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계의 모두가 과로사의 위험에 노출되면서 잠깐 정신줄을 놓은 사이 태어난 중급신.
그게 바로 메그쉬였다. 메그쉬는 트로웰이 날뛰던 무렵 탄생한 이후 다른 신들에 의해 회수가 될 예정이었지만, 잠깐 사이에 환생 문으로 빨려 들어가 지구에서 파란만장 라이프를 즐기고 왔다.
시대는 격변의 르네상스 시대.
사망 당시의 나이는 고작 10살에 불과했으나, 메그쉬가 어쩌다가 죽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메그쉬의 입으로 통해 들어야 했지만, 그녀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카오스의 궁금증을 자극한 게 분명했다.
" 메그쉬, 나 궁금한 게 있다구~ 냐하하! "
" 그래서요? "
" 이제 슬슬 알려줄 수도 있잖아? "
" 알려줄 생각은 없어요. "
카오스는 메그쉬가 일할 때, 잠시 휴식을 가지고 있을 때, 여유를 가졌을 때를 가리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라다녔다.
항상 시작은 궁금한 게 있다며 다가왔고, 메그쉬가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조차 할 수 없었다. 카오스가 따라다닌 지 시간 선으로 벌써 5년째, 메그쉬는 카오스를 보며 피곤하다는 듯 시선을 주었다. 메그쉬의 말꼬리에는 항상 친분은 넓을수록 피곤하다, 라는 말이 있었고 그걸 증명하듯 그녀는 최소한의 친분만 유지해 왔다.
하지만 그 유지가 카오스로 인해 깨지기 직전이었다.
신들 사이에서도 유독 카오스가 메그쉬를 따라다니는 모습에 이상한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유독 가깝게 지내는 사람 없이, 최소한의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메그쉬의 귀에 닿을 정도로 소문이 돌았다.
" 하... 카오스, 일 없어요? 이렇게 따라다녀도 돼요? "
" 응, 된다구~ "
" 마신이면 제대로 일하세요. "
" 음... 메그쉬가 알려주면 일하지. "
" ... "
메그쉬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인간일 적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카오스를 무시하기로 했다.
원래 이런 건 떡밥을 던져주지 않으면 알아서 사그라들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메그쉬가 간과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카오스가 그런 무시에 물러날 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시로 일관하는 메그쉬의 행동에도 카오스는 여전히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며 귀찮게 했다.
메그쉬에게 있어 그나마 구원이 되는 건 엘뤼야였다. 카오스가 끈질기게 달라붙으며 귀찮게 하면 보다 못한 엘뤼야가 카오스를 데리고서 가주었다. 그게 두 사람의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 정말 질리지도 않는 건지... "
" 응! 질리지 않는다구~ "
메그쉬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카오스의 등장에 흠칫 놀랐다.
분명 아까 엘뤼엔에게 붙잡혀 가는 걸 보았는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다시 나타났다. 엘뤼엔과 카오스가 나가던 문과 갑자기 나타난 카오스를 번갈아 보았다. 동그랗게 커진 눈동자가 두꺼운 안경에 가려져서 카오스에게 보이진 않았다.
카오스는 냐하하,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했다.
질리지 않는다며 웃고 있던 카오스는 갑자기 웃음을 지우고서 메그쉬를 빤히 보았다. 그녀의 손을 가볍게 쓸어내며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입을 떼어낸 뒤 메그쉬를 보고 눈꼬리가 휘어질 정도로 웃어주었다.
카오스의 행동에 생전 이런 건 처음이었던 메그쉬에겐 상당히 부끄러운 상황이었다.
" 어, 언제... "
" 어라? 메그쉬, 지금 얼굴 빨갛다구~? "
"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요. "
" 이상하네, 아까 분명 붉었다구~ "
" ... 건드리지마세요. "
살짝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메그쉬의 말투와 표정에 카오스가 장난치듯 말했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돌아왔다. 붉어지기는커녕 당황한 적도 없다는 듯이 평소처럼 무표정이 되어 카오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카오스가 신기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메그쉬의 뺨을 콕콕 찔러댔다.
메그쉬는 그 모습에 시종일관 무시하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뺨을 찔러오는 손길에 한숨을 내쉬며 그 손을 붙잡았다.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천사가 두 사람을 보며 얼굴을 붉혀왔다.
" 헉... 죄, 죄송합니다! "
" 어라라? "
" ... 하. "
메그쉬는 다급하게 사라지는 천사를 보며 조만간 또 이상한 소문이 돌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그날 이후로 며칠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소문에 발이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널리 퍼져나갔다.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소문은 살이 붙어 없던 사실까지 생겨버렸다.
천사들 사이에서 메그쉬와 카오스가 사귀고 있다는 둥, 연애의 감정이라는 둥 소문이 돌았다.
메그쉬는 그 소문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해명을 하면 또 다른 소문이 돌 게 분명하다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다. 소문이라는 것도 가만히 내버려두면 알아서 잠잠해질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다행히도 그녀의 생각이 맞았다.
" 정신없네요. "
" 어쩔 수 없다구~ 신은 언제나 모자라니까 말이야. "
" 그걸 알고 있으면 일하는 건 어떠세요? "
" 음, 일하는 건 싫다구~ "
메그쉬는 이젠 마치 자신의 안방이라도 되는 양, 자신의 집무실에 죽치고 있는 카오스를 보며 말했다.
평온하기만 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 검은 먹물을 퍼트린 장본인이 저리 여유를 부리고 있으니 못마땅하기만 했다. 대부분 잘못된 소문에 원인은 카오스였으니까. 메그쉬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그를 무시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나섰다.
일하기 싫어하는 그를 무시하고 일을 하기 시작하자 다시 방해가 시작되었다.
참다못한 메그쉬는 짧게 한숨을 내뱉으며 카오스를 보고 한 마디 내뱉었다. 진지한 말을 하면서도 표정 하나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말에 카오스의 표정이 바뀌었다.
" ... 카오스, 날 좋아하기라도 하세요? 그게 아니라면 이제 그만 찾아와요. "
" 뭐, 뭐라구...? "
" ... 그 반응은 뭔데요? "
" ... "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던 카오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그리 크게 티가 나진 않았지만, 메그쉬가 알 수 있었던 건 하루건너 하루를 매일같이 찾아오던 그였으니 표정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미세하게 붉어진 게 그가 지금 얼마나 당황한 건지 알려주고 있었다.
카오스는 메그쉬의 말에 마치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조차도 모르고 있던 감정을 그녀의 말로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한 존재에게 이렇게까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카오스의 시선이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가 메그쉬에게로 향했다.
여전히 무표정이었지만, 그 속에 그녀도 당황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 나, 나는 이만 가보겠다구~ 냐하하! "
" 아니... 저기, 카오스. "
" 이만! "
카오스는 지금 당장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다.
메그쉬는 당황해하는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가버리는 그의 모습에 더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아니면 아니라고 부정이라도 하고 갈 것이지, 얼굴을 붉히며 도망치는 모습은 오히려 의문을 더 돋우었다.
저런 반응을 보이니 정말로 그가 자신을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배제할 순 없었다.
아리야는 저번에 우연하게도 다른 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 카오스, 그 신. 엘퀴네스 시절에는 여성체였다면서? ]
[ 그렇지. 바뀐 이유가 모든 여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모양이더군. ]
[ 거 참... 이유가 신박하군. ]
그때 메그쉬는 벽 뒤에서 다른 신들이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리야가 시선을 돌렸다. 조용히 눈을 감으며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리자 움직임에 따라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메그쉬는 그날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에서 지우려고 했다.
하지만 방금 카오스의 반응을 보고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의 행동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했음으로, 자연스럽게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메그쉬는 일을 해야 했지만, 카오스의 반응 때문에 쉽게 집중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집중하려고 하면 카오스가 보였던 반응이 떠올랐다.
" 이래서야... 어느 쪽이 빠진 상태인지... 모르겠네... "
" 무슨 말이지? "
"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슨 일이시죠? "
" 카오스 그 녀석을 찾으러 왔는데 이상하군. 여기에 없다니. "
" 뭐... 그건 찾으시고 알려주세요. 저도 궁금하거든요. "
메그쉬는 자신을 찾아온 엘뤼엔을 보며 말했다.
그가 찾아온 이유야 뻔했다. 일하지 않는 카오스를 잡으러 왔을 테지, 아니나 다를까 그부터 찾았다. 카오스가 최근에 계속 자신의 집무실에 머무는 탓에 그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죄다 자신의 집무실로 왔다.
엘뤼엔의 말에 메그쉬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날 이후로 그렇게 오지 말라고 말해도 굳이 찾아오던 카오스를 본 적 없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편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항상 얼쩡거리던 녀석이 보이지 않자, 불안감이 생겨나는 건 왜일까.
" ... 카오스, 주변에 있으면 지금 당장 나오세요. "
" 어, 어라라... 어떻게 알았어? 나 완전 잘 숨었다구 생각했는데~ 냐핫! "
" 왠지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
일이 잘 풀려 한가해진 메그쉬가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평소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찔러보는 겸 내뱉는 말이었는데, 정말로 카오스가 등장하자 살짝 놀랐다.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긴 했지만. 다행히도 카오스가 알아차리지 못했다.
메그쉬는 어느새 자신의 뒤로 다가온 카오스에게 전혀 시선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을 돌려 복도 끝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분위기를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고, 그 분위기를 바꾸지도 않았다.
한참 고개조차 돌려주지 않던 메그쉬가 서서히 고개를 돌리며 카오스를 보았다.
카오스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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