "

 

제혁은 두부를 받고 두어 번의 입질로 두부를 털어 넣으며 말했다.그 뒤로는 둘이서 술 마시러 자주 가던 고깃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의 회포에 이리저리 털어 넣다 보니 두 사람은 그저 묵묵히 술만 마실 뿐이었다.그러다 알딸딸한 정신에 깊게 고민하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지난 1년간 계절이 4번이 바뀌는 동안 계속해왔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고민의 중심에 있던 상대에게 털어놓을 때가 되긴 했다. 쓴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고 말했다.

 

" 나, 네가 감방에 있는 동안 계속 네 생각만 했는데... "

" ... "

" ... 너도냐? "

" 어. 나도 거기서 네 생각만 했다. 재영아. "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을 끝으로 재영의 머리가 테이블을 박으려고 했다. 그 순간 제혁은 자신의 큰 손으로 재영의 머리를 다치지 않게끔 받쳐주며 그를 보았다. 이미 술에 취해 들릴지 모르겠지만 제혁은 웃으며 조용히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