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로즈 타입

[HL/1차cp/240827] 구가의 서 IF ~만약에 말이야~ 1

나비의 보관함 2025. 2. 10. 01:39




" 하하하! "
" 호호... 어머, 강치야! 조심하렴. "
" 아버지, 어머니! "
 
 
이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비틀린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기생이 될 처지에 놓인 아녀자가 있었다. 관기가 되길 끝까지 거절하며 버티던, 어리지만 자신의 뜻을 끝내 굽히지 않던 여인이었다. 마을로 구경을 내려온 월령이 서화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낯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속곳만 남겨진 채 밤바람을 맞던 여인.
서화는 치욕감과 수치를 느끼면서도 꿋꿋했다. 비록 아비가 역적으로 몰려 관기로 팔려 왔다고는 하나, 사대부의 여인으로서 그 마음을 굽힐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리 배워왔고, 그리 컸기에.
수치목에 묶이는 것도 참았으나, 동생을 볼모로 협박해오는 탓에 하는 수 없이 기생 수업을 받게 되었다. 
 
서화가 춘화관 앞에서 당한 일들을 월령은 전부 지켜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월령은 서화의 모습에 눈이 멀 것만 같았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외모도 한몫했겠지만, 가장 마음을 흔들었던 건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절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겠다는 걸 친구인 소정 법사와 약속했으나 그런 약속을 깨트리는 사람이 서화였다. 
어찌 보면 처음부터 반해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단아한 한복 위로 뿌려진 피가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밤새도록 멀리서 그녀를 지켜보게 된 걸지도 모르지.
 
 
" 자네, 그 여인을 연정하는 건가? "
" 연정? "
" 그래. 사모하느냐고. "
" ... 그건 모르겠네, 하지만... 내가 인간이 되어 곁에 있어 주고 싶군. "
 
 
그래, 이왕이면 인간이 된 자신의 곁에서 웃어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자신 곁에 있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자신은 인간이 아닌 구미호였기에. 곁에 있어 줄 수 없었다. 그때 떠오른 한 가지가 있었다. 시선은 여전히 서화를 향해 있었지만, 입은 소정 법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 전에 알려줬던 구가의 서, 기억하지? "
" 그걸 기억하지 못할 리 있겠는가. "
" 그래, 나는 그걸 얻을 걸세. "
" 그건... 이제까지의 모든 구미호들도 얻지 못한 전설의 서가 아닌가? "
" 저 여인을 위해서라면... 가능할 거 같으니. "
" 한 번의 경계도 넘기면 안 되는 법일세, 가능하겠나? "
 
 
유일한 친구이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알려준 유일한 존재.
그렇기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인간. 그에게 말했던 구가의 서를 언급했다. 몇천 년 동안 구미호 일족에게 전해 내려온다는 그 밀서. 환웅이 이 땅에 내려오던 당시 이 땅을 수호하던 수많은 수호령에게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만든 전설의 언약서. 호족과 곰족 역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곰족 또한 되었던 인간을 못할 리 없다. 
물론 언약서를 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금기 사항을 지켜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 인간을 살생해서는 절대로 안 되네. "
" 알고있디네, 그럴 일 없어. "
" 인간이 도움을 구할 때 절대로 모른 척해서도 안 되는 거 알지 않나. "
" 지금 저 여인이 나에게 도움을 바라고 있지 않는가? "
" 인간들에게 수호령이라는 것을 절대로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겐가? "
" ...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겠군. 그래도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
"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군, 자네. 백일을 견딜 수 있겠나? "
 
 
백일, 숲속에서만 지낸다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앞으로는 서화의 근처에 맴돌 생각이었기에 확답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와달라 외치는 서화를 외면할 수 없었으니,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 소정 법사를 향해 웃어주기만 할 뿐이었다. 어쩌겠나, 친우여. 평생을 살아도 반응이 없던 것이 저 여인에게 반응을 하는데.
이토록 간절하고, 애달프고, 애처롭게 울부짖으며 저 여인이 아니면 안 된다고 외치는데.
누군가 보거든 너무 빠르게 사랑에 빠진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저 여인이 아니라 다른 이를 사랑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반박할 걸세.
 
 
" 저 여인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일세. "
" 그 고생의 몫은 자네의 몫이겠지. "
 
 
소정 법사의 말에 월령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화의 곁에서 머물기 위해 짐을 챙기려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는 길에 소정 법사가 그렇다면 자신이 할 일을 하겠다며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월령은 소정 법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자네가 말하기로 구가의 서를 진짜로 본 이는 없다지 않았었나. "
" 그렇지. 일족 중에서 어느 누구도 그 백일기도가 이루어진 이가 없기 때문에 말일세. "
" 그 이유를 모르겠나? "
" ... "
 
 
그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인간의 추악함에 결국 스스로를 등져버린 동족들이 많았기에, 인간이 되고자 했던 이들이 결국 돌아오지 않았기에.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서화를 볼 때면 그걸 알고 있음에도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정 법사와 헤어진 뒤 월령은 그대로 자신이 지내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짐을 챙기고 있을 때, 바람에 흩날리며 어수선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숲의 소리를 들었다. 
숲이 그녀가 위험하다는 걸 알려주었다. 월령은 당장 서화에게로 달려갔다. 그녀가 숲속에서 쫓기고 있는 게 보였고, 월령은 곧장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서화를 재웠다. 
 
 
" 도와... 주세요... "
" ... "
 
 
잠결인지 기절 직전에 도와 달라고 말하는 서화의 모습에 월령은 충격에 빠진 듯했다. 
잠깐 짐을 챙기기 위해 떠난 사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점점 다가오는 인간들을 향해 푸른 불꽃을 만들어내 위협했다. 검을 빼 들고 다가오는 이에게도. 
흩어진 풀잎을 이용해 인간을 위협하고, 쫓아냈다. 
기절한 서화를 이끌고 자신이 지내던 곳으로 돌아와 조심스럽게 눕혔다. 잠들어 있는 서화를 보며 월령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도와달라 청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감히 인간들이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모습이란. 
서화의 다친 발목을 치료해 주며 월령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지금도 인간은 정말 욕심이 많고 나약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서화 역시 인간이었고, 자신도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게 퍽 웃겼다. 
 
 
" 으음... "
" ... "
 
 
월령은 서화가 움찔거리자 조심스럽게 쓰다듬던 손길을 급하게 거두었다. 그녀가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몸을 숨겼다. 
절뚝거리며 동굴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조차 월령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월령은 자신의 공간에 들어와 있는 그 모습조차 단아하고 아름다워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옅은 미소만 보이며 그녀를 향해 웃어줄 뿐이었다. 
그러자 당황한 서화가 월령을 보며 누구냐고 물어왔다. 월령은 서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성큼 다가갔다. 
 
 
" 누, 누구십니까? "
" 꼬박 하루를 자길래 걱정했소. 발목은 괜찮소? "
" 누구시냐 여쭈었습니다! "
" 누구기는, 그대를 구한 사람이지. "
 
 
잔뜩 경계하고 있는 서화의 모습조차도 월령의 눈에는 그저 한없이 애처롭고, 귀엽게 느껴졌다. 
절뚝거릴 정도로 발목 상태가 좋지 않은 주제에 끝끝내 누구냐고 물어오는 말에 월령이 웃으며 답했다. 그러자 서화가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혀왔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인데도 오히려 경계하고 날카롭게 대했다는 게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월령의 시선이 서화의 얼굴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화는 월령의 시선도 모른 채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자신의 실수로 은인을 경계했으니, 이보다 큰 실수는 없었다. 서화가 급하게 양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여 월령에게 사과했다. 
 
 
" 미, 미안합니다...! 은인이신줄도 모르고... "
" 하하, 나는 구월령이라고 하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
" 아... 저... 저는 윤서화... 라고 합니다... "
" 서화, 서화라... 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군. "
 
 
어쩔 줄 몰라 하는 서화의 모습에 월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경계를 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이름을 알려주고, 그녀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사실상 밤새 그녀의 곁에 있었기에 이름을 알고 있었으나, 서화의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이 이름을 알고 있으면 이상할 게 뻔할 테니 모르는 척했다. 
서화가 여전히 부끄러움을 타며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월령은 처음에 서화의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들었던 생각을 말했다. 살짝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서화를 보고 덧붙이듯 말했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기도 했다. 
 
 
" 걱정하지 마시오, 그대를 쫓아오는 이들은 없을 터이니. "
" 예? "
" 그들은 내가 다 쫓아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단 말이오. "
" ... "
" 이곳은 그대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 될 것이오. "
 
 
월령은 서화가 쫓아오던 이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어찌 대답조차 하지 않고 표정으로만 보이고 있는 그녀였지만, 신기하게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치게 할 이들은 오지 않을 것이라 말했음에도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보고 있는 서화의 모습에 안심하라는 듯 웃어주었다. 
올망한 눈동자가 올곧게 자신을 향해있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월령은 천천히 서화의 손을 붙잡아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잠들 곳을 안내해 주고, 그녀를 눕힌 뒤 안심하라는 듯 토닥여주었다. 손길이 안심되었던 건지 서화의 눈이 서서히 잠겼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일어난 서화가 옆에 없는 월령의 존재에 밖으로 나와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 이보게, 월령! 월령, 자네 있는가?! "
" ...? "
" 어쩐 일인가? 소정 "
 
 
소정 법사가 허겁지겁 당황한 표정으로 월령을 부르며 강을 지나 돌산을 오르고 있었다. 
소정 법사와 서화가 마주친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당황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소정 법사의 등 뒤로 월령이 올라와 말을 걸었다. 
달포 뒤에나 돌아온다던 소정 법사의 모습에도 월령은 반갑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숲속에 들이닥친 토벌대들을 이야기하던 소정 법사는 뒤늦게 서화의 존재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월령이 힐끗 뒤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서화를 보았다. 
 
 
" 저 여인은 누구인가? "
" 그때 말했던 그 여인일세. "
" 자네가 그 서를 얻고자 하는 여인? "
" 그래, 서화. 인사하게. 이쪽은 내 오랜 친우인 소정 법사라고 하네. "
" 아... 안녕하십니까. "
" 소정, 이쪽은 서화라고 하네. "
" 아, 안녕하시오... "
 
 
월령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두 사람이 한 곳에 만나 서로 알아가게 되는 것이 매우 좋았다.