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텔에게는 지금 심각한 고민이 있었다.
눈앞에 놓인 맥주가 에일이냐, 라거냐의 문제였다. 누군가 그녀의 고민을 들어본다면 심하게 하찮고 별 볼 일 없을 것이라 여기겠지만 에스텔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것이었다.
그 문제를 혼자서 겪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함께하고 있는 건 다름아닌 에스티니앙이었다.
그는 언제나 에스텔과 함께했고, 떨어지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이니. 두 사람은 임무를 마치고 나서 한동안 일이 없으니 가볍게 한 잔을 걸치자는 의미에서 술집을 들렀다.
안주를 시키고 한 잔을 마신 것까진 괜찮았다.
" 에스텔,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야? "
" 으응... 괜차나... "
처음 한 잔, 두 잔 마시던 게 어느새 6잔을 마신 게 지금의 상황이었다.
에스티니앙은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마시는 에스텔의 모습에 당황하고 말았다. 술잔을 들이키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서 걱정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에스텔이 붙잡힌 팔을 풀어내기 위해 에스티니앙을 밀어내며 말했으나 이미 진창 취해서 혀가 꼬인 상태였다.
에스텔은 에스티니앙을 밀어낸 뒤 술잔을 가만히 보며 생각에 잠겼다.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에스티니앙이 맥주잔과 에스텔을 번갈아 보았다.
" 맥주잔은 왜? "
" 에스티니앙... 이거, 에일일까? 라거일까? "
" 에일이겠지. "
" 왜 에일이라고 생각해? 이게 정말 에일일까? "
" 색부터가... 에스텔, 너 아무래도 취한 거 같은데. "
" 안 취해따니까아... "
에스티니앙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에스텔을 보며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답이 비록 허무하기 그지없었지만. 뜬금없는 에일이냐, 라거냐의 질문에 에스티니앙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에일일 거라고 답했다. 그러자 에스텔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그 질문에 답을 주던 에스티니앙은 아무리 봐도 에스텔이 취한 것 같다며 그녀를 붙잡았다.
에스텔은 에스티니앙이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짜증이 났다.
그의 팔을 뿌리치고 잔을 붙잡더니 남아있던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입안으로 맥주를 넣자, 탄산이 없어 텁텁한 쓴맛이 훅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과일 같은 향긋함과 진하고 깊은 맛이 연이어 올라왔다.
인상을 찡그리던 에스텔이 잔을 내려두고서 소매로 거품이 묻은 입가를 닦아냈다.
" 이건, 에일이 맞네... "
" 라거가 마시고 싶어서 그래? "
" 으응, 그건 아닌데... "
" 충분히 마신 거 같으니까 이만 올라갈까? "
" 아니... 한 잔만 더~ "
" 어라, 에스텔? "
에스텔의 얼굴을 빨갛게 달아올랐고, 귀 끝은 붉어졌으며 피로와 알코올로 인해 눈은 반쯤 풀린 상태였다.
그녀의 곁에 앉아있던 에스티니앙이 잔을 빼앗으며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했으나, 이미 취해버린 에스텔에겐 통하지 않았다. 취기에 몸을 맡긴 건지 비틀거리며 흔들리고 있는 걸 에스티니앙이 붙잡아주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가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아는 척 말을 걸었다.
순간적으로 에스티니앙의 눈빛이 바뀌었다. 다정하면서도 걱정스러움이 담겨있던 시선이 남자에게로 가면서 날카로워지고 흉흉해졌다. 미간을 찌푸린 채 감히 누구길래 말을 걸어오냐는 듯이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순간적으로 움찔거렸지만, 눈동자를 굴려 에스텔을 보았다.
" 에스텔? "
" 어...? ○○○?? "
" 엄청 마셨나보네. 이제 그만 들어가 봐야지. "
" 으응... 그래야겠어. "
" ... 허. "
에스텔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아는 얼굴이 보이자 말간 얼굴로 해사롭게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스티니앙은 어이가 없다는 듯 에스텔을 보았다. 자신이 그렇게 취했다고, 들어가자고 말할 때는 안 취했다면서 밀어내더니.
저 남자가 들어가 보라는 말에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모습이 혈압을 오르게 했다.
기가 차다는 듯 허파에 낀 바람을 내뱉고 있다가 남자의 시선과 마주쳤다.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머쓱하게 에스티니앙에게 웃어주며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사라졌다.
에스티니앙은 마치 원수라도 보는 것처럼 남자가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다.
" 으음... 이제 갈까아... "
" ... 가려고? "
" 응, 들어가야지... "
" 조심해라. "
에스티니앙이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을 때, 그것조차 모르고 있던 에스텔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비틀거리다가 주저앉으려는 모습에 에스티니앙이 다급하게 에스텔을 잡아주며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들어간다는 말에 짧던 한숨이 다시 나왔다. 여전히 괜히 말을 걸고 가버린 남자도, 그 남자의 말에만 잘 듣는 에스텔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그녀를 혼자 보내면 어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에스티니앙이 에스텔의 손을 잡아 자신의 팔을 붙잡게 했다.
" 잘 잡아, 집에 데려다 줄 테니까. "
" 고마워~ 에스티니앙... 역시이... 너뿐이야~ ... "
" ... 알면 좀 알아주던가. "
" 으응? 뭐라고? "
" 아니. "
에스티니앙은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틀거리는 에스텔을 부축해 주었다.
확 안고 가버릴까 하다가 그랬다간 에스텔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보이니 포기했다. 그렇게 에스티니앙이 잔뜩 취한 에스텔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두 사람은 가는 길 내내 조용했다.
에스텔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에스티니앙이 말을 꺼냈다.
" ... 조심해서 들어가고, 내일 보지. "
" 응... 잘 자, 에스티니앙... "
에스티니앙은 바보 같게도 오는 길 내내 생각하고 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결국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일 보자는 말이 전부였다. 고백하기 최적의 상황이었음에도 그는 속으로 고작 작은 다짐을 할 뿐이었다. 그녀가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 그때 고백을 해야 한다고.
에스텔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에스티니앙은 발걸음을 떼어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집으로 향한 게 아니라 가로등 아래에서 집안의 불이 켜지는지 확인될 때까지 기다렸다. 마지막까지 그녀가 안전한지 확인하고 나서야 그의 발걸음이 움직였다.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에스티니앙의 뒷모습은 어딘가 처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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