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령의 소개로 소정 법사와 서화가 서로 인사를 나누었을 때가 엊그제였다.
소정 법사와 월령은 구가의 서를 찾기 위해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에게 도움을 청할 인간이 있다면 도와주기 위해서. 물론 도력이나 구미호의 힘을 쓰지 않고 도와주어야 했기에 조금 힘들었지만, 참을 만했다.
항상 집으로 돌아오면 서화가 어색하게나마 반겨주었기 때문이었을까.
월령은 지금의 생활이 마치 신혼부부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그 기분의 산통을 깨는 것도 서화였다. 서화는 돌아오는 월령을 볼 때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며 자신의 뜻을 밝혔다.
" 저기... 오늘도 안 되겠습니까? "
" 어찌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여기가 안전하다고 말했거늘. "
"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역적 죄인의 딸입니다. 지금은 도망치고 있는 관노의 신분이고요. "
" 그게 문제가 되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소. "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매일 반복되었고, 끝도 항상 같았다.
서화가 필사적으로 월령에게 자신이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설득했고, 월령은 그것을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답했다. 서화도 지칠 법할 텐데 포기하지 않고 매일 월령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리고 계속 반복되는 일에 화가 날 법도 한데 월령은 서화에게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걱정할 필요 없노라고 말했다.
매일 반복되는 질문은 어제로 끝이었던 모양이었다.
월령이 서화를 위해 복숭아를 한껏 안겨다 주었을 때, 서화의 걱정은 눈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그녀는 나가겠다는 말 대신 동굴 주변을 돌아다니며 꽃구경에 나섰다.
서화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가 환상처럼 느껴졌다.
꽃을 구경할 때면 꽃을 한 아름 안겨다 주는 저 남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왜 이리 귀엽게만 보이는 건지. 그녀는 월령의 마음만큼이나 자신의 속을 가장 알 수 없었다.
" 이리 꽃을 가져다주시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
" 내가 주고 싶어서 그렇소. 내가. "
" ... 감사히 받겠습니다. "
" 그대를 닮은 꽃이니 어여쁘지 않소? "
짧게 스쳐 가는 월령의 말에도 서화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나비를 쫓아다닐 때면 또 어디선가 나비를 한 아름 들고 와 보여주었다. 조금이라도 표정이 시무룩해지면 무언가를 보여주고, 데려가고, 먹이는 걸 반복했다.
월령의 행동에 서화가 잠깐이라도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그날 밤, 모닥불을 두고서 두 사람이 처음으로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월령은 서화가 최근 고민을 하고 있는 이유를 듣게 되었고 그 이유를 해결해 주기 위해 나서겠다고 했다.
월령에게 중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서화의 웃음뿐이었다.
" 그리하면 그대가 편히 웃을 수 있겠소? "
" ... 제게 이리 잘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 그대를 위해 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소. 내가 그리하고 싶으니까. "
" ... "
서화는 모닥불 앞에서 월령의 마음을 들었다.
그동안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제야 듣게 된 그 이유를 알게 되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멍하니 있던 서화는 월령을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날 깊은 밤, 월령은 서화를 동굴에 두고서 그녀의 동생을 찾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동구밖에 걸려있는 시체가 그녀의 동생임을 알 수 있었다. 서화가 수치목에 당하고 있을 때, 그녀의 곁에서 누님이라고 울부짖던 사내가 동생이라는 걸 알았고, 그 사내의 얼굴과 저기에 걸려있는 시체의 얼굴이 같았다.
월령은 이 사실을 서화에게 알려야 하는 것인지 고민되었다.
" 그래도... 그녀의 동생을 저리 둘 순 없는 것이겠지. "
애써 찾은 것이 살아있는 게 아닌 죽은 시체라는 것이 암담했다.
그녀의 미소를 위해 이리 찾아다녔으나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이 이미 죽은 뒤라는 것이... 월령은 사내의 목에 걸린 밧줄을 풀어내고 숲으로 돌아왔다. 서화에게로 돌아가기 전에 그 시신을 묻어주고 그녀에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 내내 그는 이 일을 어찌 전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에 잠겼다.
집으로 돌아오자 잠들지도 못한 채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서화의 모습을 보았다. 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해하는 모습에 월령은 그녀에게 이 사실을 비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어찌... 소식을 들었습니까?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까? "
" 둘 다... ... 무사한 것 같소. "
" 둘 다... 말입니까? "
" 음... 그러니 이제라도 마음을 좀 편히 가지도록 하시오. "
월령은 서화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마음이 쓰였다.
무사한 것 같다는 말에 안심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너무 처연했으니까. 심장 한쪽이 이상하게 따끔거려왔지만, 그 고통을 참으며 그녀에게 당분간 자신의 곁에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 말하자 서화가 월령에게 안겼다.
월령은 자신을 안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서화의 말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그녀를 안아줄 수 없었다. 제대로 안지 못하는 팔이 그녀의 등에 닿지 못하고 떨어졌다. 급히 몸을 돌리고 벗어나려고 했으나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 월령이 서화에게로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 읍...!? "
갑작스러운 월령의 접문에 놀란 서화가 눈을 크게 떴다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서화는 월령의 접문이 싫지 않았던 모양인지 밀어내지 않았다. 미간은 찌푸려졌으나, 자신도 그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월령은 천천히 입을 떼어내며 따끔거리는 마음을 숨기고 서화의 손을 붙잡았다.
애절하고 또 연정이 넘치는 시선으로 그녀를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단둘뿐인 공간 속에서 두 사람은 영원할 것 같았다. 서화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너무나도 진실되어서 눈동자가 절로 떨려왔다.
" 나와... 혼인해 주겠소? "
" 전... 역적 죄인의 딸입니다. "
" 나와 혼인해 주겠소? "
" 게다가 전 도망치는 관노의 몸입니다. "
" 나와... 혼인해 주겠소...? "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처럼 보였을까, 서화가 월령의 말에 받아주지 못하는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도 월령은 똑같이 혼인해 달라고 물어보았다. 서화는 자신이 역적 죄인의 딸이어도, 도망치는 관노의 몸이어도 혼인해달라고 하는 이 사내의 마음이 너무 커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자신도 같은 마음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월령은 자신에게 안겨 오는 서화를 이번에는 그녀의 등을 단단히 안아주었다. 녹빛의 반딧불이들이 두 사람을 축하해주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월령은 일찍이 자고 있는 서화를 두고서 소정 법사를 찾아왔다.
서적을 뒤지고 있는 소정 법사를 보며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들썩이는 몸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 소정, 그녀가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네. 혼례를 올리고 싶어. "
" 뭐? 설마 자네 농담이지? "
" 진심일세! "
" 정말 그녀와 혼인을 하겠다고? "
" 응. 그러니 이제 혼례 올리는 법을 좀 알려주게나. "
서적을 뒤적거리던 소정 법사는 자신의 오랜 친우가 하는 말에 놀라 들고 있던 서적을 떨구었다.
소정 법사가 고개를 돌려 놀란 얼굴로 월령을 보았다. 그러자 월령이 상당히 진심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앉아 있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소정 법사와 마주 보았다.
구가의 서를 얻는 방법은 이미 들었으니, 이번에는 혼례 올리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비록 구가의 서를 손에 넣기 위해선 험하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인간들의 혼례 방식이었다. 구미호가 올리는 혼례와 인간이 올리는 혼례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소정 법사를 찾아온 것이었다.
소정 법사는 마른기침을 하더니 월령을 힐끗거리며 보았다.
" 크흠... 이보게, 월령. 친우로서 부탁이네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되겠나? "
"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건가? "
" 구가의 서도 얻기 힘든 상황 속에서 혼례까지 올리면 지켜야 하는 게 늘어나지 않는가. "
" 그렇지. 서화에겐 더더욱 들키면 아니 되겠지. "
" 그렇다네! 생각해 보게. 만약 그녀에게 들켰다간 그녀에게도 상처도 자네에게도 상처라네! "
" 음... 하지만 천년 만에 처음으로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 여자를 만났네. 이 여자를 놓치면 난 또다시 천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 그러니 포기할 수 없네. "
" ... "
" 혼례식엔 와주겠지? 소정. "
소정 법사가 다급하게 월령을 말려보려고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구가의 서도, 혼례도. 무엇하나 인간이 아닌 구미호에게 있어 상당히 힘든 일이 될 터인데, 그 험난한 일을 사랑 하나 믿고 가려고 하는 자신의 친우를 그저 내버려둘 순 없었다.
이런저런 말을 늘리며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고, 월령이 말하는 이유에 오히려 소정 법사가 긍정해 버리고 말았다. 천년이라는 시간은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월령의 말에 소정 법사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얄미운 표정으로 혼례식에는 와달라는 그의 말에 소정 법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월령에게 가라는 듯 손을 저어댔다. 혼례식을 하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싶진 않았으나 이상하게도 소정 법사는 월령에게 약했다.
소정 법사는 아이처럼 웃으며 떠나는 월령의 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 이 멍청한 친우여... "
남겨진 소정 법사는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인간과의 혼례가 아니었다. 월령이 구가의 서를 얻기 위해 지켜야 할 3가지. 그 3가지를 지켜내지 못하면 천년 악귀가 된다는 게 중요했다.
월령이 천년 악귀가 되지 않기 위해선 절대적으로 3가지를 지켜야만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배제할 수 있는 건 전부 배제해야 마땅하거늘, 혼례를 올린다는 말은 두통을 불러왔다. 소정 법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다가 답답함에 냉수를 마셨다.
그런 소정 법사의 마음도 모르고 월령은 집으로 돌아가 서화와 혼례를 올릴 생각에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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