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라는 '독' 아래에, 널 그리워하고 있어
" 어...? "
카노 사야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1년 전,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래, 현실에서 지독하게 스오우 미코토의 곁에서 함께 일상을 보내며 자신을 괴롭혀오던 자신. 그녀의 눈이 점점 커져갔다. 팔 위로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에 주먹을 꽉 쥐었다.
솜털마저도 바짝 곤두서는 감각이 소름 돋았다.
아무리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다고 해도 눈앞에 있는 건 자신이 맞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입만 벙긋거리고 있으니, 순식간에 주변이 바뀌었다. 눈앞에는 자신이 아닌 스오우 미코토, 그가 서 있었다.
" 미, 코토...? "
[ 사야.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
" 그게... "
정말 눈 깜빡할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그가 나타났고,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았다.
카노 사야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조차도 그를 보고 있었다. 스오우 미코토가 부축이라도 해주려고 하는 건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멍하니 있던 카노 사야가 그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그녀의 놀랐던 눈이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자신의 손이 잡은 스오우 미코토의 손은 아무런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까 전에 느꼈던 감각은 마치 착각이라고 누군가 귓가에서 속삭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입꼬리에 머물고 있던 웃음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이게... 현실이 아니구나, 정말 꿈인 거구나...
미코토를 보고 있는 지금이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꿈인데, 나는... 난... 부디 꿈이라도 좋으니, 그와 더 함께 있고 싶어. 더 같이, 미코토를 끌어안고서 그를 느끼고 그의 온기를 받고 싶어. '
카노 사야는 스오우 미코토를 향해 손을 뻗는 그 상황 속에서도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이게 꿈이라는 걸 다시 떠올렸다. 망각하고 싶다고 해서 정말 망각해 버렸던걸, 자신이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꿈이어도 좋으니 그와 더 함께하고 싶은 마음만 더 커져갔다.
꿈에 매달리기로 정한 카노 사야가 스오우 미코토의 손을 꽉 붙잡으며 그의 품으로 안겼다.
자연스럽게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고개를 들어 올려 스오우 미코토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졌고, 처음에는 갑자기 부딪힌 탓에 통증이 느껴졌으나 이내 통증을 잊힐 정도의 자극이 잇따라 올라왔다.
스오우 미코토는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카노 사야를 보았으나 그녀의 입맞춤에 따라 응해주었다.
" 으음, 미... 코토... 더, 더 하자. 응? "
[ 오늘 왜 그러지? ]
" 제발... 내 부탁이야, 미코토. "
카노 사야의 목소리에는 애절함과 처절함이 묻어나왔다.
잠시 떨어진 입술 사이로 나온 애원이 스오우 미코토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구겨진 미간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스오우 미코토는 더 물어보는 걸 접고 그녀의 부탁대로 입을 맞추었다.
카노 사야의 허리에 단단한 팔을 휘어감고,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며 입을 맞췄다. 그 사이 그녀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은 그대로 똑똑 아래로 떨어졌다.
카노 사야는 혹여나 스오우 미코토가 입술을 떼어낼까 싶은 마음에 더 꽉 끌어안으며 깊게 입을 맞췄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졌다. 그녀는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황급히 그를 끌어안으며 자신의 눈물을 숨겼다. 그의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 사야? ]
" ... 그런 목소리는 반칙이야, 미코토. "
꿈이면서, 어째서 이만큼이나 다정한 목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현실과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건지. 모든 게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았지만, 너무 현실과 똑같았다. 그렇기에 더 절박했다. 꿈이어도 좋으니,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꿈속의 심장에까지 뻗어오는 절박한 그리움이 조금씩 의식을 잡아먹고 있었다.
발끝에서부터 질척하게 달라붙어 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둡고 꿉꿉하기만 한 절박함이, 사무치고 답답한 그리움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처럼 자신을 자꾸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은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잠식되어 갔다.
[ 무슨 일이냐니까, 사야. ]
" 으응, 아냐... 잠시만... 잠시만 이러고 있자. "
카노 사야는 자꾸 밀어내려고 하는 스오우 미코토의 행동에 잠시만 이러고 있자는 말을 남기며 더 꽉 끌어안았다.
느껴져야 할 그의 체향, 온기, 심장 소리. 그 무엇 하나 느껴지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으며 맡아지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카노 사야는 어떻게 해서든 그의 체향, 온기, 심장 소리를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1년 전에 하지 못했던 말들이 계속 혀끝에 맴도는 걸 알고 있었다.
끝내 하지 못했던, 전하지 못했던 마음이 남아 마음 한편을 괴롭히고, 밤새 잠 못 이루거나 눈물을 흘리게 했었다. 해야 할 말을 삼키고 있기 때문일까, 입안이 텁텁하게 느껴졌다.
" ... 우리 결혼하자, 미코토. "
혀끝에 맴돌던 말 중에서 어떤 걸 꺼내야 할지,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와중에 튀어나온 말이었다.
스오우 미코토가 그 말을 듣고 놀라긴 했지만 정작 말을 꺼낸 카노 사야도 놀란 상태였다.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눈을 천천히 감으며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대고서 기대었다.
' 왜 지금 이런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 이게 내가 원하던 것 일수도 있어.
아니면 그냥 충동적일 수도 있고, 어쩌면 수없이 해왔던 미련과 후회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단 한 가지, 내뱉은 걸 후회하지 않아. 오히려 미코토가 받아줬으면 좋겠어. '
충동적으로 입에서 흘러나와버린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주워 담을 생각도 하지 않는 그녀였다. 이미 수많은 후회와 미련을 겪은 그녀였기에 더 이상의 후회와 미련을 가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내가 네 이름이라도 가질 수 있게 해줘. "
한 번 트여버린 입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혀끝에 감돌았던 그 텁텁한 맛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카노 사야는 그 이유로 아마도 끝내 하지 못했던 말들이 입 밖으로 나왔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두서없는 말을 내뱉었다.
스오우 미코토가 조용히 듣고 있다는 걸 알고 카노 사야는 말을 이어갔다.
자신이 내뱉는 말 중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담아두었다가 하지 못한 말을 전부 쏟아부었다. 자신의 사랑을, 그를 향한 그리움을, 지독하고 질척이는 사무침을 부었다.
' 나만이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의 방법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대뜸 다른 무엇보다 먼저 나와버릴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그에게 내 마음을, 내 사랑을 알려주고 싶어. 꿈이라도 괜찮으니까. '
마치 카노 사야의 모습은 다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같았다.
" 오늘 생뚱맞은 소리를 많이 하는군. "
스오우 미코토는 열렬히 자신을 향해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보았다. 그러면서도 그 불태우고 있는 감정에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는 카노 사야를 보며 피식 웃음을 지으며 생뚱맞은 말을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말에도 웃으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스오우 미코토의 행동에 그의 팔을 붙잡으며 다시 말했다.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네 이름을 자신에게 달라고. 그거라도 가지게 해달라고.
스오우 미코토는 처음에 장난처럼 받아들였지만, 꽤나 진지하게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 미코토... 안 돼? 스오우 사야, 잘 어울리지 않아? "
[ ... ]
카노 사야는 다신 없을 기회를 위해 더 처절하고 애달프게 매달렸다.
꿈에서라도 그렇게 하라는 그의 답을 듣기 위해 더 매달렸고, 그에게 답을 해달라는 눈빛으로 보았다. 카노 사야를 힐끗 보던 스오우 미코토의 시선이 허공을 보다가 다시 그녀를 보길 반복했다.
그는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스오우 사야가 어떻냐며 말을 해오는 모습을 보았다.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가리며 보일 듯 말 듯하게 웃으며 카노 사야에게 다정하면서도 열렬한 눈빛을 보냈다. 카노 사야는 그의 반응에 그가 허락해 줄 거라 생각하며 축 늘렸던 눈썹을 올리며 조금씩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미코토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지? "
카노 사야는 스오우 미코토의 팔을 붙잡고서 물어보았다.
계속 물어볼 때마다 고개를 돌리며 입가를 가리는 모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의 습관 중 하나였다. 부끄럽거나 혹은 크게 만족하거나. 둘 중 하나면 항상 씰룩거리는 입가를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때 카노 사야의 눈에 스오우 미코토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듯한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의 예상대로 그는 답을 하려고 했다. 대답을 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거리며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카노 사야의 시야에서 스오우의 몸이 흩어지면서 그의 말이 뭉개져 버리면서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카노 사야가 헉하고 숨을 급하게 들이마시며 잠에서 깨어났다.
" ... 헉, 허억... "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 침대에 누워있던 카노 사야는 덮고 있던 이불을 움켜쥐고서 천장을 향해 팔을 뻗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얼굴은 이미 새하얗게 질려 창백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기 위해 쥐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필이면 그의 답을 듣기 전에 깨어나는 바람에 허무함이 땅을 파고 깊게 들어갔다.
커진 그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맺히더니 주륵, 아래로 내려가 배게를 적셨다. 카노 사야는 눈물이 흐르는 건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눈을 꾹 감고서 팔로 눈가를 가려냈다. 지끈거려오는 머리와 욱신거리는 가슴, 멈추지 않는 눈물에 그녀는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남은 카노 사야는 닿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 미코토... 어떤 답을 하려고 했어...? "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쉴세없이 흘러 그녀의 눈가가 붉게 짓눌려졌다.
카노 사야는 눈물을 흘리면서 꿈속에서의 그가 하려고 했던 말을 유추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던 형태, 울렁거리던 목 울림, 기분 좋은 듯 올라간 입꼬리.
무엇하나 놓치지 않고 떠올렸다. 하지만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기억은 점점 흩어졌다.
그녀에게 감히 떠올리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카노 사야는 이불을 움켜쥐고서 고통스러워했다. 하필, 하필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끝나버린 자신의 악몽을 원망했다.
그만두라고 그렇게 애원해도 멈추지 않던 악몽이 하필 가장 원할 때 멈추는 바람에.
" 으흑...!! 흐, 흐윽...! "
카노 사야의 눈에서 홍수가 난 듯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이러다 탈진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곁에서 눈물을 닦아줄 이는 이미 없었다. 이젠 완전히 희미해져 버려서 스오우 미코토의 표정도, 울렁거리던 목 울림도, 그의 입꼬리조차도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설움을 버텨내지 못한 그녀는 자리에 앉아 그대로 심장 쪽을 부여잡고서 흐느꼈다.
그렇게 울고 있는 방안에서 외롭게 홀로 있는 그녀를 달래어줄 스오우 미코토는 꿈에서조차 연기처럼 변해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가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편린이 되고 말았다.
" 미코토...!! 미코토... "
그녀는 계속해서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은 편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세상을 잃은,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지금의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다. 카노 사야를 이해해 줄 사람도,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이 슬픔, 이 아픔, 이 고통을 견뎌야 하는 건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 어떡하지, 이제 어쩌지. 정말...
내가 입에 담고만 있던 그 말의 답을 알 수 있는 날은 이제 오지 않을 거야... 영원히 알 수 없겠지. 미코토, 내가 감히 네 이름을 이어가려고 했기 때문일까. 내 지나친 욕심 때문에... 그래서 나에게 이런 벌이 내려지는 걸까? 너무 서러워. 너무 그리워...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미코토... '
카노 사야는 사무치는 그리움 속에서 이제는 알 수 없는 답이 너무 서러워서 계속 울었다.
그렇게 아침까지 눈물로 보내던 그녀에게도 눈물을 그쳐야 할 때가 오긴 했다.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 같던 눈물도 자신을 보며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로 인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 오자 호무라 바에 출근한 쿠사나기와 안나로 인해서 눈물을 닦아냈다.
이 슬픔과 아픔, 고통, 후회와 미련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었다. 이것들로 인해 쿠사나기와 안나에게 걱정을 끼칠 수 없었다. 비록 속에 꽁꽁 숨겨놓은 탓에 자신이 망가져 가고 있다고 해도.
" ... 카노, 정말 괜찮은 거 맞지? "
" ... 응? "
" 사야... 아파보여. "
" ... 난 괜찮아, 쿠사나기. 안나. "
카노 사야는 오늘도 쿠사나기와 안나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마냥 검은색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하얗지 못해서 상대방이 바로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지만. 쿠사나기는 이상하게도 오늘 하루, 지난 1년보다 더 피곤해 보이고 아파 보이는 카노 사야의 모습에 걱정이 앞섰다.
눈 밑은 퀭하게 가라앉은 채 안색은 하얗게 질렸고, 눈가는 울었던 모양인지 붉었다.
스오우 미코토가 떠나가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과 안나는 조금씩 그를 마음속으로만 품고 살아가고 있었으나, 그녀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숨도 쉬지 못한 채 지독하게 그를 찾아다니고 있는 미아 같았다.
그래서 더 걱정이 되었다. 자신의 상태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무작정 나서는 그녀가 정말 어떻게 될까 싶어서.
" 아니, 오늘 하루 정도는... "
" 난 정말 괜찮아...! ... 정말로. "
" ... 그럼 잠시 앉아서 쉬는 것 정도는 들어줄 수 있지? "
" ... 응, 알았어. "
쿠사나기는 스오우 미코토를 향한 카노 사야의 마음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걱정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 결국 카노 사야는 쿠사나기의 걱정어린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쉬기로 했다. 그가 자신에게 남긴 진정한 마지막, 호무라 바만큼은 자신이 자리하고 싶었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카노 사야는 일하고 있는 쿠사나기와 바에 앉아 발을 구르고 있는 안나를 보았다.
그 사이로 스오우 미코토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듯싶었다. 그녀가 눈치챘을 땐 이미 연기처럼 희미하게 사라지고 난 뒤였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녀는 쿠사나기와 안나의 시선에 머쓱해하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며 가렸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감고 있는 두 눈을 비집고 나와 흐를 것만 같았다.
" 하... "
꿈속에서 맛보았던 달콤하고 황홀한 감각의 향연을 잊지 못하고, 그 맛을 알아버린 채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평소에 느꼈던 감정들이 배로 부풀어 그녀를 짓눌러왔다.
그를 잃어버렸다는 허무함, 자신은 아무것도 하니 못했다는 후회와 미련, 그와 꿈꿔왔던 미래가 사라진 것에 대한 허망함.
스오우 미코토가 죽었어야 했나? 하며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느낀 비애, 고통이 평소보다 더 부풀어 숨을 조여왔다. 숨이 턱하고 막혀올 정도로 답답함이 느껴졌지만, 울 수 없었다.
그저 얼굴을 가린 채 미세하게 몸을 떨어내며 숨죽일 뿐이었다.
카노 사야는 울고 있었지만, 흔하게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온몸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슬퍼했다.
" 카노... "
쿠사나기는 일을 하면서도 가끔씩 힐끔거리며 카노 사야를 보았다.
어깨가 잘게 떨리며 푹 숙여진 얼굴에 쿠사나기의 눈에는 걱정이 어렸다. 하지만 여기서 더 다가갈 수 없었다. 선을 넘고 싶어도 감히 두 사람의 관계에 닿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걸 안나 또한 알고 있었다.
아무리 스오우 미코토와 가까웠던 안나였지만, 그와 카노 사야의 사이에는 자신조차도 낄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 걱정이 앞섰지만 그걸 극복하고 넘겨야 하는 건 그녀였다.
두 사람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응원해 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다는 게 한탄스러웠다.
차라리 그녀가 소리를 내서 울기라도 했다면, 그랬더라면 달래어주며 눈물을 닦아주었겠지만 카노 사야는 절대 자신들의 앞에서 울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았다.
" 카노, 마감은 내가 할게. 넌... 일단 올라가 봐. 보니까 불단에 향초가 꺼져가던데... "
" ... 고마워, 쿠사나기. "
카노 사야는 자신의 등에 닿아오는 손길에 흠칫 떨었다.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많이 피폐해졌고, 망가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쿠사나기가 움찔거렸으니, 이미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쿠사나기는 자신이 움찔거렸다는 게 머쓱해졌던 모양인지 불단 이야기를 꺼내며 말을 돌렸다.
쿠사나기의 말에 카노 사야는 아침에 자신이 불단에 향을 피웠던가, 생각을 하다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비척거리며 2층으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은 다른 사람이 보아도 상당히 버티기 힘들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2층으로 올라온 카노 사야는 문을 열고서 익숙하게 불단 앞으로 가 자리에 앉았다.
" 미코토... "
그녀는 향이 꺼져버린 향 그릇에 불을 붙인 향을 꽂아두며 합장했다.
손바닥을 마주치고서 고개를 푹 숙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불단에 모셔진 그의 사진은 무표정이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흐릿한 미소가 보였다. 합장을 끝낸 카노 사야는 멍하니 그의 사진만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잘그락거리는 스오우 미코토의 목걸이를 꺼냈다.
그녀의 텅 빈 눈동자가 주인이 없는데도 반짝거리고 있는 목걸이를 담아냈다. 카노 사야는 목걸이를 양손으로 꽉 쥐며 기도했다. 진심을 담아내며, 누군가에게 닿을 기도를 올렸다.
" 미코토... 나, 나... 다시... 다시 한번만 더...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
울음이 섞인 물기 어린 목소리가 매어지는 목을 겨우 비집고 나왔다.
숨이 다시 막혀오는 감각이 느껴졌다. 하지만 카노 사야는 그것조차 신경 쓰지 않고 불단 앞에 천천히 몸을 눕혔다. 이젠 울음조차 소리 내서 울지 못했다. 너무 슬픔이 깊어져 버린 탓이었다.
그 설움과 그리움이 너무 커진 탓에 목이 매여왔다.
카노 사야는 목걸이에 이마를 댔다가 짧게 입을 맞추었다. 마치 그 목걸이 자체가 스오우 미코토라도 되는 듯이 굴었다. 잔뜩 매어진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 조금만 더... 나, 거기에 있으면 안 될까...? "
그녀의 말이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허공에서 헛돌았다. 닿지 못할 말이라, 닿을 수 없는 말이라서.
카노 사야는 중얼거리며 눈을 꾹 감았다. 그러자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조용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대로 불단 앞에서 눈을 감으며 잠들려고 했다.
그토록 그리고 그리던 이를 만나기 위해서.
[ 미코토...! ]
[ 사야. ]
꿈에서의 그녀는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워하고,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녀의 곁에는 미코토가 있었으므로 행복은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현실에서 잠들어 있는 카노 사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의 얼굴 위로 행복해 보이는 미소가 내려온 것이었다.
행복하게 웃고 있던 그녀는 숨 한 번을 내쉬지 않았다. 자신의 행복을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 스스로 숨을 멈춘 듯했다. 꿈속에서의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미코토의 품에 안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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