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채울 수 없다.
새하얗던 풍경이 붉게 물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처절하고 아련하기만 했던 시간이 지나, 그의 마지막을 위해 정리하게 되는 건 스오우 미코토와 가장 가까웠던 카노 사야가 해야 할 일이 되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남겨진 유품을 쥐고서 분향소에서 찾아오는 이들을 맞이했다.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못한 상태로 멍하니 있었기에 호무라 사람들이 대부분을 다 처리했지만.
그가 남긴 피어싱을 비롯해 반지와 목걸이, 허리 체인이 유일한 유품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유품은 카노 사야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 스오우 미코토의 육체를 불태우고 남겨진 건 작은 단지뿐이었다.
카노 사야의 의지에 따라 2층의 방 안쪽에 불단이 마련되었다.
" 미코토... "
카노 사야는 지금의 상황이 꿈인지, 악몽인 건지 아니면 현실인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게 현실이지 않길 바라면서도 악몽이라면 더 싫을 것 같았다. 어느 쪽으로 가든 스오우 미코토를 보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건 변함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아무리 불을 다루는 적의 왕이라고 하지만, 뜨거운 불 안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스오우 미코토가 자신의 곁을 떠나갔다는 것이 사무치도록 원통스럽고, 분했다. 기껏 근처에 있었으면서 그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것도, 구하지 못했다는 것까지도.
카노 사야의 주변으로 붉은 불꽃이 일렁거리더니 순식간에 그녀를 중심으로 불길이 커졌다.
" 너무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건 너무하잖아... "
지금이 꿈이든 현실이든, 이미 한 번 겪었던 걸 다시 반복해야 된다는 것 자체가 끔찍했다.
힘이 쭉 빠져버린 그녀의 목소리가 갈 곳 잃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리 마음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한 편에 속했다. 제대로 자아를 형성하고 인간성을 쌓아가던 20대에 호무라 사람들을 만났으니, 유약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 반복되는 악몽과 되풀이되는 소중한 이의 죽음은 모든 걸 포기하게 만들었다.
카노 사야가 모든 걸 포기했을 때, 불길이 사그라들고 뿌연 연기가 주변을 가득 메워왔다. 연기가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차오기 시작하자 그녀의 눈이 서서히 감겨왔다.
" ... 미코토... "
정말로 모든 게 이상했다.
매번 악몽을 꿀 때마다 항상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었다. 하지만 오늘은 신기할 정도로 천천히 눈을 뜨며 익숙한 천장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서서히 눈을 뜨던 그녀의 눈동자에는 언제나 반짝이던 생기가 사라져있었다.
죽어버린 눈동자에서 조용히 눈물이 흘러나왔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뜨거웠으나 차갑게 식어갔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찾았다. 악몽에서 깨어날 때면 언제나 습관적으로 찾는 게 시계였다. 시곗바늘은 전부 2를 가리키고 있었다.
" 아직... "
또 이른 시간에 깨어나고 말았다.
카노 사야는 다시 잠들기 위해, 꿈에서 스오우 미코토를 만나기 위해 자리에 누웠다. 그녀는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정확히는 닦을 기력조차 없었다.
눈물을 닦지 않는 대신 머리맡에 놓여있는 스오우 미코토의 유품 중 하나인 목걸이를 움켜쥐며 눈을 감았다.
" 나는, 언젠가... "
흐려지는 말을 끝으로 카노 사야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평소에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웬일로 바로 잠들 수 있는 게 신기했으나, 그녀에게 그것은 지금 신경 써야 할 일이 아니었다. 점점 잠에 빠져들면서 만나게 될 스오우 미코토를 봐야만 했으니까.
조금 뒤척거리긴 했으나 얼마 안 가 잠에 들 수 있었다.
스오우 미코토의 목걸이를 꼭 쥐고 있던 손에 힘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카노 사야의 굳게 닫힌 속눈썹이 파르르 미세하게 떨려왔다. 눈두덩이 위로 무언가를 찾는 듯 눈동자의 방향이 보였다.
카노 사야의 입에서 숨이 후, 짧게 흘러나왔다.
.
.
.
천천히 눈을 뜬 카노 사야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꿈을 꾸고 싶지 않았는데, 또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눈을 뜬 카노 사야가 익숙한 천장에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스오우 미코토를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독하게 느껴졌다.
스오우 미코토가 지겨운 게 아니라 악몽 자체가 지겨웠다.
' 그만하라고 하고 싶은데, 누구에게 애원해야 할지 모르겠어...
차라리 형체라도 있으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악몽을 꾸게 하는 거라면 탓하기라도 하겠지. 그만둬달라고, 미치겠다고 애원이라도 할 테지. 하지만... 나도 알 건 알아, 이 악몽을 꾸게 하는 건 다름 아닌 나라는 걸.
미코토를 놓지 못한 내 미련이고, 잃기 싫은 마음이겠지. '
카노 사야는 복잡한 마음을 계속 반복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서 생각을 해도 끝나는 길은 없었기에, 그만 생각해도 될 문제지만 악몽을 멈출 방법을 몰랐기에 이렇게라도 생각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것에 시선을 옮겨 그것을 보았다. 카노 사야의 손에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스오우 미코토의 손을 마주 잡고 있었다. 꿈속에서 모든 것을 부수었던 힘을 당장이라도 뿜어낼 수 있는 그 손을 잡고, 그를 보았다.
" 미코토...? "
카노 사야는 자신의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너무 지나치도록 현실적이라서 괜히 스오우 미코토의 이름을 불렀다.
곤히 잠들어있는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 위로 그의 마지막이 오버랩되었다. 그걸 보지 않으려고 카노 사야가 두 눈을 질끈 감아냈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곁에 다가가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이마와 이마를 맞대었다.
한동안 유지되고 있던 정적을 깬 건 스오우 미코토였다. 그가 먼저 카노 사야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맞닿은 이마 때문에 두 사람의 시선이 가까운 지척에서 섞이고 얽혔다.
[ 사야, 잠이 오지 않나? ]
" ... 응... 잠이 오지 않아. "
[ 음... ]
스오우 미코토는 심란해하고 있는 카노 사야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녀는 아주 잠깐이라도 그의 모습을 놓치기 싫다는 듯 시선을 움직여 스오우 미코토의 모든 것을 꼼꼼하게 눈 안에 담아냈다. 그의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 곱게 내려앉아 떨리는 속눈썹.
오똑한 코와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입술, 갸름하지만, 누구보다 남성적인 턱선, 동글동글한 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상당히 미남형의 얼굴이 그녀의 마음을 미치도록 뛰게 했다. 카노 사야가 그의 얼굴을 살펴보다가 스오우 미코토와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부끄러움을 느꼈던 그녀였지만, 그의 시선을 피하진 않았다.
카노 사야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던 스오우 미코토가 입을 열어 말했다.
조용하던 두 사람 사이에 처음으로 내뱉는 말이었다.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 사야. 아직 이른 시간이야. ]
" 알아, 미코토... 네가 더 자고 싶다면 더 자도 괜찮아. "
[ 넌 보고 있기만 하려고? ]
" 응... 들켰네. "
아직 잠에서 덜 깬 스오우 미코토가 상당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 모습조차도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카노 사야는 행복함과 동시에 괴로움을 느껴야 했다. 이젠 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였으니까. 그게 상당히 괴로웠고, 혼란스러웠으며 아팠다.
이른 시간이라던 스오우 미코토에게 다시 자도 괜찮다고 답한 그녀는 다정한 눈길로 그를 보았다.
카노 사야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정말 꿈인 건지, 아니면 현실인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기만 했다. 그를 볼 수라도 있다는 것만큼 행복한 건 없었다.
비록 지독한 악몽이 늪처럼 끝까지 따라붙어서 괴롭긴 했지만.
" 잘 자, 미코토. "
이왕이면 눈을 떠서 자신과 함께 해주길 바랐지만, 눈앞에 있는 스오우 미코토는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현실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어찌 감히 자신이 그를 눈앞에 두고서 현실과 꿈을 구별할 수 있겠냐마는, 행복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프다는 기분이 들었다. 혹여나 스오우 미코토를 만졌다가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만져서 감촉이 느껴지는 것도 문제였다.
카노 사야는 곤히 잠들어 있는 스오우 미코토를 보며 괜히 손길을 보냈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이 구분가지 않는 꿈에서 깨어난다면, 그땐 정말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이게 꿈이든, 악몽이든... 뭐든 좋아, 미코토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미코토, 너 하나만 이렇게 바라보는데 너는... 차라리 현실을 망각하고 여기를 기억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아니면 여기가 현실인가? 널 만져보면 널 느낄 수 있을까? '
카노 사야의 손길조차도 아련함이 묻어나왔다.
그녀의 시선은 그리움과 슬픔, 연민, 아련함이 담겨져있었다. 용기를 내서 손을 뻗어 잡아보려고 했다. 만지려다가 또 사라지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 ... 만, 져지네... "
손끝에 닿아오는 묘한 감각, 마치 있으면서도 없는 무언가를 만지는 느낌.
카노 사야는 입맛을 다시다가 자신의 손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펴길 반복했다. 정말 느껴지는 게 맞는 건지 싶은 생각에 다시 만져보기도 했다. 정말 여기가 현실인가?
그럼, 이제까지 자신이 꾸었던 악몽이나 꿈은 대체 뭐였지?
그리움이 너무 오래되어 이젠 미쳐가기까지 하는 걸까, 카노 사야의 눈동자가 옅게 떨리면서 스오우 미코토를 보았다. 그녀는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붙잡았다.
혹여나 잃어버릴까 싶은 마음에 이번에는 깍지까지 꼈다.
크고 넓은 손안으로 작은 손이 들어갔다. 그걸 보니 꿈이 아닌 것 같았지만. 카노 사야는 그만 현실에서의 일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래야 지금 온전히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담아낼 수 있을 테니까.
" 미코토, 이제 일어날 시간인데... "
[ 으음... ]
카노 사야는 스오우 미코토를 잠에서 깨우며 깍지를 낀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입맛을 다시는 그를 향해 다정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의 이름을 부른 뒤 사랑한다며 속삭이고 그 말에 웃음을 짓는 그를 보았다. 아름다웠던 추억의 한편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그녀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일어나지 않는다면 장난을 치겠다고 귓가에 속삭였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던 스오우 미코토가 계속해서 장난을 치고 있는 카노 사야의 행동에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눈을 뜨지도 않은 채 그녀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확 잡아당겨 자신의 품에 가두듯이 안으며 눕혔다.
카노 사야는 갑자기 시야가 확 바뀌자 당황했다.
" 미, 미코토...!! "
[ 잘 자고 있는데 장난을 치면 안 되지. ]
" 일어날 시간이니까 깨운 거지. "
[ 조금만 더 자고... ]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의 이름을 부르니 스오우 미코토가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조금만 더 잔다고 답했다. 그 답에 그녀가 몸을 비틀며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짓눌러오는 힘조차 진짜 같아서.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일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말로 그의 두꺼운 팔이 몸을 감싸오자 벗어날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바둥거리던 카노 사야가 결국에 벗어나는 걸 포기하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대신 고개를 들어 잠들어 있는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평범한 일상과도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카노 사야는 정말로 꿈인 것을 잊어버렸다.
[ 미코토, 오늘 뭐 먹을까? ]
[ 음... 아무거나... ]
[ 오늘 안나랑 산책이나 갈까? ]
[ 그래... ]
카노 사야는 분명 스오우 미코토가 다시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에 전부 답을 해주는 것에 웃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가슴팍 위로 손을 올렸다.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그의 심장 고동이 불안함을 완전히 날려주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간질거림에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그의 얼굴을 올곧게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카노 사야는 스오우 미코토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게 전혀 지겹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오히려 새롭다는 듯 봤던 부분을 또다시 보았다. 스오우 미코토는 완전히 잠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에 슬그머니 눈을 떠서 그녀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렇게 보다간 얼굴에 구멍이라도 생기겠는데. ]
[ 아, 미... 미안해... ]
[ 미안할 건 아니고... 왜 그렇게 보던 거야? ]
[ 그게... ]
카노 사야는 그가 잠든 줄 알았는데, 눈을 뜨고서 하는 말에 흠칫 놀랐다.
마치 어린아이가 하면 안 될 짓을 하다가 들킨 느낌이었다. 당황한 듯 눈동자를 굴리던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한참 뜸을 들였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술이 연신 벙긋거렸다.
' 내가 왜 그렇게까지 그를 보고 있었던 거더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째서인지, 계속 보고 있어야 할 것 같았어. 그렇지 않으면... 어? '
완전히 망각해 버린 그녀는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답을 기다리고 있는 스오우 미코토가 있었기에 뭐라도 답을 해야만 했다. 어느새 상체를 일으켜 앉아 있는 그를 보다가 카노 사야가 천천히 앉더니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입을 우물거렸다.
[ 그게... ]
[ 음. ]
[ 아무래도 내가 악몽을 꾼 거 같아... ]
[ 무슨 악몽? ]
[ 미코토가 날 두고 가버리는 꿈이었어. ]
카노 사야는 순간 자신의 입에서 왜 있지도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는가 싶었다.
잠에서 깨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꿈을 꾸지도 않았고, 그렇기에 악몽이 될 수 없는데 악몽을 꾸었다고 말했다. 그게 거짓인지 진실인지를 떠나 그녀의 말을 믿고 있는 스오우 미코토가 무슨 악몽이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말에 그녀는 입맛을 다시다가 조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스오우 미코토가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카노 사야에게 시선을 주었다. 카노 사야는 그 시선이 계속되자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그의 팔을 붙잡으며 애절하게 굴었다.
" 미, 미코토... 그렇게 보지만 말고 말 좀 해봐. 응? "
[ ... ]
" 미코토! "
[ 이렇게 말인가? ]
" ...!!!! 미코토...!! "
간절하게 애원하는 말에도 스오우 미코토는 여전히 카노 사야를 서늘하게 식은 눈으로 보았다.
그 시선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러자 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그가 카노 사야의 눈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크게 놀랐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 싶은 표정으로 스오우 미코토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여전히 답이 없었고, 정말 사라진 것처럼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라진 그의 모습에 카노 사야의 눈이 크게 떠지며 눈동자가 잘게 떨려왔다. 어느새 그녀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카노 사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이름을 부르며 여기저기 찾으러 다녔다.
" 미코토...!! "
" 미코토, 어디야?! 나, 나... 무서우니까 이만 나와! 응? 제발... "
그녀의 모습은 간절하면서도 아슬해 보였다.
마치 낭떠러지가 있는 절벽 쪽으로 뻗은 나뭇가지 위에 겨우 버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과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리는 식은땀, 본인조차도 모를 정도로 잘게 떨려오는 몸이 그랬다.
카노 사야는 방을 나와 복도를 살펴보더니 1층으로 내려가 호무라 바 안을 살펴보았다.
카운터, 테이블, 주방까지. 전부 돌아다녔지만, 그의 모습은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시간이라면 쿠사나기와 안나가 호무라 바에 출근해서 문을 열고 오픈 준비를 하고 있어야했다.
" ... 쿠사나기? 안나?? ... 미코토...? "
하지만 아무리 불러보아도 누구 하나 나와서 그녀에게 답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카노 사야의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풍경에 그녀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고개를 빠르게 이리저리 돌려 주변을 파악하려고 했다.
[ 네 곁에 이제 그는 없어. 그만 놓아주는 게 어때? ]
" 그게 무슨 소리야! 바, 방금까지... 그래, 방금까지 내 곁에 있었어! "
[ 그게 다 네 망상이고 악몽이라는 걸 알면서 그래? ]
" 내 현실이야! 망상도 아니고 악몽도 아니라고! "
[ 정말 그렇게 생각해? ]
순식간에 카노 사야의 주변이 호무라 바에서 검은 풍경으로 뒤바뀌었다.
당황하긴 했으나 카노 사야는 차분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맞은편으로 검은 형체가 나타나며 조금씩 말을 걸어왔다. 그 말이 그녀에겐 상당히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답을 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카노 사야는 자신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올곧게 믿는 눈으로 검은 형체에게 대항했다.
그녀가 망상도 악몽도 아니라고 부정하는 순간 맞은 편에 있던 검은 형체가 녹아내리듯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그 흐름을 따라 그녀의 시선이 내려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는 목소리가 아까와는 달라졌다.
카노 사야의 시선이 올라가고, 마주친 순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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