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너도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결국 카노 사야는 그날 울다가 지쳐 잠들었고, 평소보다 더 지독한 악몽을 꾸게 되었다.
악몽은 언제나처럼 1년 전, 스오우 미코토가 살아있을 때를 보여주었다. 그와 함께 보냈던 일상이라던가, 데이트. 바에서 있었던 일, 뒷골목에서 적의 여왕이라던가 호무라의 안주인이라고 놀림 받던 것까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안나하고 외출할 때면 항상 부부냐는 말을 들었던 것도 포함이었다.
가장 먼저 보여주는 건 그와 함께 보내는 일상이었다. 그게 카노 사야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기도 했고, 초조함이기도 했다. 방심할 때마다 보이는 악몽의 일상은 그녀의 현실 일상조차 망가뜨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바에서 있었던 일이 먼저 꾸게 되었다.
[ 미코토, 주문 밀렸어! 좀 도와줘. ]
[ 음... ]
[ 미코토 상! ]
호무라 바에 사람이 밀려 들어왔을 때, 정신없는 와중에 사야와 쿠사나기가 스오우 미코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미코토는 그 도움의 목소리에 짧게 침음하며 안나와 놀아줄 뿐이었다. 주문이 잔뜩 밀리고 있었고, 사야와 쿠사나기가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을 때 들어온 사람은 토츠카였다.
토츠카가 팔을 걷어붙이며 도와준 덕분에 바쁜 게 빠르게 해결되었다.
조금 한가해지자 사야가 미코토의 옆에 앉으며 그의 어깨에 기댔다.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지친 몸을 쉬게 했다. 미코토는 자신에게 기대어 오는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사야는 그의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손길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 음... ]
[ 오늘 왜 이리 사람이 많지? ]
[ 사야! 오늘 주말... ]
[ 아, 주말이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안나. ]
사야는 어깨를 두드리며 근육을 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사람이 왜 이리 많은 건지, 툴툴거리며 말을 이어가자, 미코토의 허벅지 위에 앉아 있던 안나가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친절한 설명에 사야가 웃으며 안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사야의 다정한 손길에 안나가 희미하게 웃어주었다.
근육을 다 풀어둔 사야는 다시 미코토의 어깨에 기댔다. 쿠사나기가 뒷정리를 마치고 테이블 위로 커피 2잔과 딸기주스를 올려두었다. 커피 2잔은 사야와 미코토를 위해서, 딸기주스는 안나를 위한 것이었다.
토츠카가 사야와 미코토 맞은편에 앉으며 지친 듯 소파에 몸을 맡겼다.
[ 하아... 너무 바쁘다. ]
[ 주말이라서 그렇대. ]
[ 이제 마쳐서 다행이다. ]
[ 음... ]
호무라 바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바빴던 날이었다.
미코토가 도와주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토츠카의 도움으로 그나마 숨을 돌릴 만 해졌다. 카노 사야는 그동안의 악몽에서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장면에 처음으로 짜증이 났다.
왜냐하면 가장 바빴을 때, 처음으로 미코토에게 위로를 받던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악몽이 이제까지 이 꿈을 보여주지 않다가 이제서야 이 꿈을 보여준 이유가 뭘까.
카노 사야가 악몽 속에서 자각했을 때, 장면이 뒤바뀌었다.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장면이 확 바뀌고 이번에는 눈앞에 공원이 보였다. 주변을 살펴보자 봄 날씨였고, 바텐더 복장에서 가벼운 봄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 어라...? ]
[ 음? ]
[ 미코토...? ]
[ 음, 사야. 무슨 일이라도 있나? ]
[ 아무것도... 아니야. ]
카노 사야는 이번에도 악몽이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매번 악몽을 꿀 때마다 그녀는 자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꿈을 꾸다가 자신의 기억과 조금이라도 다른 장면이 나온다면 자각하게 되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게 전혀 없는데도 바로 자각했다는 게 문제였다.
카노 사야의 떨리는 눈동자에 미코토의 모습이 담겼다. 그는 자신과 나란히 걷고 있던 사야가 발걸음을 멈추자 덩달아 걸음을 멈추고서 그녀를 보았다. 카노 사야는 여전히 당황해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미코토 모습에 그 당혹감을 지웠다.
언제나 악몽 속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갑갑했는데, 지금은 움직일 수 있었다.
[ 미코토... 그, ]
[ 음? ]
카노 사야가 미코토의 팔을 조심스럽게 붙잡으며 입을 달싹거렸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려는 순간 그녀의 입에 접착제가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입만 연달아 벙긋거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미코토가 시선을 돌려 사야를 보았다.
그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 위해 시선을 주었고, 그녀는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손을 마주 잡은 채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벚꽃잎이 흐드러지게 퍼지는 풍경 속에서 둘은 나란히 걸었다. 카노 사야는 비록 꿈이라는 걸 알고 있고, 악몽이 무슨 의도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미코토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 사야. 내가 죽었을 때 너는 뭘 했지? ]
" ... 네? "
[ ... ]
" 미코토? "
조용히 걷고 있다가 미코토가 사야를 보며 말했다.
카노 사야는 순간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되물어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귀조차도 의심했다. 한순간이었지만, 그가 하지 않을 법한 말에 당황한 그녀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잘 걷고 있던 발걸음을 멈추고 카노 사야가 미코토를 보았다.
반문하는 그녀의 말에 미코토는 조용히 그녀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카노 사야가 미코토를 불렀을 때, 그가 옅게 웃더니 사라졌다. 당황한 카노 사야는 다급하게 미코토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녀의 주변이 어둡게 변했고, 카노 사야가 발버둥 쳤으나 무언가에 묶인 듯 움직일 수 없었다.
" 윽...! "
[ 이 여자가 정말 호무라의 안주인이라고? ]
[ 그렇다던데. 적의 여왕이라고 불리더라고. ]
[ 그러면 그 녀석이 이 여자를 찾으러 오겠군. ]
카노 사야는 분명 자신이 눈을 뜨고 있음에도 사방이 어두운 탓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녀는 악몽임이 분명한데도 그대로 느껴지는 통증에 두려움과 같이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까지 더해지자, 지금이 어떤 기억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한창 뒷골목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적의 여왕, 호무라의 안주인이라고 불렸을 때였다.
자신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부정했으나 호무라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통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항상 미코토가 옆에 끼고 다니는 사람이 자신과 안나뿐이었으니.
아무리 해명해도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 큭... 적의 왕! 네 놈의 여왕은 우리가... 아악! ]
[ 음, 사야... 괜찮나? ]
" ... 미코토? "
카노 사야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미코토가 왔음을 짐작했다.
모든 비명소리가 끝난 뒤 미코토의 목소리가 들리자 카노 사야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다정한 손길이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풀어주었다. 카노 사야는 환한 빛이 비추어지자, 미간을 찌푸리며 상대를 보았다.
빛을 등지고 있는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미코토의 표정을 보려고 했으나 볼 수가 없었다.
카노 사야는 아까부터 악몽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평소에는 중간에 자각해서 깨닫게 하더니, 오늘은 이상하게 중간부터 자각한 뒤로 장면이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자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연달아 꾸는 것도 처음이었고, 계속 자각하고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 사야. ]
" 도대체, 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
[ 사야? ]
이유를 알 수 없는 악몽에 상당히 두려웠던 카노 사야가 울분을 토해냈다.
글썽거리던 그녀의 눈동자가 마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듯 외쳤다. 그녀가 그렇게 하는 이유를 몰랐던 미코토는 사야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카노 사야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미코토를 보았다.
여전히 그의 표정을 알 수 없었으나, 다정한 목소리에 위안이 되었던 모양인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카노 사야가 울고 있을 때 미코토가 다가오는가 싶더니 장면이 훅 바뀌었다. 다시 어둡게 변한 주변에 그녀는 양손에 얼굴을 가리고서 눈물을 흘렸다.
그때 다급하게 불이 켜지면서, 당황한 호무라의 사람들이 나타나 카노 사야를 달래주었다.
[ 카, 카노! 울어? 아하하... 불 끄고 있던 게 당황스러워 할줄 몰랐네! ]
[ 음... ]
[ 사야, 울지 마... ]
[ 아라... 사야 쨩... 울지 마렴, 모두들 여기 이곳에 있는걸? ]
[ 흑, 흐... ]
[ 서... 서프라이즈! 생일 축하해, 사야! ]
카노 사야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들어 주변 사람들을 보았다.
불을 끄고 있던 건 그들이 카노 사야의 생일을 위해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눈앞에 내밀어진 케이크와 촛불에 훌쩍거리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카노 사야의 시선이 미코토를 끝으로 멈추었다.
그녀는 속으로 간절하게 두려운 악몽을 멈추길 바랐다.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좋았을 때의 추억이 악몽으로 인해 변질되어 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간절했다.
소원 빌고 있을 때 호무라 일행 중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맞아, 이번에 호무라의 안주인이 되었다며! ]
[ 카노가 적의 여왕인가~ 카노라면 난 찬성이야! 대장! ]
[ 음... ]
[ 무, 무슨 말씀이세요...!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
카노 사야는 갑자기 자신이 내뱉으려고 했던 말 대신 다른 말이 나오는 것에 움찔거렸다.
몸은 여전히 움직일 수 있었으나,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다행인 건지 의식은 여전히 그녀였다. 안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밖으로 나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아까 따져서 그러는 건가? 그게 아니면 이럴 이유도 없는데... 끔찍해, 고통스러워. 내가 고통받는 걸 즐기는 건가? 하지만...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미코토를 볼 수 있다면... '
카노 사야는 악몽이 아무리 자신을 괴롭혀도 미코토의 미소만 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도 악몽이 선사하는 꿈은 계속되었다. 적의 여왕이니 호무라의 안주인이니 놀림은 그날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로 호무라 사람들은 종종 자신을 적의 여왕, 호무라의 안주인이라고 놀려댔다.
이번에는 다른 장면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다음 날로 이어졌다.
' 아... 설마... '
카노 사야가 설마, 설마 하던 상황이 맞았다.
원래대로라면 놀려지는 날 다음은 평범하게 호무라 바에서 일하는 게 전부였다. 지금처럼 미코토와 안나하고 외출할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자신의 의지대로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과 다른 날이 이어지는 것이 의문이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무엇이 의도인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 사야, 멍하니 뭐 하고 있어? ]
[ 사야! 나 준비 끝. 얼른 가자. ]
" 아... 응, 이제 가자. "
카노 사야는 현관 입구에서 멍하니 있었다.
자신을 보며 손을 내밀어 오는 두 사람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웃어주었다. 안나가 그녀와 미코토 사이에서 두 사람의 손을 맞잡았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카노 사야가 안나의 목에 스카프를 둘러주었다.
마지막으로 안나의 뺨을 가볍게 붙잡았다가 풀어주며 웃었다.
그렇게 밖으로 마실을 나온 세 사람은 가게를 들러 식사를 마친 뒤 가볍게 공원 산책도 즐겼다. 한적한 공원을 천천히 걷고 있을 때, 지나가던 한 노인이 카노 사야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이가 지긋하게 먹은 여사가 나른한 목소리로 안나를 보았다.
[ 어머나... 부부끼리 아이와 산책을 나온 모양이로구나... ]
" 네, 네? "
[ 아이가 부부를 많이 닮았네... 자, 이거 먹으렴. ]
[ ... 사탕? ]
[ 음... ]
노인의 말에 당황한 카노 사야와는 달리 미코토와 안나는 평화로워 보였다.
그녀가 당황한 이유는 처음 보는 노인이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기억에 없는 노인의 모습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노인이 주는 사탕을 받아먹는 안나와 그런 안나를 보고 있는 미코토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
하지만 카노 사야만이 초조한 얼굴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혹시 또다시 꿈에서 깨어나지 않을까,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른 꿈과 기억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인물의 등장이 꿈을 망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다시 주변 풍경이 확 바뀌었다.
[ 으음... ]
" ...?? "
한 번 눈을 깜빡거렸을 때, 카노 사야의 눈앞에 보이던 건 공원이 아닌 익숙한 하얀 천장이었다.
갑자기 바뀐 장면에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긴장감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피다 손끝에 닿는 감촉에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미코토가 잠들어 있었다.
미코토가 곤히 잠들어 있다가 인기척에 짧은 신음을 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가짜가 아닌 진짜였다. 지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조차 되지 않았다. 잠들어 있는 미코토의 뺨을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그러자 미코토가 인상을 찡그려왔다.
" 미코토...? "
[ 음, 사야... 더 자도 될 텐데... ]
" ... 응, 더 자... "
카노 사야는 손끝에 닿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막 일어났을 때 느꼈던 감촉은 진짜였으나 그가 잠든 걸 확인하기 위해 뺨을 건드렸을 때는 느껴지지 않았다. 신기한 탓에 계속해서 손가락으로 미코토의 뺨을 건드렸다.
그러자 미코토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불을 뿜어댔다.
미코토의 불로 인해 천장이 검게 그을러버리고, 잠에서 깨어난 미코토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카노 사야는 눈앞의 뜨거운 불길에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멈춘 채 섞였다.
[ 사야, 아직 잘 시간인데 자꾸 건드리지 마... ]
" 미... 미안해, 미코토. "
카노 사야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자 미코토가 다시 눈을 감고 잠들었다.
그녀는 다시 잠든 미코토의 모습을 가만히 자신의 시야에 담아냈다. 여전히 악몽의 의도를 알 수 없었으나, 이 꿈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여전했다. 그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했기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는 것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악몽의 의도를 몰랐으니 잠시 감았다가 뜨는 순간 또다시 장면이 바뀔 것 같아서. 그 작은 용기조차 내지 못햇다. 너무 장시간 떠 있는 눈으로 인해 눈가가 뻑뻑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꿈인데도 그런 느낌이 들자 신기했지만, 지금 그게 그녀에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 ...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미코토. "
[ 으음... ]
" 좋은 아침? "
새벽에 깨어났던 카노 사야는 깨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3시간 동안 몇 번의 깜빡임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미코토를 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 되어 그가 깨어날 시간이 되었을 때 미코토를 부르며 깨웠다.
잠에서 깨어난 미코토는 졸린 눈으로 카노 사야를 보았다.
좋은 아침이라며 인사를 건네오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해주었다. 여전한 그의 모습에 카노 사야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게 악몽이더라도, 꿈이더라도 상관없었다.
오로지 미코토가 자신의 곁에 함께 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으니까.
" 어...? 어, 어? "
그 순간 곁에 있던 미코토가 사라지고 수많은 장면들이 그녀를 감쌌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한 편의 영화가 되어 카노 사야를 감싸듯이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공원에서 산책을 하던 모습,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웃던 모습, 카페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는 모습, 침대 위에서 사랑을 나누던 모습까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추억까지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서 맴도는 느낌이었다.
반복되던 모습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카노 사야의 곁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로지 검은 공간 속에 덩그러니 남아버린 그녀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꿈에서조차 그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충격이었고, 버틸 수 없었다.
" 헉...! "
카노 사야가 어두운 공간 속에서 눈물을 흘리던 순간, 주변이 일그러지더니 잠들어있던 그녀가 눈을 떴다.
자는 동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던 건지 눈을 뜸과 동시에 이불을 꽉 말아쥐며 몸을 크게 떨었다. 헉, 소리와 함께 숨을 크게 삼켰다가 내뱉으며 몸을 들썩였다.
그녀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잘게 떨어대며 진정하려고 애썼다.
마지막에 검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 미코토는 자신을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카노 사야는 그 웃음이 어떤 의미인 건지 알지 못했다. 알고 싶었으나 알려줄 이는 이제 곁에 없었다.
" 하... 아직, 새벽이잖아... "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습관적으로 시계를 찾았다.
시곗바늘은 아직 이른 새벽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른 새벽에 깨어날 때면 다시 잠들지 못해 눈뜬 밤을 지새웠었다. 그리고 그날이면 호무라 바에서 일할 때 실수를 자주 하곤 했다.
오늘도 그러겠지, 생각하며 멍하니 창가를 보았다.
분명 잠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열려있던 창문이 지금은 닫혀있었다. 자는 사이 누군가 왔을 리는 없을 텐데, 생각하며 침대에서 벗어나 창가로 향했다. 창가에 다가서자 서늘한 새벽바람이 그녀를 반겨주었다.
고개를 숙이는 순간 창가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보였다.
" ... 이건? "
스오우 미코토가 이곳에서 피우던 담배와 같은 담배였다.
담배 필터 쪽은 이상하게도 촉촉함이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피우고 있던 것처럼. 하지만 꽁초의 끝은 불이 꺼진 지 한참 지나 보였다. 카노 사야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담배는 이전에 치우지 못한 잔재라고 생각했다.
한참 꽁초를 쥔 채 멍하니 있던 사야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책상 위에 그 꽁초를 올려두었다.
스오우 미코토가 남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무리 쓰레기여도 버릴 수 없었다. 미리 바에 내려가 일을 하고 있기엔 터무니없이 이른 시간이었기에 그녀는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보려고 했다.
항상 머리맡에 두던 스오우 미코토의 목걸이를 쥐고 누웠다.
" 미코토... 부디, 나를 재워줘... "
흐려지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목걸이에 자신의 온기를 더해가며, 잠을 청하려고 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결국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잠이 들만하면 자꾸 눈이 떠지는 바람에 잠을 자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꺼림직하고 두려운 이 악몽은 순 자기 멋대로였다. 자신에게 화려하고 그리운 꿈을 보여주다가도 그 마음을 난도질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치 그녀의 의지는 전혀 깃들어있지 않은 존재 같았다.
분명 꿈도 자신이 꾸는 꿈일 텐데, 어째서 의지대로 되지 않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카노 사야는 자신이 닦고 있던 그릇을 내려두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바를 오픈할 시간이 되었기에, 1층으로 내려와 준비하고 있었다.
" 카노, 그렇게 한숨 쉬면 복 나간다? "
" 이미 나갈 복도 없는 거 같아. "
" 안나가 사야에게 복 나눠줄게. "
" 고마워, 안나. "
보다 못한 쿠사나기가 나서서 카노 사야에게 한 마디 꺼냈으나 본전도 찾지 못했다.
그녀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안나가 다급하게 자신의 복을 나눠주겠다며 말했다. 작은 아이가 자신의 복까지 나눠준다는 말에 카노 사야가 웃으며 고맙다고 답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안나를 위해 머그잔에 우유를 넣어 건네주었다.
우유를 원샷하는 안나의 입술 위로 선명하게 수염이 남아있어 그걸 보며 겨우 웃을 수 있었다. 그날, 일을 하면서 수차례 실수를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상태를 알고 있기에 그 누구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을 때, 카노 사야는 쿠사나기와 안나를 마중해 주었다.
" 사야, 오늘은 꼭 잘 자야 해. "
" 응. 안나도 잘 자고 내일 봐. "
두 사람을 마중한 뒤 1층의 모든 불을 끄고 2층으로 올라간 카노 사야는 스오우 미코토가 없는 방을 다시 마주해야만 했다.
그가 없는 방에 어제 꾸었던 악몽이 떠올랐다. 미간이 절로 구겨지고, 눈썹 끝이 아래로 내려갔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눈꼬리에 맺혔다. 텅비어진 방은 마치 지금 자신의 마음과 닮아있었다.
어딘가 텅 비어버린, 주인을 잃은 듯한 느낌.
울컥하고 바로 턱 아래까지 차올랐던 울렁거림을 삼켜냈다. 스오우 미코토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울다가 잠들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였다. 그가 자신의 곁에서 사라진 이후 매번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아, 아... 안, 안 돼애애애...!!!! "
겨우 잠이든 카노 사야는 꿈에서 눈을 뜨자마자 목격한 상황에 눈을 크게 뜨며 비명을 내질렀다.
하늘 위를 가득 채운 부서지기 직전인 다모클레스의 검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하얀 재 사이로 선명하고 열정적으로 타오르고 있는 붉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양팔을 벌리며 자신의 죽음을 목도하고도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목격한 그녀는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파르르 떨었다.
' 안돼, 당장... 당장 그의 곁으로 가야 해. 미코토를 말려야 해.
그의 품에 안겨서 미코토에게 죽지 말라고 애원하고 매달리기라도 해, 카노 사야! 이대로 그를 다시 잃을 수 없어. 그건 안 돼... 이제 내가 못 버티겠어. 미코토가 없는 삶은 충분히 맛보았잖아.
더는 맛보고 싶지도 않잖아! 당장 달려가! '
카노 사야는 마치 발바닥이 바닥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는 다리에 입술에서 피가 날 정도로 꽉 물었다.
속으로 자신을 향한 질책을 내뱉으며 다리를 움직이려 애썼다. 지금 당장 달려간다고 해도 늦을 판이었다. 그를 말릴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너무 혼란스러운 탓이었을까... 그를 말릴 수 있는 수단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 안 돼, 안 돼...!! 미코토...! "
[ ... ]
카노 사야가 드디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다리를 이끌고 마지막 힘까지 짜내가며 달렸다.
일평생 달리기를 하며 이렇게까지 빨랐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작정 달리며 그를 불렀다. 스오우 미코토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카노 사야를 보았다.
그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다모클레스의 검과 빠르게 다가오는 무나카타의 검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오로지 하얀 재 속에서 달려오고 있는 카노 사야를 바라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묵음 처리되며 벙긋거리는 입술을 따라 그가 말하려던 걸 카노 사야가 보았다.
카노 사야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지 단번에 이해했다.
아주 잠깐, 멈칫하고서 발걸음이 멈추어 버렸다. 그 순간 무나카타의 검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 아, 아...!! 아아악!!! "
[ 이런... ]
무나카타의 검에 꿰뚫려 비틀거리던 스오우 미코토는 마지막 힘을 짜내 중얼거렸다.
-. 그 말은 무나카타만이 들을 수 있었다. 카노 사야는 그가 쓰러지는 순간 울음을 토해냈다. 눈물을 쏟아내며 속에 담아두었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마치 세상을 잃은 이의 포효였다.
그 비명에 무나카타가 움찔거렸다.
그는 주변에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비틀거리며 달려오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달려오길 반복하는 카노 사야의 모습에 무나카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잠시 멈추었던 것에 대해 후회했다.
멈추지 말고 계속 달릴걸, 그가 무어라 말해도 멈추지 말걸. 하지만 그 후회는 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카노 사야는 겨우 스오우 미코토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울부짖으며 자신의 품에 그를 안고 이름을 불렀다.
" 미, 미코토... 일어나 봐. 응? 미코토... 눈을 떠... 제발. "
[ ... ]
" 이러는 거 아니야, 사랑한다며... 어? 아까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러면 일어나서 내 곁에 있어 줘야지. "
카노 사야는 자신을 불러세우기 위해서인 건지 아니면 마지막이라 생각해서 인건지 사랑한다고 말한 스오우 미코토에게 화가 났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멈추었다는 것이 더 원망스러웠다.
그것보다 더 큰 슬픔은 눈앞에 죽은 그의 모습에 가슴이 찢어지고 저렸다.
재가 잔뜩 묻은 것도 모르게 파르르 떨리는 손길로 스오우 미코토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따스한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몸은 숨 쉬지 않았고, 굳게 닫힌 눈은 뜨지 않았다.
그녀는 목이 메여오는 탓에 스오우 미코토의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처절하고 아련하며 가엾은 카노 사야의 모습에 무나카타는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검을 칼집 안으로 넣으며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무나카타가 발걸음 돌려 멀어지는 것도 모르게 그녀는 계속해서 그를 불렀다.
" 미코토... 나도, 나도 사랑해... 제발 날 봐줘... "
[ ... ]
" 잠들고 일어나면 우리 여행이나 떠날까? 어때? "
카노 사야는 마치 스오우 미코토가 잠든 사람처럼 말을 걸었다.
처절해 보이는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보였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려 그의 뺨 위로 떨어졌다. 서서히 빠져나가는 온기에 카노 사야는 그마저도 놓치지 싫다는 듯 그를 꽉 끌어안았다.
지금 상황이 실제 기억과는 다르다는 걸 그녀는 인지하지 못했다.
실제 기억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의 마지막을 보았었다. 무나카타의 검이 그의 몸을 관통하고 번지는 피. 그리고 재인지 눈인지 알 수 없는 하얀색의 덩어리가 흩뿌려지는 것이 마지막이었다.
스오우 미코토에게서 나오던 그 붉음은 그녀에게 마지막이었고, 끔찍한 악몽으로 돌아왔었다.
그녀가 직접 그의 몸을 끌어안으며 분통해하지 않았었다. 카노 사야는 그의 마지막 온기라도 간직하려는 듯 그의 몸을 최대한 끌어안고서 버텼다.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 위해,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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