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임무 중이던 옷코츠 유타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과 유키나 선생님이 못내 그리웠다.
물론 언제나 자신이 원할 때 영상통화를 하긴 했지만, 그걸로 만족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불만이 높아지고 일 처리가 쉽지 않게 되다 보니 유타를 지켜보던 미겔이 한숨을 내뱉으며 먼저 내뱉었다.
"옷코츠, 일 이 주 정도... 일본에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
"미겔 씨...!!"
지켜보고만 있던 미겔이 도저히 참지 못했는지 유타에게 잠시 일본에 다녀오라는 말을 해주었다. 미겔의 말에 바로 반응한 유타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놀라면서도 진심이냐고 물어보고 있는 시선으로 미겔을 보았다. 짧은 한숨과 같이 무겁게 가라앉은 미겔의 표정을 읽었음에도 유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겼다. 유타는 미겔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일본에 있는 고죠 사토로 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죠 선생님!!"
[유타?]
"이번에 저 미겔 씨에게 허락 맡아서 일본으로 갈 거 같아요."
[... 미겔이 그런 허락을 했다고?]
"내일 저녁에 출발해요!"
[유타! 유ㅌ...]
유타는 고죠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전화를 꺼버리고 말았다. 침대 위로 풀썩 드러누우며 천장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일이면 유키나 선생님과 친구들을 본다는 사실 하나로 잠을 못 자고 밤을 지새우기 충분했다. 그 탓에 유타는 약속했던 내일 저녁에 출발하기로 해놓고서 긴장감에 오늘 저녁에 출발하고 말았다.
*
'뭐... 고죠 선생님이랑 유키나 선생님께 서프라이즈 해드린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오랜만에 자신이 나타나면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며 유타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한편, 유타의 전화를 받았던 고죠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일본으로 온다는 말에 언제까지 있냐는 질문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날, 아무것도 모르는 유키나와 그새 까맣게 잊어버린 고죠는 학생들을 데리고서 넓은 운동장에서 수업 겸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학생들이 하나둘 지쳐서 운동장에 그대로 드러눕기 시작했다.
"아~~ 선생님!! 이제 진짜 힘들어요!"
"이제 무리, 무리무리!!"
"..."
아무 말 없던 이누마키 마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였다. 이누마키가 끄덕이는 걸 보고서야 유키나는 고죠의 수업이 거칠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쉴 시간 따윈 없다며 아이들에게 일어나라 말하는 고죠의 팔을 붙잡고서 겨우 다독였다.
"사토루, 아이들 조금 쉬게 해요."
"유키나 ..."
"네? 부탁해요."
유키나의 부탁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죠의 허락이 통하자마자 2학년 학생들은 전원 운동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버렸다. 판다는 이미 아예 이불 속이라도 되는 것처럼 드러누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죠가 장난기가 생겼던 모양인지 입꼬리를 말아 실실 웃으며 말했다.
"에~ 학생들, 그것밖에 안 되는 거야~?"
"... 사토루, 적당히 해요."
고죠의 장난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던 유키나도 지친 아이들의 표정이 점점 안 좋게 변하자 다급하게 고죠에게 적당히 놀리라고 말렸다. 다른 사람의 말이었더라면 무시하고 더 놀렸겠지만 유키나의 부탁이었기에 고죠는 조금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2학년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2학년들은 하나같이 그 모습을 보고서 생각했다.
'역시 유키나 선생님...'
특히 마키는 유키나를 보는 시선에 존경심이 더더욱 가미 되어 버린 상태였다. 학생들의 시선이 유키나에게로 향해있을 때, 그 시선을 알아차린 고죠가 유키나의 앞을 가로막으며 숨겼다. 어리둥절한 유키나의 뒤로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키나의 고개가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학교 정문 앞에서부터 뛰어오는 반가운 얼굴에 유키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유키나 선생님~!!! 고죠 선생님!!"
" ...유타?"
의도치 않은 서프라이즈를 하게 된 유타는 반가워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유키나와 학생들에게로 달려왔다.
어디로 도망갈 새라 달음박질쳐가며 한달음에 달려와 다가서는데 유키나 역시 유타를 반겨주려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가까워지자 유키나는 뒤늦게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고죠는 유키나가 알아차리기 직전까지 알지 못하다가 뒤늦게 알아차렸다. 유타는 아예 모르고 있었다. 유타를 맞이해주는 유키나의 뒤로 고죠를 포함한 모두가 유타를 향해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어...? 애, 애들아... 고죠 선생님...?"
"...유타."
"왜...?"
오랜만에 만나 신나는 자신과는 달리 자신을 경계하기만 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의 모습에 유타는 울상을 지었다. 유키나는 유타의 근처에서 느껴지는 익숙하지 않은 주력에 전투 태세를 갖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고죠와 아이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상처받은 표정을 짓는 유타의 앞에서 저까지 그럴 순 없었다. 유키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텐겐의 결계를 뚫고 들어온 주령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경계할 만했다. 이상하게 유타는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인 것 같았지만.
" 유타, 잠시만..."
"유키나 선생님... 애들이랑 고죠 선생님이 왜..."
"잠시면 돼."
장난치는 줄 알고 장난스레 웃던 유타도 고죠의 반응을 보고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경계 태세를 갖추면서 고죠가 평소와 같은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온데 간데 보이지 않고 붕대를 살짝 풀어 육안을 빛내며 유타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상 유타의 뒤에 있는 주령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한 거였지만 유타의 시선에서는 자신을 노려본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유키나는 그걸 모르고 있었지만, 유타가 당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울먹이는 유타의 시선을 끌고 여차하면 유타를 끌어안고 피할 생각이었다.
빨라지던 유타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더니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 유키나와는 고작 열 발걸음이면 닿을 거리였다. 고죠는 여차하면 바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1급 주령이거나 특급이라고 하기에는 그 존재감이 매우 미약했으며, 그렇다고 하찮은 녀석이라고 하기엔 또 얕볼 수 없었다.
"유타. 내일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 그게... 선생님이랑 애들한테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그래서 일찍 왔다고?"
"네..."
유타는 고죠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주면서도 울상이 풀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타가 답할 때마다 고죠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져 갔다. 유타의 뒤에 있는 주령이 조금씩 꿀렁거리며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유키나는 생각했다.
특급도 아니고 1급 주령이라고 하기엔 그 존재감이 너무나도 낮고 승두라고 하기엔 생김새라던가 주령의 양이 또 남달랐다. 감히 함부로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고죠와 유타가 여러 번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는 사이 유타가 눈치챘던 모양인지 입가가 점점 굳어갔다.
"유타, 괜찮아."
"유키나 선생님..."
유타는 자신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보는 유키나를 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유타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었다. 제 곁에서 느껴지는 주령의 힘은 저에게도 고작인지라 고죠나 유키나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판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유타의 미소에 유키나는 의문이 들었다. 아차 하는 순간 당할 수도 있을 텐데 여유롭게 웃고 있는 게 걸렸다.
"선생님들이 나설 필요가 없네요."
"어? 유타?"
"별 거 아니니까 제가 불제 할게요."
유타는 유키나를 향해 웃으며 별거 아니라며, 이런 걸로 긴장하지 말라고 유키나와 친구들을 안정시켰다. 그의 말대로 주령은 생각보다 싱겁게 유타의 힘에 의해 불제 되었다.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주령은 정말 별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모두를 긴장시키던 주령은 마키, 이누마키, 판다, 고죠가 함께 전투 태세가 되었던 것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그리고 조용히 사라졌다. 주령이 불제되고 나서야 유타는 안심한 듯 유키나의 곁으로 다가갔다. 유타가 웃고 그의 반가움에 마주 웃던 유키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고죠가 순간 흠칫하더니 유키나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유키나!!!"
"선생님! 유타!!"
"어...?"
분명 주령은 유타의 힘에 의해 불제가 되었을 텐데,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모두가 다 같이 유키나와 유타를 부를 때, 검은 연기가 유타와 유키나를 감쌌다. 그리고 그 주령의 저주 표시로 두 사람의 손목에 주력으로 연결된 끈이 생겨났다. 그렇게 유타와 유키나에게 주령의 저주가 씌여졌다. 모두가 당황해서 멍하니 두 사람을 보았다. 유키나와 유타 역시 서로를 보다가 손목을 보았다. 분명 불제 당한 주령은 등급조차 특정되지 않을 정도로 약한 상태였다는 걸 운동장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유키나의 당황한 시선이 고죠를 향했다.
"...유키나, 잠시만 실례할게."
"으응..."
고죠는 유키나와 유타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유키나의 손목을 붙잡아 저주의 표식을 살펴보았다. 몇 분 동안이나 살펴보던 고죠는 혀를 걷어찼다. 그의 반응에 유키나는 고죠의 입에서 해결 방안이 나오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녀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고죠의 말을 들을수록 유키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유타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유키나의 손을 지켜보던 고죠는 그녀의 손을 내려두고 유타를 보았다.
"약한 주령이 그 상태를 유지한 상태였어. 그게 불제당하면서 지금까지 억눌러왔던 술식을 폭주했고..."
"폭주를...?"
"그런데 그게 유타가 무의식중에 제약을 건 것 같은데..."
"제가요?"
"그래, 유타. 그게 선명해져서 두 사람에게 남은 것 같아."
고죠의 설명에 유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고죠를 보고 있던 유키나의 시선이 유타에게로 향했다. 괜한 자책을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보게 되었다. 고죠의 말이 끝나자 유타는 고개를 숙였다.
'이러려고 일본으로 돌아온 게 아니었는데.'
유타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고죠는 자신의 연인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넋 놓고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유타와 유키나를 이어주던 저주의 형태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선명해졌다. 고죠는 운동장에서 경계 태세를 풀고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을 교실로 돌려보내고 유키나와 유타 그리고 고죠까지 다 같이 교실로 돌아왔다. 그 잠깐 사이 손목에만 머물던 끈은 어느새 팔목 전체를 감싸는 형태로 변해있었다. 끈은 인연을 볼 수 있는 형태였기 때문에 고죠는 지금 당장이라도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그 저주를 없애고 싶었지만, 그 저주가 주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건들 수 없었다.
"유키나쨩,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방법을 알아볼게."
"사토루..."
"...죄송해요, 유키나 선생님. 고죠 선생님."
고죠는 섣불리 선택할 수 없었다. 막무가내로 그들 사이의 저주를 해제했다가 둘 중 누군가의 몸에 상태 이상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알기 위해 고죠는 2학년 학생들에게 자율 학습을 명하고는 유타와 유키나를 쇼코에게로 데리고 가기로 정했다.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끈의 길이는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멀리 떨어트리고 싶어도 기껏해야 1M에서 1.5m가 고작이었다. 고죠는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자신 눈으로 보아도 해결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하기만 했다. 그저 할 방법이라고는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쇼코에게 데려가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교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지하실
"...이게 뭐야?"
"보다시피."
"네 잘난 육안은 폼이야?"
"..."
고죠는 유타와 유키나를 데리고서 지하실에서 쇼코를 기다렸다. 긴장한 유타와 괜찮다며 긴장한 유타를 다독여주는 유키나,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괜한 불안감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는 고죠의 뒤로 쇼코가 향긋한 커피 향과 함께 나타났다.
쇼코는 자신을 향해 웃으며 인사하는 유키나와 그녀의 곁에 붙어있는 유타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렸다. 커피잔을 테이블 위로 올려둔 뒤 두 사람의 앞에 쪼그려 앉더니 둘을 보았다. 정확하게는 검붉은색으로 유타와 유키나의 사이에 이어진 끈을 보더니 피곤한 눈빛으로 그 두 사람을 살펴보았다. 그런 뒤에는 고죠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유타와 유키나의 손목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쇼코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 그래도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네 의견을 들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뭐, 내가 전문적이긴 한데."
고죠는 쇼코의 말에도 최대한 성질을 죽인 채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소리에서부터 억눌린 티가 팍팍 났지만 쇼코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쪼그려 앉아있던 쇼코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차분하게 가라앉았지만 피곤한 티가 나는 목소리로 괜찮다는 듯 말했지만, 유타와 고죠는 전혀 괜찮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대로 두면 며칠이 지나서 사라질 거야. "
"진짜로?"
"뭐... 육안으로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정체 모를 저주니까. 괜히 건드리지만 않으면 돼."
"흠..."
며칠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는 말에 유키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한 걱정이라며 말하지만 진지한 고죠의 귀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쇼코의 말에는 신뢰가 가지만 그녀의 행동에서 신뢰가 가지 못했다. 적어도 고죠의 눈에는 쇼코가 짧게 몇 초 정도만 둘러본 것처럼 보였다. 그 뒤로 유타와 유키나를 두고서 쇼코는 고죠만 따로 불렀다. 그의 표정이 영 만족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한다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고죠를 따로 불러낸 쇼코는 유타와 유키나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왔다.
"고죠, 걱정하지 마. 주력으로 생겨난 끈이라 몸에 데미지는 전혀 없어. 그냥 끈이야."
"... 진짜?"
"그럼. 아무리 너라도 당장은 끊기 힘드니까 며칠 정도는 쉬게 해줘."
며칠 정도는 쉬게 해주라는 쇼코의 말에 고죠는 떨떠름했지만, 고개를 끄덕여 수락했다. 짧은 한숨을 내뱉던 쇼코의 시선은 고죠에게 머물렀다. 고죠의 시선 끝에는 유타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키나에게로 향했다. 유키나는 고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유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교실
"자, 그렇게 돼서 유키나 선생님과 유타는 며칠 동안 쉬게 되어서 나오지 못하게 되었어."
"...네?! 유키나 선생님...!!"
"그렇게 됐어..."
교실에 돌아온 세 사람은 교탁 앞에 섰다. 고죠의 설명이 이어지자 반 학생들은 경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마키는 유키나의 손목을 보다가 고죠를 보기도 했다. 사실 유키나는 고죠에게 이대로 수업을 진행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다. 고죠의 완고한 말에 유키나는 결국 졌다는 듯 주술의 끈이 사라지기 전 며칠 동안은 쉬기로 약속했다. 유타는 그야말로 이참에, 라는 느낌이 강했다. 방과 후 유키나는 자신이 선생으로서 머무는 숙소로 유타를 초대했다.
"조심해서 들어와."
"와... 저 처음 와봐요. 선생님의 집..."
"그렇지... 고죠말고는 처음인 걸?"
입구에서부터 신기하다는 듯 이리저리 둘러보기만 하는 유타와 그런 유타의 모습에 부끄러워지는 유키나였다. 유키나는 유타를 이끌고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주술의 끈으로 인해 당분간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걸 합의로 하고 지켜야 할 간단한 규칙을 몇 가지 정하기 위해서였다. A4용지를 들고 온 유키나는 볼펜으로 숫자부터 적은 뒤 하나하나 상의하길 원했다.
"우선... 중요한 건 샤워할 때하고 잠자는 거네..."
"그러고 보니...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데 안 씻을 순 없겠네요."
"그렇지?"
"네."
"그래서 말인데... "
유타에게 하나가 권유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서로가 샤워할 때는 문을 살짝 열고 해야 하니 눈을 가려야 하는 안대와 귀를 막아주는 귀마개를 껴야 하는 것, 그리고 잠을 잘 때에는 번갈아 가며 침대를 쓰는 것, 그 외에는 하나는 선생님이었기에 학생을 올바른 생활로 이끌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나온 것이었다. 바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기초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까지. 모든 게 하나의 계획 아래에 하나씩 정해져 갔다. 모든 건 규칙을 정하면서도 서로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전혀 없는 상태였기에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차분하게 이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 거였다.
"자, 이 정도면 되겠지?"
"네! 서로 잘 지내봐요. 선생님."
"그래, 나도 잘 부탁해. 유타."
"... 나는 못마땅한데."
서로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유타와 하나였지만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고죠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평소보다 더 뚱해져 있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하나를 보며 말했다.
'속박되어 버린 건 두 사람인데 왜 내가 더 짜증이 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죠의 표정은 마음에 안 든다는 티가 팍팍 나고 있었다. 안대 때문에 그의 표정은 입 모양으로밖에 알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고죠가 표정을 관리해버리는 순간 그의 기분과 상태가 어떤지 알아채는 건 단 한 명, 유키나뿐이었다. 고죠는 팔짱을 풀고서 유키나와 유타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당분간 임무는 나랑 1급 주술사들이 분담해서 나가는 걸로 정해졌어."
"응, 고마워요. 사토루"
"뭘. 오늘은 지방까지 나가서 하는 임무는 없으니까... 저녁 먹고 영화 한편 볼까?응?"
"... 사토루"
고죠는 자신의 말을 마친 이후로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임무는 없고, 저녁에 시간이 되니 데이트를 하자는 말이었다. 넌지시 흘러가듯 던지며 하는 말이었지만 고죠의 속은 전혀 흘러가는 상태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제자들 앞이라면 철벽이란 철벽을 다 치는 유키나인데 며칠간 곁에 유타까지 있으니 분명히 거절당할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평소에 데이트를 권유하는 것보다 더 말을 붙여보거나 괜스레 유키나의 뺨을 쿡쿡 눌러보는 등 장난까지 치기 시작했다. 그런 고죠의 모습을 지켜보던 유타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고죠 선생님의 장난기는 여전하시네요!!"
"... 사토루! 제자 앞에서 뭐 하는 짓이에요?! "
"아야, 아야 "
유타의 웃음에 부끄러워진 유키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장난치는 고죠의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고죠에게 닿기도 전에 무하한의 술식으로 막혔을 공격이었다.
야가 학장이나 유키나 같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술식을 해제하고 그저 맞아주었다. 고죠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아픈 척 훌쩍거리다가 맞은 손등을 문질렀다. 여전히 웃음기가 머문 표정으로 유키나를 보며 말했다.
" 유키쨩, 공동 생활하면서 써야 할 생필품들부터 사러 다녀와. 그동안 나는 임무 좀 다녀올게."
"휴... 사토루, 다녀와요."
공동생활에 사용할 물품을 구매하라고 말하던 고죠는 임무를 다녀오겠다는 말을 덧붙이고서 자리를 비웠다. 정확히는 비워야만 했다.
주술 고등전문학교 밖으로 나가면서도 유키나의 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유키나가 있을 숙소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보조 감독이 차 보닛을 두들기며 가야 한다고 말하자 고죠는 그제야 감독이 몰고 온 차량에 탑승했고 그렇게 임무를 하기 위해 떠났다.
*
*
*
고죠를 보내고 나서 유타와 유키나 역시 주술 고등전문학교 바깥에 위치한 대형 마트로 향했다. 고죠의 말대로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유키나의 경우에는 당연하게도 숙소 내에 이미 비치된 자신의 것들을 써도 충분했지만, 유타는 그렇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막 귀국한 상태인데다가 그곳에서 쓰던 물품보다는 아예 새로 사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음... 이거 어때?"
"유키나 선생님! 이왕이면 저렴한 걸로 사요."
"아무리 그래도 제자가 쓰는 건데."
세안 도구 코너에서 5분째 제품을 비교하며 유타에게 물어보던 유키나였다. 지켜만 보던 유타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음에도 유키나는 두 물품을 꼼꼼하게 비교했다. 그렇게 천천히 카트에 담기기 시작한 칫솔과 세안 도구, 그 외의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듯 담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타가 조심스럽게 유키나에게 말했다.
"저... 선생님.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같이 저녁... 함께하고 싶은데 전골 어때요?"
"음.. 그럴까? 좋은 생각이야."
자신이 돌아온 기념으로 친구들을 불러 저녁으로 전골을 해 먹자는 유타의 말에 유키나는 고민했다. 아까 고죠가 가기 전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 내심 고민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일본으로 돌아온 제자를 위해서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식품 코너로 향해 전골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을 담기 시작했다. 샤브샤브용 소고기부터 시작해 두부, 표고버섯, 청경채, 대파, 실곤약, 떡, 달걀까지. 카트 안을 바라보던 유키나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 으음... 뭔가 빠졌는데..."
" 선생님, 육수랑 쯔유요. "
" 아! "
골똘히 생각하며 중얼거리던 유키나의 모습에 유타가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귀띔해주었다.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치던 유키나는 웃으며 육수와 쯔유를 카트에 담았다. 그렇게 대형 마트에서 물품을 구매하고서 다시 고등전문학교로 복귀한 유키나와 유타는 부엌에서 짐과 식재료를 풀고 있었다.
어느새 수업을 다 마친 마키가 돌아와 유타를 보며 말했다.
"유타, 오랜만에 대련이나 하자."
"어?"
"아, 으음..."
대련하자고 말했던 마키는 뒤늦게 유타와 유키나의 손목에 이어진 저주를 보고서 아차 싶어 고민에 잠겼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판다와 이누마키 또한 유타와의 대련을 기대했던 모양인지 함께 고민하는 표정을 보였다. 2학년들은 어쩌지하는 표정으로 고민하면서 유키나가 강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술식이나 전투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을 때 유타가 먼저 말했다.
"어차피 이왕 이렇게 된 거 유키나 선생님이랑 동시에 덤벼들기엔 끈 길이가 긴 편도 아니니까."
"어?"
"특급인 나에게 핸디캡을 건다 치고 그냥 대련해보는 건 어때?"
"... 괜찮을까요? 선생님"
"음... 서로 한 손이 자유롭게 쓰진 못하겠지만 직접적인 공격은 삼가하고 유타를 보조하는 쪽으로 할게."
유타의 의견과 유키나의 허락에 아이들의 고민으로 찡그려졌던 얼굴이 화색이 되어 펴졌다.
마키와 유타는 서로 거리를 두며 누가 선공할지 눈치 싸움을 하는 도중 먼저 공격해오는 쪽은 유타가 아닌 마키였다. 정면으로 달려오던 마키가 페이크로 창을 휘두른 후 유타의 뒤로 이동해 그대로 창을 내려쳤다. 그런데 유키나가 마치 마키의 움직임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재빠르게 손에 주력을 둘러 마키의 창을 튕겨냈다. 튕겨 나가는 창에 마키는 두 사람에게서 거리를 둔 뒤 놀란 표정을 갈무리했다. 다시 자세를 가다듬은 뒤 다시 한번 기습의 틈을 노리며 인내하는데 이번에는 유타가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르며 거리를 좁혀왔다.
"윽..."
유타의 공격을 막기 버거웠지만, 거리를 두는 게 더 힘들었던 마키는 중간마다 유타의 집중을 흐리게 하기 위해 공격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마키의 공격을 유키나가 막아내 주었다. 그렇게 호흡을 하나하나 맞춰가면서 유타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진심은 아니었겠지만, 혼신의 일격이었던 탓에 막지 못한 마키는 결국 이번 대련에서 자신이 졌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깔끔하게 인정하고 난 뒤 유키나를 보았다.
유키나의 센스있는 방어에 놀란 건 마키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유타만이 유키나를 보며 웃은 채 이야기했다.
" 유키나 선생님 덕분에 마키 씨를 이겼네요."
"에이, 아니야."
"마키! 역시 창과 검은 리치 차이가 크니까 마키를 본받아서 검보다 긴 주구를 다루는 사람을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이길 수 있는 법을 생각해 봐야겠어."
"... 너도 대단했어."
"고마워, 앞으로도 노력할게."
유타는 유키나의 움직임을 보고도 다른 아이들처럼 놀란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그럴 거라는 듯 알고 있는 태연한 모습으로 유키나 덕분이라는 말까지 내뱉으며 웃었다. 그리고 마키에게는 본받겠다며 노력하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유키나는 유타가 밝은 모습으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걸 보고, 제 학창 시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랜 추억이 유키나에게 미소를 짓게 했다.
' 유키나 선생님은 뭐지...?'
웃고 있는 유타와 추억에 웃는 유키나를 제외한 2학년들은 유키나를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마키는 대련하는 도중에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분명 유키나는 방금의 대련에서 보여준 모습 그 이상으로 강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생각을 넘어선 확신에 마키는 유키나에게 용기 내 말했다.
"선생님, 가끔 시간 나시면 훈련에 어울려... 주실 수 있나요?"
"으음... 그럴까? 제자의 부탁이니 그러도록 할게."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제 대련은 끝났으니까 각자 씻고 식당으로 모일까? 오늘 저녁은 전골이야."
유키나는 항상 냉철해 보이던 마키가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 자체가 반가웠기에 거절하지 않고 수락했다. 애초에 유키나에게는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제자의 부탁인 만큼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손뼉을 치며 모두에게 식당으로 모이라는 말을 하고 모두가 각자의 숙소로 흩어졌다.
기숙사로 도착한 유타와 유키나는 유타에게 먼저 씻으라며 양보했다.
"유타, 너 먼저 씻도록 해."
"그래도 돼요?"
"그럼."
유타가 먼저 욕실에 들어가고 난 뒤 유키나는 욕실 밖에 의자를 가지고 와 앉은 뒤 안대를 두르고 귀마개를 꼈다. 완전한 어둠과 조용해진 주변에 유키나는 가장 먼저 고죠가 떠올랐다.
' 지금쯤이면 사토루도 임무를 끝났을 텐데... 왜 안 올까?'
아직 오지 않는 고죠에 의아한 듯 멍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 멍때리고 있을 때 유타는 최대한 빨리 씻고 나와선 유키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물기를 닦아내며 웃는 얼굴로 유키나에게 말했다.
" 저 다 씻었어요. 이제 유키나 선생님 씻으세요."
" 그럴까? "
유타의 말에 유키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안대와 귀마개를 뺐다. 그러자 유타가 욕실 문 앞에서 비켜섰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어디선가 튀어나온 고죠가 유키나를 껴안아 들어 올리고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유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 욕실 문을 보았다.
욕실 안에서는 고죠가 닫을 수 있을 만큼 문을 닫고선 유키나의 뺨에 입술을 비벼댔다. 못 참겠다는 듯 입술 위로 키스를 수없이 쏟아붓기까지 했다. 아무리 문을 닫았다고는 하지만 욕실 안에서 들려오는 적나라한 입맞춤 소리는 유타가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유타는 살짝 민망한 소리가 들려오지만 안대를 두를 틈도 없이 고죠가 유키나를 데리고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눈을 꾹 감으며 살짝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며칠만 더 참아줘요, 사토루."
"유키짱..."
"키스 이상은 안 돼요."
고죠의 행동에 유키나는 속닥거리며 그의 입술 위로 검지 손가락을 꾹 누르고 말했다.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키스 이상은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당부했다.
고죠는 제 속은 타들어 갈 것 같은데 유키나의 부탁이니 거절하지 못하고 끙끙거리기만 했다. 그 말에 더 안달 난 고죠는 이리저리 입 맞추려고 하지만 유키나의 손이 다 막아버렸다. 결국 그녀의 말을 수긍한 듯 서로의 뺨을 맞댄 채 비벼대면서 꼬옥 품 안으로 가두듯 안아버렸다. 그런 고죠의 모습에 유키나는 잠시 받아주는가 싶다가도 고죠의 등을 밀어내며 말했다.
"이제 저 씻어야 하니까 이만 나가줘요."
"유키쨩...!"
유키나의 등쌀에 못 이겨 욕실에서 내보내진 고죠의 모습은 마치 주인의 손길에 거부당한 강아지 같아 보였다.
고죠를 내보낸 유키나 는 샤워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기다릴 이들을 위해 재빨리 씻고 나오기까지 했다. 유키나가 씻고 나오자 유타의 얼굴은 붉게 물들여져 있었고 그 이유를 알고 있던 유키나는 저까지 덩달아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유키나가 부끄러워진 현재 상황의 주범은 알고 있으면서도 태연해 보였다. 부끄러운 상황도 잠시 세 사람은 식당으로 향했다.
"어, 유키나 선생ㄴ... 옷코츠 선배?"
"하하! 오랜만이야. 후시구로군."
식당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보이던 사람은 다름 아닌 후시구로였다. 유키나를 보고 먼저 인사를 하려던 후시구로는 그녀의 곁에 있는 고죠보다 유타의 존재에 더 놀란 눈치였다. 이내 손목을 보더니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했던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쿠기사키와 이타도리는 다른 지역에 공동 임무가 잡혀서 없어요."
"혼자서 기숙사에 남은 가련한 후배를 챙겨주는 선배야"
"하.평소에 좀 더 챙길 생각을 해야지."
"연어, 연어."
후시구로의 말에 맞장구라도 치는 듯 판다가 우쭐거리며 말했다. 그 뒤를 이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던 마키가 핀잔을 주었다.
마키의 핀잔에 동감한다는 듯 이누마키가 끄덕거리며 말했다. 동갑내기들의 핀잔과 동의에 충격받은 판다가 몸을 굳혔다.
"판다, 충격..."
"하..."
판다가 구석에서 땅 파고 있을 때 그걸 지켜보던 후시구로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런 모습을 유키나와 유타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저녁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 모두가 자리에 앉아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냈다.
고죠와 유키나, 유타와 후시구로, 판다와 마키 그리고 이누마키는 유키나와 유타가 준비해준 전골을 맛있게 먹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흩어지고 식당에 남은 사람은 고죠와 유키나 그리고 유타뿐이었다. 정리를 하던 유키나는 무언가 깨달은 듯 고죠를 보며 말했다.
"아, 사토루. 잠은 유타의 방에서 자고 올게요."
"뭐?? 유키나 ?!"
일방적으로 잠은 유타의 방에서 자고 온다는 통보에 고죠는 적잖게 충격받은 상태였다. 마저 뒷정리까지 다 한 유키나는 유타와 함께 그의 방으로 향했다.
뒤늦게 정신 차린 고죠가 두 사람을 쫓아갔다. 유타의 방에 도착해서 잠옷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 옆에 고죠가 함께했다.
"유키나 선생님, 침대에서 주무세요."
"어? 그럴 순 없어. 유타가 침대에서 자고 내가 바닥에서 잘게."
고죠의 눈빛이 두려웠던 건지 아니면 배려를 하던 건지 유타는 침대를 양보하려고 했지만 유키나가 거절했다. 조금의 실랑이 끝에 침대는 유타가, 바닥에서는 유키나가 나란히 자기로 정해졌다. 유키나의 말에 졌다는 듯 결국 침대에 눕게 된 유타였지만 잠들기 전, 덧붙이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 내일은 선생님이 침대에서 주무세요. 아셨죠?"
유키나는 유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불을 깔고 잘 준비하기 위해 자리 잡고 자려고 할 때 모든 걸 지켜보고만 있던 고죠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안대로 가려져 있긴 했지만 굉장한 어둠의 오로라를 내뿜으며 유키나의 곁으로 꾸역꾸역 자리를 차지했다.
"연인을 놔두고서 다른 남자의 방에서 외박이라니. 그런 거 용납 못해."
"사토루?"
"두 분은 사이가 좋으시네요. 고죠 선생님도 같이 자고 가세요."
"안 그래도 그럴 거야."
유키나의 옆으로 꾸역꾸역 들어온 고죠는 유타의 말에 그럴 거라고 답했다. 그렇게 침대에는 유타가, 바닥에는 고죠와 유키나가 나란히 누워 잠들었다.
*
*
*
깊은 밤, 유타와 유키나 사이를 이어주던 저주의 고리는 조금씩 옅어지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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