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HL/드림/240825] 그리움이라는 '독' 아래에, 널 그리워하고 있어. 2

나비의 보관함 2025. 2. 12. 01:16

한 사람이 미치도록 그리울 땐,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대.

 

 

미코토.

 

 

희미하게 퍼지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 카노 사야가 그리운 누군가를 불렀다. 

카노 사야는 천천히 눈을 뜨며 주변을 살펴보자마자 익숙한 듯 스오우 미코토를 불렀다. 그녀의 부름에 응하는 것처럼 언제나의 습관처럼 그가 답을 했다. 

그녀는 답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답이 돌아오자 놀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카노 사야의 눈앞에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에 눈동자가 옅게 떨려왔다. 카노 사야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소파에 앉아 평소처럼 담배를 물고 있는 스오우 미코토를 향해 달려갔다. 

단단하게 받쳐줄 것 같던 그는 이내 담배 연기처럼 흩어졌다. 

 

 

미코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뿌연 공간 속에서 카노 사야는 애타게 한 사람을 불렀다. 

마치 그 모습은 자식을 잃은 어미처럼, 남편을 잃은 과부처럼 애처로워 보였고, 서글프게 느껴졌다. 만약 그 공간에 보는 이가 있었더라면 감정에 동화되어 함께 눈물을 흘릴 정도로.

다시 한번 스오우 미코토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카노 사야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카노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카노 사야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더니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향했다. 무작정 걷기만 했다. 그곳으로 걸어가면 기다리고 있을 스오우 미코토를 생각하며....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발바닥은 피가 나고 진물이 올라올 정도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카노 사야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오우 미코토를 만나기 위해 걸었다. 

도착하지 않을 곳을 향해 걷기만 하던 순간 누군가가 팔을 확 잡아당기며 잠에서 깨어났다. 

 

.

.

.

 

잠에서 깨어난 카노 사야는 퀭한 눈으로 자신의 곁을 확인했다. 

다시는 따스해지지 않을, 이제는 차갑기만 한 옆자리를 보았다. 항상 곁에 누워 잠들어 있던 그 선명하고 찬란한 붉은 머리카락이 뇌리에 스쳤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자극했다. 

카노 사야는 불단을 빤히 보며 멍하니 있었다. 

 

' 미코토, 평소에도 꿈에 나와서 날 괴롭히더니... 오늘도 괴롭히는 거야? 내가 감히 널 두고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까지 날 괴롭혀야 해?

미안해... 요즘 잠을 통 못 잤더니 신경이 예민한가 봐... 

미코토에게 짜증을 내던 건 아니야, 정말로. 사실 나는 네가 내 꿈에 나와서 좋은걸. '

 

멍하니 있던 그녀는 속으로 괜히 스오우 미코토의 탓을 하며 한탄했다가도 스스로를 자책했다. 

눈 밑이 푹 꺼져 다크서클이 어제보다 더 심해진 상태였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기에. 이 정도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서 날카롭게 반응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1년 전부터 어딘가 고장이 나버린 사람처럼 살고 있는 카노 사야에겐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악몽에서 벗어나는 날에는 언제나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방을 나섰다.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 일어나기엔 이르다고 카노 사야를 달래는 듯했지만, 발걸음은 계속 1층으로 향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끝에 앉은 그녀는 소파로 시선을 옮겼다. 

 

 

' 미코토! 여기 좀 봐! '

' 음... 카노, 그리 재밌는 건 아닌 거 같은데. '

" 미코토....? "

 

 

소파를 멍하게 보고 있던 카노 사야는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는 듯 발걸음을 옮겨 소파로 향했다. 그녀가 향하는 소파 위에는 흐릿하게 보여지는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과 그녀 본인의 모습이었다. 붙잡으려고 하면 연기처럼 흩어질 것처럼, 그런 뿌연 상태의 두 사람이 소파 위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노 사야가 오늘 밤에 꾸었던 꿈이 떠올라 천천히 소파에 앉았다. 

조심스러운 행동에 다행히도 행복하게 웃고 있는 잔향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다가 보니 어느새 두 사람의 잔향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는 아쉬운 듯 그들이 있었던 소파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카노 사야가 스오우 미코토의 흔적을 쫓기 시작했다. 

 

 

" 미코토... "

 

 

카노 사야는 자신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전에는 따스하기만 했던 자리가 지금은 차갑다 못해 시릴 정도였다. 카노 사야가 손을 떼어내자 언제 사라졌냐는 듯 다시 나타난 두 사람의 잔향이 아까보다 더 가까이 붙어있었다. 

카노 사야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시선을 한 곳에 집중했다. 

자신으로 보이는 여성이 스오우 미코토의 몸에 기댄 채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카노 사야는 그때의 기억에 이끌리듯 손을 뻗어 스오우 미코토를 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일말의 기대도 아깝다는 듯 손길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 미코토~ 어제 안나가... '

' 음, 그랬던가... '

" ... 그리워, 미코토... "

 

 

잡히지 않는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에 카노 사야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손에 붙잡히지 않는 건 다문 그의 형체뿐만이 아니었다. 그와의 추억도 마찬가지였다. 연기가 되어 흩어진 스오우 미코토의 형체를 어떻게든 붙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 사이 그녀의 등 뒤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푸핫! 카노,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

' 어, 어라? 이게 아니야?? '

" ... "

 

 

조용한 집안인데, 이젠 자신만 지내고 있는 곳인데 어디에서 웃음이 들리는 걸까.

카노 사야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웃음소리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소리가 들리는 쪽은 부엌이었다. 카노 사야가 부엌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부엌에 서서 싱크대와 가스버너가 있는 곳을 보았다. 

그곳에서 사야의 뒤에 서서 요리를 알려주고 있는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이 보였다. 카노 사야는 그의 품 안에 안기다시피 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이 기억은 그가 처음으로 저에게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던 날이었다. 

언제나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들만 보여주던 그가 처음으로 보여주었던...

 

 

" 미코토... "

' 음? '

' 이렇게 하면... 되려나? '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에 카노 사야가 넋 놓고서 천천히 다가왔다. 

부엌에서 하하호호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살펴보면 한 군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싱크대에서 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하는 모습, 버너 앞에서 볶음밥을 만들던 모습, 도마 위로 야채를 올려두고서 써는 걸 알려주던 모습.

모두 하나 같이 그와 관련된 기억이었다. 

그곳에는 스오우 미코토와 함께 웃으며 요리를 배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 아... "

 

 

카노 사야의 짧은 단말마에 두 사람이 하나, 둘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점점 사라지는 모습에 그녀는 다급하게 하나라도 붙잡고자 하는 마음에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여 팔을 뻗었다. 그러나 잡히기 직전에 스오우 미코토가 웃는 얼굴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마치 카노 사야가 내뱉은 단말조차 있어선 안 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카노 사야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 아... 이렇게 널 그리워하는 와중에도 살아야겠다고 배가 고파오는구나. 

아무것도 안 먹고 싶은데, 뭐라도 먹으라고 내 앞에 그렇게 나타난 거야? 미코토... 안 먹고 있으면 또 먹으라며 잔소리했으려나? 안 먹고 싶지만... 네가 걱정할 게 분명하니까... 조금이라도 먹을게. '

 

카노 사야는 마치 스오우 미코토가 살아있고,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처럼 생각했다. 

발걸음을 돌려 냉장고 앞에 도착한 그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천천히 냉장고를 열고서 그 안을 살펴보았다. 냉장고 안은 물 몇 병과 과일 몇 개가 전부였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그대로 냉장고를 연 채 멍하니 있었다. 

그때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카노, 그렇게 열고 있으면 전기세 나간다. '

" ... 미코토? "

 

 

카노 사야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의 주인을 찾더니 놀랐던 모양인지 점점 눈이 커졌다. 

다정해 보이면서도 감정이 없어 보이는 그 목소리의 주인은 스오우 미코토였다. 항상 매번 과거의 잔향처럼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고, 말을 걸어도 답이 없던 그가 아니었다. 

제대로 자신을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카노 사야는 팔을 타고 올라오는 소름에 입을 꾹 다물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여전히 무뚝뚝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다정하고 사랑한다는 눈빛에 절로 눈물이 울컥 올라왔다. 눈 안쪽에서부터 뜨거운 감각이 느껴졌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카노 사야가 고개를 돌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스오우 미코토가 팔짱을 끼고서 자신을 향해 보며 웃고 있었다. 눈물을 참고 있던 카노 사야가 그 모습을 보자마자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그를 부르며 하소연하듯이 말했다. 

 

 

" 미코토... 미코토, 나, ... 나 너무 힘들어... "

' ... '

" 네가 없어서, 내 곁에 네가 없어서 너무... 너무 힘들어... "

 

 

카노 사야는 목을 치고 올라오는 울음에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하고 웅얼거렸다. 

훌쩍거리며 하소연하고 있는 그녀의 울음에도 스오우 미코토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었다. 다가와 안아주며 달래어주지도 않았고, 무리하지 말라며 다독여 주지도 않았다. 

응답이 없는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에 카노 사야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더 이상 그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주저앉은 카노 사야는 목 놓아 울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녀가 버티기엔 남아있는 힘도 없었다. 

카노 사야의 울음은 마치 세상을 잃은 사람의 울분이었고, 모든 걸 빼앗긴 이의 분노였다. 

 

 

" 카노...!! "

" 사야, 우, 울지 마... 사야! "

" 아아...!!!! "

" 카노, 숨 쉬어! 삼키지 말고 제대로 쉬어야 해. "

" 흐윽... 흐아, 아악...! "

 

 

1층에서 일하고 있던 쿠사나기와 그의 곁에 있던 안나가 카노 사야의 울음에 다급하게 2층으로 올라왔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주저앉아 울부짖는 카노 사야의 모습에 당황한 쿠사나기와 안나가 달려와 그녀의 곁에 있어 주었다. 무너져 내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그녀의 몸을 부축해 주며 소파에 앉혔다. 

하지만 카노 사야의 입장에서 멈추지 않는 환각과 환청에 또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마치 발작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카노 사야가 흐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눈앞이 눈물로 얼룩져도 그 틈을 타고 들어와 보이는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에 울분을 터트렸다. 몸을 계속해서 떨며 흐느끼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두 사람은 어리둥절했다. 

잦은 실수가 있긴 했으나, 괜찮은 줄로만 알았던 그녀가 괜찮지 않아 보여서.

쿠사나기는 어쩔 수 없이 카노 사야를 1층으로 데리고 내려왔다. 1층도 2층에 있을 때와 다를 것 없었지만, 그나마 안나와 쿠사나기가 카노 사야의 곁에 있었기에 나아지고 있는 편이었다. 

 

 

" 사야, 괜찮아...? "

" ... 미안해... 안나, 신경 써줘서 고마워. "

" 으응... 사야, 아프지 마... "

 

 

카노 사야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손을 붙잡고 걱정해 주는 안나를 보았다. 

하루아침에 상당히 안색이 안 좋아진 그녀의 모습에 안나는 걱정이 가득했다. 이러다가 카노 사야까지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아프지 말라고 말했다. 

그렇게 카노 사야는 저녁 장사가 마칠 때까지 1층에 머물렀다. 

1층에 있다고 해서 환청과 환각이 멈춘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냉장고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향해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종종 보던 스오우 미코토와 자신의 환각뿐이었다. 

카노 사야는 다시 자신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 후... "

" 카노, 오늘 혼자 있을 수 있겠어? "

" ... 내가 어린애도 아닌데, 뭘. "

" 지금의 너는 어린 애보다 더 간당간당하다는 걸 알아둬. "

" ... 괜찮아, 정말로. "

 

 

주방 정리를 마치고 나온 쿠사나기가 카노 사야를 향해 괜찮냐는 듯 물어왔다. 

카노 사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말 한마디로 쿠사나기의 걱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말 한마디로 멈출 거였으면 애초에 하지도 않았을 걱정이었다. 

쿠사나기가 하는 말에 틀린 것도 없어서 그녀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입을 꾹 다물어버리던 카노 사야는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입꼬리만 올려 조용히 그리고 옅게 웃었다. 그리고 괜찮다며 쿠사나기를 보았다. 단호해 보이는 그녀의 눈빛에 쿠사나기가 당황했다. 

침음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 ... 그래, 그렇다니... 안나, 이제 가자. "

" 내일 봐. 사야. "

" 응, 내일 봐. 안나 "

 

 

쿠사나기와 안나가 1층 건물 문을 잠그고 나갔다. 

홀로 1층에 남겨진 카노 사야는 짧게 한숨을 내쉬다가 몸을 일으켜 2층으로 향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순간이 너무 힘들었고, 고역이었다. 이미 충분히 오늘 하루 종일 환상과 환각에 시달렸다. 

스오우 미코토를 보고 싶지 않냐, 안 보고 싶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일 게 분명하겠지.

하지만 카노 사야 역시 사람인지라 지치지 않는다면 그게 더한 거짓말이었다. 늦은 저녁,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두워진 건물 안에서 카노 사야는 익숙한 듯 발걸음을 움직였다. 잘 준비를 하기 위해선 2층으로 다시 올라가야만 했다. 

2층으로 올라가기 살짝 두려웠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발걸음을 움직였다. 

이미 퉁퉁 부어오른 그녀였기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지만, 5년을 왔다 갔다 한 곳이다 보니 익숙해 보였다.

 

 

" ... 또 시작이네. "

' 음. '

' 미코토! 내가 담배 피지 말라고 했지! '

' 잔소리가 심해, 카노. '

 

 

카노 사야는 자신의 방에 올라오자마자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 

1층에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에 오늘은 이제 괜찮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려주듯 방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에 그녀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아침에 일어난 이후 나오면서 창문을 열고 나왔던가? 하는 생각 따윈 할 수 없었다. 

활짝 열린 창문과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흩날리는 하얀 커튼은 마치 뿌옇게 흩어지는 연기 같았다. 그래, 어쩌면 스오우 미코토가 밤마다 저 자리에서 피우던 담배 연기같이.

선선한 밤공기가 창문을 넘어 들어오고, 커튼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알싸한 담배 향이 맡아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미코토, 담배를 필 거면 차라리 창문이라도 열어두고 펴. '

' 으음... '

' 담배 연기가 가득 들어오잖아! '

" 맞아, 담배 연기가... 가득 들어오잖아... "

 

 

카노 사야는 자신의 앞에 있는 자신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양손을 허리 위에 올리고너 잔뜩 화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스오우 미코토가 잔소리를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카노 사야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자신을 괴롭히는 환각과 환청이었지만, 스오우 미코토를 볼 수 있다는 건 좋았다. 

카노 사야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리워하는 이를 떠올리니 절로 흘러내린 눈물이었다. 이 방에서 그가 담배를 피울 때마다 잔소리를 했던 때가 떠올랐다. 

언제나 창문을 닫고 피던 그였고, 그런 스오우 미코토에게 자신은 담배를 끊으라고 잔소리를 했었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알겠다는 답만 할 뿐이었다. 그것도 잔소리를 하던 그때일 뿐인 답이었다. 심지어 때로는 잔소리조차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리기도 하던 스오우 미코토였다. 

특히 다른 사람이 하는 잔소리에는 더더욱.

 

 

' 끊으라는 말이 듣기 싫으면 하다못해 열고 피기라도 해. '

' 으음, 그래... '

" 하하... "

 

 

스오우 미코토는 다른 이들의 잔소리에 꼼짝도 안 해놓고서 카노 사야가 말하면 듣는 척이라도 했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그가 매번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또 담배를 피우던 습관은 못 고칠 걸 알고 있었던 그녀였기에 차라리 창문을 열고 피라고 권유했고, 그 이후부턴 창문을 열고 폈었다. 

그게 언제부턴가 그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창문을 열고 피라던 말에 그 이후부터 창문을 열고 피던, 사소한 그의 다정함이 묻어나는 기억이었다. 스오우 미코토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호무라 안에서 카노 사야 뿐이었다. 

그걸 카노 사야도 알았고, 스오우 미코토도 알았으며 다른 사람들도 알았다. 

 

 

' 이왕이면 끊는 게 제일 좋겠지만. '

' 으음... '

' 나랑 오래 살아야지, 미코토. '

" 그래, 오래 살아야지... 살았어야지... 미코토... "

 

 

한 자리에 못이 박힌 듯 그대로 있던 카노 사야가 발걸음을 옮겨 침대에 앉았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창가로 향해있었다. 알싸하게 풍겨오던 담배 향은 어느 순간부터 맡아지지 않았다. 바람과 함께 풍화되어 사라진 듯했다. 그녀가 입을 열어 말을 걸자, 환청은 다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카노 사야는 한없이 바닥을 보고 있다가 침대에 누웠다. 

하루 종일 자신의 곁에 없는 그를 환각으로 마주한다는 건 상당히 정신적으로 지치는 일이었다. 

 

잘 준비를 하려고 누운 카노 사야는 오늘따라 유독 옆자리가 너무 넓게 느껴졌다. 

혼자 누운 침대가 너무 크게 느껴졌고, 옆자리가 비어있는 게 어색했다.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의 옆에 스오우 미코토가 누울 것만 같았다. 자신의 곁을 데워주며 따스한 품에 안겨줄 것 같았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허한 외로움이 몰려왔다. 

 

 

" 이상하네... 항상 미코토가... 옆에 있었는데... "

 

 

카노 사야는 자리에 누우면서 옆자리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따스해야 했을 할 자리가 손끝에 차갑게 닿았다. 복잡한 심정,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 이럴수록 더욱 보고 싶은 이의 존재에 그녀는 괴로워했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낸 채 파르르 몸을 떨고서 흐느꼈다. 

이 그리움은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멈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