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지난 1년간 시간이 느리게도 흘러갔다.
1년 전, 호무라의 리더. 적왕, 스오우 미코토가 마지막을 맞이했던 날. 그날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카노 사야는 자신에게 아주 강렬한 존재가 되었던 그를 잊지 못했다.
그 미련의 크기는 너무 심한 모양이었다.
크게 다가왔던 그리움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고, 그 크기를 유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련'을 양분 삼아 점점 몸집을 불려 갔다.
'미련'을 집어삼킨 그리움은 카노 사야에게 가끔씩 스오우 미코토의 형상을 한 환각과 환청을 들려주었다.
" 아... "
카노 사야는 깊게 잠들지 못했고,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한 번씩 간혹가다가 살짝 잠이라도 든다고 싶으면 어김없이 악몽이 찾아와 그녀를 괴롭혔다. 감히 지금 그가 죽은 상황에서 네가 잠이나 잘 수 있냐고, 눈을 감을 수 있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지독하고 끔찍한 악몽은 카노 사야의 목을 쥐고 서서히 조여왔다.
카노 사야는 그 악몽을 멈추는 방법 따위 알 수가 없었고, 알 마음도 없었다. 그녀 스스로가 자책에 휩쓸려 멈출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기에. 스스로 멈추려고 한다면, 그런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카노 사야는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버린 스오우 미코토를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마치 죄책감에 붙잡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처럼.
" ... 힘드네... "
카노 사야는 오랜만에 눈을 감고, 깜빡 잠이 든 순간 마주한 악몽으로 인해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이른 새벽 시간, 악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눈이 떠져 버린 그녀는 침대에 앉은 채 힘이 푹 빠진 상태로 창밖을 보았다. 카노 사야의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적셔진 상태였다.
스오우 미코토를 조금도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 카노 사야의 시점에서 모든 것들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작은 추억의 조각조차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고통스럽고, 외로웠으며 홀로 버티기 힘들기까지 했다. 카노 사야는 항상 악몽을 꾸고 일어나는 날이면 언제나 조용히 혼자서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녀의 곁에는 그 사람이 이젠 없었다.
' 정말 너무하지, 무심하기도 해. 어떻게 내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삶을 포기할 수 있는 건지. 내 삶을 구원해 놓고 당신은 보란 듯이 포기를 하다니. 당신의 끝은 나였어야 했어. 그 안경이 아니라... 미코토, 당신과의 모든 기억과 추억이 지금의 나에겐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외롭고 힘든 일이 되어버렸어... 나, 있지... 너무 힘들어. 내 곁에 당신이 없어서... '
누군가에게 1년이란, 빠른 시간일 수도 있고 느리게 가는 시간일 수도 있다.
삶을 살아가기에 바쁜 이들에겐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겠지만, 적어도 카노 사야에게 있어서 1년이란 터무니 없이 느린 시간들이었다. 아주 끔찍하게도.
그래, 예를 들자면... 카노 사야가 아침에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갈 때, 쿠사나기와 함께 바를 청소하고 술병을 정리한 다음 안나의 아침 준비를 도와줄 때 그리고 처음 호무라 바에 왔을 때.
" 이건 또... 뭐야? "
" ... "
카노 사야에게 있어 5년 전의 기억은 흐릿해지지도, 그렇다고 잊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선명해도 너무 선명한 탓에 그게 더 괴로웠다. 오래된 테이프도, 녹음기도 분명 시간이 지나면 색을 바라고, 음이 이탈한다거나 어딘가 망가지기 마련일 텐데.
이상하게도 카노 사야의 기억은 전혀 그런 게 없었다.
' 아, 그래서 내가 망가진 걸까. '
처음으로 스오우 미코토를 만났던 날이 선명했다.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선명한 붉은색 머리카락, 반짝이는 금빛 눈동자, 과묵하고 나른해 보이는 얼굴.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만큼은 선명했다. 잊을 수 없는 거겠지. 20살에 집을 나오게 된 이유는 잊어버렸지만.
.
.
.
뒷골목에 흘러 들어갈 리 없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카노 사야는 그날, 뒷골목에서 스오우 미코토를 만났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그날, 잊을 수 없는 날의 시작이었다. 낮은 목소리로 침음하던 스오우 미코토의 시선이 카노 사야에게 닿았다. 카노 사야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말없이 과묵한 그의 손길에 이끌려 호무라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 어, 어? 미코토 상! 이, 이 사람 누굽니까? "
" 누구? "
" 또 사람을 주워왔네...? "
카노 사야는 처음 마주한 낯선 사람들 앞에서 버려지다시피 내려졌다.
뒷골목의 구석에서 울고 있던 그녀를 스오우 미코토가 거의 들러메듯이 데리고 오더니 호무라 바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내려주었다. 그다음 자신은 더 이상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듯 카노 사야를 두고서 발걸음을 돌렸다.
낯선 이들 앞에서 뻘쭘하게 서 있는 카노 사야를 두고서 각자의 반응이 나왔다.
쿠사나기는 기겁했고, 토츠카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 아라, 킹... "
" 하하... "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 어색하게 웃고 있는 카노 사야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스오우 미코토는 웃고 있는 카노 사야를 힐끔 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처럼 소파에 떡하니 걸터앉아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여 피우기 시작했다. 그의 태연한 모습에 카노 사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자신을 데려온 주제에 아무 부연 설명도 없이 떡하니 앉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스오우 미코토와 쿠사나기, 토츠카의 가운데에서 뻘쭘하게 서 있던 카노 사야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 안녕하세요, 카노 사야입니다. "
" 아... 안녕, 나는 토츠카라고 해. "
" 어, 어... 나는 쿠사나기... "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 뒤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스오우 미코토가 왜 자신을 여기로 데려왔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그 이유는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알지 못했다.
스오우 미코토는 끝내 호무라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
.
.
카노 사야가 잊지 못할 추억을 되새기고 있을 때, 그녀를 부르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 사야, 오늘 밥맛이 이상해. "
" 어, 어? 미안해. 안나... "
잠깐의 추억에 정신이 팔린 건지 카노 사야는 안나의 밥에 약간의 실수를 하고 말았다.
1년 전의 그녀였다면 웃으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새로운 밥을 만들어줬을 테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안나가 밥이 이상하다는 말을 하자 허둥거리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릇만 도로 가져갔다.
카노 사야가 그릇을 들고서 치우기 위해 등을 돌릴 때, 안나와 쿠사나기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1년 전, 그날 이후부터 카노 사야의 실수가 종종 있었지만 안나의 밥만큼은 언제나 제대로 만들어 주고 있었지만, 오늘은 어딘가 영 이상했다. 아니, 그날 이후로 평소 같은 카노 사야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음식을 치우던 카노 사야는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두고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 후... "
그리움은 시간이 잊게 해준다고 하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미련'을 먹고 더 커지더니 이젠 걷잡을 수 없을 정도까지 오고야 말았다. 전혀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무게에 하루하루 카노 사야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말라가고 있었다.
안나의 지적 때문인 건지, 아니면 그로 인해 처음 안나의 밥을 만들어 주던 때가 떠오른 건지.
카노 사야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어봐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추억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떨어트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더욱 달라붙어왔다.
" 미코토, 안나의 밥... 내가 만들어 봐도 돼? "
" ... 음. "
" 난 좋아, 사야가 해주는 밥... 먹어볼래. "
이른 점심시간, 호무라 바 안에는 스오우 미코토와 카노 사야 그리고 안나만 있었다.
호무라로 들어오고 난 뒤로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았을 때, 카노 사야는 호무라 사람들과 외출도 하고 순찰도 돌고 싶었으나 스오우 미코토와 안나의 만류로 인해 호무라 바에만 머물게 되었다.
그때는 두 사람이 그러라고 한 이유를 알지 못했고, 그 이유는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다.
가장 이유가 궁금한 사람은 이제 곁에 없으니까. 그게 문제였다. 카노 사야는 생각을 비우고 다시 추억을 회상했다. 이제 막 20살이 되자마자 집을 나왔기에 제대로 된 음식을 스스로 해 먹어 본 적 없었다.
패기롭게 자신이 안나의 밥을 해보겠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 ... 나 배고파. "
" 음... 비켜봐, 카노. "
" 미안해... "
계속되는 카노 사야의 실패에 안나가 투정을 부려왔다.
어린 나이에 제대로 기다리기 힘들었던 안나였기에, 카노 사야의 곁으로 스오우 미코토가 다가왔다. 익숙하다는 듯 웍을 쥐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카노 사야는 그의 옆에서 스오우 미코토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호무라의 리더, 적왕이 만드는 볶음밥이라니.
카노 사야에게 있었을지도 모르는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카노 사야는 작은 움직임 하나 놓치지 않고 그를 보았다. 볶는 순서, 양념장을 넣는 순간, 그 비율, 불 조절까지. 카노 사야가 안나에게 제대로 밥을 대접할 수 있었던 건 조금 멀었지만, 성공할 수 있었다. 그녀의 곁에서 스오우 미코토가 상당한 도움을 주긴 했으나 카노 사야는 자신이 성공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카노 사야는 안나에게 자신이 만든 볶음밥을 처음으로 대접해 주었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 맛있게 먹고 있는 안나를 보던 스오우 미코토가 웃어주었기 때문에.
" 하... "
" 카노! 조심해! "
" 사야...! "
카노 사야는 실패한 밥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물을 틀어두다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순간적으로 지끈거려오는 강렬한 통증에 이마를 부여잡고 휘청거렸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싱크대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카노 사야는 지금쯤 병원에 실려 갔을지도 모른다.
까딱하다간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드는 이유는 뭘까.
지금의 순간에 죽는다면, 그런다면 스오우 미코토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일까? 이 지독하고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일까. 정작 그녀 본인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카노 사야를 지켜보고 있던 쿠사나기가 곁으로 다가와 부축하며 말했다.
" 카노, 이대로 더 있다간 다치겠어. "
" ... 난 괜찮아. "
" 이러다 너 병원실려가겠어. "
" ... 미안... "
카노 사야의 상태를 가까이에서 확인한 쿠사나기가 그녀에게 일찍 들어갈 것을 권했다.
하지만 카노 사야는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더 일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려보지만, 쿠사나기가 하는 말에 빠르게 포기했다.
그녀에게 있어 병원은 개인적으로 1년 전부터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위아래, 양옆까지 사방이 죄다 하얀색으로 도배된 공간과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있던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그 서늘한 감각이 그녀의 고집을 꺾었다.
병원이라는 말에 카노 사야가 안색이 파랗게 질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쿠사나기는 5년 전부터 함께 한 가족 같은 카노 사야에게 이런 잔인한 방법을 쓰고 싶지 않았으나, 그녀의 고집을 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카노 사야가 비틀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
스오우 미코토가 쓰던 호무라의 2층은 이제 카노 사야가 혼자 쓰고 있었다.
" 먼저 올라가 볼게, 미안해... "
" 쉬고 있어, 카노. "
카노 사야가 비틀거리며 2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쿠사나기와 안나가 지켜보았다.
2층의 끝에 왔을 때, 카노 사야는 벽에 몸을 기대고서 두 눈을 감았다. 꿈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조차 자신을 괴롭혀 오는 악몽의 잔재가 지긋지긋했다.
' 신은 사람에겐 버틸 수 있는 시련만 준다던데, 그러면 자신은 신에게 버림 받은 것인가?버티지도 못할 시련만 주는 신 따위. 감히 이런 생각을 해서 그런 걸까. 어떻게 생각해? 미코토. 지금 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당신이라면 그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뭐라고 답을 좀 해봐... '
미련하게 그리고 멍청하게. 이미 곁에 있지 않은 남자를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고 있다.
카노 사야는 멈추었던 발걸음을 움직여 우리의, 이제는 자신의 방이 되어버린 곳으로 들어갔다. 방 안쪽에 자리한 큰 불단 앞으로 걸어갔다. 비틀거리는 걸음이 그녀가 지금 얼마나 아슬한 상태인지 알려주었다. 불단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카노 사야는 멍하니 스오우 미코토의 명패와 사진을 보았다.
" 미코토... "
멍하니 사진을 보던 카노 사야는 아래 수납장에서 향초를 꺼냈다.
불단 앞에 놓인 향 그릇에 꽂아두었던 향이 다 떨어져 새로 불을 붙여 향 그릇에 꽂아두었다. 이후 카노 사야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눈을 감았다. 스오우 미코토를 향한 그리움과 먼저 떠나가 버린 이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까지 담아내서.
' 미코토, 그곳은 어때? 나는 이곳에서 당신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 오늘도 그래, 꿈에서조차 당신과 행복하게 지내다가 그 끝에는 항상 악몽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해. 당신은 이런 그리움을 모르겠지. 지독하고 또 끔찍해서, 밤에 잠들기가 힘들어.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눈앞에서 나를 향해 웃어주던 미소, 날 따스하게 안아주던 품, 함께 나란히 걸었던 그 거리조차 모든 걸 기억하는데... 이곳에 단 한 사람, 당신만 내 곁에 없어.나에게 이런 행복을 알려준 건 당신이잖아. 그런데 왜 내 곁에 없는 거야? '
잠시 후 천천히 눈을 뜬 카노 사야의 시선은 감기 전과 똑같이 스오우 미코토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그의 사진만 보기를 5분, 10분... 무구한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 지나갔다. 그때 똑똑,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카노 사야는 스오우 미코토의 사진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않은 채 답했다.
" ... 들어와. "
" 카노, 죽이라도 먹고 잠깐 눈이라도 붙여. "
" 고마워... 쿠사나기. "
" 별걸. 안나도 걱정하니까 털어내고 내일 보자. "
" 응... 걱정 끼쳐서 미안해. "
카노 사야는 마치 문을 두들기는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 답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방을 두들길 사람은 지금으로선 단 두 사람뿐이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사람은 카노 사야의 예상대로 쿠사나기였다.
쿠사나기는 걱정이 묻어있는 표정으로 따뜻한 죽이 담긴 그릇과 함께 들어왔다.
침대 옆 의자에 쟁반을 두며 불단 앞으로 가 양손을 모으고 합장했다. 1여 분 간의 정적, 두 사람 사이에서 그 잠시간의 정적은 당연한 게 되어있었다.
카노 사야는 멍하니 쿠사나기가 들고 온 죽그릇을 보았다.
방금 막 만든 건지 죽에서는 증기가 뿌옇게 올라왔다. 야채와 잘게 다진 고기가 어우러져 맛있어 보이는 죽이었다. 하지만 카노 사야에게 그런 건 의미가 없었다.
맛있어 보이는 죽도, 누군가를 위해 끓여준 마음도 전부 똑같았다.
" 여기, 약도 있으니까. "
" 응, 고마워... "
카노 사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수저를 들고서 한입씩 물었다.
반쯤 먹었을 때, 지켜보던 쿠사나기가 카노 사야에게 약을 내밀었다. 쿠사나기는 자신이 밖으로 나가버리면 그녀가 죽을 먹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먹기를 기다렸다. 카노 사야가 수저를 내려두자 더 먹기를 바랐지만,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한 입도 입에 대지 않던 그녀였기에 이 정도면 무난한 정도였다.
쿠사나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카노 사야에게 약을 건넸다.
약을 건네받은 그녀는 그대로 물과 함께 약을 먹었다. 카노 사야가 약을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쿠사나기가 죽그릇과 빈 물컵을 들고 방을 나갔다. 나가기 전에 그녀에게 쉬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카노 사야는 방을 나가는 쿠사나기를 본 다음 침대에 누웠다.
" ... 자기 싫은데... "
이불을 목 아래까지 뒤집어쓰듯이 덮은 카노 사야는 감겨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버티며 중얼거렸다.
악몽으로 인해 잠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도 자꾸만 감기는 잠의 수마에는 벗어날 수 없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발끝에서부터 점점 밀고 올라오는 악몽 덩어리들은 도통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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