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HL/드림/221218] 전쟁의 끝

나비의 보관함 2025. 1. 16. 22:51

 

 

라리엘은 하늘을 보며 어쩌다가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건지 의문이 생겼다.

깊은 한숨을 내뱉고 고민거리를 내뱉어 보지만 지독한 상황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속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짜증은 겉으로 드러났다. 입술을 비죽 내밀고서 툴툴거리는 일이 늘어났다. 언제나 그걸 지켜보는 사람은 금발 머리의 요한과 검은 머리의 프람이었다. 라리엘은 자신의 목표인 발켄슈트를 추적하는 작업 중에서 요한과 프람을 제외한 모든 아발론 사람들에게 이유 모를 미움을 받았다. 미움이라기에도 애매하고 원망이라기에도 애매한 그저 라리엘이라는 사람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추적에 나선 원정대에서 틈만 나면 라리엘과 일부러 거리를 둔다거나 상대를 하지 않는다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잦았다. 제일 심한 건 음식을 적게 주는 일과 상처를 입었을 때 제대로 치료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말 사소한 일이었지만 라리엘은 자기의 잘못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을 완전히는 아니었지만 받아들이기에 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다들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

" 그러게, 정말 모르겠다! "

" ... "

 

그럴 때마다 라리엘을 감싸준 사람은 요한과 프람이었다.

먼저 나서서 감싸준 것은 아니었지만 불리한 상황이 되거나 밥을 적게 받거나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나서서 감싸주고 도와주었다.

음식을 더 챙겨주는 일이 늘었고 치료해주거나 사소한 것들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아발론의 로드와 그들이 따로 대화를 나눈 이후부터 심해졌다.

로드라고 해서 이러한 현재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라리엘을 쉽사리 도와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로드는 아발론의 군주였고 그에 해당하는 지위가 있기 때문에 라리엘을 도와준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게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로드는 일행들이 원정 하러 가기 전날, 요한과 프람을 따로 불러 그들에게 부탁했었다.

 

< 요한, 프람. 나를 대신해 엘을 봐주길 바란다. >

< 로드의 부탁이 아니어도 그럴 생각입니다. >

< 당연하지! 엘이잖아? 지켜야지! >

 

로드의 말에 요한과 프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로드는 이번 원정에 따라가지 않았기에 두 사람에게 더더욱 당부하듯 말했다.

물론 로드의 부탁이 아니었어도 그들은 라리엘에 대해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생각이었고 또 그러고 있었다. 그저 이날을 기점으로 챙기는 것이 더 강해졌을 뿐이었다. 그걸 모르고 있는 라리엘은 로드조차 자신을 싫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작 자신을 챙겨주는 요한과 프람에게 괜스레 짜증을 부리듯 투덜거렸다. 두 사람이 싫은 건 아니었지만 아발론의 모두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처럼 구는데 어째서 두 사람만큼은 자신을 그렇게나 챙기고 도와주고 지켜주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계속 곁에서 챙겨주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어느새 친남매처럼 느껴져서 더 그런 것도 있었다. 그걸 알고 있지만 그들이 자신을 챙겨주려고 할 때마다 습관처럼 자신도 모르게 귀찮다는 듯 짜증을 부리고 말았다.

 

' 프람 경, 테일드 경... 고마워. '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솔직하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하고 괜히 투덜거리고 짜증을 부리기만 하는 자기 모습이 싫기도 했다. 그래서 더 슬펐다.

그런 감정을 느낄 때마다 라리엘은 발켄슈트가 보고 싶어지고 그리워졌다. 동료이자 하나뿐인 친구 이상으로 소중한 사람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자신을 그렇게나 싫어하는 아발론 사람들과 함께하면서까지 발켄슈트를 추적하고 있는 거였다.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그를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이렇게까지 다쳐가며 너를 찾는데 너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긴 할까...? '

 

다친 부위를 바라보며 든 생각이었다.

붉게 오른 열상을 보고 울컥 감정이 예민해진 탓도 있을 터였다. 처음 물꼬를 튼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계속 질문을 반복해왔다. 감정이 끝을 치닫자 눈가가 빨개지기까지 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눈에 힘을 주었지만 이내 시야가 흐릿하게 변했다. 흐르지 못하게 고개를 들어 캄캄한 하늘에 수 놓인 별과 가장 빛나는 달을 보았다. 눈꼬리에 눈물이 매달린 채 발켄슈트를 생각하자니 달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요한... "

 

어두운 하늘 아래에 노란빛으로 빛나는 달이 마치 발켄슈트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다 더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코를 훌쩍거리고 무의식중에 내뱉어버린 이름을 생각지도 못한 채 달을 보고 있을 때였다.

 

" 네? 저를 부르셨나요? "

" ... 당신은 테일드 경이죠. "

 

들리면 안 될 목소리가 들려오자 화들짝 놀란 라리엘은 급하게 등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살폈다. 등 뒤에서 따뜻한 우유가 담긴 잔을 들고서 다가오는 요한이었다. 라리엘은 너무 놀란 나머지 아직도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툭툭 내뱉는 말투로 답하고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요한이 라리엘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 곁에 잠시 앉아도 되나요? "

" ... "

 

라리엘은 자신이 답을 주기도 전에 이미 자리에 앉아버리는 요한의 모습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굳이 답하기 귀찮았기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무릎을 품으로 더 끌어안으며 달빛에 반사되고 있는 강을 보았다.

요한은 오면서 들고 왔던 잔 하나를 라리엘의 곁으로 밀어주며 조용히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잔을 홀짝 마시면서 말했다. 조용했던 공간에 생각지도 않은 손님의 등장이었다.

 

" 엘, 많이 힘들죠? "

" ... "

" 아발론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

 

많이 힘드냐는 요한의 물음에 라리엘은 답을 주지 않았다.

답할 가치가 없다 느껴졌다. 힘든 것보다는 발켄슈트가 너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힘든 것조차 모르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라리엘이 너무 반응이 없자 요한은 어색하면서도 본인의 일이 아닌데도 미안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돌려 달을 보면서 말했다. 아발론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라리엘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미워하지 말라니.

밑도 끝도 없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은 자신을 싫어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말라니, 미워할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요한에게 짜증 부리듯 말했다.

 

" ... 저런 식인데 미워하지 말라니. 너무하네요. "

" 하하, 역시 좀 그렇죠? 하지만 저들도 다 사정이 있으니까요. "

" 그걸 왜 저에게 그러죠? "

" 음... 역시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어찌 보면 너무한 말이었다. 그 말을 하자 요한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로 지으며 답했다. 라리엘은 솔직히 말해서 자기 잘못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저 말을 듣고 응해주긴 싫은 마음이 들었다.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정말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요한의 모습에 라리엘은 더 이상 대화하기 싫어졌다. 사소하지만 답할 가치가 없었던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시간이 흘렀던 모양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요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라리엘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 너무 그리워 하지 마세요. "

" ... "

" 엘, 당신만 더 힘들어요. "

 

요한이 떠나갈 때까지 라리엘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너무 그리워하지 않는 것,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었더라면 진즉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렇게 추적을 위한 원정을 나올 정도까지도 되지 않았을 거였다.

 

'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문제인 거겠지. '

 

라리엘은 요한이 처음에 내밀어주었던 잔을 보았다.

한참이나 조용히 바라보자 따뜻한 수증기가 올라오던 것이 사라질 때가 될 때쯤 잔을 두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잔을 챙기지도 않고 그대로 자신의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

.

.

 

자고 일어난 다음 날, 라리엘은 어제보다 심해진 두통에 한숨을 내뱉었다.

발켄슈트를 찾기 위해 추적한답시고 아발론과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두통은 심해져 갔고, 때때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몰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발론의 원정대는 그녀가 낫기를 기다려 줄 수 없었다.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라리엘은 발렌슈트를 위해, 아발론은 광명의 전사를 추적하기 위해 원정대를 전진했다.

분위기가 아발론의 원정대 사이에서 묘한 기류로 흘렀다. 라리엘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두통에 인상을 찡그렸지만 참았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발론의 원정대들이 평소보다 더한 자극을 주자 짜증이 더 심해졌다. 프람이 라리엘의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 앞으로 조금이면 돼. 엘은 그 사람을 만나면 어쩔 생각이야? "

" ... "

 

프람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라리엘은 답을 하지 못했다.

그와 만나면 어쩔 생각이냐는 질문에 목 안쪽에 무언가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 질문은 아발론에 합류하기 전에 이미 로드가 자신에게 했었던 질문이었다. 그걸 프람에게 또 들을 줄은 몰랐다는 듯 라리엘은 프람을 놀란 눈으로 보았다.

라리엘이 답이 없자 지켜보기만 하던 프람은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 만약, 아주 만약 그를 만나게 되었을 때. "

" ... "

" 엘, 그가 네게 어떠한 확신을 주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선택을 따르라 말하고 싶어. " 

 

프람이 라리엘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프람의 입에서 나오는 광명의 기사라는 이명에 라리엘은 움찔거렸다. 마치 입에 자물쇠라도 채워진 것처럼 대답하지 못했다. 마음의 선택을 따르라는 조언을 남긴 프람이 가만히 서 있는 라리엘을 두고서 원정대의 앞으로 향했다.

그 말을 들은 라리엘은 자신의 두통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는 걸 직감했다. 이마를 붙잡고서 비틀거렸다.

 

 *

 

멀고 먼 길을 돌아 광명의 기사를 추적하는 일이 끝을 보기 시작했다.

원정대를 이끌고 숲을 지나고 있을 때에 <광명의 전사>라는 이명을 가진 요한 발켄슈트가 나타났다. 라리엘은 그의 등장에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그는 여전히 자기 동료이자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이고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모두가 발켄슈트를 상대로 대기하고 있을 때 라리엘이 참지 못하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 요한...!! "

" ...엘? "

 

그러자 발켄슈트가 라리엘의 이름을 조용히 읊조렸다.

라리엘은 그를 향해 다가가려고 하는데 발켄슈트가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요한과 프람이 라리엘을 붙잡았다. 라리엘은 그들을 벗어나 발켄슈트에게 가려고 발버둥 쳤다.

그사이 다른 이들이 발켄슈트를 경계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발켄슈트가 비틀거리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라리엘이 두 사람을 뿌리치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 요한, 요한...!! "

 

서럽게 울기 시작하며 발켄슈트를 끌어안았다. 

발켄슈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을 안은 라리엘을 보았다. 떨리는 손으로 라리엘의 뺨을 감쌌다. 손을 적셔오는 따뜻한 눈물에 발켄슈트는 웃으며 말했다.

 

" 하하... 역시 대제 폐하의 말씀대로군. "

" 요한... "

" 나의 구원자는 너였군. 엘. "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발켄슈트는 눈을 감았다. 

잠이든 그를 안고 있던 엘에게 요한이 다가왔다. 잠든 그를 안아들어 마차에 태우자 라리엘이 발켄슈트의 곁에 앉았다. 마차를 타고 가는 내내 라리엘은 마차 안에서 누워있는 그의 곁에서 간호를 해주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발켄슈트를 보며 라리엘은 소중한 것을 되찾았다는 듯 안심하는 미소를 보였다. 조심스럽게 그의 앞머리를 쓸어내자 발켄슈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며 미소를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