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프렉, 남자임신 소재 주의※
百年佳約 : 백년가약
백년의 아름다운 약속
주(朱)나라, 그곳의 황제에게 때아닌 희소식이 들려왔다.
희소식 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이렇다.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나라, 주나라의 황제인 김유중은 주나라의 21대 황제였고, 역대 황제들 중 이례적으로 남자 황후를 들인 황제이기도 했다. 역사 속에서 황제들은 하나같이 남자는 전부 후궁으로 받아들였지만, 김유중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황후이자 오랜 소꿉친구인 박준의를 은애하고 연정했다.
처음에는 끝없는 지옥이자 앞날을 알 수 없는 지옥 같은 궁궐에 박준의를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했으나, 김유중의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포기하려고 애를 써도 그 마음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 앓이를 하던 김유중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박준의였다.
" 폐하, 폐하께서도 저와 같은 마음이시라면... 절 밀어내지 말아 주시옵소서. "
" 성화... 자네도 알지 않는가. "
" 아니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 저하께서도 저와 같은 마음이신 것 같은데... 표현을 안 해주시니... "
" 성화... "
방황하고 있던 김유중의 마음을 다잡아준 것도 박준의였다.
사대부와 나랏일을 하는 의회인들은 하나같이 박준의를 후궁으로 들이고, 관직에 있는 자의 자식을 황후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들의 원성이 꽤 컸음에도 불구하고 김유중은 확고한 신념으로 밀고 나갔다.
1년의 혈투 끝에 승리는 이 나라의 황제이자, 아비이고 주인인 김유중의 승리였다.
김유중은 사대부와 의회인들에게서 이긴 이후 곧바로 박준의에게로 달려갔다. 황제가 달리기 시작하니 함께 걸어가던 참판이 다급하게 외쳤다.
" 폐하...!! 체통을 지키셔야합니다...!! "
" 이 복을 하루빨리 전하고 싶구나. 천천히 오라, 참판. "
" 즈언하...!!! "
참판의 애처로운 외침에도 김유중은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빠르게 달렸다.
김유중이 도착한 곳은 박준의가 지내고 있는 거처였다. 달려온 탓에 거친 숨을 몰아쉬던 김유중은 달리다 말고 멈춰서서는 동백나무 아래에서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서 있는 아름다운 사내를 보았다.
김유중은 바로 흐트러진 옷가지를 정리한 다음 목을 가다듬고 박준의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박준의는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듬직한 풍채에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김유중과 박준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추위로 인해 코끝과 뺨을 붉게 물들인 박준의가 해사롭게 웃으며 김유중을 보았다.
" 폐하, 예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
" ... 내 좋은 소식이 있어 전하러 왔다네. "
" 서신으로 보내시지, 이 추운 겨울에 직접 오셨답니까. "
" 그래. 내 직접 전하고 싶었네. "
" 무슨 소식입니까? "
" 성화, 자네가 이 나라의 지어미가 될 걸세. "
그렇게 해서 김유중과 박준의는 서너 달 뒤에 혼례식을 올렸다.
그들의 혼례식에는 모두가 축하를 해주었지만,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 또한 존재했다. 당장에 티를 내진 않았지만, 표정에서 원치 않았던 일임을 알 수 있었다.
혼례식을 마친 뒤 그들의 첫날밤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녹여버릴 정도로 뜨겁고, 열정적이었다.
혼례식과 첫날밤까지 무사히 마친 뒤에 찾아온 것이 희소식이었다. 최근 들어 몸이 성치 않았던 박준의의 상태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김유중이 궁 내에 유명한 의원을 불러왔다.
의원은 박준의의 손목에 손을 대보더니 조용히 눈을 감았다.
" 크흠... "
" 어, 어떤가. 성 의원! 황후의 몸 상태가 어떤가 말이다! "
" 폐하... 감축드리옵니다. 황후마마께서 회임을 하셨사옵니다. "
" 회, 회임이라...? "
" 예. 맥이 두 개로 잡히는 걸 보아하니 태중에 씨가 자리 잡은 것이 분명합니다. "
" 허어... 아이... 라고...? "
" 폐하... "
" 경하드리옵니다!! "
의원은 조심스럽게 박준의의 손을 내려두더니 김유중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축하했다.
의원의 입에서 나오는 회임이라는 단어에 김유중이 꼿꼿하게 서 있던 다리에 힘이 빠진 건지 비틀거리다가 이내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김유중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마치 지금의 상황이 꿈이라는 것처럼 굴었다.
남성도 임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만연하게 퍼져있는 사실이었으나, 그 임신이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박준의의 임신처럼 단 하루만의 첫날밤으로 임신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김유중은 정신을 차리고서 박준의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 황후... 고맙소, 정말 고맙소. "
" 폐하, 우리의... 아이네요. "
김유중은 크게 감격한 모양인지 박준의에게 간절하게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황제의 눈물에 황후를 제외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눈을 돌렸다. 황제의 눈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롯이 황후인 박준의뿐이었다. 회임을 들은 이후로 박준의는 아침, 저녁으로 꾸준히 한약을 먹으며 몸가짐을 챙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박준의의 배는 점점 볼록하게 나오기 시작했고, 그의 움직임까지 느려지고 둔해졌다.
그런 박준의의 곁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그의 시중을 자처하는 김유중이 있었다. 그는 황제였음에도 자신의 사랑 앞에선 한없이 여리고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박준의의 배가 태산까지 불러왔을 때의 일이었다.
김유중은 다른 날들과 다름없이 박준의의 곁으로 다가와 애지중지하며 그를 금이야 옥이야 소중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배가 나온 이후로는 박준의가 홀로 일어나기도 버거워했고, 힘들어하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었다.
" 폐하... 황자가 저하에게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
" 정말 신비롭구나. "
" 다음 달이면 드디어 보겠군요. "
그날은 박준의가 그나마 몸이 나아져서 앉아 있을 수 있는 날이었다.
김유중은 박준의에게 직접 과일을 손수 먹여주며 보살펴 주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박준의는 자신의 안쪽에서 쿵쿵 울려대는 소리에 움찔거리며 놀란 눈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김유중에게 말했다.
박준의의 말에 김유중이 그의 볼록한 배를 쓰다듬다가 머리를 숙여 배 위에 귓가를 가져다 댔다.
쿵쿵, 작은 심장박동 소리가 들려오고, 볼록하게 솟아오르는 살가죽은 뱃속에서 아이가 발길질하는 게 분명했다. 다음 달에 출산임을 얼추 알게 되었기에 박준의가 김유중에게 알려주었다.
" 하하, 그놈 참... 크게 될 놈이구나! "
" 만사형통, 복이지요. "
" 조금만 더 고생하도록 합시다. "
" 폐하... 고생은 출산 후라고 들었습니다... "
" ... "
뱃속에서부터 발길질을 해대는 태동에 김유중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가장 힘들 박준의를 위해 다독이는 듯한 말을 해주었지만, 정작 돌아오는 건 현실적이고 당연한 말이었다. 박준의의 말에 두 사람 사이에 뻗어가던 웃음이 거두어지고 조용함만이 남아있었다.
박준의는 자신의 말에 분위기가 조용해지자 머쓱해졌는지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
.
.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다시 겨울이 돌아왔을 때였다.
예상했던 날짜보다 이른 시간부터 박준의의 산후통이 시작되었다. 임신하고 있을 때에는 별문제가 없던 아이가 산후통이 시작되자, 박준의에게 고통을 주며 문제를 일으켰다.
아이는 남들보다 배가 되는 시간 동안 산후통을 주며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산후통이 시작된 지 3시간째 되었을 때, 김유중의 걱정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출산할 때 출산하는 자와 산파를 제외한 이들은 출입을 제한되었기에 김유중은 걱정이 되었어도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걱정이 가득 담긴 발걸음으로 서성거리며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 아직 멀었더냐? "
" 예... 폐하, 마마께옵서 아직... "
" 허허어... 어찌 이리 어미를 괴롭힌단 말이냐. "
" 폐하께서 마마를 더욱 응원해 주시옵소서. "
" 그래, 그래야지... "
그렇게 산후통이 시작되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지.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방 안에서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이 떠나갈 정도로 쩡쩡 울려대는 울음소리에 김유중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푹 숙이고서 땅만 보고 있던 김유중의 얼굴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굳게 닫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 열리고 산파가 피 묻은 수건에 손을 닦으며 나왔다.
산파는 이미 잔뜩 지쳐 보였고,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김유중은 자신의 신발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다급하게 산파에게로 달려갔다. 그의 표정, 눈빛에는 단 한 사람을 위한 걱정과 애정이 서려 있었다. 김호중은 산파를 붙잡으며 애절하게 물어보았다.
" 화, 황후는 어찌 되었느냐? "
" 마마께옵선 아기씨를 안고 있으십니다. "
" 아이는...? "
" 경하드리옵니다, 폐하...! 남아, 여아 쌍생아이옵니다. 이보다 더한 홍복이 있겠습니까. "
" 황후를 그토록 괴롭힌 이유가 있었구나! "
"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
" 황후...! 고생하였소, 정말 고맙구려. "
" 폐하... "
산파를 통해 황후 박준의의 상태를 들은 김유중은 그가 안전하다는 걸 듣고 나서야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쌍둥이라는 말에 더 큰 화색을 띠며 그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들어가 봐도 된다는 산파의 말에 김유중은 다급하게 채근하는 발걸음으로 들어갔다.
두툼하게 포개어진 이불 위로 잔뜩 지친 박준의의 모습이 보였다.
김유중은 들어오자마자 분주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박준의의 손을 붙잡으며 진심을 전했다. 소매 끝으로 박준의의 이마 끝에 맺힌 식은땀을 정성스레 닦아주기까지 했다.
박준의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김유중의 귓가에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김유중은 고개를 돌려 작은 포대기에 둘러싸인 두 아이를 보았다.
" 아이가 나와 황후를 조금씩 닮았구나. "
" 예, 황자 아기씨께선 폐하를 닮으셨고, 황녀 아기씨께선 마마를 닮으셨나이다. "
" 이리 내보거라, 아이를 안아보아야겠다. "
" 손을 잘 안 타는 황자 아기씨를 안아보시지요. "
" 둘 다 안겠다. "
갓 태어나 아직 쭈글쭈글한 주름이 잡혀있고, 그 주름 위로 하얀 막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김유중의 눈에는 이미 박혀도 사랑스러울 아이들이었다. 제 부모를 찾듯 아이들이 우렁차게 울었으나, 김유중의 품에 안기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울음을 그쳤다.
시중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전부 신기하다는 듯이 세 사람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물렸다. 김유중은 그러한 주변의 상황은 신경도 안 쓰이는 건지 올곧은 시선으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좀처럼 내려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둥기둥기 몸을 가볍게 흔들며 아이를 달래어주기까지 했다.
" 황자는 김성중, 황녀는 김홍화로 부르마. "
" 으으응... "
" 감축드리옵니다!!! "
" 성중아, 홍화야. 네 아비니라. "
김유중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과 박준의의 이름을 본떠 아이들의 이름을 지었다.
아이들은 이름을 지어주자 언제 울었냐는 듯이 복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꺄르르 웃기 시작했다. 김유중은 아이들을 산파에게 맡기고서 다시 박준의의 곁으로 돌아왔다.
박준의의 손을 조심스럽게 움켜쥐었으나, 마주 잡아 오는 손에 힘이 없음을 깨달았다.
" 황후, 아이들의 이름은 괜찮소? "
" 예... 폐하... "
" 수고했소, 한숨 쉬고 있구려. "
" 네... "
" 앞으로 나와 함께 백년가약이나 맺으세. "
" 폐하, 저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
" 하하... 내가 황후에게는 못 이길성 싶어. "
쉬어라는 김유중의 말 때문이었는지, 버티고 있던 박준의가 얼마 못가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박준의가 무사히 출산을 마치고 쌍둥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주나라 전역에 퍼졌다. 모든 백성들이 황후가 무사히 순산했다는 것에 축하를 해주었고, 김유중은 이날을 축하하며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나라의 곳간을 열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고, 큰 잔치를 열어 일주일간 지속했다.
모두에게 있어 축하받아 마땅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느새 아이는 자라 배밀이를 하며 기어다녔고, 옹알이를 하며 제 부모를 찾아다녔다. 허리에 힘이 생겨 홀로 앉는 일도 종종 있었다.
틈만 나면 자신이 쥐고 있는 걸 입에 가져가 쪽쪽 빨아대는 일도 더러 있었다.
" ... 유모, 자네가 말한 육아의 고통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
" 마마... 너무 이릅니다. 진정한 지옥은 아직이지요. "
" 뭐라? 이게 이르다고 말하는 겐가? "
" 예... 마마... 진정한 지옥은 황자, 황녀께서 5살이 되는 순간 시작되옵니다... "
" 허어... 폐, 폐하는 어디에 계시더냐? "
" 폐하께옵선 곧 있을 황자, 황녀 전하의 생일잔치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
" ... 곧이라... 벌써 한 해가 흘렀구나. "
박준의는 자신의 어릴 적부터 함께해온 유모의 말에 회상에 잠겼다.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기는 처음이라, 처음에는 많이 어색하고 낯설었다.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이 작은 생명체를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올랐던 시절도 있었다.
그간 버티기 힘들 정도의 힘듦과 고통은 아이의 웃음 하나로 전부 눈 놓듯이 사라지기도 했다.
아이들의 싱글벙글 웃음과 그 작은 고사리만 한 손을 쥐었다가 펴길 반복하는 손짓, 혼자서 안간힘을 쓰며 몸을 뒤집어 기어다니기 시작하던 몸짓, 제 머리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바닥에 머리를 박다가 울음을 터트리던 일까지.
박준의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간 1년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었다. 그 모든 일에는 자신과 김유중이 함께했다. 유모의 이야기나 집안에서 살펴보던 아버지라는 존재와는 엄연히 다르게 행동하는 김유중 덕분이었다.
" ... 황...! 황후! 이것 보게! 이건 우리 성중이를 줄 것이고, 이것은 우리 홍화에게 줄 것이네. "
" ... 폐하, 이제 1년 된 아이의 선물치고는 너무 큰 것 아니 옵니까? "
" 어허! 주나라의 황자와 황녀인데 작은 선물로 성에 찬단 말이더냐? "
" 이리 큰 것을 주면, 황자와 황녀에게 위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
" 으음... "
" 음, 마! 쁘아~! "
" 이런, 홍화가 아비를 알아보고 마중을 나와주는구나! "
박준의의 웃음을 깨트린 것은 김유중의 등장 때문이었다.
그는 등장과 함께 호랑이 가죽과 살결보다 더 고운 비단을 들고 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박준의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물들어 있었다. 아직 1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에겐 너무 과하고 쓸 일이 없는 선물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 점점 어릴 적 철부지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 김유중을 말릴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다.
대왕대비마마가 살아 돌아오신다고 한들, 김유중을 말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김유중의 행동에 박준의의 한숨만 더 깊어져 갈 뿐이었다. 심지어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경 안 쓰던 무심한 사람이 이리 달라질 줄 몰랐다.
위험을 꼽아 말하고 나서야 그가 고민을 하는 행동을 취했다.
그나마도 몇 초에 불과했다. 뽈뽈거리며 기어다니던 홍화가 김유중의 곁에 앉더니 다리를 붙잡아버린 탓이었다. 김유중은 생각을 그만두고 홍화를 안아 올렸다.
그러자 홍화가 자신의 아버지를 알아보는 것인지 꺄르르 웃었다.
" 폐하, 성중이도 안아주시지요. "
" 이런... 성중이가 소심하니 짐에게 안 오는 것이 문제요. "
" 낯을 가리는 것뿐이옵니다. 폐하께서 최근 자주 오지 않아서잖습니까. "
" 그렇단 말이오? "
" 예, 아이일 적에 자주 얼굴을 비추어야 아이가 기억을 하지요. "
" 으음... 짐이 자주 오도록 하지. "
김유중과 박준의는 주 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까지도 소문이 무성할 정도로 금실이 좋은 부부였다.
최근에야 김유중이 아이들의 생일잔치를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없어 자주 들리지 못했을 뿐이지, 그들은 여전히 사이좋은 원앙 부부였다. 다가온 아이들의 생일잔치에서는 태어났을 때보다 더 성대하게 열렸다.
한 달간 잔치가 이어졌고, 아이들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타지역에서 사신을 보내올 정도였다.
생일잔치의 가장 중요한 핵심, 돌잡이에서는 모든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행해졌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홍화가 고른 것은 옥새요, 성중이 고른 것은 실과 부채였다.
모두의 환호 속에서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 어마마마...! 이것 좀 보시어요! "
" 황녀, 뛰다가 넘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도록 하세요. "
" ... 어마마마, 내관이 다가옵니다. "
" 최 내관? 무슨 일이십니까? "
" 마마, 아까 정원에서 손수건을 떨어트리셨나이다. "
" 고맙구려. "
" ... 최 내관은 이만 물러나 보도록. "
" 폐하...! ... 이만 물러나겠나이다. "
크고 나서는 드넓은 정원을 뛰어노는 홍화와 한시도 박준의의 곁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성중이었다.
박준의는 성중의 손을 붙잡은 채 홍화에게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때 성중이 곁으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박준의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내관을 보는 성중의 시선이 경계가 서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내관은 박준의에게 손수건을 건네주며 치근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 속에 담긴 뜻을 알 리 없는 박준의는 그저 부드럽게 웃으며 감사함을 전했다. 언제 온 것인지 박준의의 뒤에서 그의 어깨를 꽉 붙들어 잡는 김유중이 내관에게 엄숙하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김유중의 등장에 내관이 화들짝 놀라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 후 뒤로 사라졌다.
두 사람의 신경전에 박준의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순수한 눈빛으로 김유중을 바라보았다. 내관이 사라지기 전까지 조용히 있던 김유중은 내관이 사라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 황후, 나에게는 그리 철벽을 쳐놓고는 왜 저자와는 친숙하게 구는 겁니까? "
" 예? 폐하...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십니까. "
" 방금 그러지 않으셨소. "
" 아바마마의 말이 맞습니다. 어마마마. "
" 황자까지... "
황제와 황자의 사이에 끼인 박준의는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내관에게 그리 친숙하게 굴지도, 부드럽게 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정원을 돌아다니던 홍화가 돌아와 황제의 다리를 끌어안으며 해사롭게 웃었다.
익숙한 듯 김유중은 홍화를 끌어안으며 상처받았다는 듯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박준의는 그게 그 나름대로 티를 내고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물어보면 티 내는 게 아니라고 할 게 분명했지만. 아무리 봐도 티를 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웃음이 비실 새어 나오려고 하는 걸 애써 참으며 손을 올려 김유중의 뺨을 쓰다듬었다.
김유중의 눈에는 부드럽게 웃어주는 박준의의 미소가 들어왔다.
" 폐하, 그게 그리 싫으셨습니까? "
" 당연한 걸 물어보고 그러시오. "
" 그러지 않겠습니다. 이미 저는 폐하의 것이지 않습니까. "
" 어마마마, 어마마마는 저와 홍화의 것이기도 합니다. "
" 이런... 내가 자식이 아니라 라이벌을 키우고 있는 것이었군! "
은은하게 퍼지는 박준의의 미소에 김유중이 풀린 건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그 산통을 깨는 것이 성중의 말이었다. 박준의의 옷깃을 꾹꾹 잡아당기며 시선을 이끈 뒤 당당하게 말했다. 그 말에 벙찐 박준의와 놀란 김유중이 호탕하게 웃으며 성중의 단정한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김유중에게 안겨있던 홍화는 팔을 위로 뻗으며 성중의 말에 맞장구치고 있었다.
김유중이 박준의의 손을 붙잡으며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좀처럼 굳어서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보려고 애쓰는 사람 같았다.
" 호월궁에 화가가 기다리고 있소. "
" 아, 오늘이 가족 그림을 그리기로 한 날이었습니까? "
" ... 그렇지. "
몇 달 전부터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그림을 그리기 위해 초청한 화가를 만나는 날이 오늘이었던 모양이었다.
네 사람은 복도를 거닐며 호월궁으로 향했다. 누군가 그들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단란하고 다정한 가족의 모습이라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
그날 이후, 교정궁 중앙에는 큼지막하게 황제와 황후, 황녀와 황자의 단란한 가족 그림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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